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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트릭스3: 리볼루션즈>를 보고: '인간적인 것'에 대해

작성자

오길영

작성일자

2003-11-07

이메일

조회

4548


1.

<메트릭스3: 리볼루션즈>을 보았다. 영화가 개봉된 지 몇 일 안되었는데도 여러 일간지를 비롯해서 인터넷 여기저기 게시판에서 이 영화를 둘러싼 논쟁이 한창이다. 대체적으로 혹평들이 다수다. <한겨레>에 실린 기사나 영화평론가들의 평가는 이 영화에 대한 가혹한 혹평들의 전형적 예라 하겠다.

가령 이런 식이다. "철학은 사라지고 전쟁만 남아"(한겨레 기사 제목), "기계들은 잔혹한 악이 되고, 희생적으로 싸우는 인간을 영웅적으로 묘사하는 연출", "매트릭스 밖으로 나온 3편은 기독교 세계의 이분법에 몸을 맡긴 채 성전으로 치닫는다."(한겨레 기사).

이 기사를 쓴 기자는 이 영화가 무슨 철학영화라고 생각했나보다. 이 영화는 철학영화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그렇지만 자기가 찾는 '철학적인 것'이 없다고 비아냥댄다. "철학은 사라지고 전쟁만 남"았다고. 이 기자가 찾고자 하는 철학은 무엇이었나? 그게 실제로 이 영화가 보여주는 '철학'을 말하는 것인가? 아니면 기자가 찾고 싶은 어떤 '고상한' 철학이 없다고 비아냥 대는 건가?

영화 텍스트를 하나의 '텍스트'로 보지 않고 자신의 주관을 손쉽게 투사해서 난도질 할 수 있는 오락품 정도로 생각할 때, 이 영화에서 "기계들은 잔혹한 악"으로만 읽힌다. 그런데 사실이 그런가? 조금 있다가 (매트릭스 1.5라 할 수 있는 <애니매트릭스>를 포함한) 씨리즈 전체의 이야기 구조와 관련해서 이 문제를 약간 논의해보기로 하고 일단 이 기자양반의 말을 좀더 들어보자.

이 기사는 영화의 핵심적 대립구도인 니오-스미쓰의 갈등이 "기독교 세계의 이분법"에 불과하다고 비판한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되나? 그리고 그 싸움이 실제로 이분법적 구도에 사로잡힌 싸움에 불과한 건가? 이런 독법이 이 영화텍스트를 제대로 읽은 건가? (나는 무슨 영화평론가도 아니지만 영화든 문학이든 그것이 예술작품일 때 하나의 텍스트로 읽어야 한다고는 생각한다. 그게 내가 생각하는 독자/관객의 읽기/관람의 상식이다). 오히려 니오는 그런 식의 인간-기계의 이분법을 넘어서려고 스미쓰와의 최후 결전을 자청한 것이 아닌가?

이런 식의 '인상비평'에 머문 평들은 같은 신문에 실린, 영화평론가라는 사람들의 혹독한 비판에서도 확인된다.

"주체의 소멸이 지나쳐 테마의 소멸에 이른 것은 (워쇼스키의 말을 빌려) 이런 이야기의 필연이다. 그러니 따져 묻지 마라. 당신은 게임오버한 다음에도 그걸 사유하는가."(정성일)

뭐 짧은 단평에서 무슨 대단한 분석을 바랄 수야 없지만 별 근거제시도 없이 이 영화에서 "주체의 소멸"(니오와 트리니티의 죽음?)"이 "테마의 소멸"에 이르렀다고 주장한다. 나로서는 "주체의 소멸"에서 "테마의 소멸"로 이어지는 이 평론가의 기이한 상상력을 따라잡기 벅차지만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걸까?

이 평론가가 생각하는 "테마의 소멸"은 무슨 뜻일까? 그리고 정말 <메트릭스 3>이 단지 화려한 전투장면과 특수효과의 분칠로 "테마의 소멸"을 가리고 있는 저급한 헐리웃 영화에 불과한 걸까?

