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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Paper of the Month 1
첨부
작성자

고경하

작성일자

2002-11-01

이메일

sordello@lycos.co.kr

조회

6937







조지 엘리어트와 셰익스피어--김영무





style="FONT-SIZE: 9pt">그 가운데 하나는 맥베스가 갑옷을 챙겨 입던 중 아내의 죽음 소식을 듣는 순간을 포착한 것이다. …
맥베스의 모습이 너무 악마처럼 보인다.――셰익스피어적이 아니다.
(『조지 엘리어트 편지집』 2권, 194면)


style="MARGIN-LEFT: 0px; TEXT-INDENT: 2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0px"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조지 엘리어트(George Eliot, 1819∼1880)의 작품을
읽고 크게 감동한 빅토리아 중기의 독자들은 그들이 받은 감명의 깊이를 강조하기 위하여 조지 엘리어트야말로 누구보다도 셰익스피어적인 작가라고
평가하기를 서슴지 않았다. 이런 평가는 최소한 서양문학에서는 한 문학인이 받을 수 있는 최대의 찬사이다. 서구인들에게 셰익스피어는 문학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경지를 가리키는 말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어떤 작가가 셰익스피어적이라고 말하는 것은 그의 위대성에 대한 수사적 표현일 수도
있는데, 그러나 뛰어난 작가 모두에게 셰익스피어적이라는 말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 또한 분명하다. 밀턴(John Milton)이나
워즈워스(William Wordsworth)가 영국 최대의 시인 중 하나임을 부정할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그들을 셰익스피어적인 시인이라고
말하는 대신, 셰익스피어적인 특징과 구별하여 밀턴적 혹은 워즈워스적이라고 부른다. 위대한 낭만주의 시인들에 국한하여 보더라도 셸리(Mary
Shelley)나 바이런(George Gordon Byron) 앞에 셰익스피어적이라는 수식어가 붙은 경우는 드문데 비해 키쯔(John
Keats)에 대해서는 곧잘 셰익스피어적이라고 얘기한다. 그렇다면 조지 엘리어트를 셰익스피어적이라고 말할 때 그것은 어떤 문맥에서인가.

style="MARGIN-LEFT: 0px;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0px"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현대의 조지 엘리어트 비평에서 그를 셰익스피어와 연결하여 연구하는
경우는 많지 않지만, 두 사람을 연결할 때 그 지배적인 경향은 그가 셰익스피어를 의식적으로 모방했다는 전제에서 출발하는 것이 주요 흐름인데,
여기에는 크노이플마커(U. C. Knoepflmacher)의 영향이 적지 않은 것 같다. 그는 1961년에 발표한 짧은 글 「『대니얼 데론다』와
셰익스피어」라는 글에서, 조지 엘리어트의 마지막 소설작품인 『대니얼 데론다』(
style="FONT-SIZE: 9pt">Daniel Derondastyle="FONT-SIZE: 9pt">)
그녀의 소설 중에서 가장 의식적으로 셰익스피어적인 작품으로 씌어진 것이라고 주장한 바 있고,[1]
style="FONT-SIZE: 9pt"> style="FONT-SIZE: 9pt">1968년에 내놓은 『조지
엘리어트의 초기 소설』(
style="FONT-SIZE: 9pt">George Eliot's Early
Novels
style="FONT-SIZE: 9pt">)에서는 그의 작품 곳곳에 스며 있는 셰익스피어의 숨결을
찾아내기도 한다. 가령 『플로스 강의 물방앗간』(
style="FONT-SIZE: 9pt">The Mill on
the Floss
style="FONT-SIZE: 9pt">)에는 『뜻대로 하세요』(style="FONT-SIZE: 9pt">As You Like Itstyle="FONT-SIZE: 9pt">),
『앤터니와 클레오파트라』(
style="FONT-SIZE: 9pt">Antony and
Cleopatra
style="FONT-SIZE: 9pt">), 『햄릿』(style="FONT-SIZE: 9pt">Hamletstyle="FONT-SIZE: 9pt">),
『리어왕』(
style="FONT-SIZE: 9pt">King Learstyle="FONT-SIZE: 9pt">) 등등의 메아리가 여러 곳에서 들리며, 『싸일러스 마너』(style="FONT-SIZE: 9pt">Silas Marnerstyle="FONT-SIZE: 9pt">)에는
『페리클레스』(
style="FONT-SIZE: 9pt">Periclesstyle="FONT-SIZE: 9pt">), 『폭풍』(style="FONT-SIZE: 9pt">The
Tempest
style="FONT-SIZE: 9pt">), 『겨울 이야기』(style="FONT-SIZE: 9pt">The Winter's Talestyle="FONT-SIZE: 9pt">)와
직간접으로 연결되는 문맥이 많다고 그는 지적한다.[2]
style="FONT-SIZE: 9pt">
style="FONT-SIZE: 9pt">현대 조지 엘리어트 비평을 질적으로 심화 확대시킨 장본인인 바바라 하디도
일찍이 그의 유명한 저서 『조지 엘리어트의 소설들』에서 이 소설들의 주요 테마가 『리어왕』, 『맥베스』(
style="FONT-SIZE: 9pt">Macbethstyle="FONT-SIZE: 9pt">), 『루크리스의
겁탈』(
style="FONT-SIZE: 9pt">The Rape of Lucrecestyle="FONT-SIZE: 9pt">), 『테네의 타이몬』(style="FONT-SIZE: 9pt">Timon of
Athens
style="FONT-SIZE: 9pt">), 『겨울 이야기』 등 주제와 연결되어 있다고
주장한다.[3] 또한
고든 헤이트가 편집한 획기적인 책 『조지 엘리어트의 편지』[4] 전 아홉
권에서 확인될 있는 셰익스피어에 관한 언급만도 1백번이 넘고,
『대니얼 데론』를 쓰기 위해 마련된 노트북[5]에도 셰익스피어에서의 인용이 많이 나오고, 기타 일기와 비평문들[6]에도 셰익스피어에 관한 언급이 상당한 것에 주목하여, 조지 엘리어트의 작품에 들어 있는 셰익스피어에
관한 직간접적인 인용, 차용, 인유 등등을 하나하 밝혀서 그것이 그의 소설의 의미를 어떻게 규정하며 풍부하게
하는지를 살피는 세밀한 연구들도 있다.[7]


style="MARGIN-LEFT: 0px;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0px"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그런데 이런 글들에서 느끼는 가장 큰 불만은 조지 엘리어트의
텍스트와 셰익스피어 텍스트의 비교 대조가 매우 작위적인 해석을 낳는다는 점이다. 가령 조지 엘리어트가 차용한 셰익스피어의 어떤 대목 어떤 장면이
원래 텍스트의 의미대로 쓰이고 있다거나 혹은 반대로 원래 의미를 변형 왜곡 혹은 패러디하는 문맥에서 사용되었다거나 하는 식으로 해석하는데, 이런
경우 그 판단이 매우 기회주의적이고 편의적이라는 점이다. 조지 엘리어트가 빌어다 쓴 셰익스피어의 어떤 대목 혹은 어떤 이미지는 원 텍스트
안에서도 여러 의미를 동반하는 것이기에, 조지 엘리어트의 소설 속으로 이식되었을 때 원래의 애매성에 더하여 옮겨간 곳의 애매성을 함께 동반하는
것이므로 어떤 확정된 진짜 의미가 무엇인지 말하기가 그만큼 더 어려워진다.

style="MARGIN-LEFT: 0px;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0px"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따라서 이런 미시적인 연구는 조지 엘리어트의 소설에 들어 있는
수많은 다른 작품으로부터의 울림들, 가령 워즈워스, 밀턴, 단떼, 희랍 비극들, 성서 등등의 메아리를 연구하는 작업들 중 하나로는 의미가
있을지언정, 조지 엘리어트를 셰익스피어적인 작가라고 했을 때, 이런 유별난 규정이 암시하는 조지 엘리어트 소설세계의 본질적 속성에 대한 귀중한
통찰의 의미를 깨닫는 일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더구나 셰익스피어로부터의 직간접적인 차용이 아무리 많아도 그 빈도수만을 가지고
어떤 작가를 셰익스피어적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라면, 또한 셰익스피어를 의식적으로 모방한 작가라고 해서 모두 셰익스피어적이라고 얘기할 수
없다면, 한 작가의 어떤 속성 혹은 자질 혹은 태도를 셰익스피어적이라고 하는지 그 참뜻을 따져보는 일은 조지 엘리어트를 제대로 이해하는 일과
직결되는 작업이라고 할 수 있다.

