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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리 채플린 ‘나의 자서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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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오길영

작성일자

2008-09-07

이메일

조회

1967


경향신문에 출판평론가 이권우의 '자서전 읽기'가 연재 중이다. 이번 호는 채플린 자서전을 다룬다. 최근 들어 나도 자서전이나 평전에 끌린다. 어떤 사실이나 픽션보다도 자신의 삶을 뜨겁게 살아간 사람들의 이야기만큼 매혹적인 이야기도 없다. 좋은 자서전이나 평전은 독자의 삶을 되비쳐주는 거울이다. 채플린의 자서전이 보여주는 것은 탁월한 예술은 언제나 시대와 불화한다는 진실이다. 시대와 잘 어울려 평화롭게 산 예술가 중에 뛰어난 예술가가 누가 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채플린은 말한다.

> “어떤 정치적 이유에서 희생을 강요하거나 누가 희생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며, 자신은 “대통령, 총리 또는 독재자를 위해 내 목숨을 버릴 생각이 없다”고 말한다.

그는 깊은 개인주의자, 세계주의자이다. 어떤 국가, 집단, 민족에도 복종하지 않는 자유로운 사람이다. 그런 자유로운 의식에서 탁월한 예술작품이 나온다. 그 자신은 자신이 예술작품을 만든다고 생각하지 않았지만. 그에게 영화는 생존을 위한 노동, 삶의 욕망이 구현되는 통로였다. 그의 삶과 영화는 삶과 노동을 벗어난 예술은 없다는 진실을 깨우쳐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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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경향

[자서전 읽기](5) 찰리 채플린 ‘나의 자서전’

ㆍ천박한 이념 공세도 아랑곳 않고 인류를 웃기고 울린 천재 예술가

그것은 한마디로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 사람의 삶에서 이런 놀라운 역전이 일어난다는 것은 그야말로 기적이다. 누군가 그의 삶을 소설로 쓴다면, 독자들의 냉담한 반응을 얻을 성싶다. 아무리 소설이지만, 어찌 그런 일이 가능하겠냐며 퉁바리 놓을 것이 뻔하다. 하지만, 그것은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인류가 그이 때문에 배꼽을 잡고 웃다가 갑자기 눈시울을 붉히곤 했다. 단 한 편의 명작을 찍어도 역사에 남을 텐데, 숱한 작품이 명작이라는 이름으로 여전히 감상되고 있다. 아무리 생각해도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누구를 말하느냐고? 무성영화의 황금시대를 이끈 찰리 채플린을 두고 하는 말이다.

도대체 그가 어떤 삶을 살았기에 이리 호들갑을 떠느냐고 물을 터다. 그는 자신의 삶을 되돌아보며, 조셉 콘라드가 한 말을 떠올렸다. “인생은 궁지에 몰린 눈먼 쥐가 맞아죽기를 기다리는 것과 같아”라는. 그는 어린 시절 신문팔이, 인쇄소 일, 장난감 만드는 일, 유리 부는 일, 병원잡부, 장작 패는 일 등 온갖 허드렛일을 다했다. 형편이 얼마나 어려웠던지 그는 “교구의 자선기금, 수프를 타 먹을 수 있는 티켓 그리고 각종 구호품에 의지해” 살았다. 그러다가 온가족이 빈민구호소에 들어가기까지 했다. 정규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래서 글을 읽을 줄도 몰랐다. 열네살 때 첫 배역을 맡았는데, 현장에서 대본을 읽어보랄까봐 덜컥 겁이 났다. 그랬던 그가 할리우드 최고의 감독 겸 배우로 성장했고, 마침내 백만장자의 반열에 올랐다. 누구나 대박을 터트리고 싶어한다. 그러나 누구나 그 영광을 누리지는 못한다. 그런데 채플린은 해냈다.

