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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신문>에 실린 <안과밖> 23호 번역평가글 관련 기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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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sesk

작성일자

2007-1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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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outsesk@yahoo.co.kr

조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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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수신문>에 안과밖 23호에 실린 조성원 교수의 번역평가사업 관련 글의 요약, 그에 대한 서강목 회원의 반론이 실렸습니다. 두 글을 올립니다. - 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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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규정적’ 태도와 ‘평가자 중심’ 시선이 불편하다
비판_조성원 교수의 ?영미명작, 좋은 번역을 찾아서? 서평(<안과밖>23호) 요약

2007년 11월 26일 (월) 13:44:24 교수신문 editor@kyosu.net


반년간지 <안과밖>(영미문학연구회, 창비) 23호가 마련한 쟁점 ‘번역비평의 가능성을 묻는다’는 오늘날 번역 행위가 어떤 것인가를 예리하게 들여다본 문제적 기획이다. 특히 조성원 서울여대 교수는 영미문학연구회의 번역평가사업 결과물인 『영미명작, 좋은 번역을 찾아서1』(창비, 2005)을 서평한 글 ‘번역평가 기준으로서의 충실성과 가독성에 대하여’를 게재, 영미문학을 비롯 ‘번역’을 본령으로 하는 번역계에 논쟁의 불씨를 지폈다. 이에 대해 『영미명작, 좋은 번역을 찾아서2』(창비, 2007)의 책임집필자였던 서강목 한신대 교수가 반론글을 보내와, 조 교수의 서평 요약글과 함께 게재한다. 다음은 조 교수의 서평 논지다.

영미문학연구회의 번역평가사업단이 해방 이후 최근까지 발간된 영미문학 고전작품 36점의 번역물을 대상으로 해 번역 현황을 꼼꼼히 점검하고 분석한 결과를 담아 출간한 것이 『영미명작, 좋은 번역을 찾아서』다. 그런데 평가서를 다 읽고 난 지금 알 수 없는 혼란스러움에 당황한다.

평가의 기준으로 ‘충실성’을 내세운 것도, 거기에 더하여 ‘가독성’이란 기준이 덧붙여진 것도 영 불편하다. 도무지 객관적으로 정체를 판단할 수 없으면서 추상적인 개념만 존재하는 충실성·가독성이란 용어 자체가 너무 불편하다.

19세기에 들어 서구열강의 식민지 개척이 본격화되면서 번역의 문화적 가치는 급격히 추락하게 됐다. 이에 따라 어느 방향이 됐든 번역이 이뤄지는 과정에서 지배문화권의 우수성과 권위를 훼손하는 경우는 용납될 수 없었고, 역으로 식민지의 문화가 지배문화 속으로 옮겨가는 경우에도 지배문화권의 독자를 불편하게 하는 번역은 용납되지 않았다. 번역가는 종종 ‘식민지 노예’에 비유됐으며, 앵무새처럼 원전의 목소리를 되받아 울려주는 단순 언어전환적 지식만이 번역자의 자질로 요구됐다. 이 과정에서 충실성에 더하여 가독성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등장한다.

이처럼 원전/원저자/원문화 중심의 번역 인식은 종종 번역에 대한 불신과 경시풍조로 이어져 번역을 평가하는 잣대도 ‘규범과 규정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결국 이러한 관심은 자연히 ‘좋은 번역’은 어떤 것인가의 논의로 이어지게 되고, 이는 다시 ‘좋은 번역’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한다는 원칙과 기준들을 강조하는 방향으로 흐르게 된다. 그리고 모든 규율의 속성이 그렇듯 이는 다시, 마련된 원칙과 기준에 맞지 않는 모든 ‘잘못된’ 혹은 ‘나쁜’ 것으로 폄하하도록 하는 규범적이고 규정적인 사고 속으로 우리를 몰아간다.

