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세미나들

 *영미연 안팎 소식

 *이달의 학술행사

 *문화 리뷰

 *다른 집 가기

 *책읽기,세상읽기

연구회소개 / 회원가입 / 분과연구실 / 도서실 / 회의실 / 사이트맵 / 자료회원연구실 / 자유게시판

                     

제   목

 미야자키 감독과 여성

작성자

성은애

작성일자

2003-05-10

이메일

easung@yahoo.com

조회

4782


미야자키의 대표적인 애니메이션을 보면 '주요' 인물들이 대부분 여성이다. 예외가 있다면 <루팡 3세><미래소년 코난><라퓨타><붉은 돼지> 정도인데, <코난>과 <라퓨타>의 주인공은 2차 성징이 채 나타나지 않은 어린 소년이 주인공이고, <붉은 돼지>에서는 주인공이 남성이긴 하지만(음....'돼지'라서 그렇지....^^;), '피오'라는 활달한 소녀의 역할이 매우 크다.

<이웃의 토토로><마녀택급편><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은 어린 소녀의 성장기가 중심에 놓인 작품이며, 여기서에 사실 남성들의 역할은 별로 없거나 있다고 하더라도 부수적인 데 그친다.

<모노노케 히메>와 여러모로 비견될 수 있는 <바람 계곡의 나우시카>에서도 자연과 소통하는 법을 알고 있는 나우시카는 여성이며, 그녀와 대립적인 관계에 있는 토르메키아 왕국의 크샤나도 여성이다. 산-에보시의 대립은 말하자면 나우시카-크샤나의 대립과 대응관계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자연과 소통할 줄 알고, 자연과 하나가 되어있는 존재도 여성이지만, 자연을 파괴하고 자연에서 얻어진 것을 '무기'로 사용하는 호전적인 존재도 여성으로 설졍되어있다. 이 두 애니메이션에서 남성들은 기껏해야 무기력한 방관자이거나, 한쪽 편에 서서 졸졸 따라다니는 역할이다.

여성에 대한 미야자키 하야오의 공식적인 설명이나 발언을 본 적은 없다. 그러나 짐작컨대 이렇듯 여성을 전면에 내세우는 것은 다분히 의식적인 행보가 아닌가 한다. 나는 미야자키 하야오의 애니메이션을 통하여 웬만한 문학 작품이나 영화, 애니메이션에서 보던 것보다 훨씬 다양하고 생생한 여성 인물들을 만났다.

<센과 치히로...>의 센(치히로)나 <이웃의 토토로>의 사즈키와 메이, <마녀택급편>의 키키는 연약하고 아름다운 모습으로 씩씩한 남성에게 구원받기를 애처롭게 기다리는 소녀들이 아니며, 그렇다고 비현실적으로 펄펄 날아다니는 '원더우먼'도 아니다. 이들은 적당히 약하고, 이런저런 약점들도 있으며, 그러나 매우 씩씩하고 구김살 없고 사랑스러운 소녀들이다.

이들이 성장하는 데는 조금 더 어른스러운 여성들의 힘이 크게 영향을 미친다. 그 '어른스러운' 여성들은 때로 <마녀택급편>의 어슐라처럼 자유분방한 예술가이기도 하고, <이웃의 토토로>에 나오는 이웃 할머니처럼 따뜻하고 원숙한 '어머니 대지'의 이미지이기도 하며 <센과 치히로...>에 나오는 린처럼 활달하고 화통한 큰언니이기도 하다.

그런가 하면 여성이라고 다 '좋은 편'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라퓨타>에 나오는 공중해적 도라는 어떤가? <나우시카>의 크샤나, <모노노케 히메>의 에보시, <센과 치히로...>의 유바바는 모두 여성이면서 어지간한 남성들을 꼼짝 못하게 쥐어 흔드는 인물이다. 여성이니까 조금은 인정있고 부드러울 거라는 선입견을 통째로 박살내는 이들은, 어떤 상황에서는 여성도 남성 못지 않게, 혹은 그보다 더 강력한 지배력을 지닐 수 있으며, 남성 못지 않게, 혹은 그보다 더 통크고 야심만만하고 냉정하고 잔혹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세상에는 여러 종류의 '여성들'이 있다. 여성은 그래도 '자연'과 조금 더 가까우며, 조금 더 부드러우며, 조금 더 감성적이며.....이런 이분법은 이 강력하고 카리스마 넘치는 여성 '독재자'들을 보면 송두리째 날아가고 만다.