채플린의 ‘나의 자서전’(김영사)을 읽으면서 가장 관심을 기울여야 할 대목은, 빈민가의 소년이 어떻게 세계 영화사를 빛낸 최고의 예술가로 자라날 수 있었느냐 하는 점이다. 가장 먼저, 타고난 재능을 들지 않을 수 없다. 그의 피에는 모계를 흐르는 이른바 딴따라 기질이 있었다. 외할머니부터 남달랐다. 자세한 사연은 알 수 없지만 외할머니에게는 집시의 피가 흘렀다고 한다. 바람도 피웠던 모양이다. 다른 남자와 눈이 맞은 적이 있는데, 그만 발각돼 이혼했다고 한다. 어머니는 배우였다. 비록 빼어난 미인은 아니었지만 기품 있는 여성이었다. 어머니의 삶도 평탄치만은 않았다. 열여덟에 중년남자와 아프리카로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였다. 스스로 인정하듯 “집안의 윤리관을 통상적인 잣대로 재는 것은 끓는 물에 온도계를 넣는 것만큼이나 무모한 짓”이었다. 그때 채플린의 형을 낳았는데, 장밋빛 미래를 버리고 영국으로 돌아와 배우와 결혼했다. 맑은 바리톤 목소리를 자랑하고 뛰어난 예술가로 인정받았던 그 배우가 바로 채플린의 아버지다. 다 좋았는데 두주불사였던 것이 문제였다. 결국 이혼하고 마는데, 채플린이 가난의 나락으로 떨어지는 결정적인 이유다. 채플린의 이모도 배우였으니, 정말 피는 못 속이는 모양이다.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도 채플린의 인생역전을 가능케 한 힘이다. 채플린을 나은 지 1년 만에 이혼했고, 생계를 위해 무대에 섰다. 전 남편한테 양육비를 받았지만 술에 찌든 삶을 살다보니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소송까지 했지만 소용없었고 나중에 과음 탓에 일찍 세상을 떠나버렸다. 오로지 자신의 재능으로 아들을 키워야 했다. 처음에는 그런 대로 버틸 만했지만, 운명의 신은 이 가족에게 가혹한 시험을 내렸다. 어머니가 후두염을 앓다가 결국 목소리에 이상이 생기고 만 것이다. 시간이 흐를수록 형편이 더 나빠졌다. 그 와중에도 어머니는 자신이 극장무대에서 했던 연기를 보여주거나 정극 무대에서 본 적이 있는 다른 여배우를 흉내내며 아이들을 즐겁게 해주었다. 흥이 돋운 아이들에게 희곡을 설명해주면서 거기에 나온 인물들을 직접 연기해주었다. 채플린의 연기스승은 바로 어머니였던 것이니, “어두운 지하 단칸방에서 어머니는 이 세상에 알려진 가장 찬란한 빛을 내게 비춰주었노라” 회상한다.

어찌 타고난 기질로만 정상에 오를 수 있겠는가. 그 역시 배우고 익히며 거듭나기를 반복했다. 연기를 체계적으로 배운 적은 없지만 현장에서 뛰어난 배우들을 스승 삼아 많은 것을 익혔다. 재능이 없어서는 안되지만 그것만으로는 최고의 자리에 오를 수 없는 법이다. 연기만 배운 것은 아니다. 책을 읽으며 공부해나갔다. 막간을 이용해 분장실에서 마크 트웨인, 에드거 앨런 포, 너새니얼 호손, 워싱턴 어빙의 작품을 탐독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고전작품을 읽은 동기가 순수하지는 않았다고 고백했다는 점이다. 지식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무식한 사람에 대한 멸시에서 자신을 방어할 목적으로 책을 읽어댔단다. 그는 기대한 만큼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저속한 연예계의 지루함을 달래는 데 그쳤다고 하나, 독서가 그의 창의성과 상상력의 크기를 키웠을 것은 분명해 보인다.