style="MARGIN-LEFT: 0px;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0px"
align=justify>


style="MARGIN-LEFT: 0px;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0px"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1

style="MARGIN-LEFT: 0px;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0px"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조지 엘리어트라는 무명 작가가 1857년 『블랙우즈
매거진』(
style="FONT-SIZE: 9pt">Blackwood's Magazinestyle="FONT-SIZE: 9pt">)에 「에이머스 바튼」(Amos Barton), 「길필의 사랑 이야기」(Gilfil's Love
Story), 「재닛의 회개」(Janet's Repentance) 등 세 편의 중·단편을 잇달아 발표하고, 이듬해 이들을 묶어 소설집 『목사
생활의 여러 장면들』(
style="FONT-SIZE: 9pt">Scenes of Clerical
Life
style="FONT-SIZE: 9pt">)을 출판한 데 이어, 바로 1859년 2월에는 장편소설 『애덤
비드』(
style="FONT-SIZE: 9pt">Adam Bedestyle="FONT-SIZE: 9pt">)를 내놓자, 당시의 영국 독서계는 흥분에 휩싸인다. 우선 이 신인의 정체가 전혀 불분명하여 작가의
신원을 둘러싼 추측이 무성한 가운데, 문제의 작가가 바로 자신이라고 자칭하고 나선 리긴즈(Liggins)사건, 즉 가짜 조지 엘리어트 출현
사건까지 터지자 궁금증은 더해갔다. 이런 세간의 들뜬 관심과는 별도로, 당시의 독서계는 독서계대로 특히 『애덤 비드』에서 영국 농촌사회의 실상을
구석구석 박진감 넘치게 그린 뛰어난 솜씨에 매료되어, 정체불명의 이 신비한 소설가의 등장을 셰익스피어적인 재능을 가진 큰 작가의 탄생으로
반겼다.

style="MARGIN-LEFT: 0px;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0px"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애덤 비드』에 대한 독자들의 대체적인 첫 반응은, 인생과 인물을
파악하는 관점이 거대하고 공감의 폭이 드넓으며 페이쏘스와 유머가 자연스럽고 스타일 순수하여 책이 아니라 인생 자체를
만나는 것 같다, 즉 "셰익스피어적"이라는 것으로 요약될 수 있다.[8] 전문
비평가들의 반응은 일반 독서계보다는 신중하여 곧바로 셰익스피어적이라는 형용사를 들먹이지는 않았지만, 삶에 대한 깊은 통찰과 너그러운 공감의
능력, 인간 영혼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거기서 일어나는 내밀한 흐름을 포착해내는 탁월한 관찰력, 뛰어난 인물 창조와 생생한 묘사력, 특히 포이저
부인(Mrs. Poyser)의 창조 등을 찬탄하며, "보기 드문 솜씨"(rare skill), "매우 대가적인"(very masterly),
"완성도 높은"(highly finished), " 성숙된"(well matured), "최상급의"(the
highest order)와 같은 수식어 동원을 주저하지 않았다.[9]

style="MARGIN-LEFT: 0px;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0px"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그러다가 조지 엘리어트라는 이름 그대로 남자일 것으로 알았던 작가의
정체가 여성이며 그것도 유부남과 동거를 시작한 추문의 주인공인 매리안 에반즈(Marian Evans)라는 놀라운 사실이 밝혀짐으로써 독서계는 또
한번의 충격을 겪게 된다. 새로운 재능의 탄생을 격찬했던 비평계는 곤혹스러운 입장이 되지만, 일단 공식적으로 찬양했던 말들을 철회할 수도
없는데다가 『플로스 강의 물방앗간』(1860), 『싸일러스 마너』(1861) 등 빼어난 작품들이 연달아 숨가쁘게 출간되자, 전문 비평가들도 이
문제적인 작가의 천재성을 계속 칭송할 수밖에 없었다. 급기야 『싸일러스 마너』의 제6장에 나오는 마을 술집 무지개 여인숙(the Rainbow
Inn)에서의 마을 람들의 대화장면을 논의하면서는 많은 비평가들이
"셰익스피어적"이라는 찬사를 동원하기에 이른다.[10]

style="MARGIN-LEFT: 0px;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0px"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조지 엘리어트를 셰익스피어 처음 비긴 것은, 『애덤
비드』가 나온 1859년에 이 소설을 일컬어 "셰익스피어 이래 가장 훌륭한 것"[11]이라고 열광한 소설가 찰스 리드(Charles Reade)의 발언으로 거슬러 올라가지만, 1872년
『미들마치』가 출판될 즈음에는 조지 엘리어트와 셰익스피어를 나란히 놓고 얘기하는 경우가 흔하게 되어, 알렉싼더 메인 같은 이는 셰익스피어가
드라마에서 한 일을 조지 엘리어트가 소설에서 해냈다고 열광하기도 했다. 그는 『조지 엘리어트의 산문과 운문에서 뽑 지혜와 위트와
정감 넘치는 명언들』이라는 긴 제목의 책을 낸 장본인이니까 그렇다 치더라도,[12] 버트 스펜서(Herbert Spencer)조차 그를 일컬어
"여자 셰익스피어"라고 했던 것으로 전해진다.[13] 물론
이런 과도한 찬양에 반발하는 사람도 적지 않았다. 1877년 스윈번(A. C. Swinburne)이 조지 엘리어트를 폄하하고 샬롯
브론테(Charlotte Brontë)를 양하는 글을 쓴 배경도 따지고 보면 조지 엘리어트 우상화에 대한
강렬한 반발의 성격이 짙다고 하겠다.[14]
어쨌거나 조지 엘리어트는 셰익스피어적인 작가라는 찬양의 말에 담긴 한가지 중요한 의미는 1879년 섄드가 한 발언에 담겨 있다. 즉 조지
엘리어트는 "셰익스피어처럼 가장 숭고한 것에서 가장 비천한 것에 이르는 자신의 인물들에게 그녀 자신을 던져넣는다. 그녀 자신의 극적 천재성의
깊은 바닥에서 불러낸 빼어난 개성적인 인물들 속에서 숨쉬고 생각하기까지 한다".[15]

style="MARGIN-LEFT: 0px;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0px"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조지 엘리어트에 대한 이런 식의 칭송에서 우리는 낭만주의 문인들이
셰익스피어를 찬양할 때 동원하던 어조의 메아리를 쉽게 감지하게 된다. 가령 윌리엄 해즐릿(William Hazlitt)은 셰익스피어야말로
"에고이스트와 가장 거리가 먼 사람"으로서, 그의 천재성은 "악과 선, 슬기로운 자와 어리석은 자, 군주와 거지" 위에 차별 없이 빛나며,
"우리들 모두와 마음대로 리를 바꿀 수 있고, 마치 자신의 뜻인 것처럼 우리의 뜻을
갖고 놀 수 있는" 능력의 사람이라고 주장했고,[16] 키쯔도
셰익스피어를 "카멜레온적인 시인"으로 규정하고 "모 것이며 동시에 아무것도 아닌――무아(no self)"적인
특질을 그에게 부여했던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17]
이와같이 셰익스피어의 천재성을 무엇보다도 공감의 능력에서 찾는 낭만주의적 전통을 그대로 물려받은 빅토리아인들은, 그의 탁월한 공감의 능력에
버금가는 재능을 조지 엘리어트에게서 본 것이다.

style="MARGIN-LEFT: 0px;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0px"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당대 비평 중에서 조지 엘리어트를 셰익스피어와 직접 비교하지
않으면서도 그의 셰익스피어적 특성을 간접적으로 암시한 글로 리처드 씸슨(Richard Simpson)의 조지 엘리어트론이 주목된다. 셰익스피어
학자이며 역사가이고 가톨릭 문필가인 씸슨은 『로몰라』(
style="FONT-SIZE: 9pt">Romolastyle="FONT-SIZE: 9pt">)가 출판된 직후인
1863년 10월 액튼 경(Lord Acton)과 자신이 공동으로 주간하던 잡지 『국내외 문』(
style="FONT-SIZE: 9pt">Home and Foreign Affairsstyle="FONT-SIZE: 9pt">)에 장문의
논문 「조지 엘리어트의 소설들」(George Eliot's
Novels)을 발표한다.[18]
글은 근본적으로 작가의 인생관, 종교관, 철학관을 강한 어조로 비판한 글임에도 불구하고, 당대 비평 중 초기 소설에 대한 통찰력 깊은 분석을
담고 있다. 그는 조지 엘리어트 소설의 성격을 분석하는 한 대목에서 『플로스 강의 물방앗간』의 말썽 많은 비극적 결말을 일반대중은 싫어하지만,
작가는 인물들의 "감정과 정서"(feelings and emotions)를 고귀하고 성스러운 것으로 보기 때문에 "음모와 사건의 플롯"(the
plot of intrigue and incident)에나 적합한 대파국을 "성격의 플롯"(the plot of character)에 부여했다고
말한다. 톰(Tom)과 매기(Maggie)의 삶의 향연은 끝나지 않았지만, 그들의 잔에는 독이 들어 있고, 죽음으로밖에는 풀 수 없을 만큼
뒤엉켜 있는 것이 그들의 삶이며, 그들의 영혼 밑바닥에 가라앉은 기억의 침전물을 뒤흔들면 인생 전체가 쓰디쓴 것이 되고 말 것이기 때문에,
작가는 그들의 죽음을 요구했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그리고 "맥베스와 그의 부인, 로미오와 줄리엣, 리어와 그의 딸 경우에서 그러하듯이,
고급 예술은" 이런 결말을 요구한다는 것이 작가의 생각이라고 그는 이해한다.[19] 이어서 씸슨은 조지 엘리어트는 인간의 가장 내밀한 본바탕이 궁극적으로 모두 같은 본성을 공유한다고
보기 때문에, 그의 윤리관은 엄정하고 철저한 것이지만 동시에 관대할 수밖에 없고, 따라서 그의 작품세계에서는 완전한 악인이나 완전한 성인은
용인되지 않으며, 든 착한 인물들에게도 악의 요소가, 모든 악당들에게도
영웅적인 면이 함께 뒤섞여 있다고 지적한다.[20] 씸슨은
조지 엘리어트의 이런 특징에 주목하여, 그를 프로테스탄트 전통과 연결시키는 많은 평자들과는 달리 작가의 인생관이 근본적으로 가톨릭적인 것이라고
주장한다(작가가 기독교 교리를 신봉했다는 얘기는 물론 아니다). 왜냐하면 "공감을 통해 그리스도의 고난"(the sufferings of
Christ through sympathy)에 동참하는 것을 중시하는 것이 가톨릭적임에 반해, "그리스도의 공덕"(His merits) 애착을
갖는 프로테스탄티즘은 그의 고난을 함께 아파하는 것이 아니라 기쁨으로 반기기 때문이다.[21]

