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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이야기 6] 12세기 최고의 스캔들 (완결편)

작성자
  김현진
이메일
작성일자
2004-12-08
조회
5518


♡사랑의 길, 구원의 길, 여자의 길♥

1132년 샹빠뉴. 트루아 근교 빠라끌레뜨(Paraclete) 수녀원. 인적 없는 밤 촛불 켜진 창가에 한 수녀가 앉아있다. 깊이 파인 세파와 고행의 흔적에도 젊음이 채 가시지 않은 얼굴. 시원스런 이마, 곧은 콧날, 굳게 다문 입술이 범접할 수 없이 고고해 보이건만, 창밖 먼 곳을 향한 두 눈동자만은 지금 이 순간 꿈꾸듯 젖어있다. 다름 아닌 원장수녀다. 어스름 불빛 아래 수녀의 무릎에 필사본 한 권이 놓여 있다. 쌩 질다스 드 뤼(St. Gildas de Rhuys) 수도원장이 쓴 최신 베스트셀러 『내 불행의 역사』다. 원장수녀가 마지막으로 수도원장, 아니 남편 아벨라르의 손을 잡고 남편을 남편이라 불러본지도 어언 13년이 흘렀다. 결코 짧지 않은 13년이었다. 남성을 잃고 세상을 버린 그의 손에 이끌려 열아홉 꽃다운 나이에 원치 않은 수녀의 베일을 사랑의 이름으로 쓴 후, 영혼을 위해 기도하면서도 가슴으로는 한 남자만 품고 살아온 세월. 내내 참았던 그 무엇이 눈물이 되어 엘로이즈의 뺨을 타고 흐른다.

"그녀의 주인, 아니 그녀의 아버지, 남편, 아니 오라버니에게 그의 하녀, 아니 그의 딸, 아내, 아니 누이동생이. 아벨라르에게 엘로이즈가." 열흘 전 쓴 편지는 이렇게 시작할 수밖에 없었다. 모든 것이면서 아무 것도 아닌 남자. 엘로이즈에게 아벨라르는 무엇인가.

1132년 브레따뉴. 쌩 질다스 드 뤼. 아벨라르는 벌써 8년째 수도원장직을 맡고 있다. 돌이켜 보면 13년전 사건은 그에게 재앙이라기보다 축복이었다. 오만과 욕정의 죄값을 육신이 잘리는 고통과 그보다 몇 배 더한 수치심으로 치르고 도망치듯 쌩 드니(St Denis) 수도원에 몸을 숨긴 후 질시와 핍박 속에 프랑스 각지를 떠돌다 한 때 영영 그리스도의 땅을 등질 생각까지 했었다. 하지만 하느님의 은총으로 다시 바로 설 수 있게 된 지금 그의 마음은 더할 나위 없이 자유롭고 평온하다. 지난 십수년간 파란만장한 삶의 굴곡을 아벨라르는 『내 불행의 역사』란 자서전에 담았다. 요즘 그 책이 세간의 화제거리다. 필경사 말로는 필사본을 만들기 무섭게 동이 난단다. 그럴 법도 하지. 내가 누구던가. 본당 복도 로마네스크 기둥 사이로 황망히 멀어져가는 수도원장의 뒷모습이 오래전 쁘띠뽕을 활보하던 변증법의 귀재, 오만한 수퍼스타의 그것과 닮아있다.

몇 년 전이었을까. 아벨라르는 아르장떼이(Argenteuil) 수도원에서 수녀들이 내몰리면서 갈 곳 잃은 엘로이즈에게 자신이 세운 빠라끌레뜨를 내어준 적이 있다. 사람들은 그가 아직 과거의 죄악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했지만, 다 허튼 소리. 죄에 찌든 저주스런 물건이 떨어져나간 지금 그는 육욕의 죄를 지으려 해도 지을 수 없다. 엘로이즈를 도와준 것은 남편이나 연인으로서가 아니었다. 아벨라르에게 엘로이즈는 "그리스도를 믿는 아끼고 사랑하는 누이"요 "그리스도의 신부"일 뿐이다.