아마 내 생각에 이 평론가는 <애니매트릭스>을 포함한 씨리즈 전체를 보지 않은 듯하다. 영화보는 취향이야 제 각각이지만 그래도 남들도 알아 들을 소리로 자신의 취향을 말해야 하지 않을까. 명색이 평론가라면 말이다. 다른 평론가의 비판도 비슷하다.

"시간 속에 담긴 액션을 잘게 분절한 디지털 효과는 가히 시지각적 혁명이었다. 그러나 매트릭스 2편의 지루한 개똥 철학에 이어 3편 매트릭스는 이렇게 저렇게 해서 다시 눈먼 외디푸스라는 낡은 시나리오로 돌아간다. 네오는 눈이 멀고, 위대한 현자가 된다"(김소영)

이 짭은 평가에서 이 평론가의 문제의식을 짐작하기는 쉽지 않지만 아마도 이 평론가는 <매트릭스>같은 헐리웃 영화의 가치는 "디지털 효과"정도에 있다고 보는 듯싶다. 감히 헐리웃 영화가 심오한 얘기를 할 수도 없거니와 해봐야 "지루한 개똥철학"이 되어버리기 십상이라는 말씀.

그래서 니오가 현실에서 스미쓰와 벌인 싸움에서 눈을 멀게 된 이유도 '심오하게도' "외디푸스라는 낡은 시나리오"가 된다. 나는 그 장면 보면서 외디푸스라는 생각, 그리고 "네오가 눈이 멀고, 위대한 현자"가 된다는 생각은 못했는데, 역시 평론가 양반은 보는 눈이 다른가 보다.

그래서 이 평론가에 따르면 "3편에서 차용한 ‘혁명들’이라는 복수의 제목은, 전 세계 동시 개봉이라는 마케팅의 혁명"이 된다. 이런 비아냥거림의 정체는 무엇일까?

이런 비아냥거림의 이유는 영화평론가 혹은 영화학 교수들이 저 도저한 '상업주의'가 지배하는 헐리웃에서 생산된 모든 영화들은 아무리 애를 써도, 어느 분의 표현대로 "헐리웃의 똥"밖에 되지 못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 아닐까. 이상한 편견이다.

원래 어느 분야, 특히 예술분야에서 전문가들이 대중의 감수성을 우습게 보는 거야 다 아는 얘기지만 이른바 현대의 가장 대중적인 예술--적어도 수용의 측면에서는-꼽히는 영화의 경우에도 이런 전문가들의 오만함은 여전한가 보다. 씁쓸하다.


2.

그러니 나같은 '아마츄어' 관객은 겁나서 할말도 못하겠다. '전문가'들께서 영화 엉망이라고 이미 판결하셨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런가보다 하고 가만히 있기에는 마음이 편치 않다. 그래서 몇자 감상을 적는다.

(인터넷에는 이런 전문가들의 오만한 평가보다 더 생생하고 설득력있는 일반관객들, 아니 <매트릭스> 매니어들이 쓴 이 영화평이 꽤 올라 있다. 그 평을 읽다보면 "연출 짜임새는 전작들에 비해 매우 헐겁다"(심영섭)라는 식의 안이한 영화분석이 지닌 문제점이 무엇인지가 잘 드러난다.

나도 이들 매니어들의 감상들을 읽으면서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것들을 많이 배웠다. 특히 스포일러 분석에서 많이 배웠다. 역시 나는 아직 <매트릭스> 매니어는 못되나 싶다. 이런 애정을 가져야 그나마 텍스트가 제대로 보이는 것은 문학이나 영화나 비슷하지 싶다.)

잠깐 딴 얘기. 얼마전에 있었던 영미연 월례발표회에서 신모선생님께서 최근 SF문학에서 형상화된 싸이보그와 인간의 관계에 대해 흥미로운 발표를 했다. 내가 그 발표를 듣고 던졌던 질문. 과연 우리가 인간적인 것들이라고 잘난 체 하며 내새우는 것들이 그리 대단한건가요? 그런 요지의 질문을 던졌던 기억이 난다.