style="MARGIN-LEFT: 0px;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0px"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씸슨의 이와같은 독특한 주장은 셰익스피어와 밀턴을 비교한
체스터튼(G. K. Chesterton)을 상기시킨다. 그는 「셰익스피어 대 밀턴」(Shakespeare vs. Milton)이라는 글에서
셰익스피어가 가톨릭적인 것을 대표한다면 밀턴은 프로테스탄티즘을 대표한다고 말하면서, 각각의 특징으로 너그러운 진리관과 엄정한 진리관을 그 예로
든다. 그에 따르면 밀턴은 개인의 영혼이 실제로 시험하고 경험하지 않은 진리에 별다른 가치를 부여하지 않는 반면, 셰익스피어는 진리란 개인의
호불호에 상관없이 존재하는 것으로 본다. "하느님의 길이 옳음을 인간에게 정당화하는" "무오류와 비관용"(infallibility and
intolerance)의 자세가 밀턴적인 것인 반면, "명예를 탐하는 것이 죄라면/나야말로 살아 있는 것 중 가장 죄 많은 영혼이다"는
마음자세가 셰익스피어적이다. 셰익스피어의 폴스타프(Falstaff)는 "악을 행해도 어리석게 하고"(did evil stupidly), 밀턴의
사탄은 "악에 대한 열망도 이지적"(desire evil intelligently)이다. "폴스타프는 불완전한 존재이기 때문에 조롱을 일삼지만,
사탄은 완전하기 때문에 심각하다"고 그는 주장한다. 한마디로 밀턴은 공적인 교육을 제대로 받은 엄격한 모범생인 반면, 셰익스피어는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자신의 이름의 철자도 매 다르게 쓰는, "일종의 거인 같은 말썽꾸러기"(a sort of
gigantic truant)라는 것이 체스터튼의 생각인데,[22] 이것은
셰익스피어의 특징을 무엇보다도 "공감의 인간"이라고 파악한 빅토리아인들의 일반적인 생각과 궤를 같이하는 것이다.

style="MARGIN-LEFT: 0px;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0px"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1880년 12월에 작가가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업적을 평가하기
위한 글이 여러편 발표되었다. 그 가운데 가장 잘 알려진 것은 리즐리 스티븐(Leslie Stephen)의 것으로, 그는 1881년 봄 자신이
편집하는 『콘힐』(
style="FONT-SIZE: 9pt">Cornhillstyle="FONT-SIZE: 9pt">)에 기고한 추모의 글에서, 구체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살아 있는 인물들을 생생하게 그린 조지 엘리어트의
초기작들이 후기로 가면서 철학적인 관념을 앞세운 사변적 분석으로 흐른다고 평가한다. 이런 평가가 하나의 상식처럼 굳어져서 한동안 조지 엘리어트
비평의 상투형을 이루지만, 1883년 4월에 『블랙우즈 매거진』 발표된 "셰익스피어와 조지 엘리어트"라는 익명의 글은 이 두
거인을 직접 비교하고 있어 주목에 값한다.[23]

style="MARGIN-LEFT: 0px;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0px"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뒷날 베인의 것으로 확인된 이 글에서 그는 셰익스피어가 빅토리아
시대에 활동했다면 아마도 소설을 썼을 것이라고 가정하면서, 당대의 소설가 중에서 가장 셰익스피어적인 작가는 월터 스콧(Sir Walter
Scott)도 새커리(William M. Thackeray)도 디킨즈도 아니고 조지 엘리어트라고 단언한다. 그 근거로 베인이 제시하는 것은
궤변적인 자기 변명의 심리적 원리를 소상히 밝혀내고 인간의 마음에서 선악이 동시에 자라나는 과정을 차근차근 세밀하게 추적하는 조지 엘리어트의
빼어난 심리분석 능력이다. 그는 『끝이 좋으면 다 좋다』(
style="FONT-SIZE: 9pt">All's
Well That Ends Well
style="FONT-SIZE: 9pt">)에 나오는 "우리 인생의 거미줄은
선과 악이 함께 뒤얽힌 실로 이루어져서, 우리들의 결점이 채찍을 휘두르지 않으면 우리들의 미덕은 기고만장하고, 우리의 미덕이 귀여워해주지 않으면
우리들의 범죄는 절망한다"는 대목을 인용하면서, 당대의 작가 중에서 이런 심오한 성찰에 육박하는 능력의 소유자는 괴테와 조지 엘리어트뿐이라고
주장한다. "'하느님, 우리에게 축복을 내리소서'라고 사람들이 기도할 때,/나는 '아멘'이라고 할 수 없다/…/축복을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은
나인데/'아멘'이 목구멍에 걸렸구나"라며 왕을 살해한 맥베스가 속 편하게 기도할 수 없는 심정을 토로할 때, 또한 햄릿의 숙부가 "오, 내 죄의
냄새가 진동하여 하늘에까지 이르도다/…/의욕은 의지만큼 날카로운데/나는 기도를 할 수 없구나"라고 신음할 때, 이 두 잔인한 살인자의 마음속에
오가는 것과 같은 착잡하고 복잡한 심리를 조지 엘리어트만큼 심도있게 추적할 수 있는 작가가 없다는 것이다. 피상적인 사람들은 맥베스와
클로디우스(Claudius) 같은 인물의 말에서 뻔뻔스런 위선밖에 읽을 수 없지만 조지 엘리어트는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미들마치』에서
어두운 과거가 있는 매우 종교적인 한 은행가의 생애를 끈질기게 추적하여, 맥베스나 클로디우스에 버금가는 "복합적인, 매우 섬세하게 복합적인
인물"(a mixed, a very subtly mixed character)인 불스트로우드(Bulstrode)를 창조해낼 수 있었다. "선악의
복합체가 아니었다면 기도 같은 것은 입에 올리지도 않았을" 것이고, "타인뿐 아니라 자신에게도 수수께끼"인 이런 인물들 옆에,
몰리에르(Molière)와 디킨즈가 그려낸 위선적인 인물인 따르뛰프(Tartuffe)나 페크스니프(Pecksniff)를 세워놓으면 "어린애
장난" (child's play)처럼 보인다는 베인의 지적은 인간사에 대한 조지 엘리어트의 복합적인 인식을 잘 꿰뚫어본 말이다. 사실 작가
자신이 「안티고네와 도덕」(The Antigone and Its Moral)이라는 평문에서 다음과 같은 말을 남기고 있음을 우리는 기억한다.

align=justify>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개혁자, 순교자, 혁명가는 악에 맞서 싸우는 것만이 결코 아니다.
그들은 하나의 선――그것을 침해하면 해를 가져올 수밖에 없는 하나의 정당한 원리와도 대치하는 것이다. 군함세에 대한 조세저항은 내란을
불러일으키고, 거짓 교리를 비난하는 설교는 심약한 마음들을 뒤흔들어 의혹의 난바다 표류하게 만들고, 도로를 새로 만들면 기득권이 파괴되고, 새로운 경작지를 개간하면 한 인종이 전멸된다.[24]

style="MARGIN-LEFT: 0px;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0px"
align=justify>


style="MARGIN-LEFT: 0px;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0px"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2

style="MARGIN-LEFT: 0px;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0px"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사실 조지 엘리어트는 거의 죽는 그날까지 일생 내내 셰익스피어를
거듭거듭 읽었음이 그의 일기, 편지 등을 통해 확인된다. 조지 헨리 루이스(George Henry Lewes)와 동거를 시작한 뒤로 거의 매일
둘이서 셰익스피어의 작품을 낭독했다든지, 『미들마치』를 쓸 무렵 죽어가는 의붓아들을 간호하면서 셰익스피어의 쏘네트를 다시 통독했다든지, 루이스가
죽고 존 월터 크로스(John Walter Cross)와 재혼(첫 정식 결혼)한 뒤에도 이 연하의 남편과 더불어 셰익스피어 읽기와 공연 관람을
계속했다든지 하는 사실은, 이제는 무슨 주석을 달 필요도 없이 그의 편지와 일기와 노트 등을 뒤져보면 금방 확인되는 상식이고, 모든 전기
작가들이 계속 언급하는 사실이다. 그가 셰익스피어를 통해 작가로서 무엇을 배웠고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그 전모를 알아내기는 어렵지만, 그가
셰익스피어를 어떤 관점에서 대했는지를 암시하는 흥미로운 기록들은 이곳 저곳에 남아 있다.

