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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장국영의 자살, 80년대의 추억

작성자

오길영

작성일자

2003-04-03

이메일

조회

5014


장국영이 죽었다. 스스로 몸을 던져 목숨을 끊었단다.

"영화 <패왕별희>에서 사면초가에 빠진 항우 앞에서 칼을 들고 춤추다 자결했던 우미인처럼, 그는 1일 오후 홍콩섬 센트럴에 있는 만다린오리엔탈 호텔에서 뛰어내려 스스로 자신의 삶에 이별을 고했다. 올해 46살." (한겨레 기사)

80년대 중후반기, 90년대 초반기에 대학(원)을 다녔던 많은 사람들이 그랬겠지만 그때, 나는 모든게 팍팍하고 답답하게 느껴졌다. 강고해 보이는, 그러나 지극히 부도덕한 현실의 권력 앞에 나약하고 주저하는 자신의 모습.

나를 아는 친구들은 지금도 그런 애기를 한다. 그 당시에 내가 모임에만 가면 자주 했던 말이 이랬단다. "그만 집에 가자." 그래, 집에 가자. 왜 그랬을까? 아마도 그건 그 때 내가 느꼈던 팍팍한 현실의 암울함에 대한 내 나름의 '항의'였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을 지금 문득 해본다.) 아마 그게 그때나 지금이나 몸과 마음이 무거운 백면서생의 한계였을지도 모른다.

내가 그때 장국영, 주윤발, 장만옥, 이연결, 양조위 등이 나온 홍콩영화들에 매혹되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모르겠다. 적어도 그들의 영화를 보는 동안만은 실제의 팍팍한 현실과는 다른 현실을 꿈꿀 수 있었으니까. (나는 지금도 '위안'을 주는 문학과 예술의 힘을 믿는다. 물론 고발하고 비판하는 그들의 역할을 또한 인정하지만).

강고해보이나 지극히 부도덕한 조직의 힘 앞에, "강호의 의리가 땅에 떨어졌다"는 지금 들어보면 유치해보이는 말 한마디에 기대어 자신의 몸을 던져 그 힘과 맞서 싸우다 죽어가는 영웅들의 모습. 혹은 역시 지금은 유치해 보이는 영원한 사랑과 그것을 가로막은 현실의 힘과의 갈등.

그때 내게 이들 영화는 현실에 몸살을 앓고 있던 내게는 좋은 위안제 역할을 했다. 그리고 그 영화들에 장국영이 있었다.

장국영은 강력한 카리스마를 자랑하며, "강호의 의미가 땅에 떨어졌다"는 말을 읊조리며 죽어가는 주윤발 같은 영웅이 아니다. 그는 오히려 나같은 보통 사람들의 연약함과 나약함, 그러나 그 나약함 속에 숨은 어떤 힘과 비애를 같이 보여주는 배우였다.

내가 주윤발보다 장국영을, 그리고 양조위에게 더 큰 애정을 느끼며 그들의 캐릭터들에 공감했던 이유도 이때문이리라. <패왕별희>에서 장국영이 맡았던 우미인이 보여주는 비애와 고통, 애증이 얽힌 눈빛과 표정, 몸짓이 바로 우리의 모습이 아니었을까? 그런 연기를 그 말고 누가 할 수 있었을까?

그런 장국영이 갔다. 이런 모습들을 남기고.

"<아비정전>의 거울 앞에서 맘보춤을 추던 남자, <성월동화>의 거칠고 고독한 눈빛, <해피 투게더>의 연민을 불러일으키던 슬픈 얼굴, <패왕별희>에서 두꺼운 분도 감출 수 없었던 처연한 표정…. 장궈룽은 그 기억 속에만 또렷이 남게 됐다."

장국영의 죽음은 내게 이미 사망선고를 받은 홍콩영화의 죽음을 확인해주는 상징으로 보인다. 촌스럽고 과장되고 유치해보이는, 그러나 동시에 풋풋하고 인간미 넘치고 때로는 어떤 삶의 통찰조차 내게는 보여주었던 홍콩영화의 사망확인서. 한 시대의 종언.

어제 그의 자살소식을 담은 신문기사를 읽으며, 문득 이제는 점차 스러져가는 내 대학(원)시절의 추억과 함께, 장국영은 이제 내 "기억 속에만 또렷이 남게 됐다."
어제, 오늘 나는 한편으로는 분노하고 한편으로는 슬프다. 침략전쟁에 참여하게 된 전쟁범죄국 국민이 된 분노. 그리고 내 젊은 시절의 한 상징적 추억이었던 장국영의 죽음 때문에 느끼는 슬픔.

부디 그의 명복을 빈다. 저 세상에서는 평안하기를. 저 세상에서는 더 이상 사람살이로, 사랑으로 고통받지 않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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