인간을 다룬다는 문학판에서 듣는 얘기들이 있지 않은가. 문학은 과학적 지식, 이성, 논리를 넘어서는 인간의 '창조성'을 보여준다느니 하는 말들. 그런데 그 인간의 창조성이라는게 그리 대단한 건가. 그거 인간들의 생각에 불과한 것은 혹시 아닌가. 현대 SF문학이나 <블레이드 러너>를 비롯한 SF 영화들이 보여주는 어떤 통찰은 바로 이 질문에 모아진다.

인간이 그리 대단한 존재야? 인간의 창조성 운운하는 태도에는 이미 인간을 다른 존재--예컨대 기계--보다 우월한 존재로 보는 뿌리깊은 인간중심주의가 깔려 있다. 인간이 자신을 대단한 존재로 보는 거야 인간류의 자유겠지만, 다른 존재, 예컨대 새롭게 등장하는 존재들, 싸이보그나, 인간의 감수성과 이성을 두루 갖춘 인공두뇌, 혹은 점점 정교화되어 어느 순간 인간의 감정까지 갖게 될 기계들이 볼 때 인간들이 그렇게 대단한 존재인가?

나는 많은 사람들이 <매트릭스> 1편의 속편이요 2편의 예고편 정도로 홀대한 <애니매트릭스>에 이 질문에 대한 답이 어느 정도 들어있다고 본다. <매트릭스>를 지배하는 기계-인간의 대립구도를 만든 원인은 기계 탓이 아니다. 그 원인은 인간이 제공했다.

인간은 기계들이 인간에게 복종하라는 명령, 인간의 '통제'를 벗어나자 그들을 가혹하게 '제거'하기 시작한다. 거기에 맞서는 기계들의 투쟁이 벌어진다. 전쟁은 점점 인간에게 불리해진다. 그러자 인간들은 '하늘을 불태운다.' 기계들이 태양열을 에너지원으로 이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그러자 기계들은 그들의 에너지원으로 인간들을 이용한다. 1편에 나오는 끔찍한 인간배양기 장면들, 3편에서 기계도시를 찾아가는 니오와 트리티니가 다시 보게 되는 인간배양기의 장면들은 이런 맥락에서 그 온전한 의미가 드러난다.

그러면 과연 이 끔찍한 장면을 보고 손쉽게 "잔인한 기계넘들"이라고 얘기할 수 있을까? 그건 마치 호랑이보고 고기를 먹는다고 잔인하다고 말하는 것과 동일한 오류이리라. 애초에 인간과 기계의 '화해'를 거부한 것은 인간쪽이었다.

내가 보기에 <매트릭스 3>을 흥미롭게 보는 방식 중 하나는 씨리즈 전체를 기계-매트릭스의 시각에서 읽는 것이다. 인간들의 시각에서가 아니라. 인터넷에 올라오는 많은 불만중의 하나는 니오와 트리니티의 '희생'으로 얻은 것이 결국 기계와 인간의 잠정적인 화해라는 어정쩡한 결론이다.

(니오와 트리니티의 '희생'이 기독교적임은 분명하다. 더욱이 씨리즈 전체에서 니오가 구세주, 지저스의 모습으로 비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런데 그게 문제인가? 그러면 알 될 이유가 있는가?)

그들은 아마도 인간들이 영웅적으로 싸워서 '못된' 기계들을 때려부숴야 속이 후련해서 박수라도 쳤을 모양이다.

3.

나는 기계의 시각에서 몇가지 주제를 생각해보련다.

첫째, 니오 대 스미쓰, 기계와의 화해?

영화의 대미를 장식하는 거의 '만화' 수준의 니오와 스미쓰의 싸움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 (아, 그렇지만 나는 이 장면 재미있게 봤다. 매트릭스라는 시스템안에서 벌어지는 싸움이 만화같은 거야 당연한 것이 아닌가. 사람들은 별걸 다 갖고 시비다.)

