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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반지의 제왕3:왕의 귀환] 호빗들, 돌아오다

작성자

성은애

작성일자

2003-12-20

이메일

easung@yahoo.com

조회

8172


드디어 끝났다.

반지는 용암 속으로 사라지고, 아라곤은 곤도르로 돌아와 왕위에 오르고 아웬과 결혼했다. 프로도 일행은 샤이어로 돌아왔고, 간달프, 빌보, 그리고 프로도는 회색 항구에서 배를 타고 서쪽으로 떠났다. 3년동안 연말마다 찾아온 3부작 [반지의 제왕](The Lord of the Rings)은 이제 [왕의 귀환](The Return of the King, 2003)으로 마무리 되었다. 샘의 동그란 현관문이 닫히고 배우들의 얼굴을 스케치한 멋진 엔딩 크레딧이 나오시 시작하는 순간 관객들은 박수를 쳤다. 길게 보면 장장 3년에 걸친, 짧게 보자면 '방광의 압박'을 견뎌가며 스크린이 터져나갈듯 이어지는 장관에 마음을 빼앗긴 3시간 21분에 걸친 대장정의 마무리를 아쉬운 마음으로 축하하는 박수였을 것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하듯, 3부 [왕의 귀환]은 [반지의 제왕] 전체의 마무리로서 전혀 손색이 없다. 이리저리 뭔가 흠을 잡아보려고 해도 선뜻 결정적인 흠은 눈에 띄지 않는다. 아마 흠을 잡을라 치면 아예 톨킨의 소설을 놓고 이 소설이 과연 어떤 정도의 소설이냐를 논쟁하는 편이 쉬울 것이다. 그만큼 피터 잭슨의 영화는 원작의 무게와 성취를 고스란히 스크린에 재현하는 데 성공했으니, 영화의 한계는 다름 아니라 원작 소설의 한계이기도 하다...뭐 이런 하나마나한 얘기가 되시겠다.

여기서 영화가 야기한 흥분을 잠시 가라앉히고 어설픈 영문학 전공자의 본분으로 돌아와 톨킨의 소설 [왕의 귀환]과 피터 잭슨의 영화 [왕의 귀환]을 다시 비교해보면 재미있는 점이 있다.

영화 [왕의 귀환]을 보고나서 아쉬움을 토로하는 사람들은 대개 뒷부분의 마무리가 너무 긴 것이 아니냐고 말한다. 끝날 듯 끝날 듯, 하면서 또 딴 장면이 자꾸 나오니 말이다.(글쎄...알고보면 뒷부분 마무리는 30분도 안 된다. 영화 시작한지 한시간 반이 지나도록 전투 시작할 생각도 아니 하는 건 또 어찌 생각해야 옳은가....쩝.) '반지'가 어떻게 될 것이냐에 촛점을 맞춘다면 이 영화는 반지가 용암 속으로 사라지는 장면에서 끝나야 옳다. 해피엔딩을 강조하려면 대관식 장면에서 끝났어야 옳겠고.

그런데 원작 소설의 '마무리'는 이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길다. 소설에서 반지와 골럼이 용암속으로 사라지는 장면은 6부의 3장, 즉 [왕의 귀환]이 약 3분의 2 정도 진행된 대목이다. 그 이후에도 소설은 쭈욱~~~ 무려 6개 장이 계속된다. 사우론의 시선을 끌기 위해 목숨을 내걸었던 블랙 게이트 앞의 풍경도 마저 보여줘야 하고, 또한 펠레노르 평원 전투 때 불길에 휩싸여 죽은 데네소르에 이어 섭정을 맡게 되었던 파라미르(Faramir)가 아라곤에게 곤도르의 왕위를 내어주는 과정, 각 인물들에게 걸맞는 새로운 직책과 임무를 부여하는 과정, 그리고 아라곤의 대관식, 프로도 일행이 샤이어로 돌아가는 여정, 모든 주요인물들의 후일담, 사루만이 마지막 발악으로 샤이어를 습격하는 장면과 샤이어에서의 후일담, 회색 항구에서 프로도 일행이 떠나는 장면, 샘이 집으로 돌아온 장면 등등.... 이 기나긴 대목을 영화에서는 약 20분 남짓한 시간에 압축하였는데, 그 압축률은 가히 '알집'의 위력에 버금간다 하겠다.

영화만 보면 조금 길게 느껴지지만 소설에선 더 길다, 다시 말해서 소설에서 지루한 부분을 그나마 산뜻하게 압축한 셈이다....이런 식의 '변명'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문제는 이 대목이 왜 이런 방식으로 줄어들었는지, 또한 이러한 '압축'의 기준에서 잭슨의 독특한 해석을 찾아볼 수 있겠는지, 하는 점이다.

