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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문학분과 5월 세미나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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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남영

작성일자

2007-06-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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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5464


2007년 5월 세미나보고

일시 : 2007년 5월 12일 토요일 오전 10시 30분
장소 : 영미연 사무실
발제 : 엄용희, “Samuel Taylor Coleridge : The Poet and His Editors,” The Romantics
참석자 : 엄용희, 임보경, 정희원, 김재오, 윤효녕, 육은정, 박미정, 김명환, 정남영

발제 및 토론내용
▣Watchman에의 기고활동을 포함하여 여러 사실들로 미루어 보아 1795-96년 Coleridge의 활동의 궤적은 대중적 단체들 혹은 그 더 지적인 구성원들에게로 향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 평자들은 Coleridge를 Godwin에 반발하고 Burke에게 끌리는 것 이외에 다른 어떤 힘의 영향도 받지 않는 것으로, 정치의 외계에서 무중력으로 떠도는 존재로 묘사하는데, 이는 잘못이다. 그 증거로 삼는 Coleridge의 편지들을 더 신중하게 읽어야 했다. Hazlitt, Southey, Thelwall 등이 1897년까지의 Coleridge를 열렬한 선동가로 기억한다.
▣ Coleridge, 변절이냐 발전이냐
Mann은 Coleridge의 후기의 변모는 변절이 아니라 자신의 생각들을 더 심오하게 참구하고 발전시킨 것으로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톰슨은 이에 동의하면서도 이의를 제기한다. 탐구와 발전이 맞지만, 여러 가능한 방향 중에서 한 방향으로만 탐구하고 발전했으며, 이 방향은 다른 대안적인 가능성들에 대한 (그의 청년기를 빛나게 했던 ‘도덕적이고 사회적인 관심’에 대한) 명백한 배반을 포함하는 방향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톰슨은 청년기 Coleridge의 노트북, 강연, 편지들에서 여러 발전가능성들이 풍부하게 존재했음을 볼 수 있다고 한다: 천년왕국론자(the millenarian), 기독교 공동체주의자(the communitarian Christian), 혁명가(버크주의자가 아니라), 공리주의 비판자. 그러면서 Coleridge의 경우에는 변절(apotasy)의 문제가 중요하게 남아있다고 한다. 그의 전기작가들에게 잔소리를 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러한 은밀한 자기배반만이 그의 후기 저작들의 격함과, 죄의식에 눌리고 비비꼬인 부정합성을 설명해주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 Erdman과 Coleridge
1850년 Coleridge의 딸 Sarah가 Morning Post와 Courier에 기고한 그의 글들을 모아서 Essays(3권)으로 묶어내고, 이것을 다시 David Erdman이 (글을 더 찾아 모아) 확장하였다. 톰슨은 이 책들에 실린 복원된 글들은 정치사상가로서의 Coleridge의 명성에 치명적이라고 한다. Coleridge의 위선과 상투문구들의 범람을 확인할 수 있기 때문이다. Coleridge는 스스로를 ‘도덕적 지혜의 교사’라 칭하지만, 이 책을 보면 지 지혜의 내용은 ‘Coleridge의 상투문구 모음집(Compendium of Cliche)’라고 부르는 게 좋겠다고 한다. 너무 오랫동안 학자들은 Coleridge에 대한 평가를 자신이 내린 평가에 의존해왔는데, 이는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Coleridge는 자신의 충동을 확정된 사상 속으로 집어넣으려 노력할수록 더 무원칙적인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정치적 저작에서는 변절자의 지적 복합성을 드러내는 예로서 흥미로운 대상이 될 뿐이라고 한다. 보통 정치적 논자가 길을 잘못 들어섰다고 결론 내렸을 때 ① Wordsworth처럼 문제를 끝까지 논하거나 ② 아니면 참시 침묵하다고 자기비판을 하는데, Coleridge는 친구들의 행동 동기에 대해서 악의적 비방을 섞어서 공격을 날렸고, 모두가 Coleridge의 것이라고 알았던 입장들을 형틀에 끼우기 위해 자서전을 조작했다는 것이다. 또한 어떤 정치적 판단에 대해서도 불충하였고 이기적이며 전적으로 무책임했다고 한다.
톰슨은 편집자들이 앞으로 Erdman처럼 섬세하게 Coleridge를 다루어야 할 것이라고 한다. Erdman 자신은 Coleridge가 정치사상가로서 어떤가에 대한 견해를 제시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의 작업이 견해를 제시한다고 한다. 그리고 이러한 ‘사상’의 사기(詐欺)는 편집자의 각주의 정밀한 조사를 견뎌내지 못할 것이라고 한다.
톰슨은 여기서 아이러니를 발견한다. 냉전의 희생자이며, 원칙의 뒤바뀜과 변절의 혼란을 조용하고 담담한 눈으로 지켜보던 한 편집자(Erdman)가 마침내, 비교할만한 시대의 카멜레온의 가짜 레토릭을 책으로 만들어 출판한 것이다. 톰슨은 Erdman이 산문을 시도한 경우에는 Coleridge보다 훌륭한 산문작가라고 한다. Coleridge가 Fox에게 보낸 일련의 도발적 편지들에 대해서 Erdman은 이 편지들은 “스튜어트 [신문소유주] 자신이 쓴 글들에 담긴 검은 암시들로부터 자라난 곰팡이일 뿐이다”라고 말한다(155).
▣ Coleridge의 어떤 점이 (변절 이전에) 진보적인 쪽으로 발현되도록 했을까?
- Coleridge의 경우 Wordsworth보다 윤리의식(sensuous desire의 짝)이 강하다.
- 다만, 계시종교의 탈출구를 찾지 못해 기독교의 틀에 갇히다
▣Coleridge의 ‘oneness’와 Blake의 ‘oneness’의 차이.
- Blake는 제도종교를 ‘poetic genius’의 타락으로 본다. Coleridge의 ‘oneness’는 협소하다. 성공회 자체이다 .
▣ Coleridge와 Wordsworth의 ‘변절’시기의 차이
- Coleridge는 1798년, Wordsworth는 1805년. 그 사이에 두 친구는 결별하게 된다.
▣ Orange Lodges
북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에 기반을 둔 개신교 조직인 Orange Order의 지부들이 바로 Orange Lodges이다. 중앙본부는 Grand Orange Lodge of Ireland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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