style="MARGIN-LEFT: 0px;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0px"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조지 엘리어트의 편지집 제1권에는 셰익스피어에 관한 언급이 20여
군데 나오는데, 주목할 점은 그 가운데 열번이 『뜻대로 하세요』에 관련된다는 것이다. 모두 아홉권으로 된 편지집 전체에서 이 작품에 관한 언급만
열여덟번 나오고, 그녀의 마지막 소설인 『대니얼 데론다』의 여주인공 그웬돌런 할러스(Gwendolen Harleth)를 여러면에서
로잘린드(Rosalind)와 비교하고 있는 것을 보아도 이 희곡, 특히 개니미드(Ganymede)라는 남성으로 변장하고 아든(Arden) 숲에서
여성, 남성의 장벽을 뛰어넘어 해방된 삶의 한 모습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처녀, 재치있고 솔직하고 거칠 것 없이 자유분방하면서도 인정미 넘치는
발랄한 로잘린드의 모습이 그의 상상력을 사로잡았음에 틀림없다. 가부장적 사회의 관습의 질곡이 어떻게 여성의 삶의 가능성을 제약하는지를 누구보다도
뼈저리게 체험하며 일생을 살았던 작가가 로잘린드를 포함한 셰익스피어의 여러 여성인물들의 삶을 눈여겨보았음은 전혀 놀랄 일이 아니다.

style="MARGIN-LEFT: 0px;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0px"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그가 셰익스피어의 여성인물들에서 특별히 주목한 면은 그들의 강렬한
자기 주장이다. 그 글 가운데서 셰익스피어에 관한
논의가 가장 길게 전개되고 있는 「드라마에서의 사랑」이라는
글이,[25]
셰익스피어의 여성인물들을 다룬 것이란 것도 흥미롭지만, 더욱 흥미로운 점은 이 여성인물들이 남녀관계에서 매우 적극적이고 솔직하게 사랑을 고백하고
있음을 지적하는 대목이다. 그는 셰익스피어의 여성인물들의 결정적인 특징은 바로 자신의 사랑을 자신에게나 상대방에게 숨김없이 털어놓는 솔직함이라고
주장하면서, 그 예로 줄리엣(Juliet), 데스데모나(Desdemona), 로잘린드 및 포시아(Portia)를 들고 있다. 사랑의 노래를 처음
시작한 것은 물론 로미오지만 그것을 열정의 노래로 끌고 간 것은 로미오 못지않게 줄리엣이며, "대담성과는 거리가 먼" 데스데모나는 "한없는
한숨"뿐 아니라 온갖 노골적인 암시로 자신이 이미 오셀로(Othello)에게 마음을 주었음을 알림으로써 그의 사랑의 감정을 부추기고, 로잘린드는
올란도(Orlando)와의 첫 대면에서 자신이 벌써 그에게 반했음을 털어놓으며, 포시아는 보석상자가 열리기 전에 벌써 자신의 사랑을 확인한다고
그는 지적한다. 이와같이 셰익스피어의 여주인공들이 여성에 대한 관습의 요구나 기대와는 반대로 거의 언제나 적극적인 사랑 하고 있거니와, 우리는
그 여성 주인공들을 찬양해오지 않았느냐고 조지 엘리어트는 반문하기도 한다.[26]

style="MARGIN-LEFT: 0px;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0px"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그렇다고 그가 셰익스피어의 여성인물들을 모두 찬양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1855년 3월 16일자 일기에서는 남성적 권위에 무조건 복종하는 셰익스피어의 여성인물을 혹독하게 비판한다. "저녁식사 후 『베로나의
두 신사』(
style="FONT-SIZE: 9pt">Two Gentlemen of
Verona
style="FONT-SIZE: 9pt">)와 쏘네트 몇 편을 읽었다. 더이상 목적 달성의 가능성이
없게 된 프로테우스(Proteus)가, '씰비아(Silvia)를 바로 옆에 두고서, 씰비아가 갖고 있는 나의 모든 것을 당신에게 바칩니다!'라
말하자마자, 발렌타인(Valentine)이
곧바로 그를 용서하는 이 작품의 마지막 장면은 정녕 구역질이
난다."[27] 여기서
표명된 진한 역겨움의 대상이 프로테우스 못지않게 발렌타인이라는 사실에서 우리는 조지 엘리어트 자신의 여주인공들이 어떤 삶을 꿈꾸는 것으로
제시될지 그 방향을 짐작할 수 있게 된다. 버사(Bertha)의 존재를 알게 된 제인 에어(Jane Eyre)가 로체스터(Rochester)와
결혼하기를 거부하고 떠나는 장면에 대한 젊은 조지 엘리어트의 반응도 이와 관련하여 암시하는 바가 많다고 할 수 있다. 제인이 로체스터의 곁을
떠나기로 결정한 것은 숭고한 자기 희생의 행위로 얼마든지 이해할 수 있는 일이지만, 이런 거룩한 희생의 행위가 삶의 가능성을 부당하게 제약하는
관습의 질곡을 승인하는 것이기 때문에 안타깝다는 것이다. "모든 자기 희생은 훌륭한 일이지만, 그러나 우리는 이것이, 인간의 영혼과 몸을 사슬로
결박하여 딱딱한 시체 굳어지게 하는 악마적인 율법을
위해서보다는, 더욱 고상한 목적을 위해 발휘되는 것을 보기를
원한다."[28] 소설
창작을 시작하기 전 찰스 브레이(Charles Bray)에게 보낸 1848년 6월 11일자의 이 편지글에서도 주목되는 것은 "악마적인 율법"
"사슬로 결박" "딱딱한 시체" 등등 그 비판적 어조의 과격함이다. 이것은 이른바 체념과 자기 희생의 중요성을 찬양하는 것이 조지 엘리어트
소설의 주요 테마라는 일반화된 주장과는 달리, 그의 예술적 노력의 많은 부분이 여성 주인공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인습의 굴레를 비판하고 악마적
율법의 속성을 해부하는 데 바쳐질 수 있을 것임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하다.

style="MARGIN-LEFT: 0px;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0px"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그가 보기에 사회적 관습을 포함한 외부적인 환경의 옹색함은 우리
삶의 가능성을 제약하고, 많은 경우 관습의 사슬은 비극의 원인으로 작용한다. 이런 생각의 일단을 우리는 오셀로의 운명과 관련한 그의 다음과 같은
발언에서도 엿볼 수 있다. "오셀로를 위대한 비극적 주체로 만든 것은 무엇인가? 한낱 질투심에 불타는 남편에 관한 이야기를 가장 가슴 아픈
비극의 하나로 고양시킨 것, 오셀로의 운명이 물려받은
유전적 조건으로서 이것이 그에게 불신의 주관적 근거를 제공한
것이다."[29]
짧은 두 문장에 담긴 조지 엘리어트의 비평적 통찰이 얼마나 날카로운 것인지는, 오늘날 가장 인기있는 초현대식 전자백과사전
『엔카르타』(
style="FONT-SIZE: 9pt">Encartastyle="FONT-SIZE: 9pt">)에 기고된 작품 요약과 비교해보면 금방 드러난다. 이 기사에 따르면 『오셀로』는 베니스 군대의 무어인
장군의 근거 없는 질투심이 어떻게 커가는지를 다룬 작품이고, 사악한 부관 이아고(Iago)의 부추김으로 잘못된 질투심에 빠져 오셀로는 결국
파멸한다. 오셀로의 비극성을 악인의 꾀임에 의 근거 없는 시기심 정도에서 찾고 있는, 매우 피상적이고
천박하지만 아직도 횡행하는 이런 이해와는[30] 달리,
조지 엘리어트는 많은 애처로운 인간사를 정녕 가슴 아픈 위대한 비극으로 만드는 것은 인간의 어떤 성격적 결함 못지않게 이런 성격에 작용하는
상황의 압력이라고 지적한다. 질투심에 휩싸이는 모든 남편이 다 비극의 주인공이 되는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오셀로는 베니스를 위해 무공을 세워
부와 명성을 얻은 용맹한 장군이다. 그런데 그는 흑인이다. 백인 지배 사회가 그에게 높은 자리를 허용한 것은 아무도 넘보지 못할 무공을 세웠기
때문이고, 전쟁의 위협이 있는 한 그는 이 사회에 필요불가결한 존재이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백인지배사회에서의 그의 높은 지위는 마지못해 허용된
것이며, 그가 쟁취한 것이지 기꺼이 주어진 것이 아니다. 그는 사회적·문화적·정치적으로 이방인이다. 때문에 이 사회는 오셀로의 무공은
칭송하면서도 인간 오셀로의 인간적 존엄성에 경의를 표하는 일은 전혀 없다. 그는 배타적인 부유한 백인 거주지역에 집을 장만한 흑인 가족의
경우처럼 자부심과 더불어 늘 불안감에 시달린다. 환경적 요인에 의한 이러한 자기 확신의 부재는 이아고의 좋은 공격 목표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이아고는 단순한 악인이라기보다는 이방인 오셀로에 대한 백인 지배 사회의 의식적·무의식적 적대감의 화신으로 이해될 수 있다. 오셀로가 백인이었다면
문제는 전혀 달랐을 것이다.