소설 [왕의 귀환]은 그야말로 곤도르의 왕위 계승자 아라곤이 자신이 마땅히 있어야 할 왕의 자리로 '귀환'하는 이야기를 중심으로 잡고 있다. 반지를 버리러 가는 프로도와 샘의 여정은 3권의 총 19개 장 가운데 불과 3개장 뿐이다. 오크에게 잡혀있다가 키리스 웅골(Cirith Ungol)의 탑에서 빠져나와 어둠의 땅(Land of Shadow)를 가로질러 운명의 산(Mount of Doom)에 오르기까지의 험난한 과정은 매우 긴박한 템포로 묘사되며 3권의 한 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다. 이 부분을 앞뒤로 감싸고 있는 나머지 16개 장은 온전히 인간들의 몫이다.

곤도르의 마지막 도시 미나스 티리스(Minas Tirith)가 공격당하고 펠레노르 평원에서 장대한 전투가 펼쳐지고 로한의 군대가 곤도르를 돕기 위해 먼 길을 달려오고, 데네소르와 파라미르의 갈등이 클라이맥스로 치닫고, 프로도 일행을 사우론의 시선에서 은폐하기 위한 총력전이 펼쳐지는 등등의 이야기가 3권의 중심 줄거리라는 이야기다. 소설 제3권의 제목이 '반지의 운명'이나 '호빗의 귀환'이 아닌, '왕의 귀환'인 이유는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연유한다.

다시 말해서 톨킨의 소설은 반지의 운명이나 호빗의 모험담을 중심에 놓고 있다기보다는, 장대한 중간세계의 역사의 한 도막을 보여주는 데 상대적으로 무게 중심이 가 있다. [반지의 제왕]을 완결된 모험담이 아니라 방대한 역사의 일부로 본다면, 호빗이 반지를 갖다 버리는 사건만큼이나 곤도르의 왕이 수백년만에 돌아온 이야기도 매우 중요하다. 시민사회와 민주주의가 정착되기 이전의 역사가 대부분 왕조사였듯이, 지극히 봉건적인 왕-기사-평민 구도로 구성된 세계, 즉 곤도르나 로한의 역사도 역시 왕조사를 중심으로 서술되기 마련이므로 아라곤의 귀환은 중간계의 역사에서 한 시대를 구분하는 핵심적인 사건인 것이다.

그러나 잭슨의 영화는 이러한 톨킨의 구도를 상당히 수정하는 방향으로 나아간다. 물론 일차적으로는 영화의 재미를 위해서이기도 하지만, 잭슨은 중간계 역사책으로서의 [반지의 제왕]보다는 반지를 둘러싼 모험담으로서의 성격을 좀 더 중심에 놓아 강조한다. 그 결과, 영화 [왕의 귀환]은 소설 [왕의 귀환]에 비해 호빗들의 모험이 차지하는 비중을 엄청나게 큰 것으로 설정해놓고 있다. 원작에서는 2부에 나오는 쉴롭과 키리스 웅골의 계단 에피소드를 3부로 미루어 프로도 이야기의 비중을 늘인 것도 그러하고, 후반부를 대폭 압축하고 사루만이 이끄는 샤이어 습격 이야기를 과감하게 제낀 것 역시 프로도와 반지의 얘기를 좀 더 중심적인 위치로 끌어올리기 위한 조치라고 보인다.

호빗들의 활약에서 단연 중심이 되는 것은 반지를 버리러 가는 프로도와 샘의 고통스러운 여정일 것이다. 2부에서 이미 역할이 훌쩍 커져버린 샘은 이제 3부에 오면 반지의 여정을 결정짓는 엄청난 일들을 몇가지 해낸다. 이야기가 막판에 이르면 프로도에게 샘이 없었더라면 어떻게 되었을까, 아니 반지를 버리러 가는 것은 반지 운반자인 프로도가 아니라 '프로도의 운반자'인 샘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그러니 원작의 다른 대목에 비해 샘이 등장하는 장면들이 영화에서 유달리 세세하게 잘 묘사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며, 원작에도 없는 절벽장면(샘이 프로도를 끌어올리는)이나 용암이 흘러내리는 산 중턱의 바위에서 프로도와 샘이 서로 기대어 앉은 장면의 비중이 다소 커진 것 역시 샘과 프로도의 관계를 강조하기 위한 것이라 하겠다.

