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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이야기 3] 소피 마르소와 멜 깁슨

작성자
  김현진
이메일
작성일자
2002-03-04
조회
6207


"아시겠어요? 죽음은 우리 모두에게 찾아옵니다. 윌리엄 월러스에게 찾아오듯이. 하지만 폐하, 운명하시기 전에 이것만은 알아두세요. 폐하의 혈통은 폐하 대에서 끊깁니다. 폐하 피가 섞이지 않은 아이가 제 뱃속에서 자라고 있답니다. 폐하의 아들은 왕좌를 오래 지키지 못할 거구요. 제가 맹세하지요."

(You see? Death comes to us all. And it comes to William Wallace. But before death comes to you, know this. Your blood dies with you; a child who is not of your line grows in my belly. Your son will not sit long on the throne. I swear it.)

영화 <브레이브하트>(1995년)에서 프랑스 공주이자 영국 황태자비인 이자벨라, 즉 소피 마르소가 죽어가는 시아버지 에드워드 1세의 귀에 대고 속삭이는 말이다. 쉽게 말해 숨넘어가는 사람 염장 질러 황천길을 재촉하는 독설 중의 독설인데, 이는 또한 영화를 통틀어 가장 흥미로운 대사이기도 하다.

멜 깁슨이 제작ㆍ감독ㆍ주연한 <브레이브하트>는 1390년대말, 1400년대초 스코틀랜드 독립을 위해 영국에 맞서 싸운 윌리엄 월러스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이다. 월러스는 엄연한 실존인물이지만, 블라인드 해리의 서사시를 통해 이미 전설이 되어버린 그의 생애에서 역사와 허구를 구분해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애초에 역사와 허구가 뒤섞인 이 밑그림을 헐리우드적 세계관으로 채색한 영화 속에서 역사적 고증의 엄밀함을 찾는 것은 물론 더더욱 힘든 일이다.

요즘 사극 <여인천하>를 둘러싸고 역사왜곡 논쟁이 심심찮은 모양인데, 역사극으로서 <브레이브하트>의 매력은 내 생각에는 역사성보다는 오히려 계산된 역사왜곡에 있고, 그 역사왜곡의 핵심에 있는 것이 바로 윌리엄 월러스(멜 깁슨)와 이자벨라(소피 마르소)의 관계이다. 그리고 그 관계의 의미를 정리해주는 것이 바로 앞서 인용한 대사이다.

영화 속에서 이자벨라는 월러스를 세 번 만난다. 시아버지의 사신 자격으로 월러스를 처음 만났을 때는 자신도 모르게 월러스의 남성적 매력에 이끌리고(그래서 남몰래 그를 돕는다), 두 번째 만났을 때는 스스로 원해 그와 잠자리를 같이 한다. 세 번째이자 마지막 만남은 체포된 월러스가 처형당하기 전날 감방에서 이루어진다. 짧고 애절한 만남, 그리고 영원한 이별... "세 번째는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다."

역사적으로 이자벨라는 월러스를 한번도 만날 수 없었다. 월러스가 처형된 것은 1305년이고, 이자벨라가 에드워드 2세와 결혼한 것은 1308년이기 때문이다. (에드워드 1세는 1307년에 죽었다. 따라서 실제 이자벨라는 영화에서처럼 시아버지의 감시와 추파에 시달릴 걱정이 없었다.) 그래서 역사를 아는 관객 중에는 영화 속의 두 연인이 아예 "아니 만났어야 좋았을 것"이라 생각하는 이들도 있는 모양이다. 하지만 두 사람의 만남은 비역사적인 만큼이나 역사에 대해 많은 것을 이야기해준다. 역설적으로 들릴지 모르지만 사실이다.

소피 마르소, 아니 이자벨라가 누구인가. 열여섯 나이에 영국역사상 가장 무능한 왕이자 가장 유명한 동성연애자의 한 사람을 남편으로 맞아 월러스 못지 않게 파란만장한 삶을 산 여인이 아니던가. 남편 에드워드 2세가 삐에르 가베스똥과 휴 디스펜서 두 총신 겸 애인에게 차례로 휘둘려 국정을 그르치고 백성의 원망을 사는 사이(1308년∼1312년, 1321년∼1326년) 핍박과 감시 속에 독수공방한 것이 바로 이자벨라이고, 결혼 17년만에 친정 나들이 할 기회가 생기자 동행한 장남 에드워드와 함께 망명의 길을 택한 것도 다름 아닌 이자벨라다(1325년). 친정 프랑스에서 동병상련의 망명객 로저 모티머와 연합해 700여명의 용병을 모아 무모하게 영국을 침공한 것도 이자벨라이고(1326년), 턱없이 적은 병력에도 불구하고 에드워드 2세의 통치에 환멸을 느낀 국민들의 전폭적 지지를 받아, 영국역사상 유래 없이 살아있는 국왕을 폐위하고 왕자를 옹립하는 데 성공한 것 또한 이자벨라다(1327년).

이후 이자벨라는 연인 모티머와 함께 에드워드 2세의 살해를 교사하고 어린 왕 에드워드 3세의 배후에서 영국을 실질적으로 통치하지만, 결국 성장한 에드워드에게 밀려 모티머는 대역죄로 처형되고 이자벨라는 은퇴해(1330년) 아들의 보호 아래 노후를 보내는 신세가 된다. 크리스토퍼 말로우의 희곡 <에드워드 2세>를 읽은 사람이라면 영화보다 더 영화 같고 <왕과 비>나 <여인천하>보다 더 기막히고 통속적인 이 사랑과 야망, 배신과 암투의 역사에 대해 익히 알고 있으리라.