채플린의 투쟁의식도 높이 평가해야 한다. 그는 가난을 사회가 어떻게 받아들이는지 잘 알고 있었다. “그것은 하나의 치욕”이었고, 자신의 집은 “빌어먹는 계급”이었다. 그랬기에 그의 사전에는 예술이라는 거창한 낱말이 없었다. “극장 무대는 단지 내 생활과 생계의 터전일 뿐 아무것도 아니었다.” 채플린은 자신이 놓인 삶의 조건에서 벗어나려고 끊임없이 싸워나갔다. 다시는 빈민구호소에 들어가지 않으려고, 정신병 앓는 어머니를 더 좋은 병원에 모시려 무대에 올랐다. 결정적인 순간에 행운의 여신이 손길을 내밀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채플린의 처절한 노력에 감복했기 때문이다. “추위, 배고픔 그리고 가난에 대한 부끄러움”에서 벗어나려 발버둥쳤는데, 궁극에 다다른 지점이 예술성이라는 역설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끝으로 “예술가의 창조작업 역시 성욕의 우회라는 사실”이라는 프로이트의 말에서 실마리를 얻을 수 있다. 이 말은 억압된 성적 에너지가 예술적 창조성을 자극한다는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전제가 있다. 내밀한 욕망도 솔직하게 자서전에 기록했어야 한다. 채플린의 말대로 “누군가 자서전을 쓴다고 하면 으레 그 사람의 성 편력이 공포될 것으로 기대”하는 것 같다. 기실 숨기고 싶은 것마저 과감하게 털어놓은 자서전이 가장 좋은 자서전이다. 채플린의 자서전도 좋은 자서전의 미덕을 두루 갖추었다. 그러나 성 편력마저 정직하게 썼다고 말할 수는 없다. 이래서 평전이 필요하다. 관련자들과 자료를 섭렵해 고백한 것의 이면과 고백하지 않은 것들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어찌했든 채플린은 자서전에서 자신의 연애와 성 편력도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놀라운 것은, 채플린이 여성과의 관계를 원만하게 이끌어가지 못했고, 성애보다는 일에서 더 큰 충족감을 느꼈다는 사실이다. 그는 노골적으로 “섹스에 대한 유혹은 일로 해소하는 편”이었고, “일을 하는 동안 나는 여자에게 전혀 관심이 없었노라”고 밝혔다. 물론, 채플린이 수도승처럼 살았다는 뜻은 아니다. 연애도 했고 결혼도 했고 이혼도 했다. 단지 여자에게 관심 있을 때는 “영화 한 편을 끝내고 다음 영화를 준비할 때까지, 즉 별로 할 일이 없을 때뿐”이었다.

채플린은 성적 욕망에 대해 두 사람의 말을 인용하는데, 그 하나는 “하룻밤 쾌락을 위해 허비하는 것은 피와도 같은 소설의 한 페이지를 잃는 것과 같다”는 발자크의 말이고, 다른 하나는 “하루 중 아침에 잠깐 글을 쓰고, 오후에 짬을 내어 친구에게 편지라도 쓰고 나면 달리 아무것도 할 것이 없는 순간이 온다. 그리고 조금 있으면 그 시간도 지루하다. 그때가 섹스를 할 때”라는 웰스의 말이다. 우나 오닐과 결혼하고 가정이 안정되면서 그의 창작열도 서서히 식어간다는 점을 참작한다면 프로이트의 말을 수긍하지 않을 수 없다(예술가 가운데 난봉꾼이 많다는 사실을 기억한다면 이것은 어디까지나 채플린에게 한정된 해석일 뿐이다).

채플린의 ‘나의 자서전’을 읽으며 주목해야 할 또다른 대목은, 앞의 것과 정반대로, 예술적 창조성을 억압하는 것은 무엇이냐 하는 점이다. 답을 서둘러 말한다면, 과도한 애국주의와 매카시즘으로 상징되는 천박한 이념공세다. 채플린이 두 번째 영국을 방문했을 적에 기자가 쳐놓은 덫에 걸렸다. 신분을 속이고 던진 질문에 소신대로 유럽에 전쟁이 일어나도 참전하지 않겠다고 답변한 것이 화근이었다. 여러 신문에 ‘비애국자 찰리 채플린’이라는 제목의 기사가 대문짝만하게 실렸다. 자서전에는 이에 얽힌 일화와 채플린의 생각이 자세히 실려 있다. 무학의 배우가 한 말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철학적 사유가 영근 내용이다. 그는 유대인 600만명이 애국주의라는 이름으로 살해되었다는 사실을 환기하며, 모든 나라가 애국주의라는 이름으로 살인을 저지를 개연성은 얼마든지 있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면서 “어떤 정치적 이유에서 희생을 강요하거나 누가 희생되는 것은 바라지 않는다”며, 자신은 “대통령, 총리 또는 독재자를 위해 내 목숨을 버릴 생각이 없다”고 말한다.

