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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예술가의 말년
첨부
작성자

오길영

작성일자

2008-10-03

이메일

조회

2035


고은의 시를 읽어본지가 꽤 되었다. 그렇게 된데는 내 게으름이나 점차 갖게 된 한국문학에 대한 무관심을 비롯한 몇가지 이유가 있겠다. 무엇보다 그의 시를 굳이 찾아 읽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아서였다. 나는 그의 시의 절정은 최근 시가 아니라 '자작나무 숲으로 가서'를 쓸 무렵의 시라고 생각한다.

그 무렵의 고은 시에는 세속과 초월 사이의 팽팽한 긴장이 있다. 최근 읽은 평론집들 중 하나에서 정과리는 고은 시의 세계관적 토대가 무엇인가, 그것의 의미와 한계가 무엇인지를 예리하게 짚는다. 나는 그의 지적에 공감한다. 내가 고은 시를 찾아읽지 않게 된 이유 하나. 점점 '대가'가 되어가는 그의 모습에서, 노벨상 후보에 오르네 마네 떠들어대는 언론의 호들갑에서, 시적 긴장을 잃어가는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현실을 '초월'하는 도사, 혹은 선사의 모습을 읽었기 때문이다. 모대학 총장이 된 뒤 이렇다할 좋은 시를 쓰지 못하는 황지우의 경우도 비슷한 예이리라. 세상과 화해하고, 몸과 마음이 편해질 때도 좋은 작품을 쓸 수 있을까? 이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이다.

나는 어떤 형태이든지 '도사'나 '도사연'하는 사람은 좋아하지 않는다. 하물며 작가가 그렇다면 더욱 말할 것도 없다. 작가가 도사가 되려는 순간 작가로서의 생명은 끝장이라고 믿는다. 아래 글에서 언급된 사이드의 말대로, 그의 시에서 "해결과 완성의 말년"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를 들어 예이츠가 잘 보여주듯이, 위대한 시인은 "해결과 완성"이 이 아니라 "모순과 파국의 말년"을 보여준다. 그래서 "예컨대 청각을 상실한 말년에 이르러 베토벤의 음악 양식은 더욱 전위적인 것이 되었다. 차분함과 성숙함이 기대되는 곳에서 우리는 털을 곤두서게 하고 까다롭고 가차 없는, 심지어 비인간적이기까지 한 도전을 발견한다.”

나이들 수록, 소위 '대가'급이 될 수록, 세상과 화해하면서 세속을 벗어난 저 높은 곳에서 세상을 굽어보면서, 고매한 언어를 설법하는 '도사'가 아니라, "털을 곤두서게 하고 까다롭고 가차 없는, 심지어 비인간적이기까지 한 도전을" 시도하는 시인이나 작가를 더 많이 만나고 싶다. 그러면 한국문학에 대한 시들어진 내 애정도 조금은 살아나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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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겨레21

선생에게 시작은 호흡 같은 것인가

대충 훑어보고 다시 돌아보지 않게 된 고은의 <허공>

고은 선생이 등단 50주년 기념 시집 <허공>(창비)을 출간했다. 나는 선생이 1970~80년대 민주화의 현장에서 해낸 일들과 50여 년 동안 한국문학사에 남긴 업적에 고개를 숙인다. 이에 대해서는 왈가왈부 자체가 불경이다. 한국문학은 고은 문학에 끝내 다 갚지 못할 큰 빚을 졌다. 그러나 선생을 그 무슨 시성(詩聖)쯤으로 추앙하면서 선생의 최근 작업에 애오라지 찬양만 일삼는 일각의 태도는 따분하다. 기왕의 업적과 현재의 성취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시인 고은을 존경하는 일과 시집 <허공>을 평가하는 일은 별개다. 평론가에게 모든 시집은 신인 시인의 첫 시집일 뿐이다. 사실을 말하자면 나는 막 출간된 선생의 ‘첫 시집’을 야멸치게 읽었다.

고은 문학은 ‘총을 든 선승(禪僧)’의 문학이(었)다. 유물론(총)과 불교(선)가 결합돼 있는 ‘세계’가 그러하고, 언어도단(선)의 속도감(총)으로 충만한 ‘언술’이 또한 그러하다. 공인된 두 대표작 ‘화살’과 ‘자작나무 숲으로 가서’를 보라. ‘화살’은 무시무시한 작품이다. 군부독재를 향해 화살이 되어 날아가서 영영 돌아오지 말자는 내용을 거의 주술적인 선동의 수사학으로 밀고 나간다. 나는 이 시를 통해 ‘파시즘의 황홀’을 느꼈다. 이것은 비판이 아니라 찬탄이다. ‘자작나무…’ 역시 압도적이다. 세상에 널려 있는 깨달음의 시들이 대개 지루한 이유는 그것들이 깨달음의 과정을 재현하면서 독자를 설득하려 해서다. 고은의 시는 설득하지 않고 곧바로 단언한다. 그 단언이 다시 주술적인 반복과 변주의 급물살을 탄다. 그래서 ‘공감’의 과정을 건너뛰고 바로 ‘매혹’되는 이상한 일이 벌어진다.