또한 1부에서 이미 이들과 따로 떨어져 독자적인 행보를 보이던 메리와 피핀 역시 그냥 괜히 따라온 게 아님을 보여준다. 무엇보다 두드러지는 것은 펠레노르 전투와 미나스 티리스 장면들에서 메리와 피핀의 역할이 상당히 커졌다는 것이다. 2부에서도 이 띨빵한 호빗들은 의외의 용기와 능력을 발휘하여 오크의 손아귀에서 벗어나 엔트들을 이끌고 사루만의 요새를 쳐부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하지만, 3부에 오면 이들은 어엿하고 용감한 전사로 성장한다.

미나스 티리스에 도착한 피핀의 행적을 보자. 데세노르가 곤도르를 사수하는 데 별 관심이 없음을 알고 미나스 티리스 사수의 책임을 자임한 간달프는 피핀에게 군사적 지원을 부탁하는 봉화를 올리도록 몰래 지시한다. 조그만 피핀이 가파르게 높은 망루로 간신히 기어올라가 몰래 봉화를 점화하는 장면이며, 그가 붙인 불길이 봉우리에서 봉우리로 이어지는 장면들은 이 영화의 초반에서 정말 볼만한 몇몇 대목들 중 하나인데, 이 대목은 원작 소설에는 아예 없다. 단지 피핀이 베레곤드를 만나서 얘기하는 장면에서 "봉화가 어제 타오르던데 뭐냐...?"하는 언급만 나올 뿐이다. 소설에서 간달프가 피핀에게 지시하는 것은 전쟁을 대비하는 봉화를 올리는 일이 아니라 말을 잘 다룰 줄 모르는 미나스 티리스 사람들이 미심쩍으니 자신의 말 섀도우팩스를 좀 찾아보라는 일이다.(말시종 취급!) 말의 안부를 확인하러 나간 피핀은 베레곤드라는 병사와 사귀어 이런저런 이야기들을 나눈다. 마치 셰익스피어 사극에서 왕들이 전쟁을 벌이는 동안 병사들이 옆에서 노닥거리며 이런저런 잡담을 나누는 장면처럼 말이다. 즉, 피핀의 언행은 철저한 '평민' 역할에 한정된다. 펠레노르 전투에서 당당한 전사로 거듭난 메리 역시 원작 소설에서는 그다지 두드러져 보이지 않는다.

호빗의 역할을 늘리는 것 못지 않게 호빗을 제외한 다른 부분, 특히 '왕의 귀환'에 해당하는 줄거리를 상대적으로 축소한 것도 영화의 특징으로 꼽을 수 있다. 예를 들어보자. '스펙터클'의 관점에서 보면 단연 이 영화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은 물론 펠레노르 전투 장면이다. 여기서 개인적으로 인상적으로 보았던 것은 숫적 열세에도 불구하고 기세등등하게 사기를 올린 로한의 기병들이 사우론의 수십만 대군 속으로 돌진하는 장면이지만, 역시 그래도 전투의 판세를 결정짓는 장관은 아라곤이 이끌고 오는 사자(死者)의 군대일 것이다. 그런데 아라곤이 말베스(Malbeth)의 예언에 따라 죽은 병사들을 소환해내어 펠레노르로 이끌고 와서 싸우는 장면은 원작 소설에도 묘사되어 있긴 하지만, 막상 전투 장면에서는 영화에서처럼 그렇게 큰 비중으로 묘사되지는 않는다. 그들의 모습도, 그들이 전투에서하는 역할도, 또한 전투에 이긴 후 저주가 풀려 그들이 사라지는 과정도 두드러지지 않으며, 오히려 전투에 임하는 로한과 그 동맹군의 공포와 용기, 낙담과 희망의 변화가 중점적으로 그려지는 것이다.

