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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We're all the losers: 반전평화 노래 하나

작성자

오길영

작성일자

2003-12-09

이메일

조회

5060


80년대 중반에 대학이나 대학원을 다닌 내 또래들에게는 다 비슷한 경험이 있을 거라고 짐작되지만 대학에 들어와 세상에 '눈뜨기' 전까지 나는 꽤 열렬한 '팝송' 애청자였다.

이른바 고딩 '범생이'였던 내게 그나마 라디오를 통해 흘러 나왔던 그 시절 '팝송'들은 스트레스 해소의 수단이었던 셈이다. 특히 몇몇 친구들과 같이 어렵게 구해들었던 '빽판' 팝송들은 속으로는 이런저런 불만이 많았지만 겉으로는 제도교육의 충실한 '사도'였던 내게는 일종의 일상 탈출구였던 셈이다.

당시 내가 주로 들었던 음악은 Pink Floyd, Moody Blues, King Crimson, Barclay James Harvest, Emerson Lake and Palmer 등 이른바 'Progressive Rock'이었다. 철없던 시절에 뭐가 뭔지도 모르고 들었겠지만 이들 음악이 전해주는 세련된 곡조나 심오해 보이는 가사들이 어린 마음에도 짠한게 있었나 싶다.

대학에 들어와보니 그런 '제국주의 음악'들인 팝송은 더 이상 듣기가 뭐하게 되었다. 그렇게 된 데는 아마도 두 가지 이유가 있으리라. 하나는 당시 세상이 이런 노래들 듣기에는 너무나 살벌했고 나도 조금씩 그 살벌한 세상에 대해 철이 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런 살벌하고 삭막한 세상에서 들려오던 '민중가요'가 준 충격도 물로 컸다. (그때나 지금이나 '회색분자'인 사람이지만 나는 대학 신입생 환영회에서 들려오던 노래 '아침이슬'이 전해주던 어떤 비장미의 느낌을 지금도 잊지 못한다.)

두 번째 이유. 조용필로 대표되는 새로운 한국의 대중가요들이 '팝송'에 꿀리지 않은 괄목상대의 노래를 들려주기 시작한 것이다. 그 점에서 나는 에누리 없이 조용필 '오빠' 세대이다.

(음악이라면 대중음악이든 클래식이든 거의 깡무식인 사람이지만 나는 한국의 대중가요는 조용필 이전과 이후로 나뉜다고 믿는 사람이다. 아, 물론 나 혼자 생각이니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셔도 불쾌해하실 이유는 없겠다^^)

대학(원)을 졸업한 이후는 세상이 변하기도 했고 내 마음이 많이 강퍅해진 탓도 있겠지만 더 이상 민중가요든 대중가요든 거의 듣지 않게 되었다. 물론 틈틈이 귀에 들어오는 노래들도 있었지만 더 이상 어떤 노래를 열심히 찾아 듣는 '열정'은 거의 사라졌다. 물론 '팝송'은 더 말한 나위도 없이 전혀 듣지 않게 되었다.

다시 '팝송'이라는 것을 듣게 된 것은 미국유학시절이다. 다른 나라에 있다는 상황, 그것도 미국이라는 정황 때문에 가끔 다시 '팝송'을 듣게 되었고 그러다가 발견한 그룹이 아일랜드 출신의 The Cranberries라는 밴드다.

이 친구들에게 관심이 끌린 이유? 아마 주된 이유는 내가 전공하는 것으로 되어있는 아일랜드 출신 밴드라는 점이겠다. (이 친구들 노래 중에는 W. B. Yeats를 기리며 부른 노래도 있다.) 그러나 단지 이런 '지역감정'이 내가 이들 노래를 즐겨 듣게 된 이유는 아니겠다. 또한 옛날 철없던 시절처럼 그저 '팝송'이니까 좋아한다는 것도 당근 아니었다.