style="MARGIN-LEFT: 0px;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0px"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근거 없는' 질투심이 아니라 그의 주관적 불신의 근거가 된 것으로
조지 엘리어트가 지적한 "오셀로의 운명의 유전적 조건"이라는 말마디에는 방금 설명한 것과 비슷한 함의가 담겨 있는 것으로 읽을 수 있다. 이런
부연설명이 전혀 근거 없는 것이 아님은 햄릿에 관한 조지 엘리어트의 명상에서도 드러난다. 『플로스 강의 물방앗간』의 작중화자는 비극의 주인공
매기의 운명을 햄릿의 운명에 견주는 대목에서, 햄릿이 사색적이고 우유부단했기 때문에 비극의 주인공이 되었지만, 그가 처한 상황이 달랐다면 그의
운명은 바뀌었을 것이라고 단언한다. 만약 부친이 살해되지 않았고 숙부가 일찍 죽었더라면, 비록 걸핏하면 독백을 하고 침울하고 냉소적이고 장인에게
노골적으로 무례한 행동을 했겠지만, 정신이 이상하다 소리를 듣지 않고 오필리어(Ophelia)와 결혼해서 아들 딸 낳고
잘살았을 수도 있었을 것이라는 말에서,[31] 우리는
인간의 운명과 상황에 대한 조지 엘리어트의 생각을 암시받는다. "성격이 운명이다"(Character is destiny)라는
노발리스(Novalis)의 명제를 문제삼는 이 대목에는 성격 못지않게 상황이, 즉 성격이냐 상황이냐가 아니라 이 둘의 변증법적 관계가 인간의
운명을 결정하는 변수라는 인식이 담겨 있다. 그가 보기에 기쁨과 슬픔이 엇갈리는 복합적인 교직체인 인간의 삶은, 성취보다는 좌절과 실패가 더
많은 비극적인 색조를 띠고 있다. 그의 마지막 책인 에쎄이집 『데오프라스투스 인상들』에서 그는 "슬픔은 일종의 환희/그렇게 뒤섞여 환희가 우리를 슬프게 하고/슬픔이 기쁘게 하네"[32]라는 『두 명의 귀족 친척』(
style="FONT-SIZE: 9pt">Two Noble Kinsmenstyle="FONT-SIZE: 9pt">)의 한 구절을 인용하면서, 넓게 보 인생의 모든 희극적인 면은, "광대의 역할이 리어왕의 곁에서 그러하듯", 비극으로 녹아든다고 말한다.[33] 그런데 이런 글에서도 주목되는 것은 빛나는 성취를 뒤에 둔 한 노작가의 말년의 비감의 자취와 더불어
슬픔과 기쁨이 불가분의 관계로 "뒤얽혀"(so mingled) 있다는 인식이다.

style="MARGIN-LEFT: 0px;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0px"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앞에서 살펴본 셰익스피어의 여성인물의 적극성과 솔직성에 대한 조지
엘리어트의 남다른 관심도, 사회적 관습을 뛰어넘는 대담성 자체를 향한 것이 아니다. 줄리엣, 데스데모나, 포시아 등이 자신들을 사랑하는
남성들에게 사랑의 감정을 숨김없이 드러낸 경우라면, {끝이 좋으면 다 좋다}의 헬레나(Helena), 『한여름 밤의
꿈』(
style="FONT-SIZE: 9pt">Midsummer Night's
Dream
style="FONT-SIZE: 9pt">)의 헬레나, 양치는 처녀 씰비아(Silvia),
바이올라(Viola) 및 올리비아(Olivia) 등은 짝사랑의 감정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거나 심지어 사랑을 간청하기도 하는데, 사랑의 감정을
자유롭게 표현하는 이런 셰익스피어의 여성인물들을 산과 들에 자연스럽게 자라나는 나무에 비할 수 있다면, 가령 월터 스콧의 "애처로울 만큼
신중한" 요조숙녀형 주인공들은 담장 곁에 부자연스런
모양으로 요리조리 다듬어진 뒤틀린 나무들과 같다고 작가는
말한다.[34] 관습의
얌전한 수용을 이처럼 비판하는 것은 그것이 인간성을 심히 왜곡시키기 때문이다. 사실 조지 엘리어트에게 셰익스피어는 무엇보다도 복잡하게 뒤얽혀
있는 인간성의 복합성을 단순화시키지 않고, 있는 그대로 여실하게 제시한 작가이다. 1855년 남편 루이스와 함께 독일을 방문했을 때 그는
베를린의 한 미술관에서 『맥베스』에 나오는 장면을 그린 카울바하(Kaulbach)의 그림을 보고, 셰익스피어의 극에 관련된 독일 그림 중에서는
가장 잘된 것에 속하지만, "맥베스는 너무 악마적으 보인다――셰익스피어적이 아니다"라고 친구인
헤넬(Sara Hennell)에게 보낸 편지에 적은 바 있다.[35] 햄릿이
단순히 우유부단한 인물이 아니고 폴스타프가 단순한 허풍쟁이 사기꾼이 아니듯이, 맥베스는 선량한 왕을 살해하고 왕위를 찬탈한 단순한 인면수심의
악마가 아니다. 조지 엘리어트가 디킨즈의 천재성을 인정하면서도 그를 심각한 한계가 있는 작가로 평가한 가장 중요한 이유 중 하나는, 그가
인물들을 선인과 악인으로 단순화하여 희화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조지 엘리어트에게 '셰익스피어적'(Shakespearean)이란 낱말은,
있는 그대로의 삶과 인간성에 대한 심오한 통찰, 즉 난폭한 단순화와는 거리가 먼 복합적인 이해를 뜻하는 것이다.

style="MARGIN-LEFT: 0px;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0px"
align=justify>

style="MARGIN-LEFT: 0px;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0px"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3

style="MARGIN-LEFT: 0px;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0px"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지금까지의 논의에서 밝혀진 대로, 조지 엘리어트 당대의 사람들은
사람살이의 진면목을 구석구석 리얼하게 그려내는 그의 능력에 매료되어 그를 셰익스피어적인 작가라고 불렀다. 당대 비평가들과 독자들에게 셰익스피어는
무엇보다도 온갖 인물을 박진감 넘치게 그려내는, 즉 고귀한 인간이나 천한 인생을 가릴 것 없이 마치 그들 인물 속에 들어가서 함께 느끼고 숨쉬는
것처럼 여실하게 그려내는 능력의 소유자였고, 이런 능력을 그들은 공감의 능력이라고 표현했다. 셰익스피어에 대한 조지 엘리어트의 생각도 당대
독자들의 그것과 그다지 다르지 않지만, 그가 사용하는 '셰익스피어적'이라는 말마디가 특히 어떤 특징을 강조하고 있는지 새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앞에서 살펴보았듯이 관습의 모범적 실천이 아니라 왜곡되지 않은 해방된 삶을 거침없이 추구하는 셰익스피어의 여성인물들의 자발성에 매료되기도 했던
조지 엘리어트에게 셰익스피어는, 우선 인간의 운명이 성격이나 환경 그 어느 한 요인에 의해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이 둘의 변증법적인 연관관계
속에서 결정된다는 인식이 남달리 투철했던 작가이다. 특히 모든 인간에게는 선과 악처럼 양립 불가능한 자질들이 언제나 함께 뒤얽혀 있어서, 손쉬운
흑백논리는 인생의 진실을 밝히는 데 무력하다는 인식에 철저했던 작가가 셰익스피어인 것이다.

style="MARGIN-LEFT: 0px;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0px"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조지 엘리어트가 셰익스피어에서 눈여겨본 것이 바로 이런
특성들이었고, 이런 특성이 발견되는 작가나 작품을 훌륭한 것으로 생각했다. 그녀가 희랍 고전 비극과 괴테를 위대하게 생각한 것도 이들에게서
발견되는 이런 셰익스피어적 특성 때문이었다. 가령 쏘포클레스의 『안티고네』를 격찬한 까닭도 이 작품이 어느 한쪽이 결단코 옳다고 손쉽게 단정하기
어려운, 똑같은 정당성을 가진 두가지 주장이 충돌하는 실상을 단순화시키지 않고 있는 그대로 잘 보여주기 때문이었다.