아벨라르는 변했지만 엘로이즈는 변하지 않았다. 엘로이즈는 불안한 마음으로 편지를 쓴다. 『내 불행의 역사』에서는 그에 대한 아벨라르의 애정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왜일까. 그는 아벨라르의 사랑을 확인하려 한다. 아니 자신의 고행과 희생이 헛되지 않았음을 다짐받고 싶다.

"하실 수 있다면 제게 한 마디만 해주세요. 당신 혼자의 결정에 따라 우리가 종교에 귀의한 후 제가 이렇게 방치되고 잊혀지는 이유가 무엇인가요. 여기 오셔서는 힘이 될 말 한마디 건네지 않으시고, 떠나신 후로는 위로의 편지 한통 쓰지 않으신 이유가 무엇인가요. 하실 수 있다면 제발 말씀해주세요. 아니면 제가 생각하고 또 세상이 진정 의심하는 바를 당신께 말씀드리겠습니다. 당신을 제게 메어둔 것은 욕망이지 애정이 아니었고, 육욕의 불길이지 사랑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욕망이 잦아들자 전에 보이던 감정의 표현마저 사라져버린 것입니다."

그러나 아벨라르의 답장은 사뭇 사무적이다. 그는 엘로이즈를 이해할 수 없다. 자신이 개심했으니 엘로이즈 또한 개심하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고, 도움이 필요하다면 그의 도움을 구할 일이 아니라 기도로써 하느님의 도움을 구할 일이다.

엘로이즈는 또 편지를 쓴다. 이제 가슴 속 켜켜이 쌓인 한이 감정의 급류를 타고 걷잡을 수 없이 쏟아져 나온다. 그는 하느님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아벨라르를 사랑해서 수녀가 된 것이다. 세상 사람들은 그의 신앙심을 칭송하지만 정작 그를 지탱하는 것은 신앙심이 아니라 한 남자에 대한 모질고 질긴 애정의 끈이다.

"우리가 나누었던 연인의 기쁨은 지나치게 달콤한 것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불쾌해할 수도, 그 생각을 떨쳐버릴 수도 없으니 말입니다. 어디를 향하건 그 기쁨은 항상 제 눈앞에 있어 깨어있는 동경과 잠 못 들게 하는 환상을 불러일으킵니다. 우리의 기도가 더욱 순수해야하는 성체성사 중에도 그 기쁨에 대한 음란한 상상이 제 불행한 영혼을 붙들어 매어 제 생각을 기도 대신 색정에 머무르게 합니다. 지은 죄로 인해 신음해야함에도 제가 잃어버린 것들 때문에 한숨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함께 한 모든 일, 시간, 장소가 제 마음 속에 당신 모습과 함께 아로새겨져 저는 그것들을 통해 다시 한번 당신과 살아갑니다."

아! 이 사랑의 무게, 이 죄의 무게, 이 기막힌 비밀의 무게를 어떻게 홀로 지고 살았을까.

아벨라르는 다시 장문의 답장을 쓴다. 그에게 과거는 죄와 벌로 얼룩진 고통스런 기억일 뿐 이제 그리움은 남아있지 않다. 따라서 그리스도를 사랑하라는 '정답'을 일러줄 밖에 엘로이즈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없다.

"당신을 진정으로 사랑하시는 이는 내가 아니라 주님이시오. 내 사랑은 우리 두 사람을 죄짓게 하였으니 사랑이 아니라 욕정이라 불려야 마땅한 것이오. … 당신은 내가 당신 때문에 고통받았다고 말하오. … 하지만 주님은 당신을 대신해 자유 의지로 진정 당신의 구원을 위해 고통 받으셨소."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더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엘로이즈의 다음 편지에는 그 모든 인간적 고뇌의 흔적이 사라지고 없다. 아벨라르의 바람대로 수녀원장으로서 수도원장에게 영적인 자문을 구할 따름이다. 마침내 영혼의 평화를 찾은 것인가. 아니면 비애와 좌절의 끝자락에서 아예 마음의 문을 닫아버린 것인가.

