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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긴 하루

작성자

전인한

작성일자

2008-06-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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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10032


6월 28일
오전 7시 반
전날 서울을 쏘다니면서 일을 처리해서인지 일찍 잤고 덕분인지 일찍 깨어남.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새 나라의 어린이가 아니라 더 이상 밤 늦게까지 버티지 못해서 일찍 잠이 들고 그래서 일찍 깨는 노인성 조기기상의 징후라고 판단하니 기분이 썩 좋지는 못함.
그래도 27일 영미연 사무실 주인 아주머니와의 사무실 임대계약 연장에 대한 담판이 비교적 만족스럽게 결론이 나서 다행이라고 생각함.

오전 10시 15분
아침 먹고 신문 보고 이것저것 뒤적거리다 11시 반에 숙대에서 있을 예정인 영미연 운영위원회 시간에 맞추기 위해 집에서 출발.

오전 11시 35분
숙대에 있는 운영위원장 연구실에 도착. 숙대 정문 횡단보도에서 윤모 선생님과 정모 선생과 조우 같이 걸어감. 조금 있다 도착한 황모 선생과 함께 다섯 명이서 일본차를 마시며 환담함. 아무도 일본어를 읽지 못해서 맛은 좋은데 무슨 차인지는 모름. 해외 출장으로 두 명, 대학원 MT로 한 명, 촛불시위로 피곤해서 한 명 도합 네 명의 운영위원이 참석하지 못함.
방학 시작하자마자 교수를 해외출장 내보내는 요즘 대학보직의 업무 압박이 너무 심하다는 생각, 그리고 나에게 다가오는 보직의 음험한 그림자를 생각하면서 우울해짐. 그러나 얼마 전에 보직 이야기가 나오자 학교에서 향후 어떠한 보직이라도 맡을 의사가 추호도 없음을 정나미 딱 떨어지게 이야기한 효과가 있을 것이라 기대함.

오전 11시 45분
운영위원회를 시작함. 일상적인 여러 업무를 처리함.
<교양과 행복>사의 동영상 제작에 참여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아예 영미연에서 영문학 동영상 강의를 자체 제작하여 공급하는 것을 추진해보기로 함.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함. 그러나 일 하나 늘어남.
영문학 작품에 대한 주해본 출판에 대한 기획을 서두르기로 함. 일 둘 늘어남.
모 선생님이 게시판에서 제의한 '사회적 의제로서의 영어'에 대한 프로젝트를 추진하기로 함. 학진에 사업신청을 해서 재정지원을 받으면서 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안인 것은 같은데 지원신청에 상관없이 추진하기로 함. 일 셋 늘어남.
영미연회원들이 영미연사업에 쏟을 수 있는 절대시간과 영미연에 대한 배타적 충성도가 많이 줄어든 현 시점에서 사업진행의 정당성에 대한 확신과 사업진행이 가져올 피로에 대한 확신이 부딪침. 영미연이 두 차례의 번역점검사업과 길잡이 집필의 피로를 아직도 완전히 극복했다고 판단하지 않기에 마음이 무거워짐.
자유게시판에서 논란이 된 {안과밖} 평가회는 {영미문학연구}의 평가회와 합쳐 7월에 하기로 함. 그런데 이미 출판이 되어서 고칠 기회가 없는 글을 평가하는 것의 실제적인 효율성에 대한 반론이 개진됨. 나중에 더 좋은 글을 쓰기위한 평가에 무슨 문제가 있을 수 있는가라는 생각이었는데 나중은 나중이고 당장 필자와 편집진에 대한 상처를 고려해야 한다는 의견이 개진됨. 사람은 태어나고 난 다음에 성형수술이라도 하는데 왜 글은 사후수정의 기회가 없을까 궁금해짐. 평가회를 되살리긴 살리되 이전의 장점을 살리고 단점을 보완하는 방식에 대해서 고민해보기로 함.

오후 12시 50분
숙대 앞 간이일식집에서 운영위원들과 함께 점심식사.
언제나 느끼는 것이지만 여대 앞의 음식은 맛있음. 첫 콜로퀴엄이 제 시간에 끝날 리가 만무하다는 예상 하에 매우 배불리 먹어둠.

오후 2시
영미연 1회 콜로퀴엄에 참석.
자유게시판에서 말이 많았던 행사라 내심 참석인원이 적을까 걱정함. 다행히 많은 인원이 참석함. 26명이 둘러앉을 수 있는 라운드테이블이 거의 다 차고 뒤 좌석에까지 7-8여명이 앉음. 영미연 자체 참가인원도 연 20명 정도 되었으니 참가인원으로는 성공이라고 할 수 있겠음.
박 선생님의 발제는 근대적 소설이 리얼리즘, 모더니즘, 포스트모더니즘을 거치면서 형식적 실험의 한계에 부딪혀버린 내적 위기와 소설이 대표적인 문화양식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했다는 외적위기로 인한 '소설의 죽음'에 대한 담론을 다룬 1부와 한국에서의 영문과가 '영'의 문제와 '문'의 위기에 어떻게 대처해야하는가에 대한 고민을 다룬 2부로 이루어짐.
참석인원이 많다보니 처음에는 사람들이 긴장했다는 느낌을 가짐. 자연스럽게 이야기가 오고가는 것이 좋은데 쭈볏쭈볏하고 말들이 길어지면서 종종 두서가 없어지는 문제가 발생함. 한 두 시간쯤 지나가자 편안해져서인지 난상토론의 분위기가 살아남. 여섯 시까지 했으면 더 많은 이야기가 오고갈 수 있었는데 아쉽게도 5시 40분쯤 종료됨. 주최측 중 누군가가 분명히 배가 많이 고팠음이 분명하다고 의심함.
첫 술에 배부를 수는 없지만 다음에는 좀 더 많은 사람들이 좀 더 많은 이야기를 좀 더 효과적으로 그리고 좀 더 편안하게 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함.