style="MARGIN-LEFT: 0px;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0px"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조지 엘리어트는 작가로서의 자신의 일차적인 사명을 공감의 확장에
두었는데, 그 까닭은 셰익스피어가 그랬듯이 사람살이의 구체적인 실상을 공감의 눈으로 파악할 때에만 선악, 미추, 슬픔과 기쁨의 복합체인 인생의
진실이 제대로 포착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는 자신의 첫 소설을 발표하기 직전인 1856년 7월 『블랙우즈 매거진』에 기고한 「독일인의 삶의
실상」(The Natural History of German Life)이라는 평론에서, 모든 위대한 예술의 목적을 공감의 확대라고 정의하고,
과장되거나 이상화되지 않은 사실적으로 충실한 삶의 묘사가 왜 중요한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한 바 있다.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화가건 시인이건 소설가건, 예술가로부터 우리가 받을 수 있는 가장
큰 혜택은 공감의 확장이다. … 예술은 삶과 가장 가까운 것으로서, 그것은 우리의 체험을 확대하고 우리들의 개인적인 운명의 테두리 너머에 있는
동료 인간들에게까지 접촉을 넓혀주는 양식이다. 민중의 삶을 그리려는 예술가의 과업은 더더욱 신성하다. 여기서의 사실 왜곡은 인생에서의 인위적인
면을 잘못 그리는 것보다 훨씬 치명적이다. … 더욱 힘겨운 생활을 하고 있는 동료 인간들의 삶에서 되풀이되는 기쁨과 투쟁, 노고, 비극, 유머
등에 대한 우리들의 공감이 왜곡되고, 진짜가 아니라 가짜를 향하게 되는 일은 정녕 심각한 일이다.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예술가가 삶을 잘못 그려내게 된 것이 그가 생각하는 도덕적 목적
때문에 그렇게 되었다고 해서 이러한 왜곡이 덜 치명적인 것은 아니다. 인류가 알아야 될 것은, 노동자나 장인에게 작용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예술가가 생각하는 동기나 영향력이 어떤 것들인가가 아니라, 그들에게 실제로 작용하는 동기와 영향력이 어떤 것들인가 하는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영웅적인 장인이나 감상적인 농사꾼에게 공감하기를 배우려는 것이 아니라, 거친 둔감함을 고스란히 그대 간직한 농사꾼과, 의심스런
이기심을 고스란히 그대로 간직한 장인에게 공감하기를 배우려는 것이다.[36]

align=justify>


style="MARGIN-LEFT: 0px;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0px"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선악 이분법으로 확연히 갈라서 규정할 수 없는 것이 인생이고,
사람에게는 누구나 미덕과 악덕이 불가분의 관계로 뒤얽혀 있기 때문에, 손쉬운 단죄보다는 개인들마다의 구체적인 입장에 공감하면서 너그럽게 이해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조지 엘리어트의 이런 발언의 진의가 무엇인지 새삼 따져볼 필요가 있다. 조지 엘리어트 당대로부터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공감의
중요성을 역설한 그의 발언이 예술적 사실주의의 선언으로서보다는 도덕적 훈계로 거듭 곡해된 바 없지 않기 때문이다. 조지 엘리어트와 셰익스피어를
연결짓는 독특한 자질이 남다른 공감의 능력임에 주목할 때, 예술을 삶에 가장 가까운 것으로 인식하고 사실의 왜곡을 부단히 경계했던 그의 이런
발언의 진의가 우둔한 농사꾼 및 이기적인 장인들을 포함하는 민중의 생생한 삶 자체를 전면적으로 껴안을 것을 촉구하는 사실주의적 방법론을 천명하는
데 있음을 다시 확인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셰익스피어를 셰익스피어답게 만드는 특성도 바로 이런 민중적 삶의 복합성과 생명력을 그들의 삶의
문화에 뿌리박은 살아 있는 언어로 생생히 재현하는 일에 직결되어 있는 것임을 상기할 때 더욱 그러하다.

style="MARGIN-LEFT: 0px;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0px"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거미줄처럼 얽히고 설킨 인간심리와 환경의 영향을 세밀하게 재현하고
있는 조지 엘리어트의 소설들에서 과거와의 유대감과 어린 시절의 중요성 등이 특별히 중요한 의미를 갖는 것으로 부각되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이런 특징은 그를 워즈워스와 연결하는 고리로 작용하여 그를 워즈워스적인 작가라는 통설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러나 워즈워스의 영향이 전면적이고
결정적이고 긍정적인 것이 아니라 제한적이고 부차적이고 부정적인 것이었다 사실에 주목할 때, 조지 엘리어트의 가장 중요한 특질을 워즈워스적인 것에서 찾을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37] 그는 워즈워스처럼 어린 시절을 과도하게 이상화하지 않는다. 그가 과거와 어린 시절에 부여하는 중요성은
그것들 자체를 향한 것이라기보다는, 삶의 뿌리 및 생명의 근원에 대한 궁극적 옹호의 성질이 강하다고 보는 것이 바른 시각일 것이다. 또한 그는
자기 희생이나 견인주의적 인내와 체념을 최선의 덕성인 양 일방적으로 강조하기는커녕, 오히려 온갖 상이한 상황에 처한 크고 작은 수많은 인물들의
순탄치 않은 삶이 서로 얽히면서, 어떤 단일한 도덕적 대단원을 향하여 수렴되기를 거부하는 삶의 현실을 집요하게 천착하는 열정을 보여준다. 선악이
불가분의 관계로 뒤얽혀 공존하는 인간의 내면세계를 셰익스피어적인 공감의 능력으로 절묘하게 그려낸 것이 조지 엘리어트라는 논의는, 주요 등장인물
개개인에게뿐 아니라 작품 전체의 구성에도 관계되는 얘기이다. 작품의 다차원적이고 복합적인 전개가 일정한 윤리적 결론으로 수렴되기를 원하는
독자들이, 코딜리어(Cordelia)를 끝내 죽음으로 몰고 가는 『리어왕』의 대단원을 수용하기가 힘들었듯이, 대부분의 조지 엘리어트 소설의 종결
방식에 많은 사람들이 불만을 표명해왔다.

style="MARGIN-LEFT: 0px;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0px"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가령 애덤과 다이나(Dinah)의 행복한 결혼으로 끝나는 『애덤
비드』의 경우, 그 표면 구조는 전통적인 로맨스 소설의 관습을 충실히 따른 것이다. 그런데 이런 행복한 결말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헤티(Hetty)의 희생이 요구되었고, 애처로운 헤티의 이야기는 소설이 끝난 뒤에도 독자의 뇌리에서 쉽게 떠나지 않음으로 해서, 대단원의 완벽한
종결을 뒤흔들거나 문제시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 작품에서 의식적인 주인공은 애덤 다이나이지만 무의식적인 진짜 주인공은 헤티라는 주장을 우리는 현대 조지 엘리어트 비평 도처에서 만난다.[38] 『플로스 강의 물방앗간』에서도 작품의 구조는 성장소설의 관습을 차용한 것인데, 다만 주인공의 신원이
소년에서 소녀로 바뀜으로써, 전통적인 성장소설의 장르적 기대가 무너지고 만다. 다시 말해서 성장소설의 모범적인 전개는 주인공인 소년이 성장과
교육 과정을 거쳐 결국 성공적으로 사회에 편입하는 이야기로 되어 있는데, 주인공이 남자아이에서 여자아이로 바뀌게 되면 성장소설의 이런 공식은
깨어진다. 이 작품에서 똑똑한 여자아이인 매기는 기성사회가 여성에게 요구하는 가정의 천사가 되기를 거부했기 때문에 결국 사회로부터 버림을 받고
비극적인 죽음을 맞이한다. 이 소설의 결말에 대한 끊임없는 불만과 비판의 원인도 따지고 보면, 이 소설이 성장소설의 장르적 기대를 완강히
거부하고 있는 사실과 무관하지 않다.

style="MARGIN-LEFT: 0px;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0px"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조지 엘리어트의 소설 가운데서 형식적인 완결성을 이룬 것으로
애초부터 칭송되어 온 유일한 작품은 『싸일러스 마너』일 터이다. 입양해서 기른 딸 에피(Eppie)의 축복받은 결혼과 싸일러스의 노년의 행복으로
결말지어지는 이 소설은 도덕적 우화(moral fable)이라는 관습적 명칭을 정당화시키기에 조금도 손색이 없는 작품이라는 평가를 받아왔다.
그러나 여기서도 비밀리에 결혼한 남편 가드프리(Godfrey)와의 넘을 수 없는 신분상의 장벽으로 인해 뜻대로 가정을 꾸미지 못하고 결국 마약
중독자가 되어 눈오는 벌판에서 얼어죽은 몰리(Molly)라는 존재의 생생함은, 헤티의 존재로 인해 『애덤 비드』가 그러했듯이, 이 소설을 단순한
도덕적 우화의 한 모범으로 마음 편하게 받아들이기를 주저하게 만든다. 조지 엘리어트의 최대 걸작이며 19세기 영국소설의 최고봉으로 찬양되고 있는
『미들마치』에 관해서도, 도로시아의 말썽 많은 재혼을 포함한 작품의 문제적 결말 때문에 비평적 논의가 끊이지 않는 사실은 재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style="MARGIN-LEFT: 0px;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0px"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마지막 작품인 『대니얼 데론다』에 이르면, 그웬돌런의 이야기와
대니얼의 이야기가 표면적인 통합조차 거부한 채 매우 이질적으로 공존하는, 좀더 정확히 말해서 예리하게 갈등하는 양상을 보임으로써 작품의 문제적인
특성이 극적으로 부각된다. 조지 엘리어트의 여성인물 중에서 가장 형상화가 잘 되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는 그웬돌런의 최종 운명이 어떤 탈출구의
가능성도 없이 오리무중인 것은 물론이고, 일정한 성취로 종결되는 대니얼의 이야기도, 마치 생살을 에는 듯이 이 소설 전체를 아프게 관통하고 있는
알카리씨(Alcharisi) 부인의 귀에 쟁쟁한 다음과 같은 항변 앞에서 그 정당성이 뿌리째 흔들린다.