1142년 아벨라르가 세상을 떠난 후 엘로이즈는 21년을 더 살았다. 그 사이 빠라끌레뜨는 프랑스에서 손꼽히는 수녀원 '프랜차이즈'로 성장했고, 엘로이즈는 로마교회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수녀 중 한 사람이 되었다. 그는 죽어서 결국 아벨라르 곁에 묻혔다. 그들의 유해는 그 후 몇 번의 이장을 거쳐 빠리의 뻬르 라셰즈(Père Lachaise) 묘지에 안장되어있다. 대리석관 위에 두 손을 모으고 나란히 누워있는 그들의 전신상은 지금도 철마다 관광객, 아니 순례객이 두고 간 꽃들로 향기롭다. 존 단의 시구처럼 그들은 그렇게 사랑의 성인이 되었다.

"잘 만들어진 항아리는
반 에이커 되는 무덤만큼 위인의 유해에 어울리니
이 사랑의 찬가 앞에 모두
우리가 사랑으로 성인되었음을 인정하리라."

아니 사랑의 성인이 된 것은 엘로이즈 혼자였는지도 모른다. 아벨라르는 1135년 몽 쌩 즈느비에브의 강단에 복귀해 보란 듯 재기에 성공한다. 경탄에 마지않는 미래의 석학들 앞에서 다시금 우상으로 군림하고, 일생의 역작들을 잇달아 집필하여 학자로서도 전성기를 누린다. 물론 그의 독설과 독선은 또 다시 증오를 낳았으니, 1140년 로마교회를 상대로 정파 최고수 베르나르 드 끌레르보(Bernard de Clairvaux)와 벌인 희대의 한판승부에서 패함으로써 그의 저서는 불살라지고 그는 학계와 연예계에서 영영 강퇴당하고 만다. 하지만 그는 패배의 순간에도 당당하고 위엄 있었다. 엘로이즈에게 수녀로 살 것을 강요했지만, 정작 그 자신은 수사로 죽지 않았다. 그는 대학자로 죽었고, 비판하는 지성의 상징으로 죽었고, 12세기의 기린아로 죽었고, 무엇보다 투사로서 죽었다. 하지만 그 동안 엘로이즈는 어디서 무엇을 했는가. 아니 그가 무엇을 할 수 있었을까.

"아아! 누가 내 사랑에 상처 입었는가.
내 한숨이 어떤 상선을 침몰시켰는가.
누가 내 눈물이 자신의 땅을 범람했다 말하는가.
내 시린 마음이 언제 오는 봄을 막은 적 있었던가."

엘로이즈는 하느님이, 아니 아벨라르가 자상하게 만들어준 수녀원 담 안으로 소리 없이 사라져 이제 자유연애의 선구자로, 자멸적인 정념의 화신으로, 그리고 아벨라르의 연인으로 기억될 뿐이다.

우리에게 엘로이즈는 누구인가. 일찍이 진리의 날개 위에 비상을 꿈꾸었으나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안주해야했고, 그 사랑에 모든 것을 내던졌으나 끝내 구원이라는 이름으로 버림받아야했던 삶. 한때 그는 그것이 사랑의 길이라 믿었다. 아니 아벨라르는 그것이 구원의 길이라고 했었지. 하지만 그가 걸어야했던 것은 결국 여자의 길이 아니었는가. 스승처럼 현명하고 싶었고, 사랑하는 사람 못지않게 당당하고 싶었고, 모든 것을 떠나 그저 그 자신이고 싶었지만, 두 눈 가득 살갑게 세상을 넣고도 구원의 담장 저편에 산 채로 묻히는 것 외에 그 어떤 축복도 허락되지 않았던 여자. 담장 밖 세상을 향해 던진 가장 솔직한 고해성사마저 나약한 인간 본성의 알레고리가 되어 근엄한 설교의 추를 달고 끝없이 가라앉는 것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을 엘로이즈. 그에게 과연 목소리가 있었을까. 우리가 듣는 그 목소리가 과연 그의 것이었을까. 그의 삶을 윤색하고 편집한 자상하고 두려운 손이 그 목소리를 온전히 내버려두었을까. 그 손은 대체 어떤 손이었을까. 블레이크의 호랑이를 빚은 손처럼 전제적이지만 거역할 수 없는 어떤 "두려운" 힘이었을까. 아니면…

"Cafe Chair Revolutionist
너희들의 손이 너무도 희구나."

다음 이야기는 <장 르 봉의 기사도>

<김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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