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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시 장전된 게임 <매트릭스 리로디드>

작성자

성은애

작성일자

2003-05-17

이메일

easung@yahoo.com

조회

5336


극장에서 보았던 예고편의 엄청난 매력과, 어느새 '포스트모더니즘'의 영상 교과서요, '리얼리티란 무엇인가?'에 대한 철학적 물음으로까지 격상되었던 전편의 명성과 재미때문에 [매트릭스 2: 리로디드](The Matrix Reloaded, 2003) 는 적잖은 기대를 불러 일으켰다. 게다가 잊어버릴만하니까, 지젝이라는 사람이 9.11 이후의 상황에 대해 알듯모를듯한 골치아픈 글을 쓰면서 "실재의 사막에 온 것을 환영하오"(Welcome to the desert of the real)라는 모피어스(Morpheus)의 명대사를 다시 인용하여 새삼스럽게 [매트릭스]를 다시 기억하게 만들지 않았던가.

마침 [매트릭스 2]의 개봉일에는 아이가 캠프를 갔었고, 그리하여 관람 등급이 R인 이 영화를 개봉일에 맞춰보는 '호사'를 누릴 수 있었다. 저녁을 느긋하게 먹고 '심야 영화'를 보리라 맘 먹었지만, 저녁을 예상보다 빨리 먹게 되어 그냥 극장으로 갔다.

모든 액션 영화가 그러하듯, 처음에 확실하게 터뜨려 줘야 속이 답답하지 않다. 과연, 첫 장면부터 까만 비닐(?)옷 입은 트리니티가 오토바이를 타고 어떤 건물로 진입한다. 캬....여전히 머찐 뇬 같으니....그런데 액션이 좀 이상하게 돌아간다 싶더니만, 그것이 네오의 꿈이었음이 드러난다. 그러나 호접몽이 그러하듯, 그게 꿈인지, 아니면 깨어난 이 상황이 꿈인지, 'the one'이라더니 예지능력까지 생겼는지, 아무튼 아리송송하다. 스포일러라고? 아, 이정도는 스포일러라고 할 수도 없다. 내가 앞으로 '스포일'할 여러분의 기대감에 비하면 말이다.

그 이후, 영화의 대부분은 아마도 인내심을 시험하는 고통스러운 과정이 될 것이다. 지루하다는 뜻은 전혀 아니다. 컷은 숨가쁘게 바뀌고, 쉴새 없이 철학 강의가 나오는가 하면, 눈이 휙휙 돌아가고 벌린 입을 다물지 못하게 하는 현란한 액션도 나온다. 전편에는 등장하지 않던 자이언(Zion)이 그 웅대한 모습을 드러내고, '현실'이 무엇이냐, 하는 전편의 질문은 이제 '인과'냐 '선택'이냐의 문제로 모습을 바꾼다. 모피어스의 여자관계가 드러나고, 네오와 트리니티는 사랑을 나눈다. (그렇다고 이 베드신때문에 R 등급이 된 것은 절대로 아니다.^^;)

네오는 날고, 스미스는 카피한다. 자이언은 조촐한 레지스탕스이 기지라기보다는 거대한 지하 도시이며, 그 안에도 권력다툼과 알력이 있는 것으로 형상화된다. 자이언은 위기에 처하고, 이제 그 결과가 어떻든 전쟁의 종결이 임박한 것으로 보인다. 네오는 자이언의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매트릭스'의 '소스'로 들어간다......얘긴 그럴듯하다고? 그렇다. 그럴듯하다. 게다가 '소스'로 들어가면 엄청난 비밀이, 그리고 또한 엄청나게 어려운 선택이 네오를 기다리고 있다. 그것까지도 그럴듯하다고? 줄거리만 얘기하면 그렇다. 그런데 이 그럴듯한 이야기를 엄청나게 돈을 들여, 엄청나게도 허접스럽게 꾸며놨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전편에 나왔던 (그리고 물론 그 사이에 <반지의 제왕>에서 엘프족의 왕 엘론드로 출연했던!^^;) 스미스 요원은 이제 자신을 무한대로 복제한다. 재미있는 설정이다. 요상한 액센트로 말하는이 아저씨는 그 특이한 억양으로 음료수 선전에도 나와서 상당한 인기를 끌고 있다. 아무튼, 그래서 이번에는 이 스미스 아저씨를 엄청나게 많이(!) 볼 수 있다. 네오가 아무리 강해졌다 한들, 스미스 요원이 무한대로 복제가 되는데 어찌 당하랴.