align=justify>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너는 여자가 아냐. 너는 아무리 애써도 절대로 상상 못해. 남자의
천재성을 간직하고 태어났으면서도 여자아이이기 때문에 받는 노예적 굴욕이 어떤 것인지.[39]

align=justify>


style="MARGIN-LEFT: 0px;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0px"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가부장적 윤리에 철저한 유태인 가장들이란 "아내와 딸들을 노예로
삼아버리는" 사람들일 뿐이라는 생모의 이와같은 영혼의 절규에 대해 "그렇다면 저의 할아버지가 학식이 높으신 분이었나요?"라는 것이 대니얼의 첫
반응인데(694면), 이러한 무감각한, 아니 차라리 철딱서니없이 천박한 첫 반응은, 인생에 대해 햄릿적으로 고민하는 성실한 인물로 줄곧 그려진
대니얼이 한계가 매우 뚜렷한 인물이며 그의 드넓은 공감의 능력도 여성의 자아실현 문제에 부딪치는 순간 무력화됨을 강렬한 여운으로 남긴다. 또한
우리는 이런 장면을 통해, 조지 엘리어트의 남성 주인공 중에서 가장 평면적이며 지나치게 이상화되었다는 비판을 받는 대니얼조차도 사실은 그렇게
단순하지만은 않은 인물임을 알게 된다.

style="MARGIN-LEFT: 0px;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0px"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그렇다면 조지 엘리어트의 소설치고 어느 하나 문제적이지 않은 것이
없는데, 여기서 문제적이라는 말마디는 셰익스피어의 문제극들(problem plays)을 문제적이라고 부를 때와 유사한 것으로 이해하면 그 참뜻이
드러난다. 문제극이라는 용어에 대해 모두가 다 만족하는 것도 아니고 대상 작품의 목록에 대해서도 만장일치가 이루어진 것은 아니지만,
『트로일러스와 크레씨다』(
style="FONT-SIZE: 9pt">Troilus and
Cressida
style="FONT-SIZE: 9pt">), 『끝이 좋으면 다 좋다』,
『이척보척』(
style="FONT-SIZE: 9pt">Measure for
Measure
style="FONT-SIZE: 9pt">)과 같이 비극, 희극, 로맨스극, 역사극 등 전통적인
갈래에 편입시키기 어려운 작품들에 대해 이런 명칭이 주어진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장르 구분이 어렵다는 것뿐만이 아니라, 특히 복잡하고 풀기
어려운 인생문제에 대해 그럴듯한 설교나 교훈을 제시하기는커녕, 시종일관 도전적 정열로 고무되어 복잡한 인생사를 매우 심각하게 다루면서도, 어떤
만족 만한 결론이나 해결책을 끝내
배제하는 특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이런 작품을 문제적이라고
부른다.[40]
셰익스피어의 작품 중에서 문제극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설사 그런 이름이 붙지 않았어도 셰익스피어의 많은 작품이 사실
문제적인데, 이런 현상은 공감의 능력이 최대한 발휘될 때 생기는 당연한 결과일지 모른다.

align=justify>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만약 우리가 일상적인 사람살이의 구석구석을 예리하게 보고 느낀다면,
그것은 풀잎이 자라는 소리와 다람쥐 심장이 뛰는 소리를 듣는 것과 같아서, 고요함 저 건너편에 있는 그 아우성 소리 때문에 우리는 죽어버릴지도
모른. 현실에 있어서는, 우리 가운데
가장 예민한 사람들조차도 우둔함으로 온몸을 잘 감싸고
돌아다닌다.[41]

align=justify>


style="MARGIN-LEFT: 0px;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0px"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미들마치에 』나오는 이 유명한 구절이 암시하듯이, 공감적 상상력의
본질이 이처럼 보검이면서 동시에 위험천만한 비수이며, 그런 만큼 한계가 분명할 수밖에 없음을 철저히 깨닫고 있는 조지 엘리어트를 셰익스피어적인
작가라고 할 때, 셰익스피어적이라는 말마디의 참뜻은 그녀의 작품들이 매우 문제적인 소설들이라는 깨달음으로 이어진다고 하겠다. 그녀의 소설들은
표면적인 이야기의 흐름에 있어서는 소설의 관습적 문법을 충실히 따르고 있는 것 같지만, 조금만 깊이 들여다보면 관습적 문법이 요구하는 깔끔한
결말을 뒤흔들어버리는 또다른 강렬한 충동으로 인하여 긴장과 갈등이 끝끝내 해소되지 않은 채 그대로 남아 있는 특징을 보인다. 인생과 인간사의
실상을 날카롭게 꿰뚫어본 셰익스피어가 그랬듯이, 삶의 뿌리 및 생명의 근원에 대한 추상화와 단순화를 철저하게 거부했던 조지 엘리어트도 삶의
문법에 충실하기 위해 예술의 관습과 형식을 끊임없이 깨뜨린다. 삶 자체가 그렇듯이 그녀의 소설은 어떤 관습적 장르에 손쉽게 감금되기를 끝내
거부한다.⼀

style="MARGIN-LEFT: 0px;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0px"
align=justify>