이렇게 얘기하고 보니 『영미명작, 좋은 번역을 찾아서』를 읽고 필자가 혼란함을 느꼈던 이유가 이제 분명해진다. 바로 이 책의 지은이들이 지니고 있는 원작/원저자/원문화 중심의 번역인식, 그리고 거기에서 비롯되는 ‘규정적’(prescriptive)인 번역평가 태도다. 객관성과 형평성을 맞춰 평가하고자 한 지은이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평가가 궁극적으로는 평가자가 주관적으로 판단한 원문/원작의 모습에 따라 서로 다른 번역물 사이에 질적 우위를 가르는 방식으로 흐르고 있기 때문이다.

또 하나의 문제점은 바로 이 책 속에 은연 중 배어 있는 ‘평가자 중심의’ 혹은 ‘평가자 보호적인’ 시선이다. 놀랍게도 작품별로 나누어 평가의 결과를 수록한 매 장의 서두에 두 명씩 짝을 이루어 해당 작품의 번역물을 공동으로 분석·평가했다는 평가자들의 이름은 구체적으로 밝혀져 있지 않았다. 최대한의 공정성과 객관성을 강조한 이 책의 지은이들이 정작 자신들의 이름은 밝히지 않고 익명으로 평가결과를 발표했다는 사실은 놀라운 일이다. 익명의 평가자에 의해 내려진 판정을 평가의 대상이 된 번역자들이, 또한 독자들이 객관적인 결과로서 얼마나 편안히 받아들일 수 있을까.

기술번역학적 번역인식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졌더라면 이 책의 평가방식이나 결과는 분명 크게 개선됐을 것이다. 비슷한 수준의 번역물들 사이에 우위를 가리기 위해 애쓸 필요도 없었을 것이고, 충실성과 가독성이라는 기준이 평가자들마다, 혹은 평가대상작품에 따라 달리 적용되는 이율배반적 현상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며, 평가결과에 대해 개별적으로 쏟아질 수 있는 이견과 반론을 의식해 평가자들을 익명화할 필요도 없었을 터이기 때문이다.