펠레노르 장면, 특히 아라곤과 레골라스-김리가 이끄는 사자의 군대가 초록의 물결로 몰려드는 광경만 놓고 보면, 분명 영화는 볼거리 중심이요, 소설은 환상의 요소가 엄연히 있음에도 불구하고 좀 더 사실적이다. 이러한 차이를 어떻게 봐야 할까? 어찌보면 영화에서는 사자의 군대가 와서 전세를 완전히 역전시키고 사우론의 수십만 대군을 '한방에' 보내버리는 통쾌함이 훨씬 더 중요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영화의 설정은 이 전투에서 살아있는 인간들이 움직이는 모습과 그들의 내면이 차지하는 비중을 줄여버린다. 이 스펙터클을 꾸려내는데 집중하는 영화는 전투에 참가하는 세오덴의 군대와 아라곤, 에오윈, 에오메르, 파라미르, 데네세르 등의 입장과 그들 사이의 심리적 갈등을 상대적으로 소략하게 취급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런 식으로 작품의 비중을 인간계의 역사와 그 역사의 중심에 선 왕족, 기사, 예언자들의 이야기에서 호빗의 모험과 선-악의 대결로 옮겨 놓음으로써 영화는 소설보다 좀 더 '비사실적'으로 되었지만, 그 대가로 '왕'의 역할은 축소되고 호빗의 역할은 상대적으로 늘어나게 된다. 물론 영화에서 왕의 검을 다시 벼려 들고나온 아라곤의 활약은 위풍당당한 영웅의 면모에 조금도 부족함이 없다. 그러나 그것은 적법한 왕위 계승자로서의 아라곤보다는 렙업(온라인 게임하다가 level up한다는 걸 이렇게 쓰던디..)된 용감한 전사 아라곤의 모습에 좀 더 가깝다. 그가 펠레노르 전투 직후 부상당한 사람들을 모아놓은 치료소에서 정말 적법한 곤도르의 왕위 계승자만이 가질 수 있는 치유 능력을 보여주는 원작 소설의 꽤 긴 장면이 영화에서 완전히 삭제되었다는 점만 보아도 아라곤을 왕위 계승자보다는 반지 원정대의 중심인물로 놓아두고 싶은 감독의 의도가 드러난다고 보인다.

영화가 사실상 '왕의 귀환'보다는 '호빗의 귀환'에 더 관심이 있다는 증거는 또 있다. 이 모든 고생이 끝나고 평화의 시대가 시작됨을 상징하는 아라곤의 대관식 장면을 보자. 하얀 나무가 서 있는 미나스 티리스에서 아라곤은 곤도르의 왕관을 쓰게 되는데, 바로 뒤이어 아웬과 재회하고 키스하는 장면이 바로 나와버리는 것은 사실상 '왕의 위엄'과는 거리가 멀다. 아라곤의 즉위와 아라곤-아웬의 결혼을 동시에 처리하려는 의도였을 것이다. 그리곤 다음 장면에서 내내 거지꼴로 나오던 호빗 네 명이 자기들 딴에는 대관식에 참석한다고 잔뜩 성장을 하고 나온다. 얼굴에 때국물이 질질 흐르며 벌판을 헤매고 돌산을 기어오르던 때의 프로도와 샘은 나름대로 멋(?)과 기품마저 있더니만, 반듯하게 세수하고 나온 이들은 정말 먹고 노는 일이나 좋아하는 원래의 그 띨빵한 호빗 모습이다. 그런데 웬걸, 곤도르 왕국의 왕인 아라곤과 왕비인 아웬은 이들 앞에 무릎을 꿇고 경의를 표한다. 왕이 호빗에게 무릎을 꿇다니, 말도 안돼. 그러나 왕이 무릎을 꿇자, 모든 사람들이 이 네 명의 호빗들 앞에 경의를 표한다. 왕보다 더 높은 호빗들!