이 친구들은 노래를 잘한다. 그것도 내가 이 밴드를 좋아하는 중요한 이유이다. 기본적으로 나는 노래못하는 가수는 못 참는 사람이니까 노래를 잘한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특히 이 그룹의 보컬을 맡은 Dolores O'Riordan이 구사하는 묘하게 '꺾는' 창법은 한국의 젊은 가수들에게도 꽤 영향을 준 걸로 알고 있다. 특히 자우림의 보컬 김윤아의 창법은 그녀에게서 배운 것임에 틀림없다(고 믿는다).

그러나 내가 이 밴드를 좋아하는 이유는 단지 노래를 잘하기 때문은 아니다. 이들의 노래가 전하는 어떤 메시지, 특히 반전평화의 메시지 때문이다. 이들의 노래는 아일랜드 대중음악의 어떤 특징을 잘 보여준다.

물론 한국의 대중가수 중에도 요새 젊은 인디 가수들을 중심으로 현실 비판적인 노래를 꽤 부르는 걸로 안다. 하기야 현대사의 파란만장함으로 치면 세계 어느 국가보다 할말이 많은 한반도의 가수로서 그저 사랑타령이나 할 수 있으랴.

(오해 없기를. 나는 사랑노래가 가치 없다는 말을 하려는 게 아니다. 사랑만큼 정치적인 것은 없다는 게 내 평소 지론이니까 말이다. 문제는 그 사랑을 어떻게 노래하느냐, 그 점이다. 그렇게 보면 이 나라 대중가요 중에 진짜 사랑노래가 얼마나 될까? 사탕발림의 사랑노래들 말고 말이다.)

그러나 겉으로 드러나는 메시지의 정치성이 좋은 노래의 유일한 조건이라는 말은 당근 아니다. 모든 예술에 적용되는 말이겠지만, 그런 현실 비판적 태도가 폼나는 '포즈'로 끝나는 것인가, 아니면 나름의 진정성을 갖고 있는가. 내가 주목하는 점은 이 지점이다.

Cranberries는 내가 보기에는 그들 노래의 정치성이 단지 폼잡는 제스처가 아니라 나름의 진정성을 보여주는 밴드이다. 아마 그렇게 된 배경에는 수백 년에 걸친 아일랜드 식민지 역사, 그리고 지금도 진행중인 북아일랜드 문제로 고통받는 아일랜드의 정치적 상황이 깔려 있겠다.

그리고 이들 밴드가 의식했든 못했든 알게 모르게 아일랜드의 착잡한 현대사는 이들 밴드의 '정치성'에 영향을 끼쳤다고 짐작된다. (U2를 비롯한 아일랜드 출신의 밴드나 가수들은 모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모두 이런 정치색 짙은 노래들을 부르는 걸로 안다. 그게 단지 우연의 일치일까?)

두 번째 앨범인 No need to argue 에 실린, 이 밴드의 노래중 가장 널리 알려진 노래인 Zombie는 북아일랜드 사태 때문에 벌어진 신교도-구교도간의 테러 때문에 죽어간 아이들을 추모하며 부른 반전평화의 노래이다. Zombie는 그들이 내세우는 '고상한' 이유가 무엇이었든 결과적으로 아이들을 죽음으로 이끈 전쟁 책임자들을 지칭한다.

이들이 1996년에 발표한 세 번째 앨범 To The Faithful Departed 는 이들 밴드가 지닌 정치성, 현실 비판적 태도의 면모를 보여준 걸작이다. 이 앨범 전체를 지배하고 있는 무거운 분위기는 전쟁과 테러, 그리고 폭력에 대한 깊은 회의와 반전평화의 세상에 대한 희구 때문이다. 아마 이런 무거운 분위기 때문에 이 앨범은 이 밴드가 낸 앨범 중 앨범 판매량에서 기대에 못 미친 저주받은 걸작이 되어버렸다.

