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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1922년 5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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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오길영

작성일자

2008-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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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2083


20세기 유럽문학사에는 여러 거장들이 있지만, 그중 내가 좋아하는 작가들은 내가 전공한 조이스, 그리고 프루스트와 카프카이다. 프루스트는 1871년 생이고 1922년에 사망했다. 그의 대표작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1913년에서 사후인 1927년에 걸쳐 발간되었다. 조이스는 1882년생이다. 1941년에 사망했다. 카프카는 1883년생이고 1924년에 사망했다. 프루스트가 셋중 가장 연장자이다. 조이스와 카프카보다는 약 10살많다. 카프카와 조이스는 거의 동년배이다. 하지만, 프루스트와 카프카는 거의 비슷한 때 세상을 뜬다.

참고로 이들의 문학에 적대적인 '리얼리스트'였던 루카치는 1885년생이니 역시 거의 동년배이다. D.H. 로런스가 루카치와 같은 해에 태어났다. 1930년에 사망. 버지니아 울프가 조이스와 같은 해에 태어났다. 1870년대, 1880년대생들인 이들은 1920-30년대에 걸쳐 소위 '본격 모더니즘'의 대변자역할을 하거나, 루카치처럼 그에 비판적인 문학활동을 펴게 된다. 그렇게 세계문학사에서 가장 빛나는 한 시대를 연다. 근대사실주의 문학의 대표자격이었던 플로베르가 1880년에 세상을 뜬 것도 1880년대에 주로 태어난 작가들이 이후 펼치게 될 새로운 현대문학의 전개와 관련해서 기록해둘만 하다.

한국근대문학의 대표자들은 대개 이들보다 약 10-20년 늦게 태어났다. 이광수가 1892년생, 염상섭이 1897년생, 채만식과 김소월이 1902년생, 임화가 1908년생, 이상이 1910년생이다. 참고로 올해가 임화 탄생 100주년이 된다.

평생 프라하를 떠나지 않았고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뜬 카프카는 조이스와 프루스트와 만날 기회가 없었다. 그들의 문학을 알았다는 근거도 없다. 하지만 프루스트와 조이스는 잠깐이지만 조우할 기회가 있었다. 1922년 5월 18일이 그 날이다. 소설가 Sydney Schiff 가 연 파티에서였다. 인터넷에서 퍼온, 그 만남에 대한 짧은 소개.

> "Stephen Hudson was a pseudonym of the British novelist Sydney Schiff (1868 – 1944). He is now better remembered for his place as a piece in the social jigsaw around more celebrated artists. Independently wealthy, he divided his time mostly between London and the south of France. He was the host at a now-celebrated party in Paris on May 18, 1922, when Marcel Proust met James Joyce (without the slightest rapport), and other guests included Diaghilev, Stravinsky and Picasso. The occasion was the first night of Stravinsky's Renard. Schiff tried to get Picasso to paint a portrait of Proust, again abortively."

Proust, Joyce, Diaghilev, Stravinsky, 그리고 Picasso 가 모인 파티였으니, 비평가 Michael Dirda의 표현대로 "Now that's an A-list"이다. 이 날은 어쩌면 현대예술사에서 가장 흥미로운 날짜로 기억될 만하다.

1922년 2월에 조이스의 대표작인 [율리시즈]가 출간되었으니, 그 몇달 뒤의 만남이다. 조이스로서는 자기 문학의 한 매듭을 짓고 난 뒤이다. 잘 알려진 사실이지만, 조이스는 아일랜드를 떠나 프랑스 파리를 그의 문학적 근거지로 삼았다. (베케트도 조이스가 걸어간 길을 따라 간다.) 프루스트는 같은 해 11월에 51세로 세상을 뜬다. 흥미로운 이 두 거장의 만남은 위의 설명에도 나왔듯이, 별다른 대화없이 끝난 것으로 되어 있다. 탁월한 작가평전인 엘먼의 [제임스 조이스]에도 이에 대한 별다른 설명은 없다. 하지만 궁금하긴 하다. 이들은 그날의 만남에서 무슨 생각을 서로에 대해 했을까? 작가는 오직 작품으로만 말한다지만, 궁금하다. 대단한 문학적 자존심을 지닌 작가들이었던 조이스와 로런스가 서로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던 것은 잘 알려져 있다. 울프도 조이스에 대해 그다지 호의적이지 않았다. 울프에 대한 조이스의 견해는 잘 모르겠다.

카프카에 대해서는 그가 클라우스 바겐바흐와 나눈 대화록이 국내에 번역소개되었다. 나는 아직 읽어보지 못했다. 귀국하면 읽어볼 책들의 목록에 올려놓았다. 프루스트의 경우에도 그런 책이 있는지는 모르겠다. 조이스의 경우에는 비슷한 책이 있다. 예술가 지망생이었던 Arthur Power와 나눈 대화를 기록한 [Conversations with James Joyce](1974)가 그 책이다. 심도깊은 문학적 대화가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조이스의 내면풍경을 이해하는 데는 도움이 된다. 이 책에도 간간이 기존의 모든 체제에 비판적이었던 개인주의자-무정부주의자-'변종'사회주의자였던 조이스의 모습이 드러난다. 언제 여력이 되면 이 책을 번역해 소개하고 싶다.

요새는 작품도 작품이지만, 작가들의 내면풍경에 관심이 간다. 여기 도서관을 찾아보면 거의 모든 중요한 작가들의 숱한 평전과 기록물이 잘 정리되어 출간되어 있다. 부럽다. 거장들의 경우에는 다양한 각도에서 서술된 작가평전만해도 몇 권에 이른다. 나는 작가의 삶으로부터 작품의 의미를 도출할 수 있다고 믿는, 케케묵은 '구비평'적 관점에는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 하지만, 작가의 삶이나 내면의식과 동떨어져 존재하는 작품이 가능하다고도 생각하지 않는다. 부르디외의 지적대로, 중요한 것은 작가가 놓인 사회문화적 '장'과 그것과 길항관계인 작가의 고유한 '아비투스'의 관계를 해명하는 것이다. 작가의 '아비투스'를 제대로 이해하기 위해서는 작가의 삶과 내면풍경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뛰어난 작가는 시대를 뛰어넘지만, 그 역시 시대의 자식이기 때문이다.

사람마다 끌리는 시대가 있겠지만, 나는 1922년으로 '상징'되는 1920년대에 매혹된다. 그 시대를 좀더 공부하고, 알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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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길영
2008-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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