아니 도대체 스미쓰라는 친구는 왜 이렇게 니오를 괴롭히는 것일까? 그리스도와 적그리스도의 싸움? 이 영화를 혼돈스럽게 만드는 이유중 하나. 이야기 전개가 실제 세계(모피우스의 표현을 빌리면 "현실이라는 사막")와 기계가 만든 거대한 가상현실시스템인 매트릭스를 오가며 벌어진다는 점이다.

더욱이 3편에는 이 두 개의 세계와는 또 다른 세계, 즉 현실과 매트릭스의 중간계까지 등장하여 사람을 더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인터넷에서 올라온 어느 매니어의 평에 따르면 이 중간계는 하나의 매트릭스에서 다른 매트릭스로 이어지는 통로라는 설명을 한다. 내가 보기에 설득력있는 주장이다. 다시 말해 기계는 여러개의 매트릭스 시스템을 만들었다는 말씀.)

니오나 모피우스처럼 매트릭스를 벗어난 사람들은 현실계에서 기계가 주입한 프로그램을 따르지 않는 존재들이다. (이런 대목에서 지젝이 시도했듯이 라캉의 '현실계'론을 운운하고 싶은 충동이 드는 것은 사실이나 자제한다.)

따라서 그들은 매트릭스에 접속할 때 다른 방식을 택한다. 즉 기계의 '소스'가 주입하는 프로그램 접속방식과는 다른 방식을 시도한다. 그들이 타고 다니는 전투함에서 시도하는 접속. 그런데 니오와 스미쓰의 싸움에서 니오는 기계에게 제안을 한다. 평화를 달라. 그러면 내가 현실계와 매트릭스 모두를 지배할 힘을 갖게 될 스미쓰를 제거하겠다고.

스미쓰가 매트릭스를 지배하게 되었음은 마지막 현란한, 혹은 '황당한' 대결장면에서 잘 나타난다. 매트릭스의 거주민들이 모두 스미쓰의 분신이 된 것. 그래서 스미쓰는 자랑스럽게 외친다. 이곳에서는 자신이 왕이라고. 그렇다면 현실계에서는? 니오도 믿지 못하였지만 이미 스미쓰는 자신이 현실계도 침입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그는 니오의 동료 몸을 통해 현실계로 들어온다. 비록 니오와의 싸움에서 이 동료의 몸은 죽지만 스미쓰는 죽지 않는다. 왜? 그는 이제 단순한 프로그램이 아니라 현실계와 매트릭스 모두를 자유롭게 왕래하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마치 니오가 양쪽 모두에서 그런 초월적 힘을 행사하듯이.

스미쓰가 이런 힘을 갖게 된 것이 1편의 마지막 장면에서 벌어진 매트릭스 안에서의 전투에서 니오가 스미쓰의 몸으로 들어간 순간 일어난 일종의 '프로그램 복제'때문이라는 것은 눈치 빠른 관객은 짐작했을 게다. 그리고 3편의 끝대목에서 오라클을 제거하면서 역시 파일복사를 통해 오라클의 예지력을 갖게 된 스미쓰는 자신의 파멸을 예감한다.

그렇다면 그의 파멸은 니오의 자유 의지 때문인가? 아니면 기계의 프로그램때문인가? 이 전투장면에서 니오는 전투함에서 이루어진 접속이 아니라 기계도시가 제공하는 접속을 통해 매트릭스로 들어간다. 그는 이제 매트릭스 프로그램의 통제아래 있게 된 것이다.

자신의 모습으로 변신하는 니오의 모습을 보면서, 그리고 그 니오가 부서져 가는 모습을 보면서 경악하는 스미쓰나 그와 같이 사라지는 매트릭스의 스미쓰들은 과연 이 평화를 가져온 주체가 누군인지 혼란스럽게 만든다.