아니 굳이 <에드워드 2세>를 읽지 않았더라도, 14세기초 영국사에 식견 있는 사람이라면 영화에 나타난 이자벨라와 월러스의 관계와 첫머리에 인용한 소피 마르소의 대사에서 당대 역사에 대한 기상천외한 주석을 읽어낼 수가 있다. 이자벨라와 월러스의 정사 장면과 영국 왕가의 피가 섞이지 않은 아이가 자기 뱃속에서 자란다는 이자벨라의 고백은 에드워드 3세가 동성연애자 에드워드 2세의 아들이 아니라 영웅 윌리엄 월러스의 아들이라는 암시가 되며, 에드워드 2세가 왕좌를 오래 지키지 못할 것이라는 소피 마르소의 저주는 모티머와 결탁해 남편을 몰아내는 이자벨라의 운명에 대한 예시로 작용한다는 얘기다. 물론 에드워드 3세가 실제로 월러스의 아들일 리는 없지만, 이 비역사적 설정은 그래도 나름대로 역사적 논리와 설득력을 지니는데, 그게 바로 이 전형적인 헐리우드 액션영화에 색다른 재미를 더해주는 역할을 한다.

에드워드 1세, 에드워드 2세, 에드워드 3세, 흑태자 에드워드로 이어지는 플랜타지넷 왕가의 에드워드 4대는 에드워드 2세를 빼고는 모두 용맹함과 마초적 기질로 일세를 풍미한 이들이다. 영화 속에서 마키아벨리적 악한으로 그려지는 에드워드 1세는 사실 대단히 유능한 왕이자 뛰어난 지휘관이었고, 그의 손자이자 이자벨라의 아들인 에드워드 3세와 에드워드 3세의 아들인 흑태자 에드워드(바로 <기사 윌리엄>에 나오는 왕자인데 일찍이 요절해 왕위에 오르지 못했다)는 백년전쟁을 승리로 이끈 눈부신 무훈(武勳) 덕택에 지금껏 영국적 기사도와 영웅주의의 표상으로 여겨진다.

이 절대 마초들 사이에 낀 덜 떨어진 동성연애자의 존재는 당대인들에게 당연히 이해할 수 없는 미스터리였을 테고, 때문에 백년전쟁의 사가로 유명한 프르와싸르는 에드워드 2세의 가계를 설명하며 "영국인들은 보편적으로 ... 용감하고 호전적인 두 왕 사이에는 늘 육체적, 정신적으로 그만 못한 왕이 다스린다는 믿음을 지니고 있다"고 적기까지 했다. 이리 보면 마초 에드워드 3세가 또 다른 마초 월러스의 피를 이어받았다는 설정은 유치하기는 해도 역사의 수수께끼를 허구적으로 풀어내는 한 방법이 되며, 훗날 이자벨라의 반란은 소피 마르소의 연정, 멜 깁슨의 처형과 맞물려 어떤 역사적 당위성마저 지닌다는 느낌을 준다. 물론 스코틀랜드인의 입장에서 보면 이 영화는 14세기 영국사를 월러스와 스코틀랜드의 궁극적 승리로 귀결시키는 전복적 쾌감을 선사한다.

"Heard melodies are sweet, but those unheard / Are sweeter."

키츠의 시구대로 들리는 노래보다 들리지 않는 노래에 귀기울이는 것이 <브레이브하트>란 역사극을 감상하는 재미라면 재미이다. 이 재미는 물론 충실한 역사재현이 아닌 교묘한 역사비틀기에서 오는 것으로, 사실 멜 깁슨의 연출보다 랜덜 월러스(윌리엄 월러스와 무슨 관계인지 모르겠다)의 각본에 기인하는 바가 크다.

세상에는 역사극이나 역사소설을 역사와 혼동하는 사람들이 많다. 즉 사극을 보거나 소설을 읽고 나서 역사를 알았다고 믿는 이들이 있는데, 이는 한 마디로 무지함의 소산이다. 역사극이란 작가가 역사를 얼마나 정확히 연구하고 이해했는지가 아니라 어떻게 주관적으로 해석해 자기 것으로 만들었는지를 보여주는 장(場)이고, 따라서 역사를 먼저 읽지 않고는 제대로 감상하기가 힘든 장르이다. 하다못해 <브레이브하트> 같은 쉬운 사극을 이해하는 데에도 역사적 지식은 항상 필요하다. 영화 속의 소피 마르소와 멜 깁슨은 분명 역사의 가는 줄 위에서 줄타기를 하고 있지만, 그들의 연기가 곧 역사는 아니다.

<여인천하>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한때 높은 시청률을 누렸던 이 사극의 문제점은 일부의 지적처럼 사실성 부족에 있는 게 아니다. 그보다는 역사해석의 고루함과 안일함, 즉 구중암투란 석기시대 주제를 청동기시대 화법으로 풀어가면서 유사 페미니즘의 망사옷을 입혀 시대에 부응하려는 제작진의 얄팍한 '역사의식'이 문제이다. 남 '찍어낼' 궁리만 하는 문정왕후나 악녀의 정형에서 아직도 벗어나지 못하는 장희빈류의 후궁들보다는 근육이 꿈틀거리고 피와 땀이 튀어도 멜 깁슨의 리썰 월러스(Lethal Wallace)가 차라리 더 '지적'이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더 큰 지적 만족을 준다.

휴, 이번 이야기는 생각처럼 쓰기가 쉽지 않았다. 자고로 잡문 쓰는 게 힘든 사람은 아예 잡문을 쓰지 말아야 한다. 하지만 세상은 뜻대로 안 되는 것이거늘... 다음 이야기는 <12세기 최고의 스캔들>.

<김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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