그런데, 웃기는 건 '복사판'이 아무래도 '원판'보다 질이 떨어지는 것같다는 거이다. 이론적으로 말해서, 디지털 시대의 복제란 '원판'과 '복사판'에 구별이 없는 것이 특징이다. 그런데 스미스의 경우, 복제기술은 아마도 아날로그 시대의 복사에 가까운 듯하다. 까만 양복에 까만 라이방, 그리고 무표정하고 건조한 억양으로, 등장했다하면 엄청난 공포 분위기를 조성했던 전편과는 달리, 이 복사판 스미스 아저씨는 아무래도 그 '질'에 있어서는 전편보다 확연히 떨어진다. '다다익선'(이는 과천 현대미술관에 전시된 백남준의 비디오 아트 제목이기도 하다)이라는 말도 있지만, 아무래도 떼거지로 나오다보면 좀 허접스러워지는 게 사실이다.

총알도 슉슉 피하던 그 무서운 스미스 아저씨가 떼거지로 등장하여 네오를 잡겠다고 광분하는데, 전편에서 뒤로 허리를 마구 꺾어가며 겨우겨우 총알 피하다가 마침내 허벅지에 한 방을 스쳐맞고야 말았던 네오는 이제 괄목상대할만큼 커버렸다. 이제 네오는 하늘을 난다. 마치 수퍼맨처럼. 나중에는 애인도 구한다. [수퍼맨] 시리즈 중에는 수퍼맨이 죽은 애인을 되살리려고 빛보다 빠른 속도로 지구 주위를 거꾸로 휙휙 돌아서 시간을 몇분 앞으로 돌려놓는 황당무계한 장면이 있다. 네오는 수퍼맨보다 더 황당무계한 공력으로 그 수많은 적들을 물리치고, 애인도 구하고, 아무튼 뭐든지 다 한다.(물론 밟히지 않을까 자못 염려되는 길다란 검은 코트도 여전하고, 아무리 험한 싸움에서도 검은 라이방을 벗지 않는 것도 여전하다. 거, 싸울 때 안경 끼고 있으면 위험한 거야 상식 아닌감...?-.-;) 아무튼 그러면서도 계속 자기가 뭘 해야 하는지 모르겠다며 엄청나게 썰렁한 고민을 때린다. 점점 짜증난다.

오, 참, 짜증을 덜기 위해서 새로운 인물들도 많이 나온다. 전편에서 프로그램 로드하느라 땀뺐던 탱크 대신에 링크(Link)라는 시커먼 놈이 등장한다. 마누라가 쫌 이뿌다는 거 말고는 별 볼일 없다. 나이오비(Niobe)라는, 그리스 신화에서 여신에게 맞짱 떴다가 자식들 다 죽이는 그 '니오베'가 나와서 모피어스와 뭔가 어떻게 해볼 것같더니, 결국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아, 전편의 그 '빨간 사탕'도 나오고 '숟가락'(!)도 나온다. (기억하시는가? 네오가 오라클을 처음 만나던 날, "There is no spoon"이라며 유리겔라 묘기를 보이던 그 깜찍한 아이를...) 예고편의 자동차 추격 장면에서 현란한 그래픽 보여주었던 '히끄무레 쌍둥이'도 빼놓을 수 없다. "뽀뽀 함 해주면 안잡아 먹~~지"하는 장면에 잠깐 얼굴을 비춰주는 모니카 벨루치의 아름다운 자태도 언급하고 넘어가야만 쓰것다. 꽤 매력적인 트리니티도 모니카 벨루치(퍼세포니 역) 앞에 서니까 빛이 바래더라. 내가 트리니티 같으면 자이언이 망하거나 말거나, 당장 머리끄댕이 잡았겠다..... 이쁜 것이 하도 잠깐 나오니까 미국의 영화 게시판에선 이걸로 끝나는 게 아닐 거라며 난리가 났다.