오후 6시
숙대 앞 <고구려>라는 집에서 쭈꾸미삼겹살 볶음과 소주 맥주를 마심. 또 한 행사 끝냈다는 안도감에 기분이 좋아지면서 오늘은 원없이 마셔야겠다고 작정함. 그런데 그 기대가 무너져버림.

오후 7시 반
<고구려>에서 나와 2차로 옆에 있는 <JJ>라는 맥주집에서 입가심을 하기로 함. 그런데 이럴 것이 아니라 시청 앞에 가서 머릿수를 더해 주어야한다는 의견이 강력히 개진됨. 나는 이미 발동이 걸렸는데 다시 술이 깨야한다는 상황이 싫어짐. 결국 딱 한잔만 더 하고 시청 앞으로 가기로 함. 한 잔을 매우 크고 길게 마시기로 작정함. 3000cc 피쳐 두 개가 금방 동이 나버림. 더 먹자는 의견이 개진되었을 때 나름 기뻤는데 가볍게 묵살됨. 8시 반에 일어나 우비 우산 등을 사서 지하철을 타고 시청으로 향함.

오후 9시
시청 광장에 도착. 6월 10일 이후에 가장 많은 인파가 나왔다는데 어 별로 안 많아 보였음. 경찰추산이 오늘은 그리 터무니없이 틀려 보이지는 않음. 코리아나 호텔 앞에서 행진이 막혀 구시청건물 옆 도로에 11명이 앉음.
비가 본격적으로 내려 모두 우의를 입기 시작함. 똑같은 우의를 입었는데 4명의 대학원생이 우의를 입은 모습과 선생들이 우의를 입은 모습이 영 다름. 한쪽은 발랄한 모습, 다른 한쪽은 1.4후퇴때 흥남부두를 메운 불쌍한 피난민의 모습. '촛불소녀'로 자처하던 정모샘도 대학원생 옆에서는 '촛불부인' 정도로밖에는 안 보임. 역시 세월은 세월임.
10시 반쯤 사람들이 일어나기 시작해 우리도 일어남. 이전에 나왔던 촛불과 비교하면 이제 놀이라는 분위기는 사라진 것 같음. 많이 모였다는 것이 이 정도면 그리고 선전전도 만만치 않다는 점을 감안하면 그리고 현실적으로 당장 실현이 가능해 보이는 목표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까지 감안하니 이런 것이 내리막이구나라는 생각까지 듦. 술 먹다말고 보아서 그랬으면 좋겠음.

오후 11시
이전에 촛불에 나왔다가 갔던 매우 쾌적한 호프집으로 행했으나 무슨 행사가 열리고 있대서 입장하지 못함. 근처에 있는 <비어브로이>로 들어가서 맥주와 소주를 마심. 밤 12시에 온갖 튀김안주를 시키는 대학원생들의 과감성에 기가 질림. 느그들은 그렇게 먹어도 괜찮겠지만 나는 당장 고지혈증, 동맥경화, 고혈압으로 직행이다. 남자친구들이 없다는 것을 가지고 잠시 놀려먹는 것으로 위안을 삼음.
{안과밖} 평가회가 지난 2년 동안 제대로 열리지 않았다는 것을 알고 놀람. 운영위원회에서 논의되었던 그 이유 때문이었다고 함. 영미연이 더 이상 배타적 애정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현실도 확인함. 영미연에 대해 다른 이해와 애정이 존재하는 것은 분명한데 이 다름이 정도의 다름이 아니라 종류의 다름이라는 생각을 함.
콜로퀴엄의 앞으로의 개선방향에 대한 의견을 나눔.
수련회도 다시 가자는 이야기가 나옴. 이 사람들이 아주 나를 잡으려고 작정을 한다고 속으로 분개함. 무언가 연말 송년회 말고 여름에 회원들이 모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하는 것은 의의가 있다는 생각을 안 한 것은 아님. 그래도 사람 너무 부려먹으면 안 됨.
1시쯤 자리에서 일어남. 계산을 하는 카운터에 번개를 일으키는 작은 기계가 있어서 만져보았더니 뜨거웠음. 어이구 무섭네라고 했더니 주인아주머니 왈 내가 지난 6년 동안 그것 보고 무섭다고 한 두 번째 손님이라고 함. 나만의 독특함에 만족하기로 함.

6월 29일
새벽 1시
그 지점에서는 택시를 잡을 수 없다는 김모 선생의 말에도 여기에서 택시를 잡을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겠다고 장담함. 15분 동안 차 코빼기도 보지 못함. 할 수 없이 500미터쯤 걸어가 택시를 잡음. 한 5분쯤 가니 차들이 꼼짝을 못함. 시위대에 막혀 차들이 유턴을 하기 시작해서 짜증이 남. 나도 한때 막았다는 생각이 들자 기분이 묘해짐. 역시 막을 때와 막힐 때 생각은 다른 것임.
택시운전사 할아버지는 요즘 촛불은 한 번 참석에 5만원씩 주고 있다고 강력히 주장하심. 나는 왜 못 받았을까. 진짜로 준다면 월 100만원 이상씩 용돈을 벌 수 있는 좋은 기회라고 생각함.
뺑돌아서 집에 2시에야 도착함.
긴 하루가 끝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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