수준 높은 번역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번역에 대해 전문적인 소양과 식견을 갖춘 전문번역가가 필요하다면, 그리고 우수한 번역연구와 합리적인 번역평가가 이뤄지기 위해서는 번역비평과 이론에 대해 전문적인 식견을 갖춘 전문 번역학자가 필요하다.


~~~~~~~~~~~~~~~~~~~~~~~~~~~~~ 서강목 회원의 반론

최소한의 번역 기준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반론_ <안과밖> 제23호에 실린 조성원 교수의 서평을 읽고

2007년 11월 26일 (월) 13:45:19 교수신문 editor@kyosu.net


최근 <안과밖> 23호에 실린 조성원 교수의 서평을 읽고 한동안 착잡한 심정을 떨칠 수 없었다. 영미문학 연구회(영미연)의 일원이자 동시에 ?영미명작, 좋은 번역을 찾아서1?에 뒤이은 ?영미명작, 좋은 번역을 찾아서2?의 책임집필자였던 필자이기에 남다른 관심으로 조 교수의 글을 읽을 수밖에 없었다. 내 착잡한 심정의 주조는 조 교수가 앞의 책을 읽고 느꼈다는 ‘불편함’에 분명 가깝다. 내가 느끼는 불편함의 기원은 영미연의 번역평가 사업을 둘러싸고 있어왔던 갖가지 논란의 주된 이유와 맞닿아 있기에 이 자리를 빌려 해명해 보고 싶다.

영미연의 번역평가사업은 엄밀히 말해 번역물에 대한 ‘비평’이라기보다 번역물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기준을 지키고 있는가를 확인하는 작업이었다. 그런 점에서 여러 번역학의 이론들이 개입할 수 있는 더욱 수준 높은 번역비평이 설 자리를 마련하는 정초작업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작업을 위한 기준을 마련하기 위해 국내외 각각 100여 건씩, 약 200여 문건의 주요 참고문헌들을 공동으로 연구하고, 그나마 적용 가능한 기준이 ‘충실성’과 ‘가독성’의 범주라고 결정했다(대중용 단행본에는 첨부되지 않았지만, 한국학술진흥재단의 사업결과보고서에는 참고문헌란이 첨부됐다).

총론에서 “이 연구에서는 번역본으로서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요건을 중심으로 우선 믿고 추천할 만한 판본을 골라내는 수준의 평가에 주안점을 두기로 했다”고 밝히고 있다. 영미연의 작업이 지닌 이런 취지는 어쩌면 조 교수의 비유를 빌리면 ‘아버지’라고 해야 할 것을 ‘어머니’라고 옮겨 놓은 번역문”을-더 중요하게는 선행번역물을 부도덕하게 표절한 번역문을-가려내자는 기본적인 문제의식에 가깝다.

그런데 조 교수는 고차원적인 번역학 이론의 차원에서 ‘충실성’과 ‘가독성’이란 평가기준이 노출하는 한계나 문제점에 대해 주로 논의하고 있다. 그리고 “지은이들이 기술번역학적 번역인식에 조금이라도 관심을 가졌다면 이 책의 평가방식이나 결과는 분명 크게 개선됐을 것이다”라고 말함으로써 영미연의 작업이 번역학의 기본도 고민하지 않은 순진한 원전중심주의자들의 작업처럼 비치게 글을 쓰고 있다.

한편 조 교수가 예시한 비판의 구체적인 예들이 실상 자신의 논지를 그리 지지해 주지 않는다는 사실에서도 나는 일종의 불편함을 느꼈다. 비슷하게 옮겨진 번역물의 질적 차이를 평가하는 경우에 조 교수의 말처럼 의견을 달리하는 사람들끼리는 “밤을 새워 다퉈야 할지 모른다.” 그러나 피차가 양비론과 양시론의 무난한 결론에 안주하는 논객들이 아니라면 모종의 답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다.

예컨대 조 교수의 글에서 언급된 ?무기여 잘 있거라?의 문제된 대목 “…we were still friends, with many tastes alike, but with the difference between us”의 번역은 “우리는 두 사람 사이에 차이점이 있기는 하지만 여러 가지 취미가 같고 여전히 친구였다”(정병조 역)와 “우리는 여전히 친구였고 비슷한 취향을 많이 갖고 있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다른 점이 있었다”(대안역)로 모두 번역될 수 있고, 조 교수가 선호하는 대로 전자가 “더욱 우리말 용법에 맞는 표현”이지도 않다. 원작의 문맥에서는 뒤이어 신부와 헨리 사이의 차이점이 나열되기에 후자의 번역이 분명 매끄럽다.

사족일 수도 있겠지만 또 다른 불편함의 원인도 밝혀두는 것이 좋겠다. 공동연구원들의 명단을 집단적으로 제시해 놓은 점은 얼핏 보면 실명제의 번역물을 상대적 익명성 속에 은닉한 이들이 평결하는 형식으로 받아들일 수 있겠다.

그러나 이런 처리는 무엇보다도 총론에서 밝히고 있는 작업 성격에서 기인한 것이었다. 통일된 평가 기준 마련에서부터, 팀별 공동 집필, 검토위원회에 의한 수차례의 검토 및 수정작업은 최종 평가문이 누구 개인의 것이기 보다 진정한 협업의 결과물로 바뀌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런 기초적 사실의 확인 작업에서는 분명 누가 했느냐보다는 결과의 정확성이 더 중요한 요소일 것이다. 만약 책임소재가 모호해진 면이 문제가 된다면 의당 연구책임자가 일차적 책임을 지면 될 것이고, 여태껏 그래왔다. 이를 위해 해당 번역물마다 표절한 대상에서부터, 오자, 낙자, 번역 누락, 구문 파악의 심대한 오류 등을 철저히 정리한 검토내역서가 사전에 작성되기도 했다.

서강목 / 한신대·영미문학연구회 번역평가사업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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