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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매트릭스>의 네오와 현실 <대한민국>의 노무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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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시기

작성일자

2004-0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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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25


영화 <매트릭스>의 “네오”와 현실 <대한민국>의 “노무현”

2001년 <매트릭스>가 처음 등장하였을 때, 할리웃 영화에 싫증을 느낀 전 세계의 영화 팬들은 새로운 할리웃 영화가 시작되었다고 열광하였다. 2002년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이 4강의 신화를 만들었을 때, 유럽과 남미의 대결에 싫증을 느낀 전 세계의 축구 팬들은 대한민국의 등장으로 새롭게 만들어진 월드컵 축제의 문화에 열광하였다. <매트릭스>를 보고 영화 팬들이 열광한 것은 우리가 사는 현실이 사실은 “가상현실”, 즉 “매트릭스”라는 사실을 제시하였기 때문이었다. 이와 마찬가지로 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의 4강 신화를 보고 많은 사람들이 열광한 것은 월드컵 축구의 문화가 유럽이나 남미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아시아의 자그마한 나라, <대한민국>과 더불어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수많은 나라들도 참여하는 진정한 세계의 월드컵 축제가 가능하다는 새로운 사실을 제시하였기 때문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2002년에 등장한 <매트릭스 2>는 소위 “가상현실”을 깨달은 자들의 세계인 “시온”이 등장하면서 가상현실(매트릭스)과 실제현실(시온)의 이분법이 아니라 “가상현실”에 있는 아직 깨닫지 못한 사람들뿐만 아니라 “실제현실”에 있는 이미 깨달은 순수한 사람들의 구원자, “네오”의 활약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이와 마찬가지로 2002년 후반에 등장한 대한민국 대통령 선거는 오늘날의 대한민국이라는 신식민지적 천민자본주의가 지니는 깡패들의 무대포와 자포자기 문화 속에서 민주적이고 자주적인 삶을 살아가려는 “붉은 막마”와 “노사모(혹은 민주화 세력)”가 등장하여 식민지적 자포자기의 세계에 있는 아직 깨닫지 못한 사람들 뿐만 아니라 “노사모(민주화의 세계)”에 있는 이미 깨달은 순수한 사람들의 구원자, 노무현의 활약에 초점이 맞추어졌다. 이 과정에서 평범한 프로그래머 토마스 앤더슨은 구원자 네오가 되고, 국회의원도 아닌 평범한 정치인인 노무현은 대통령이 된다.

그러나 <매트릭스 2>의 마지막 장면에서 네오는 “인류의 구원인가, 사랑하는 여인의 생명인가?”라는 선택의 기로에서 사랑하는 여인의 생명을 선택한다. 이와 마찬가지로 2002년의 선거에서 대통령이 된 노무현은 “새로운 대한민국을 만들 것인가, 자신이 사랑하는 정치적 선택을 할 것인가?”라는 선택의 기로에서 “자신이 사랑하는 정치”를 선택한다. “매트릭스”에서 벗어났거나 벗어나고자 하는 모든 구성원들은 사라지고 유일자이며 구원자인 네오만이 세상을 구원하는 세계는 또 다른 하나의 “매트릭스”를 만들 뿐이다. 이와 마찬가지로 낡은 대한민국에서 벗어났거나 벗어나고자 하는 모든 구성원들은 사라지고 유일자이며 구원자인 대통령 노무현만이 대한민국을 구원하는 정치는 또 다른 하나의 낡은 “대한민국”을 만들 뿐이다.

2003년. <매트릭스>의 영화 팬들과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든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매트릭스 3>는 “매트릭스”의 세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시온”도 또 다른 하나의 “매트릭스”일 뿐이며, 구원자이며 유일자라고 믿었던 “네오”도 또한 가짜 구원자이며 유일자인 “스미스”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대한민국 2003>은 “낡은 대한민구”의 세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노사모”도 또 다른 하나의 권력집단일 뿐이며, 구원자이며 유일자라고 믿었던 “노무현”도 또한 가짜 정치가이며 진짜 모사꾼인 “이회창”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람들은 다시 “매트릭스”는 태생적으로 “매트릭스”일 뿐이며, “대한민국”도 또한 태생적으로 한계를 지니고 있는 부패한 “대한민국”일 뿐이라고 냉소를 머금는다. 냉소가 단지 냉소로 끝나는 것이라면 문제가 아니다. 문제는 냉소주의가 “새로운 영화가 가능하겠어”나 “그래도 할리웃 영화니까 이 정도라도 보여주지”라거나 “구관이 명관”이라느니, 아니면 “그래도 옛날이 좋았다”느니 하면서 부채질하는 과거의 세계로 후퇴하고자 하는 사람들을 쫓아간다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가 정말로 영화 <매트릭스>나 현실 <대한민국>의 “모든 것을 보았느냐”하는 것이다. 우리가 실망했던 영화 <매트릭스>는 영화감독과 카메라의 시선이고, 우리가 좌절했던 현실 <대한민국>의 이야기는 현실정치와 언론의 시선이다. 따라서 우리는 영화감독과 카메라의 시선이 보여주지 않은 <매트릭스>의 틈새들, 그리고 현실정치와 언론이 보여주지 않은 <대한민국>의 틈새들을 찾아내어 보고 읽어야만 한다. 영화 <매트릭스>와 새로운 현실 <대한민국>에 흥분하고 열광한 것은 바로 나 자신이다. 따라서 보여지지 않은 틈새들을 찾아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기 위해선 흥분과 열광의 순간으로 되돌아가야만 한다. 우리의 흥분과 열광이 진정으로 우리의 가슴 속에서 우러나온 것이라면 보여지지 않은 새로운 틈새들의 이야기 또한 그곳에 있을 것이다.

