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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이야기 4] 12세기 최고의 스캔들 (1)

작성자
  김현진
이메일
작성일자
2002-04-03
조회
3735


♡아벨라르 수퍼스타♥

1117년 빠리. 쎄느 강 남단. 강 건너 씨떼 섬 위로 우뚝 솟은 노트르담 대성당과 왕궁이 보무도 당당하다. 섬을 잇는 다리 쁘띠 뽕(Petit Pont)과 다리 주변 강가엔 낡은 목조건물들이 무질서하게 늘어서 있다. 일상에 쫓기는 시민들로 늘 북적이는 곳이지만, 또한 학생들과 선생들의 삶의 공간이자 휴식처이기도 하다. 라틴어로 토해내는 열변과 논리의 홍수에 섞여 간간이 들려오는 유럽 각지의 사투리. 걸음이 멈춘 곳마다 토론의 꽃이 피고, 기울이는 술잔 하나에도 학문의 열기가 뜨겁다. 서로 다른 옷차림에 생김새도 연배도 각양각색이지만 모두 진리를 좇아 여기까지 왔다.

대성당을 기점으로 해 다리를 따라 강 남단까지 길게 뻗어있는 이 배움과 학문의 거리는 팽창일로에 있는 빠리의 성당학교 구역이다. 아직 대학이 생기기 전이지만 12세기초 빠리의 대학로인 셈이다.

우리가 아는 대학로의 저녁이 콘서트와 연극 공연으로 시작되듯, 빠리 '대학로'의 아침은 강연으로 시작된다. 말이 강연이지 공연 뺨친다. 건물 이층에 마련된 허름한 강의실에 모여든 학생들의 인파를 보라. 방을 꽉 채운 것으로도 모자라 계단까지 발 디딜 틈이 없다. 원칙상 여학생은 받을 수 없지만 윔플(요즘 수녀들이 쓰는 것과 비슷한 중세 두건)을 쓴 여자들의 모습도 간혹 눈에 띈다. 진리를 위해 부모도 가족도 미련 없이 버린 이들이다. 교수는 우리 기준에는 선생이라기보다 연예인에 가깝다. 현란한 수사와 명쾌한 주석에 좌중의 탄성이 절로 쏟아지고, 변증법의 화살에 맞아 혼절한 여학생의 가슴이 가쁘게 뛴다. 진리의 상처 때문인가. 사랑의 상처 때문인가.

"쁘띠 뽕의 강의실에서, 학원의 녹음이 우거진 강 남단에서 빠리의 선생들과 학자들은 고대세계의 지식을 캐고, '보편성'을 정의하며, 삼단논법을 빌어 그들만의 변증법을 완성했다. 아리스토텔레스, 교부(敎父)들, 교리를 모르고, 삼단논법에 능숙치 못한 이들에게 빠리의 삶은 어둠 속에 갇힌 두더지의 삶과 다를 바 없었다. 도시의 최대 관심사는 지성이었고, 그 생명의 숨결은 논쟁이었다." 에이미 켈리가 상상한 당시 빠리의 모습이다.

이 지성의 도시의 스타는 배우나 가수가 아니라 강단의 학자들이었다. (태평성대가 따로 없다.) 그 중에서도 수퍼스타는 단연 삐에르 아벨라르다. 빠리대학의 모태가 된 성당학교의 드높은 위상과 자자한 명성도 따지고 보면 아벨라르 한 사람의 카리스마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던가.

브레따뉴 지방에서 한 귀족의 장남으로 태어난 아벨라르는 일찍이 "미네르바의 발 밑에 무릎 꿇기 위해 마르스의 궁정을 버리고" 논쟁을 찾아 프랑스 전역을 떠돌기 시작했다. 성당학교를 찾아다니며 당대 최고의 철학자들에게 사사 받다가 결국 맞장 떠서 스승을 꺾어버리는 식으로 희한하게 내공을 쌓아가는 동안 아벨라르의 오만한 천재성은 온 세상에 알려졌고, 그의 손에서 변증법은 어느 누구도 경험한 적 없는 가공할 무기로 다시 태어났다. 이렇게 강호를 평정하고 전국의 학교를 폐허로 만든 그가 자신을 따르는 학생들과 오빠 부대를 이끌고 빠리 근교 몽 쌩 즈느비에브(Mont Ste Genevieve)가에 학교를 세운 것은 그의 나이 스물 아홉인 1108년의 일이었다. 그리고 5년 후 마침내 그는 스승이자 숙적인 기욤 드 샹뽀가 은퇴한 후 공석이 된 노트르담 성당학교의 주임교수직을 맡게 된다.

다시 1117년. 학문의 영역을 수사학과 변증법에서 신학에까지 넓힌 아벨라르는 이제 인생의 절정을 맞고 있다. 그의 강의를 듣기 위해 학생들이 유럽 전역에서 몰려들고, 그의 달변과 열정, 학식 앞에 (그리고 그의 말에 따르면 수려한 외모 앞에) 빠리가, 아니 세상이 온전히 그의 것이 되었다. "나는 내가 세상에서 유일한 철학자라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어느 누구도 그 무엇도 두렵지가 않았다." 자서전 『내 불행의 역사』에서 그는 당시를 이렇게 회고한다.

그가 빠리 시내 한 사제의 조카딸인 방년 17세의 엘로이즈를 만난 것은 바로 이 즈음이다. 조카 교육에 누구보다 헌신적이었던 사제가 엘로이즈를 최고의 석학 아벨라르에게 맡긴 것은 어쩌면 당연한 선택이었다. 하지만 결국 고양이에게 생선을 던져준 격이 되고 말았다. 개인적 성취의 정점에서 교만에 빠진 아벨라르가 지금껏 지켜온 동정을 버리고 이 예쁘고 학식까지 뛰어난 제자를 한번 크게 꼬셔보기로 작정했기 때문이다.

<12세기 최고의 스캔들>은 다음 이야기에서 계속된다. 지금 가슴이 벅차서 더 이상은... 오늘은 이만-!

<김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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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기 최고의 스캔들 (1)

방랑객

2002-04-04


아주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벌써 다음 편이 기다려지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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