style="MARGIN-LEFT: 0px;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0px"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 1] U. C. Knoepflmacher,
"
style="FONT-SIZE: 9pt">Daniel Derondastyle="FONT-SIZE: 9pt"> and William Shakespeare," style="FONT-SIZE: 9pt">The Victorian Newsletterstyle="FONT-SIZE: 9pt">, 1st series 19 (1961) 27~28. (위로)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 2] U. C. Knoepflmacher,
style="FONT-SIZE: 9pt">George Eliot's Early
Novels
style="FONT-SIZE: 9pt"> (Berkeley: U of Carlifornia P
1968). (위로)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 3] Barbara
Hardy
style="FONT-SIZE: 9pt">, The Novels of George Eliot: A
Study in Form
style="FONT-SIZE: 9pt"> (London: The Athone 1959).
이 논문에서 조지 엘리어트의 대명사를 '그녀' 아닌 '그'라고 쓴다. 남성 이름의 특성을 살리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리말에 어색한 그녀라는
번역어를 피하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위로)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 4] Gordon S.
Haight, ed.,
style="FONT-SIZE: 9pt">The George Eliot
Letters
style="FONT-SIZE: 9pt"> (New Haven: Yale UP 1978) 9
vols. (위로)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 5] John Clark
Pratt and Victor A. Neufeldt, eds.,
style="FONT-SIZE: 9pt">George Eliot's Middlemarch Notebooks: A
Transcription
style="FONT-SIZE: 9pt"> (Berkeley: U of California
P 1979)과 Jane Irwin, ed.,
style="FONT-SIZE: 9pt">George Eliot's
Daniel Deronda Notebooks
style="FONT-SIZE: 9pt"> (Cambridge:
Cambridge UP 1996) 등이 대표적이다. (위로)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 6] Thomas
Pinney, ed.,
style="FONT-SIZE: 9pt">Essays of George
Eliot
style="FONT-SIZE: 9pt"> (New York: Columbia UP 1963);
Margaret Harris and Judith Johnston, eds.,
style="FONT-SIZE: 9pt">The Journals of George Eliotstyle="FONT-SIZE: 9pt"> (Cambridge: Cambridge UP 1998). (위로)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 7] 이런 연구로 대표적인
것은 Marianne Novy,
style="FONT-SIZE: 9pt">Engaging with
Shakespeare: Responses of George Eliot and Other Women Novelists
style="FONT-SIZE: 9pt"> (Athens: U of Georgia P 1994); A. G. van den Broek,
style="FONT-SIZE: 9pt">Reading George Eliot Reading
Shakespeare,
style="FONT-SIZE: 9pt"> Dalhousie University
Dissertation (Ann Arbor: UMI 1990) 등이 있. (위로)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 8] G. S. Haight,
ed.,
style="FONT-SIZE: 9pt">Lettersstyle="FONT-SIZE: 9pt"> 3권 42면. (위로)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 9] Eneas Sweetland
Dallas,
style="FONT-SIZE: 9pt">The Timesstyle="FONT-SIZE: 9pt"> (12 April 1859). Gordon S. Haight, ed., style="FONT-SIZE: 9pt">A Century of George Eliot Criticismstyle="FONT-SIZE: 9pt"> (London: Methuen 1966) 2∼8면에 재수록. (위로)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 10] David
Carroll,
style="FONT-SIZE: 9pt">George Eliot: The Critical
Heritage
style="FONT-SIZE: 9pt"> (London: Routledge & Kegan
Paul 1971) 175, 179. (위로)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 11] John
Cross,
style="FONT-SIZE: 9pt">George Eliot's Life: As Related in
Her Letters and Journals
style="FONT-SIZE: 9pt"> 3 vols. (New
York: Harper & Brothers 1885) 2권 95면. (위로)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 12] Alexander
Main, ed.,
style="FONT-SIZE: 9pt">Wise, Witty, and Tender
Sayings in Prose and Verse from the Works of George Eliot
style="FONT-SIZE: 9pt">, 8th edition (Edinburgh: William Blackwood and Sons
1884) ix. A. G. van den Broek, 앞의 1면에서 재인용. (위로)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 13] G. S.
Haight, 앞의 책 5권 463면. (위로)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 14] U. C.
Knoepflmacher, "
style="FONT-SIZE: 9pt">Daniel
Deronda
style="FONT-SIZE: 9pt"> and Shakespeare," 28면 주석 3번
참조. (위로)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 15] Alexander Innes
Shand, "Contemporary Literature: IV, Novelists,"
style="FONT-SIZE: 9pt">Blackwood's Magazinestyle="FONT-SIZE: 9pt"> 75 (1879) 322∼44 참조. (위로)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 16] William Hazlitt,
"Lecture III: On Shakespeare and Milton,"
style="FONT-SIZE: 9pt">The Complete Works of William Hazlitt style="FONT-SIZE: 9pt">21 vols, ed. P. P. Howe (London: J. M. Dent and Son 1930)
5권 47면. (위로)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 17] John Keats,
style="FONT-SIZE: 9pt">Lettersstyle="FONT-SIZE: 9pt"> 2 vols. ed. Hyder Rollins (Cambridge, Mass.: Harvard UP
1983) 362∼75면 참. (위로)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 18] D. Carroll, 앞의 책
222∼49면에 재수록. (위로)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 19] 같
style="FONT-SIZE: 9pt"> style="FONT-SIZE: 9pt">228∼29면. (위로)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 20] 같
239면. (위로)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 21] 같
248면. (위로)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 22] G. K.
Chesterton,
style="FONT-SIZE: 9pt">Chesterton on
Shakespeare
style="FONT-SIZE: 9pt">, ed. Dorothy Collins
(Henley-on-Thames, Oxon: Darwen Finlayson 1971) 139∼43면 참조. (위로)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 23] P. Bayne,
"Shakespeare and George Eliot,"
style="FONT-SIZE: 9pt">Blackwood's Magazinestyle="FONT-SIZE: 9pt"> 133 (1883) 529∼38면. (위로) .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 24] T. Pinney,
앞의 책 264∼65면. (위로)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 25] Joseph
Wiesenfrath,
style="FONT-SIZE: 9pt">George Eliot: A Writer's
Notebook 1854∼1879 and Uncollected Writings
style="FONT-SIZE: 9pt"> (Charleottesville: U of Virginia P 1981) 253∼55면. "Love
in the Drama"라는 제목의 이 글은
style="FONT-SIZE: 9pt">Leaderstyle="FONT-SIZE: 9pt"> 6 (25
August 1855) 820∼21면에 실렸는 당시의 관례대로 이름을 밝히지 않은 기사였다.
(위로)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 26] J.
Wiesenfarth, 앞의 책 11면. (위로)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 27] M. Harris & J.
Johnston, 앞의 책 54면. (위로)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 28] G. S.
Haight, 앞의 책 1권 268면. (위로)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 29] George
Eliot, "Notes on
style="FONT-SIZE: 9pt">The Spanish
Gypsy
style="FONT-SIZE: 9pt">," style="FONT-SIZE: 9pt">A George Eliot Miscellany,style="FONT-SIZE: 9pt"> ed. F. B. Pinion (London: Macmillan 1982)
128. (위로)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 30]
style="FONT-SIZE: 9pt">Othellostyle="FONT-SIZE: 9pt"> portrays the growth of unjustified jealousy in the
protagonist, Othello, a Moor serving as a general in the Venetian army. The
innocent object of his jealousy is his wife, Desdemona. In this tragedy,
Othello's evil lieutenant Iago draws him into mistaken jealousy in order to ruin
him("Shakespeare, William,"
style="FONT-SIZE: 9pt">Microsoft
Encarta 96 Encyclopedia
style="FONT-SIZE: 9pt">
1993∼1995). (위로)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 31]
style="FONT-SIZE: 9pt">The Mill on the Flossstyle="FONT-SIZE: 9pt"> (Oxford: Oxford UP 1982) 514. (위로)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 32] "Sadness
is a kind of mirth/So mingled as if mirth did make us sad/And sadness merry."(5막
3장 62∼64) (위로)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 33] George Eliot,
style="FONT-SIZE: 9pt">Impressions of Theophrastus
Such
style="FONT-SIZE: 9pt">, ed. D. J. Enright (London:
Everyman 1995) 113. (위로)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 34] J. Wiesenfarth, 앞의
책 255면. (위로)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 35] G. S. Haight, 앞의 책
2권 194면. (위로)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 36] T. Pinney,
앞의 책 270∼71면. (위로)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 37] Donald D.
Stone,
style="FONT-SIZE: 9pt">The Romantic Impulse in Victorian
Fiction
style="FONT-SIZE: 9pt"> (Cambridge: Harvard UP 1980) 참조.
이 책 여기저기에서 저자는 워즈워스가 조지 엘리어트에게 끼친 영향을 부정적인 것으로 본다. 특히 과거의 중요성을 신비화하는 워즈워스적 경향이
『플로스 강의 물방앗간』에서처럼 조지 엘리어트의 창조적 상상력을 마비시켰다고 주장하며(193∼94면), 흔히 워즈워스적이라고 불리는 『싸일러스
마너』의 낙관적 틀은 인간의 욕망과 충동을 마비시킴으로써 얻어지는 워즈워스적 "평온"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욕망과 공동체적 요구를
함께 아우르는 쉴러(Schiller)적 "균형"에 나온 것이라는 논의를 편다(218∼19면). 또한 『미들마치』에서 메어리(Mary
Garth)의 삶은 워즈워스적 평온과 관련된 것인데 비해, 작가의 궁극적인 선택인 도로시아(Dorothea)와 윌(Will)의 결합은 쉴러적
열정 및 셸리적 당돌함에 관련된 것으로 지적되기도 한다(235). (위로)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 38] 이런 논의의 대표적인 보기로
Dorothea Barrett,
style="FONT-SIZE: 9pt">Vocation and Desire:
George Eliot's Heroines
style="FONT-SIZE: 9pt"> (London &
New York: Routledge 1989) 34∼51면 참. (위로)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 39] G. Eliot,
style="FONT-SIZE: 9pt">Daniel Derondastyle="FONT-SIZE: 9pt">, ed. Barbara Hardy (Harmondsworth: Penguin 1987)
694. (위로)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 40] Vivian
Thomas,
style="FONT-SIZE: 9pt">The Moral Universe of
Shakespeare's Problem Plays
style="FONT-SIZE: 9pt"> (London
& Sydney: Croom Helm 1987) 및 Kenneth Muir & Stanley Wells, eds.,
style="FONT-SIZE: 9pt">Aspects of Shakespeare's 'Problem
Plays
style="FONT-SIZE: 9pt">' (Cambridge: Cambridge UP 1982) 등
. (위로)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 41] G. Eliot,
style="FONT-SIZE: 9pt">Middlemarchstyle="FONT-SIZE: 9pt">, ed. Gordon S. Haight (Boston: Houghton Mifflin 1956)
20장 144면. (위로)

align=justify>


align=justify>


align="center">style="FONT-SIZE: 9pt">ABSTRACT


align="center">style="FONT-SIZE: 9pt">George Eliot and
Shakespeare


align="center">style="FONT-SIZE: 9pt">Young-Moo Kim


align=justify>


style="MARGIN-LEFT: 0px;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0px"
align=justify> George Eliot's
contemporaries called her a 'Shakespearean' writer. Behind this manner of
praising George Eliot, we can easily perceive echoes of the tones in which the
Romantics praised Shakespeare. The tradition of locating Shakespeare's genius
above all in his sympathy was transmitted from the Romantics to the Victorians,
who perceived the same quality of supreme sympathy in George Eliot. George
Eliot's own opinions on Shakespeare were not greatly different from those of her
readers. For her too, Shakespeare was the craftsman who refuses to simplify the
tangled complexities of human beings but presents them in their full reality as
they are. In this sense, the term 'Shakespearean' applied to George Eliot
signifies her profound insight into life and humanity as well as her complex
understanding far removed from gross oversimplification. So she was able to
create, for example, the figure of Bulstrode in Middlemarch, "a mixed, a
very subtly mixed character" rivaling Macbeth or Claudius.


style="MARGIN-LEFT: 0px; TEXT-INDENT: 0px; LINE-HEIGHT: 150%; MARGIN-RIGHT: 0px"
align=justify> In terming
George Eliot a 'Shakespearean' writer, the precise sense of the term may also be
considered to lead to an awareness that her own novels are extremely problematic
works. The term 'problematic' is here best understood as being used in a manner
analogous to the use of the word 'problem' in reference to Shakespeare's
'problem plays.' In George Eliot's novels we find a narrative flow which seem to
follow faithfully the conventional grammar of fiction; but, on closer
examination, they are characterized by the way that, in the end, conflicts and
contradictions are left unresolved, thanks to a powerful impulse that finally
shatters the tidy conclusion, as in the case with Shakespeare's work. Like life
itself, her novels ultimately refuse to let themselves be imprisoned easily
within any conventional genre.


align=justify>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안과밖』 10 (2001): 223-48


align=justify>style="FONT-SIZE: 9pt">필자 김영무 선생님은 서울대학교 인문대학 영어영문학과에 재직중,
2001년 11월 26일 운명하셨다.




align=justif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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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경하
2002-1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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