그러나 미야자키 감독의 세심함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이 '악역'을 맡은 여성들은 어떤 남성 악역 못지 않게 냉혹하고 잔인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될 수밖에 없었던 나름대로의 근거와 이유를 가지고 있으며, 일방적인 악역이라기보다 한편으로는 공감과 연민을 자아내는 인물들이기도 하다.

<라퓨타>의 해적들은 처음에 시타가 탄 비행선을 습격, 약탈하는 악당으로 등장하지만, 이들이 없더라면, 그리고 그 두목인 도라가 없었더라면, <라퓨타>의 백미인 비행장면들과 엄청난 공중 활극이 가능하기나 했겠는가? 게다가 이 할매는 꽤 웃기기까지 하다. 도라의 얼굴을 그대로 빌어온 <센과 치히로...>의 유바바 역시 황금만능주의와 권력욕의 화신이기는 하지만, 유일한 약점인 아들에 대한 맹목적인 애정은 그녀의 권위에 상처를 냄으로써 웃음을 유발하는 한편, 플롯의 진행에 결정적인 계기를 제공하기도 한다.

<나우시카>의 크샤나는 어떤가? 그녀는 멍청하고 사악한 오빠들을 대신해서 토르메키아 왕국을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다. 마치 난폭해진 아테나 여신같은 모습으로 무기와 전쟁과 정복을 숭상하는 그녀는 대단한 광채를 뿜어낸다. 악역이라도 일단은 멋있어야 얘기가 그럴듯해지는 요즘 영화의 공식에 충실하게 따르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애니메이션이 아닌, 만화책으로 출간된 <나우시카>에서 그녀는 결국 나우시카의 노선에 동조하는 일대 전환을 이루어내기도 한다.

<모노노케 히메>의 에보시의 경우, 일단은 자연-숲과 대립하여 철을 생산하고 철을 다루는 '산업화'의 화신으로 그려져 있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에보시가 이끄는 공동체야말로 건강한 노동이 살아 숨쉬는 마을인 면도 있다. 이 마을의 주요 노동력 역시 여성들인데, 이 여성들은 학대받고 착취당하던 자신들을 에보시가 거두어 이렇듯 건강한 공동체의 일원이 되게 해준 것에 대해 감사하는 마음마저 지니고 있다. 떠들썩하고 활기 넘치는 이 여성들의 노동현장은, 마음 맞는 사람들과 땀흘리며 일하는 과정의 즐거움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나는 <모노노케 히메>에서 미야자키의 탁월함이, 막연히 자연을 파괴하는 인간이라는 대립항을 설정하고 개발과 발전에 대한 '자연신'의 적개심에 공감을 두는 것 뿐만이 아니라, 어떤 면에서는 인간이 존재하는 한 '모노노케'의 세계가 줄어들고 에보시의 마을이 확산되는 방향이 결국 필연적인 역사적 추세라는 점을 외면하지 않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결국 산과 아시타카가 헤어져야 하듯이, 모노노케 히메가 설 자리는 점점 줄어들 것이다. 그것이 <모노노케 히메> 전체를 어둡게 감싸고 있는 비극적인 그림자의 정체이며, 이 애니를 보기 드물게 비장하고 어두운 것으로 만드는 근거이기도 한 것같다.

에보시와 산이 어떻게 공존할 것인가? 이에 대해 <모노노케 히메>는 별다른 대답을 준비하지 않았다. 그러나 쉽사리 단답형으로 나올 답이 아닌만큼, 이모저모로 '탐구'를 계속하는 것이 필요하겠다. 아마 미야자키 감독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으리라고 믿는다.

 

   관련글 제목

작성자

작성일자

조회

귀신들린 아이? 산의 아이?: <모노노케 히메>를 보고

오길영
2003-05-09
4852

미야자키 감독과 여성 <- 현재글

성은애
2003-05-10
4782

여성, 자연, 문명

오길영
2003-05-10
4438

 

 

 

연구회소개 | 회원 가입  |  분과 연구실  |  도서실  |  회의실  |  사이트맵  |  자료회원연구실 | 자유게시판

운영위  |  안과밖편집위  |  자료실편집위 |  영미문학연구 편집위 |  출판기획위번역평가위

Copyright 2001 All rights reserved SESK.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