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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SunHee Gertz교수와의 간담회 안내

작성자

박찬길

작성일자

2008-12-28

이메일

ckpark@ewha.ac.kr

조회

8561


동학여러분께 알립니다. 미국 Clark대학 영문과 교수 SunHee Gertz교수(중세영문학전공)가 이화여대 영문과의 국제겨울학교에 참석차 방한합니다. 마침 좀 여유있는 일정으로 오시게 되어 영미연의 동학들과의 비공식적인 간담회를 가지려고 합니다. 갈수록 강화되고 있는 교수평가제도와 구조조정의 압력이 가중되고 있는 현실을 감안하여 미국 대학 쪽의 얘기를 들어보자는 것이 간담회의 취지입니다.

광운대에서는 인문대학이 이미 없어졌고, 동국대의 전공별 성과비교제도, 이화여대 단과대학 역량진단시스템 등과 같은 야만적인 제도들이 알게 모르게 도입되고 있으며, 경원대, 충남대에서도 대학구조조정과 관련하여 비슷한 제도의 도입을 검토하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그들이 쓰는 용어와 이유는 조금씩 다르지만, 대학을 기업체처럼 경영하고, 그 구성원 특히 인문계열의 학생과 교수들을 구조조정으로 대상으로 삼는 태도에 있어서는 큰 차이가 없다고 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그들이 정한 그 모든 야만적인 제도들을 다 “미국”식이라고 우기면서 정당화한다는 겁니다. 우리의 상식으로도 그러한 주장의 대부분은 말이 안 된다는 것을 알지만, 정말 그것들이 어디까지 진짜 “미국식”인 건지, 어디부터 사기인지, 또 그들의 “개혁” 속에 진짜 미국적인 것이 들어있다면 그것들에 미국의 인문학 연구자들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 그런 얘기들을 생생하게 들어보자는 것이 이번 간담회의 취지입니다.

좀 더 효과적인 대화를 위하여 의제를 미리 좀 정리해서 미리 제시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그것은 그 문제들에 대해 Gertz교수가 어떤 정답을 제시해주기를 바라서가 아니라, 우리 스스로 각자의 일터에서 벌여나가야 할 싸움의 의제가 어떤 것인지를 정리해보는 것이 필요하겠기 때문입니다. 제가 정리해본 문제들은 대개 다음과 같은 것들입니다.

1. 한국에서는 한 사립대학의 총장이 스스로 CEO총장을 자임하면서 대학의 기업화를 주도해왔고, 이것은 현재까지 10년 넘게 대학 리더쉽의 모델처럼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이러한 현상은 소위 진보적인 정권이었던 과거 10년간에도 마찬가지였고, 특히 CEO 대통령을 자임하는 현 대통령의 취임이후 더욱 노골적으로, 더욱 심화된 형태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미국에서도 하버드대학의 Laurence Summers총장이 몇 가지 사건으로 구설수에 오르고 결국 사임한 것으로 압니다. 미국의 인문학 교수들은 이러한 대학의 기업화 문제를 어떻게 보고 있습니까?

2. 대학의 기업화는 대학의 리더쉽 뿐아니라 그 구성원 특히 대학교수들을 회사에 고용된 노동자로 취급하는 경향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기업과 마찬가지로 대학교수의 고용안정성을 기업의 “비용”으로만 간주하고, 대학교수의 고용안정성을 약화시키는 것을 그 자체로 미덕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최초고용조건을 열악하게 하고, 승진조건을 강화하며, 정년보장조건을 최대한 까다롭게 합니다. 미국대학교수의 고용안정성은 실제로 어떠하며, 특히 인문계 교수들의 경우는 어떻습니까? 가령 미국의 대학의 100위 안에 드는 대학의 정년보장교수가 되기 위해서는 현실적으로 어떤 정도의 경력이 필요합니까?

3. 한국의 시간강사에 해당하는 미국의 Tenured Professor가 되기 이전의 젊은 박사들의 고용조건과 연구여건은 어떠합니까? 그들의 고용안정성은 어느 정도입니까? 영문학의 경우, 연봉의 수준, work load(의무강의시간, 행정업무), tenure를 받기 위해 필요한 연구성과 등등이 어떻게 됩니까?

4. Tenure를 받은 교수의 권한과 의무는 구체적으로 어떠합니까? 의무강의시간, 행정업무, 연구의무 등등. 그리고 그들의 직무수행을 어떻게 평가합니까? 가령 불성실한 tenured professor를 어떻게 “처리”합니까?