세 번째 앨범에 실린 노래 한 곡을 소개하려고 이렇게 잡소리가 길었다. 그 노래는 War child 이다. 반전 평화적인 곡을 많이 쓰는 밴드의 보컬 Dolores는 전쟁 때문에 죄없이 죽어 가는 아이들의 고통에 주목할 것을 노래를 통해 호소한다. (여성으로서 그녀가 관심을 기울이는 또 다른 문제는 가정폭력 때문에 희생되는 아이들의 고통이다.)

오늘 여기 자게를 들르니 미국의 오폭으로 9명의 이라크 어린이들이 무고하게 죽은 기사가 올라왔다. 이 사건에 대한 미국의 태도? 그게 다 '인류평화'를 위해 '테러리스트'를 잡으려다 벌어진 일이니까 미안하긴 하지만 대수롭지 않다는 태도이다.

이게 바로 전쟁의 본질이다. 누가 '테러리스트'인지가 점점 의심스러워지는 상황. 테러라는 말 함부로 쓸게 아니다. 아이들을 폭격으로 죽이는 게 전투인가, 테러인가?

전쟁으로 인한 모든 죽음은 슬프다. 군인이든 민간인이든. 그런 점에서 이번에 이라크에서 발생한 한국 노동자들의 죽음에 대해 대수롭지 않다는 듯이, 있을 수 있는 일인양 호도한 몇몇 정치꾼들의 작태를 어떻게 봐야할까?

내가 보기에 이들은 무슨 거창한 정치 이념의 문제를 떠나서 '인간에 대한 예의'를 잊은 친구들이다. 이게 한국의 '선량'이라는 친구들의 수준이다. 하기야 이 나라 대빵이라는 분도 그런 '인간에 대한 예의"가 없어 보이기는 마찬가지니까 오십보백보이기는 하다.

그러나 특히 슬픈 일은 단지 전쟁터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죄없이 스러져가는 아이들이다. 상황이 이 지경인데도 이 나라의 힘있는 자들은 여전히 빌어먹을 '국익'을 위해, 혹은 미국과의 '호혜관계(sic!)'를 위해 한국군을 파병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과연 이 친구들이 자신들의 자식이, 혹은 손자, 손녀가 잘못 떨어진, 혹은 일부러 떨어뜨린 '제국'의 폭탄에 맞아 죽어도 이런 말들을 쉽게 할 수 있을까? 과연 이런 전쟁에서 승자는 누구이고 패자는 누구일까? 힘센 나라의 잘난 어른들이 내뱉는 세계평화니 국익이니 하는 말로 포장된 전쟁의 승패놀이 때문에 죽어 가는 아이들은 누가 책임져야하나? 이 노래가 묻듯이 말이다.

"Who's the loser now?
Who's the loser now?
We're all the losers now
We're all the losers now"

전쟁의 승자? 그런 건 없다. "전쟁에 참여한 우리 모두가 패자다." 노래 는 이 진실을 다시 강조한다.

노래 들을 수 있는 곳:

http://mindup.net/bbs/view.php?id=e_free&page=1&sn1=&divpage=1&sn=off&ss=on&sc=on&select_arrange=headnum&desc=asc&no=113


War child
- The Cranberries

Who will save the war child baby?
Who controls the key?
The web we weave is thick and sordid
Fine by me

At times of war
We're all the losers
There's no victory
We shoot to kill, and kill your lover
Fine by me

War child
Victim of political pride
Plant the seed, territorial greed
Mind the war child
We should mind the war child

I spent last winter in New York
And came upon a man
He was sleeping on the streets and homeless
He said, "I fought in Vietnam"

Beneath his shirt he wore the mark
He bore the mark with pride
A two-inch deep incision carved
Into his side

War child
Victim of political pride
Plant the seed, territorial greed
Mind the war child
We should mind the war child

Who's the loser now?
Who's the loser now?
We're all the losers now
We're all the losers now

War child, war chi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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