그러나 문제는 그 마력의 작렬이 점점 드물어지고 있다는 데 있다. 물론 선생의 최근 시집 어떤 것에도 마력의 시 서너 편은 늘 있다. 이번 시집에서 ‘집’이라는 제목의 시는 “아내의 사진을 바라보았다/ 울음이 이루어졌다”로 끝나는데, 저 단순한 두 행의 여운은 장엄하기까지 하다. 혹은 거추장스런 조사(助辭)를 다 날려버리고 육박해오는 이런 시. “자네 꼽추가 되도록/ 사랑해봤나?// 꼽추가 되도록/ 타락해봤나?// 나는 틀렸어// 어린 시절 생각나/ 생복숭아 비바람에 다 떨어진 날/ 새끼 열여섯 낳아/ 열하나 잃고/ 다섯 남은 여든 살 할멈/ 열두번째 딸 죽은 날/ 꼽추할멈 울던 날 생각나// 천정화 4년/ 꼽추가 되어버린 늙은 미켈란젤로/ 그 사람도 생각나/ 그 사람의 시스티나 천지창조 생각나// 저 대웅전 32상(相) 80종호(種好) 부처 가고 꼽추부처 와야 해”(‘시스티나’ 전문)

» 고은 선생 등단 50주년 기념 시집 <허공>

도입부의 저 돌연한 질문은 그 자체로 이미 단언이다. 사랑 혹은 타락이려면, 그것은 온몸 휘어져 꼽추가 될 정도로 지독한 것이어야 한다는 거다. 시인은 두 사람을 불러들인다. 이미 꼽추였고 그 육체만큼 비극적인 생을 감당해야 했던 한 노파, 그리고 애초 꼽추가 아니었으나 시스티나 성당 천장 벽화를 그리다 4년 만에 꼽추가 된 미켈란젤로. 시공을 넘나드는 두 사례가 읽는 이를 후려치고 가면 다시 시인의 일갈이 이어진다. 운명을 감당하고 타개한 인간의 비극적 숭고함을 상징할 수 있는 것은 “32상 80종호”(불상의 규격 혹은 원리)의 번듯한 부처가 아니라 “꼽추” 부처여야 한다는 것. 논변과 설득이 아니라 단언과 주술을 통한 호소가 시의 면책특권이라면, 이 시인만큼 그 특권을 능란하고 호쾌하게 누리는 이도 드물다.

그러나 이런 시가 많지 않다. 나는 100편이 넘는 수록작 중에서 겨우 서너 편을 얻었을 뿐이다. 그 외의 시들은 일독 이후 뒤돌아보지 않았다. 선생은 이미 시를 ‘갖고 노는’ 경지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 ‘갖고 놀기’의 현란함은, 몇 편의 좋은 시에서 마력적인 전율을 낳는 데 기여하지만, 나머지 시들에서는 거꾸로 진정성이 느껴지지 않게 하는 데 기여한다. 몇 편의 시에서 선생은 통곡하고 있었지만 나는 그 울음을 이해할 수 없었다.

단지 연륜의 차이 때문만은 아니라고 믿는다. 어디선가 선생은 당신이 기왕에 쓴 시들을 대부분 기억하지 못한다고 했다. 선생에게 시작(詩作)은 호흡 같은 것인가. 누구도 어제 내쉰 숨을 기억하지는 못하니까. 높은 경지이긴 하나, 삼가 바라건대, 나는 선생께서 100편을 써서 서너 편의 수작을 얻기보다는, 100편을 쓰는 에너지로 서너 편의 걸작을 세공하셔야 할 때가 아닌가 한다. 그게 대시인의 창작 인생 후기에 더 어울리는 모습이 아닐 것인가.

에드워드 사이드는 자신의 말년에 ‘예술가의 말년’에 관해 성찰했다. 해결과 완성의 말년이 아니라 모순과 파국의 말년. 예컨대 청각을 상실한 말년에 이르러 베토벤의 음악 양식은 더욱 전위적인 것이 되었다. “차분함과 성숙함이 기대되는 곳에서 우리는 털을 곤두서게 하고 까다롭고 가차 없는, 심지어 비인간적이기까지 한 도전을 발견한다.”(<말년의 양식에 관하여>) 유사한 경우를 테어도어 아도르노의 말년에서도 찾을 수 있다.

아도르노는, 사이드식으로 말하면 화해 불가능한 것들을 끝내 화해 불가능한 상태로 놔두는 사유를, 내 식대로 말하면 희망의 아름다움이 아니라 절망의 정의로움을 말하는 사유를 말년에 이르기까지 고집했고, 그것들을 결코 ‘대충 훑어볼 수 없는’ 양식으로 써냈다. 나는 노(老)대가의 시집을 ‘대충 훑어보는’ 데 성공했고 그 점에 대해 어떠한 죄책감도 느끼지 않는다.

신형철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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