5. Summers총장을 이어받은 Harvard대학의 Drew총장은 그녀의 취임사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등교육에 대한 미국의 불안은 비용 그 너머에 있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대학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대학은 어떤 곳인지에 대한 이해와 동의가 현저히 부족하다는 데 있다. 대학의 의미에 혼란을 느낀 대중은 대학에 더 많은 ‘책임성(accountability)’을 요구하기에 이르렀다.우리는 대학이 무엇을 위한 책임성을 갖는지를 정의하는 데서 이니셔티브를 쥐어야 한다. 우리는 대학생활이 창조하는 ‘부가가치’를 평가한다는 명목으로 졸업률, 대학원 입학 자료, 표준화된 시험 점수, 연구비, 교수 논문 게재율 등을 보고하지만 이런 조치들로는 성과 자체는 물론이고 대학이 가진 포부를 파악해낼 수 없다. 대학의 본질은 과거와 미래에 대해 독보적인 책임성을 갖는다는 데 있지, 오직 현재 혹은 현재 위주로 국한된 것은 아니다. 대학은 다음 분기에 나타나는 결과나 졸업 때까지 학생들이 어떤 모습을 갖느냐와는 무관하다. 대학은 일생을 형성하고 수천년의 유산을 전수하며 미래를 결정하는 배움에 관한 곳이다. 대학은 때로는 대중의 당장의 우려나 요구와 충돌하더라도, 뒤를 돌아보고 앞을 내다보면서 가야 한다.”

(이것은 신문기사의 요약이고, 원문은 다음과 같습니다.

But American anxiety about higher education is about more than just cost. The deeper problem is a widespread lack of understanding and agreement about what universities ought to do and be. Universities are curious institutions with varied purposes that they have neither clearly articulated nor adequately justified. Resulting public confusion, at a time when higher education has come to seem an indispensable social resource, has produced a torrent of demands for greater “accountability” from colleges and universities.

Universities are indeed accountable. But we in higher education need to seize the initiative in defining what we are accountable for. We are asked to report graduation rates, graduate-school admission statistics, scores on standardized tests intended to assess the “value added” of years in college, research dollars, numbers of faculty publications. But such measures cannot themselves capture the achievements, let alone the aspirations, of universities. Many of these metrics are important to know, and they shed light on particular parts of our undertaking. But our purposes are far more ambitious and our accountability thus far more difficult to explain.

Let me venture a definition. The es­sence of a university is that it is unique­ly accountable to the past and to the future—not simply, or even primarily, to the present. A university is not about results in the next quarter; it is not even about who a student has become by graduation. It is about learning that molds a lifetime, learning that transmits the heritage of millennia, learning that shapes the future. A university looks both backwards and forwards in ways that must—and even ought to—conflict with a public’s immediate concerns and demands. Universities make commitments to the timeless, and these investments have yields we cannot predict and often cannot measure. Universities are stewards of living tradition—in Widener and Houghton and our 88 other libraries, in the Fogg and the Peabody, in our departments of classics, of history, and of literature. We are uncomfortable with efforts to justify these endeavors by defining them as instrumental, as measurably useful to particular contemporary needs. Instead we pursue them in part “for their own sake,” because they define what has, over centuries, made us human, not because they can enhance our global competitiveness.

We pursue them because they offer us as individuals and as societies a depth and breadth of vision we cannot find in the inevitably myopic present. We pursue them too because just as we need food and shelter to survive, just as we need jobs and seek education to better our lot, so too we as human beings search for meaning. We strive to understand who we are, where we came from, where we are going, and why. For many people, the four years of undergraduate life offer the only interlude permitted for unfettered exploration of such fundamental questions. But the search for meaning is a never-ending quest that is always interpreting, always interrupting and redefining the status quo, always looking, never content with what is found. An answer simply yields the next question. This is in fact true of all learning, of the natural and social sciences as well as the humanities, and thus of the very core of what universities are about.)

한국의 대학은 현재 Drew총장이 주장하는 바와 정확히 반대의 방향으로 가고 있습니다. 국가의 연구비를 지원하는 기관이 교수 개인과 학교 전체의 성과를 측정하는 유일한 기준을 정하고, 그것은 곧바로 대학의 구조조정(인문대학에서 독문과를 없앤다든지, 자연대 물리학과를 의대의 물리치료학과와 통합한다든지(!), 전체 대학에서 인문대학을 아예 없앤다든지)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의 대학의 실상은 이러한 Drew총장의 이상에 얼마나 부합한다고 생각합니까? 사실상, 대부분의 대학에서는 그와 반대되는 경향이 만연해 있기 때문에 그렇게 방향설정을 새롭게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까?