기계는 니오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이제 자신의 통체를 벗어난 변종 바이러스가 되어버린 스미쓰를 제거(delete)해 버린 것인가? 그렇다면 애초에 평화를 제안한 니오의 의지는 무엇인가? 이렇게 이 영화는 기계-인간의 관계에 대해, 인간이란 존재에 대해 여러 생각을 갖게 만든다.

니오는 인간인가? 아니면 더 고도화된 프로그램, 그보다 앞서 존재했던 5명의 니오와 마찬가지로 '소스'로 되돌아가 매트릭스를 업그레이드하여 재부팅하는데 사용될 프로그램에 불과한 것인가? 기계들에 의해 운반되어 가는 니오의 모습은 이런 생각을 갖게 만든다. 이 영화는 여기서 인간화된 기계라는 질문을 던진다.

4.

두번째, 니오, 사티, 인간-기계

니오가 단순히 프로그램에 불과했다면 그는 자신을 예수처럼 다른 인간을 위해 희생하진 않았을 것이다. 왜? 모든 프로그램은 다 각자의 목적이 있고 그 목적이 없어지는 순간 제거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다른 것을 지니고 있다. 감정, 사랑, 연민 등.

니오와의 싸움 끝에 스미쓰는 이렇게 묻는다. 왜 너는 포기하지 않는가. 왜? 사랑, 평화, 자유 따위 때문에? 그것들은 다 나약한 인간들이 자신들의 나약함--그가 자주 쓰는 표현으로는 "You, pathetic human being!"--을 포장하기 위해 만든 껍데기들일 뿐이라고.

그러나 니오는 그 사랑 때문에 죽는다. 인간이기 때문에. 그렇다면 스미쓰가 이해할 수 없는 니오의 어떤 점, 프로그램 논리를 넘어서는 감성은 어디서 온 것인가. 인간의 것인가? 아니면 기계가 부여한 것인가? 어려운 질문이다.

3편에 등장하는 사티 가족들--사티는 힌두어로 평화를 뜻한단다--은 프로그램인데도 사랑이라는 감정을 갖고 있다. 오히려 인간이자 뉴(new/neo) 프로그램인 니오는 그것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러자 사티의 아버지가 말한다. 사랑은 단어가 아니라 그 것이 뜻하는 바이다.

그렇다면 니오를 넘어서는 이 새로운 '사랑의 프로그램'은 누가 만든 것인가. 기계가 프로그램한 것이리라. 따라서 사티는 네오가 실패했을 때를 대비한 또 하나의 대안 프로그램, 그러나 기계가 이해하기 시작한 감정이라는 새로운 기능을 부여받은 프로그램이다.

그래서 그녀는 놀랍게도, 영화의 결말에서 니오를 기리는 평화의 둥근 해를 하늘에 띄운다. 그것은 누구를 위한 태양인가? 잔인한(?) 기계들에 대한 경고장? 아니면 기계와의 공존을 거부하고 시스템 파괴를 획책하는 또 다른 인간들, 혹은 스미쓰들에 대한 경고장? 답은 알 수 없다.

인간들은 자신이 다른 존재들이 갖지 못한 인간적인 것을 지녔다고 자부한다. 논리, 이성, 감정, 사랑, 평화애 등. 그러나 그게 과연 인간만의 고유한 자질들일까? 어쩌면 그것도 고도의 프로그램들은 아닐까? 이 영화는 이런 반(反)인간적인 질문을 제시한다.

이까짓 헐리웃 영화 한편에 대해 뭐 이런 머리 복잡한 얘기들이냐고 할 분도 있을지 모르겠다. 그런 분은 그냥 현란한 액션영화로 이 영화를 즐감하시면 된다. 내가 얘기하고 싶은 것은 영화를 대충대충 보고 인상 비평적으로 헐리웃 영화 주제에 무슨 철학이냐는 둥, 혹은 구성이 헐겁다느니 하는 식으로 혹평하지는 말잔 말이다.

물론 나도 이 영화에 대해 불만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하도 인상비평에 근거한 혹평들이 난무해서 몇자 옹호의 단상을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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