그런데 사실은 원작에도 아라곤이 호빗들에게 절을 하는 장면이 있긴하다. 먼 여정을 마친 프로도가 비로소 정신을 차리고 나서 아라곤이 호빗들에게 무릎을 꿇고 절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 것이다. 이 역시 상당한 파격이긴 한데, 이 대목은 대관식 이전이며 프로도는 여전히 아라곤을 '스트라이더'라고 부르는 상황이다. 막상 대관식에서는 프로도가 간달프에게 왕관을 전달하고 간달프가 아라곤에게 왕관을 씌워주는 것으로 끝난다. 아라곤이 호빗들에게 무릎끓고 경의를 표하는 장면을 사석에서가 아닌, 만백성 앞에서 이루어지는 대관식 장면으로 옮겨놓은 의도는, 물론 이런저런 얘기들을 '한큐에 다 해결'하자는 의도이기도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 앞 장면에서 그럴 기회가 없었던 것도 아니고, 하필이면 대관식에서 그런 파격적인 장면을 연출하도록 했느냐는 결국 호빗들의 존재감을 돋보이게 하려는 감독의 의식적인 각색이라고 봐야 옳겠다. 원작과는 다르게 연출된 이 대관식 장면이 잭슨이 말하고자 하는 바의 핵심이라고,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호빗들은 어쩌다 운명의 장난에 걸려든 반지 운반자이거나, 뒷걸음질 치다 쥐 잡은 소처럼 어쩌다 공훈을 세워 으쓱해진 촌놈들도 아니다. 전쟁터에서 텐트 사이를 돌아다니며 '이 전쟁이 도대체 나에게 머시다냐, 참 거시기 하당께'하는 식의 수다나 떠는 셰익스피어 사극의 평민 병사들도 아니다. 오히려 이들은 진정한 영웅의 탄생이 무엇인지 보여주면서, 동시에 인간의 욕망과 나약함이 어디까지인지도 보여주고, 또한 나약하고 하찮은 인간이 그래도 뭔가 괜찮은 일을 할 수 있게도 해주는 '공감'과 '연대'의 중요성을 예시하기도 하는, 명실상부한 주인공들이다. (이건 좀 딴 얘긴데....이들의 우정과 연대감은 정말 남다른 데가 있어서 관객들은 거의 '쟤네들 게이다!"하는 표정으로 호빗들의 우정을 지켜본다. 좀 황당한 해석이긴 하지만, 반지가 '결혼'을 상징하며 사우론의 '눈'이 여성의 성기를 닮았다는....그래서 이 영화는 여성과 결혼을 '악'으로 규정하고 이에서 벗어나는 '게이의 미학'을 구현하고 있다는...그런 얘기도 얼핏 줏어 들은 것같다. [대장금] 보고 레즈비언 사극이라고 하는 얘기랑 비슷한 거 같은데, 믿거나 말거나...^^;;) 아무튼 이들은 우정이나 희망, 용기, 자존심, 끈기, 신뢰같은 가장 간단하고도 소박한 미덕이 사실은 얼마나 실현하기 힘든 것이며, 또한 궁극적으로는 큰 힘을 발휘하기도 하는가를 보여준다는 점에서 멋진 전사 아라곤이나 원래부터 더 멋진 레골라스보다 훨씬 훌륭하고도 중요한 존재라고도 할 수 있다.

샤이어로 돌아온 네명의 호빗이 술집에서 맥주잔을 기울이고, 평소 사모하던 여자에게 '작업'을 개시하는, 원작에 없는 영화의 장면들은 이들의 소박한 생활과 엄청난 모험 사이의 괴리를 단적으로 보여주면서 또한 이 영화가 말하자면 '왕의 귀환'이 아닌 '호빗의 귀환'임을 말해주고 있다. 그것도 '귀환'에 실패하고 회색의 항구에서 간달프와 함께 배를 타고 떠나는 프로도의 귀환이 아니라, 로즈와 결혼하여 조그만 집에서 아들딸 낳고 소박한 호빗으로 살아가는 '샘의 귀환', 혹은 '메리와 피핀의 귀환'인 것이다.

프로도가 그 엄청난 모험에서 입은 상처로 인하여 샤이어로의 '귀환'에 실패하는 것은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여러 인물들의 결말 가운데서 가장 가슴이 아릿하면서도 그럴듯한 결말인데, 영화에서도 마치 한밤의 이상한 집회에 다녀온 '영 굿맨 브라운'같은 표정을 하고 있는 프로도의 모습을 그런대로 그려내려고 애를 썼다. 이것이 보통의 할리우드 영화 문법대로 아라곤의 대관식에서 영화를 끝내지 않은 결정적인 이유이기도 한 것이다.

그렇지만 프로도의 고통을 조금 더 설득력있게 보여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게다가 (기억이 정확하진 않지만) 샘이 프로도에게 "우리가 샤이어를 구해냈다"는 요지의 이야기를 하자 프로도가 "Yes, but not for me."라고한 대목을 "그렇지만 나는 만족할 수 없어"라고 번역한 자막 탓에 샤이어를 구하고 나아가 중간계를 사우론으로부터 구해낸 위업이 자신을 위한 것은 아니었다는 것, 혹은 샤이어는 구했지만 자신의 행복을 구하진 못했다는 프로도의 착잡한 심리가 드러나지 않은 것 역시 아쉬움이 남는다.

반지는 사라지고, 아라곤은 왕이 되고, 평화로운 샤이어로 호빗들이 귀환하는 것으로 [반지의 제왕]은 끝났다. 끝났다는 아쉬움을 곱씹기보다는 [반지의 제왕]과 만났던 2001년, 2002년, 2003년의 연말을 즐거웠던 기억으로 '저장'해놓기로 한다. 현실에서의 다른 만남과 헤어짐도 딱 요만큼만 즐거웠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얼핏 들었다.

http://finching.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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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 제왕3:왕의 귀환] 호빗들, 돌아오다 <- 현재글

성은애
2003-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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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지의 제왕3:왕의 귀환] 호빗들, 돌아오다

직업병
2003-12-21
4491

헉....^^;;

성은애
2003-12-22
43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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