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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이야기 2] 중세의 화장실

작성자
  김현진
이메일
작성일자
2002-01-29
조회
4229


사람들은 먹고 마시는 곳을 무엇으로 평가할까. 맛을 먼저 따지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분위기나 장식 같은 미적 기준에 점수를 더 주는 사람들도 있다. 물론 '물'이라는 신기루 같은 부표를 따라 끝없이 떠도는 인간들도 있다. 나는 첫 번째 범주에 속한다. 안주 맛만 좋다면 언제나 포장마차가 으리으리한 칵테일 바 보다 좋은 사람이다. 그런 내가 두 번째로 따지는 것이 화장실이다. 화장실이 더러운 곳은 설령 맛이 괜찮아도 다음에는 피하고 싶어진다. 그리고 혹 다시 가더라도 웬만하면 용변은 삼가게 마련이다. (그런 의미에선 포장마차가 실패할 확률이 제일 낮은 편이다. 포장마차 화장실은 넓고 깨끗하고, 또 자리만 잘 잡으면 냄새도 나지 않으니까. 양심을 조금 잘라내고 경찰만 조심하면 그만이다.) 워낙 머리가 이렇게 굳은 지라 두 번째 중세이야기를 쓰려니 중세의 화장실, 특히 중세를 대표하는 건축물인 성(城)의 화장실이 먼저 머리에 떠오른다.

중세 성의 화장실은 주로 성벽 안이나 성벽에서 돌출해 나온 공간 안(성벽이 얇은 경우)에 마련되었다. 성벽 안이라고 하니 막연히 성벽 안쪽을 생각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 말은 말 그대로 벽 안, 즉 두꺼운 돌벽의 일부를 비워서 생긴 공간을 화장실로 활용했다는 것이다. 화장실은 대개 사방 1미터 안팎의 사각형 공간이 위로 올라가면서 아치형 천장을 이루는 방으로 외벽 쪽으로 작은 창문이 나 있었다. 성벽 안에 만들었으니 당연히 성의 다른 방에 비해 벽이 얇았을 테고, 따라서 분명히 단열에 문제가 있었을 것이다. (한겨울을 외풍 있는 집에서 나다 보니 자연히 단열에 관심이 갈 수밖에 없다.)

이 배설 공간은 완곡어법의 작용으로 '가드로브'(garderobe), 즉 옷 갈아입는 방이라 불렸는데, 큰 성을 지을 때는 아예 가드로브 타워, 즉 화장실 탑을 따로 설계하는 경우도 있었다. 1350년에 세워진 영국 랭리(Langley) 성은 그 단적인 예로 나선형 계단을 따라 한 층에 네 개씩 무려 열두 개의 화장실이 도열해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변기는 성벽의 일부로 밑이 뚫려있어, 배설물이 배변구를 통해 자유낙하해 곧바로 성 아래 해자(垓字)에 떨어졌고, 해자가 없는 경우에는 미리 파둔 구덩이나 받쳐놓은 통에 쌓이게 되어 있었다. 쉽게 말해 해자에 고인 물은 똥물이라는 얘기고, 해자의 방어적 기능은 단순한 연못이 아닌 농축된 똥물을 건너는 어려움과 직결된다는 얘기다. 화장실 구조가 이쯤 되면 모르긴 몰라도 겨울 아침 볼일 보는 게 여간 고역이 아니었을 것이다. 바람이 숭숭 새는 얇은 돌벽, 얼어붙은 돌변기, 무엇보다 배변구를 타고 불어닥치는 살을 에는 상승기류... 상상만 해도 치질 걸릴 것 같은 풍경이다.

낙하한 배설물은 이처럼 해자의 수질을 떨어뜨려 천연 방어선을 형성하기도 했고, 또 빗물에 씻겨 내려갈 수도 있었다. 하지만 성벽 밑에 고스란히 쌓인 경우에는 똥 치우는 게 여간 대공사가 아니어서, 헝그리 정신으로 무장한 이들에게 꽤나 높은 보수를 보장하는 일거리였다고 한다. 1281년 뉴게이트 감옥에서는 똥 구덩이를 치우기 위해 열세 명의 장정이 들러붙어 닷새 동안 꼬박 작업을 하고 평상시 세 배에 해당하는 일당을 받아갔다는 기록이 있다.

몇 년씩 묵은 똥 무덤을 치우는 것도 용기와 결단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었겠지만, 똥통을 타고 성안으로 침투하는 것은 이보다 몇 배 더한 용기와 결단이 필요한 일이었을 게다. 아니면 더럽게 인정머리 없는 지휘관을 만난 죄로 감내해야 했던 형극이었거나. 가드로브의 긴 배변구가 침투로로 사용된 것은 리처드 사자왕 소유의 겔라르(Gaillard) 성에서 실제 있었던 일로, 이 똥오줌 안 가리는 침입자들을 막기 위해 이후 변기 밑에 쇠창살을 치는 성들이 생겨났다고 한다.

종이 값이 금값이던 시절인지라 용변 후에는 주로 이끼나 나뭇잎이 휴지 대용으로 사용됐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혹자는 휴지나 그 비슷한 것이 아예 필요 없는 시스템이 존재했다는 주장을 펴기도 한다. 즉 뒤처리는 왼손으로 하고 식사는 오른 손으로 하는 '근대적' 의미의 정교한 분업이 이루어졌다는 설이 있는데, 믿거나 말거나.

줄곧 매스꺼운 말만 했으니 좀 향긋한 얘기로 마무리를 해보자. 성 입구와 해자 주변엔 똥 냄새가 진동했을지 몰라도, 막상 화장실 내부는 그렇게 험악한 공간이 아니었던 것 같다. 바닥에 향기로운 꽃들이 뿌려져 있었다고 하니 말이다. 꽃 장식과 쇠창살 쳐진 배변구... 문득 군가를 개사해 부르던 옛 노래 한 소절이 생각난다. "장미꽃 만발한 아크로폴리스, 쇠창살 둘러친 면학의 도서관..." 아, 꽃과 창살의 관계는 예로부터 정녕 묘하고도 묘한 것이었나 보다.

끝으로 한마디. 토마스 말로리의 <아서 왕의 죽음>을 보면 란슬롯이 은거한 벤윅 성을 포위한 가웨인이 소득 없이 반년을 보낸 후 참다못해 성문 앞에 와서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발광하는 장면이 있다. 예전에는 참 성질도 더럽다 했는데, 지금 다시 생각하니 조석으로 똥 떨어지는 소리 들으며 똥 냄새 나는 해자 둘레에 진을 치고 반년을 보냈다면, 가웨인이 아니라 나라도 기분이 똥 같았을 테고, 따라서 이 정도 꼭지가 돌아가는 건 지극히 정상적인 반응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어쩌다 보니 똥 얘기가 너무 길어졌다.

자, 이제 화장실이 어디 있는지 알아두었으니 본격적인 중세이야기로 들어가 보자.

다음 이야기는 <소피 마르소와 멜 깁슨>.

<김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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