그렇다. 우리는 <매트릭스>가 처음 등장했을 때, 네오라는 인물에 열광하지 않았다. 우리가 <매트릭스>에 열광한 것은 평범한 프로그래머인 토마스 앤더슨으로 하여금 스스로 “매트릭스”를 발견하게 하고 새로운 “네오”라는 이름을 지니게 만든 모피우스나 트리니티, 그리고 “매트릭스”에 저항하여 싸우는 수많은 “시온”의 전사들을 발견하였기 때문이었다. 이러한 영화 속의 수많은 인물들이 관객인 나나 당신으로 하여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도 하나의 “매트릭스”일 수도 있다는 깨달음을 제공하였다. 그래서 어떤 영화평론가는 매트릭스가 현실의 “근대 국가체제”라고 말하기도 했고, 다른 영화비평가는 매트릭스가 오늘날의 “종교”라고 말하기도 했으며, 또 다른 영화비평가는 매트릭스는 우리가 사용하는 “일상적 언어”라고 말하기도 했다.

우리가 열광한 <매트릭스>에는 모피우스와 트리니티를 비롯한 수많은 평범한 영웅들이 존재한다. 그중에서 모피우스와 트리니티는 스스로 네오가 될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프로그래머 토마스 앤더슨을 찾아 그를 “네오”라고 부른다. <매트릭스 2>와 <매트릭스 3>에는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고 길을 제시한 모피우스와 트리니티, 그리고 “시온”의 수많은 영웅적 전사들이 없다. 그들이 아주 사라지지는 않았지만, 우리의 시선은 영화감독과 카메라의 시선 때문에 오직 네오에게만 집중되어 있었다. 그 시선에 매료되어 “네오는 진정으로 구원자이며, 유일자인가?”라고 질문하면서...

그렇다. 우리는 2002년의 <대한민국>이 등장했을 때, 노무현이라는 인물에 열광하지 않았다. 우리가 <대한민국>에 열광한 것은 평범한 정치가인 노무현으로 하여금 스스로 대한민국의 가능성을 발견하게 하고, 새로운 “대통령”이라는 이름을 지니게 만든 “붉은 악마들”과 “노사모”, 그리고 “낡은 대한민국”에 저항하여 싸우는 수많은 민주주의와 통일의 전사들을 발견하였기 때문이었다. 2002년의 대한민국에 존재했던 수많은 삶의 전사들이 평범한 일상적 삶의 관객이었던 나나 당신으로 하여금 우리가 살고 있는 대한민국도 새로운 가능성의 세계라는 깨달음을 제공하였다. 그래서 어떤 사람은 대한민국이 전 지구적 “탈근대의 모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고, 다른 사람은 대한민국이 “동아시아의 중심 국가”가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으며, 또 다른 사람은 대한민국의 통일이 “인류가 지향하는 미래의 공동체”라고 말하기도 했다.

우리가 열광한 <대한민국>에는 “붉은 악마”나 “노사모”를 비롯한 수많은 평범한 영웅들이 존재한다. 그중에서 정동영이나 추미애, 혹은 유시민을 비롯하여 “붉은 악마”나 “노사모”에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스스로 대통령이 될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정치가 노무현을 찾아서 그를 대통령이라고 부른다. 그런데, 2003년의 대한민국에는 우리에게 깨달음을 주고 길을 제시한 수많은 “붉은 악마”와 “노사모”의 영웅적 전사들이 사라졌다. 물론, 그들이 진정으로 사라진 것은 아니다. 현실 정치와 언론의 시선이 그들을 우리의 시선 밖으로 내몰고, 우리의 시선을 오직 대통령 노무현에게 집중하도록 만들었다. 우리는 현실 정치와 언론의 시선이 우리의 시선인 줄로 착각하여 “노무현은 진정으로 청렴하고 결백한 정치인인가?”라고 질문하면서, 현실 정치가 아닌 문화와 환경, 그리고 통일 등등의 일상적 삶의 정치에서 남모르게 영웅적 전사로 살고 있는 수경스님이나 송두율 교수 등등을 우리의 시선 밖으로 내몰았다.

<매트릭스>를 아름답고 훌륭한 영화로 만든 것은 “네오”라는 구원자, 한 개인이 아니다. <대한민국>을 아름답고 훌륭한 나라로 만드는 것은 “노무현”이라는 대통령, 한 개인이 아니다. 집단이나 국가의 “구원자”나 “유일자”라는 언어는 새로운 세계를 보지 못하도록 만드는 낡은 세계의 사라져야할 언어들이다. <매트릭스>의 트리니티와 모피우스처럼 자신이 살고 있는 삶의 영역에서 자신의 삶과 세계를 구원하는 각각의 삶의 유일자들이 수없이 등장할 때, <매트릭스>는 아름답고 살만한 <시온>으로 변하고 <대한민국>도 또한 아름답고 살만한 <새로운 그 무엇>으로 변할 것이다. 2004년에 나는 우리들 각각의 삶 속에서 서로 다른 삶의 구원자와 유일자가 되고, 그래서 새로운 수많은 네오와 노무현들이 등장하는 영화와 대한민국이 이루어지는 꿈을 꾸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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