자, 요점만 간단히 해보자. [매트릭스 리로디드]는 전편에 나오는 현실-가상 현실, 인간-프로그램의 관계를 마구 흐트리고 뒤집어 놓는다. 그리고는 수학적 인과관계와 자유의지, 선택의 문제를 불러들인다. 물론 '선택'이 전적으로 자유로운 것이냐, 아니면 자유롭다는 착각만 주는 것이냐는 논란의 여지가 많다. 수많은 컴퓨터 게임에서도 그러하고, 고전적인 화장실 괴담("빨간 종이 줄까, 파란 종이 줄까?")도 그러하거니와, 우리 앞에는 수많은 '선택'이 있다. 어떤 선택은 무엇을 택하든 그게 그거이기도 하고, 또 어떤 경우에는 "순간의 선택이 평생을 좌우"하기도 한다. 그러니 사는 게 재미있는 거 아니겠나. 이런 구도를 '설정'하는 것까지야 뭐 그런대로 괜찮다.

그런데 문제는 이게 전편의 '포스트모더니즘 교과서' 수준에서 '지루한 게임과 조잡한 철학 강의의 뒤범벅'으로 떨어졌다는 데에 있다. 강의도 길어지고, 액션도 길어진다. 각각의 시퀀스에 배당된 시간이 절대적으로 길어졌는지는 모르겠다. 그런데 아무튼 그게 '길게 느껴진다'는 것이 문제다.

도대체 성룡이나 이연걸 등이 나오는 홍콩산 쿵푸 영화 없었다면 어떻게 액션 장면을 찍겠다는 것인지! 이 영화의 모든 격투 장면은 홍콩 영화에서 익히 보던 무술 장면으로 가득차 있다. 물론 손끝에서 기가 팍팍 느껴지는 그런 액션도 아니고, 피아노줄 매달고 당당당당...날아다니는 그 '날라리' 무공인데, 전편에서 보이던 최소한의 참신함도 사라진 이 액션 장면들은 쉴틈없는 현란한 움직임, 슬로우 모션의 활용, 카메라의 360도 회전 등 전편에서 선보였던 각종 기법들에도 불구하고 엄청나게 '지루하다'는 생각을 떨칠 수 없게 만든다. 그나마 트리니티와 모피어스, 그리고 그 '희끄무레 쌍둥이' 가 벌이는 고속도로 추격 씬 정도가 그런대로 볼만하다. (여기서조차도 차안으로 침투한 '희끄무레 1'과 모피어스가 싸우는 장면을 보노라면, 좁은 공간에서의 아기자기한 액션에서 연신 감탄사를 뱉게 하는 성룡이 그리워진다...)

솔직하게 말하자. 나는 [매트릭스 리로디드]에 엄청난 실망을 느꼈다. 기대가 유달리 컸던 것도 아니었다. 전편이 워낙 '명작'이어서 그랬을까? 그렇지 않은 것같다. 나는 전편에서도 다 죽은 네오를 트리니티가 '사랑의 힘으로' 살려내는 장면에서 '켁...!'하고 어이없는 탄식을 뱉을 수밖에 없었더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란한 액션과, 알쏭달쏭한 설정이 매력적이어서 재미있는 영화로 분류해놓았더랬다. [매트릭스 리로디드]는 전편에서 잘 나가다가 '확 깨버리게' 만들었던 그 촌스런 신파쪼의 사랑 타령이 뭐가 그리 좋다고 영화 전편에 그걸 좌악~~ 깔아놓았다. 게다가 전편에서 정말 꼬물거리는 '벌레'로 형상화 되었던 '버그'가 다소 귀여운 느낌을 주었다면, 이번의 그 '키 메이커'는 참 나....귀엽다고 하기엔 좀 유치한 수준 되시겠다.

물론!! 아직 올해 말에 개봉될 3편이 남아있다. "To be concluded"라는 마지막 자막은 다음 편이 완결편이라는 얘기겠지만, 내게는 "딱 한번만 더 우려먹을께, 응?"이라는 애원으로 들린다. 아무래도 3편은 비디오로 보게 될 듯하다. 물론 내가 예상할 수 있는 뻔한 '결론'도 나름대로 상상해보았으니 문자 그대로 '안 봐도 비디오'라 할 수 있겠으나, 여기서 그 얘기까지 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매트릭스 리로디드]는 한 번 끝장을 본 게임을 '리로드'하여, 그것도 '치트키'를 써서 플레이하는 것처럼 싱겁다. 새로운 레벨과 새로운 미션, 새로운 캐릭터와 새로운 아이템이 주어진다 한들 그게 뭐 대수랴. 어차피 다 게임일 뿐인데. 게임에 목숨 걸다가 게임에 영영 빠져서돌아오지 못하는 [아바론]의 게이머들처럼 되긴 싫다. '로딩'은 한번으로 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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