6. 한국에서 교수평가의 기준을 국가기관이 정하고 그것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교수들의 업적에 대한 다른 교수들의 주관적인 평가가 사회적인 신뢰를 얻지 못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수들을 신규임용할 때나, 기존 교수들의 승진평가에서도 정량적 평가에 의존하거나 때로는 지나치게 정치적 결정에 의존하기도 합니다. 미국에서도 tenure심사 같은 중요한 결정에 있어서 동료교수들의 “주관적” 평가가 어떻게 객관적으로 신뢰성을 획득하는지, 다시 말해서 동료교수들의 “정치적” 결정을 어떻게 배제할 수 있는지, 아니면, 그쪽에서도 그러한 정치적 결정이 불가피하다고 보는 것인지 솔직하게 말해줄 수 있습니까?

7. 한국의 대학교수는 “일주일에 6시간에서 9시간만 일하고 일년에 8개월만 일하며, 그러면서도 65세까지 고용을 보장”받는 특급 노동자일 뿐만 아니라, 운만 좋으면 하루아침에 국회의원이나 장관으로 발탁될 수 있는 사회적 특권층이라는 식으로 인식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선망의 대상이면서 질시의 대상이기도 한데, 바로 그러한 인식 때문에 무조건 교수들의 work load는 강화할수록 좋고, 고용안정성은 약화시키면 좋다는 식의 생각들이 널리 퍼져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이러한 생각에 바탕을 둔 “개혁”(주로 강화된 교수평가제도를 기반으로 한)으로 인해, 특히 인문대교수들은 정상적인 연구가 갈수록 어려워지는 형편입니다. 미국의 인문학 교수들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어떻습니까? 미국 인문학연구자들의 안정된 연구여건을 방해하는 요소가 있다면 그것은 무엇이며 한국의 어려움과 어떻게 다르다고 생각합니까?

8. 한국 대학개혁의 또 다른 화두는 국제화입니다. 한국의 유수한 대학의 목표는 오로지 외국의 대학평가에서 높은 랭킹을 차지하는 것입니다. 미국에서는 그러한 대학의 ranking을 어떻게 받아들이며, 개별적인 교수들은 그것을 어떻게 생각합니까? 그와 관련해서 개별교수들이 느끼는 압력은 어떠한 것입니까?

9. 한국 대학의 국제화노력과 관련하여 특별하게 강조되는 것은 “영어교육”입니다. 한국대학의 수준향상을 위해 필요한 것이 영어강의의 확대와 외국인교수(영미권)의 확충이라고 강조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요컨대 한국대학의 교육환경(언어에 있어서만)을 영어권의 대학과 똑같이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지요. 저는 개인적으로 그 말이 한 5% 정도만 맞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홍콩의 대학과, 싱가폴의 대학, 남아프리카대학들이 모두 세계일류입니까? 그러면 불란서와 독일, 스페인의 대학이 그러면 영어가 안통해서 2류입니까? 이점에 있어서 미국대학교수들은 어떤 생각을 가지고 있습니까? 미국의 대학이 추구하는 국제화란 어떤 것이며 이것이 한국대학의 국제화와는 어떻게 다르다고 보십니까?

10. 영미권의 대학에서도 영문학을 비롯한 인문학이 전면적으로 위기적 상황을 맞고있다는 분석이 많습니다. 인문학이 대학사회에서 전반적으로 주변화되는 상황에 대처하는 미국 인문학교수들의 대응전략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그리고 미국대학교수들이 외부압력(국가기관)이나 내부적 압력(총장 등 집행부)에 저항하는 수단은 무엇입니까? 구체적으로 말해줄 수 있습니까? 가령 Howard Zinn이나 Noam Chomsky같은 학자가 survive할 수 있는 조건은 무엇입니까?

저는 대강 이런 정도의 질문거리를 가지고 Gertz교수와 예비적인 담화를 나누려고 합니다.(어이쿠, 이걸 언제 번역하지?) 얼마나 알맹이있는 대답을 해줄지는 저도 솔직히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설사 그쪽의 답변이 실망스러운 것이라 하더라도 이런 질문을 가지고 우리끼리 얘기를 나눠보는 것도 무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라는 생각입니다. 여러 동학들께서도 잠깐 시간을 내서 여기 나오지 않은 생각들을 답글의 형태로 제시해주시거나 그 자리에 오셔서 제시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이런 생각들에 대한 문제제기도 좋구요. 그리고, 선생님들의 학교에서 진행되는 여러 가지 구체적인 움직임과 관련된 생생한 문제제기면 더 좋을 것 같습니다.

시간과 장소를 다시 한번 알려드립니다.

1월 3일(토) 오후 3시 이화여대 인문관 205호

여러 동학들의 많은 참여를 부탁드립니다.

박찬길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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