채플린 역시 공산주의자로 몰린다. 보수세력이 나서 그의 작품을 상영하지 못하도록 영화관에 압력을 가하기까지 했다. 그런데 그 이유가 너무 어이없다. 소련이 나치의 침공을 받아 절체절명의 상황에 놓여 있었다. 미국에 제2전선 구축을 촉구했다. 루스벨트도 지지했으나, 여론이 그리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마침 소련주재 미국 대사인 조지프 E 데이비스가 러시아 전쟁구제를 위해 연설하기로 되어 있었는데, 건강상 일정을 취소할 수밖에 없게 되자, 채플린이 대신해 줄 것을 정부 고위관계자가 요구해왔다. 그는 나치에 맞서 승리하려면 미국과 소련이 동맹관계를 맺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것이 훗날 그를 공산주의자로 오해받게 한 이유가 되었다. 보편적 인류애에 바탕하고, 정부 당국의 간곡한 부탁을 받아들여 선의로 한 행동이 과잉된 이념공세의 빌미가 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벌어진 것이다.

채플린은 영국으로 가는 배 위에서 미국에서 추방되었다는 통보를 받는다. 주변사람들이 이유를 묻자 채플린은 이렇게 정리한다. 첫번째는 일반적인 사회규범을 따르지 않았기 때문인데, 공산주의자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그들을 미워하지 않는 데 대한 반발이라고 보았다. 둘째는 반미활동조사위원회에 반대해서다. “소수의견을 묵살하거나 봉쇄할 수 있는 권력남용의 수단으로 이용될 소지가 있다”고 본 것이다. 마지막으로는 미국 시민이 되고자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예술가가 어찌 한 국가에 매이려 하겠는가. 그는 이미 세계시민이었던 것이다.

채플린은 애국주의자들의 비난과 상식 이하의 이념공세에 무릎꿇지 않고 역작을 잇달아 발표한다. ‘시티 라이트’ ‘모던 타임즈’ ‘위대한 독재자’ ‘라임 라이트’가 이 시기의 작품이다. 그렇지만, 결국 채플린은 할리우드와 결별하고 스위스에서 만년의 삶을 보낸다. 스스로 천재가 된 사람을 애국과 이념의 이름으로 박제로 만들어버렸던 것이다. 다시, 국가주의와 이념의 망령이 되살아날 조짐을 보인다. 얼마나 많은 광대가 뜻을 펼치지 못하고 교살당할지 모를 일이다. 과연 역사의 수레바퀴는 뒤로 굴러가고 말 것인가?

천재는 어떻게 태어나고, 누가 죽이는가. 대본도 읽을 줄 몰랐던 빈민가의 소년은 훗날 세계 영화사를 길이 빛낸 최고의 예술가로 성장한다. 지독한 가난 속 어두운 단칸방에서 아들을 위해 공연을 하고 연기를 가르친 어머니의 지극한 사랑은 인생역전의 자양분이 됐을 것이다. 그의 성공은 타고난 천재성만으로 이뤄진 것은 아니다. 끊임없이 노력했고 신념에 따라 행동했다. 정치는 그에게 이념의 굴레를 씌워 억압했지만 그는 민주주의도 공산주의도 아닌 자유인·세계시민으로 ‘인간’을 무대에 올린다. 스스로 태어난 천재는 이념에 의해 교살될 뻔했지만 그는 굴복하지 않았다.

<이권우 | 도서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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