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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의 초상 --<나의 그리스식 웨딩><어바웃 슈미트>

작성자

성은애

작성일자

2003-03-13

이메일

easung@yahoo.com

조회

4976


내 사랑하는 우리 아버지
문안으로 달려들어가 반지를 사려고 해요!
예, 저는 가고 싶어요.
제가 그를 헛되이 사랑하는 것이라면
베끼오 다리로 달려가겠어요.
달려가서 아르노 강에 몸을 던지겠어요, 내 이 괴로움을, 이 고통을!
오 신이시여, 저는 죽고 싶어요.
아버지, 저를 불쌍히 여겨 주소서.

-- 푸치니 오페라 <자니스키키> 중에서,
"오! 나의 사랑하는 아버지"(O mio babbino caro)

E. M. 포스터(Forster)의 원작 소설을 제임스 아이보리(James Ivory) 감독이 영화로 만든 <전망 좋은 방>(A Room with a View)의 배경에 흘러나오는 이 어여쁜 아리아는 웬만한 소프라노의 음반에는 대개 한 자리씩 끼어있다. “오!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 라는 제목과 달리 가사의 내용이 “이 사람하고 결혼하는 거 말리면 죽어버릴테야용~~”하는 철딱서니 없는 딸의 결혼 강행용 앙탈을 담은 것임을 알게 된 것은, 듣기 좋아 흥얼거린 멜로디가 거의 입에 붙을 정도가 되고 나서였다. 거 참,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딸은 왜 굳이 아버지가 싫어하는 남자랑 결혼을 하겠다고 개기는 것일까? (물론 아들도 꼭 엄마가 싫어하는 여자랑 결혼하겠다고 나서지만, 엄마가 머리를 싸매고 누워버리면 상당수는 포기한다…… 딸년들이 더 독종이다. 내 경우를 봐도 그렇다…..-.-;;)

연도도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는, 한참 전의 일이다. 한 술자리에, 예쁜 딸 아이의 재롱으로 한창 정신을 못 차리고 있는 두 사람의 젊은 아버지가 있었다. 한 사람이 말했다. “아….우리 아무개 결혼하는 날은 내가 자살하는 날일 거야.” 모인 사람들은 정말 저 사람은 딸이 너무 예뻐서 나중에 시집을 못 보낼 것같다며 웃었다. 그러자 그 말에도 전혀 웃지 않던 또 한 아버지가 덧붙였다. “죽긴 왜 죽어. 나는 애가 결혼해도 그냥 내가 데리고 살 건데…” 그들이 평소에도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말도 안 되는 소리를 일삼는 사람들이었더라면, 이 발언이 이렇게 오래도록 기억나지는 않았을 것이다. 사실 나는 그날, 아버지에게 딸이란 인생 최대의 약점이로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나한테 숱한 ‘배신감’을 느껴야 했을 나의 아버지도 떠올렸다.

<나의 그리스식 웨딩>>(My Big Fat Greet Wedding 2002)과 <어바웃 슈미트>>(About Schmidt 2002)의 공통점은 완고한 초로의 아버지가 나오고 그의 맘에 영 못마땅한 딸의 결혼식이 기어이 성사된다는 스토리를 포함한다는 것이다. 이런 종류의 수많은 영화에서 아버지는, 가족을 먹여 살리느라 평생을 소처럼, 말처럼 일한, 이제는 늙어 힘없는 아버지는 “자식에게 이기는 장사 없다”는 속담을 실현하며, 젊은 세대에게 길을 내어준다. 물론 속으로 “너도 자식낳아 길러봐라!”라는 악담을 던지면서.

<나의 그리스식 웨딩>이 전통과 민족적 정체성을 중시하는 엄청난 대가족의 압력 속에서 자신의 삶을 찾아나가고, 나아가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를 찾아나서는 과정을 딸의 입장에서 그린 영화라면, <어바웃 슈미트>는 은퇴, 사별, 딸의 결혼 등 노년기의 일상사를 딸의 인생에 대해서 뿐만 아니라 스스로의 인생에 대해서 이제는 적극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늙은 아버지의 입장에서 담담하게 그린 영화다.

<나의 그리스식 웨딩>은 전적으로 시나리오를 쓰고 주연을 맡아 열연한 니아 바르달로스(Nia Vardalos, 툴라 역)의 시선을 따라간다. 그녀의 눈으로 볼 때 아버지는 갑갑할 정도로 보수적이다. 그리스 여자가 일생을 통해 해야할 일은 첫째, 그리스 남자를 만나서, 둘째, 그리스 애들을 생산하고, 셋째, 죽는 날까지 이들을 걸지게 잘 먹이는 일이라는 것이 아버지의 신조다. 그러니 여자애들은 공부를 많이 시켜봤자 별 소용이 없다고 여긴다. 그림을 좋아하는 아들의 취향도 완전 묵살한다. 아버지의 주장에 따르면 그리스인은 세계에서 가장 훌륭한 민족으로서, 철학과 천문학과 민주주의의 창시자이며, 모든 단어의 어원을 거슬러 올라가면 그리스어로 귀착된다. (요 개그는 너무 자주 남용되는 경향이 없지 않다. ‘기모노'(!) 정도에서 그쳤으면 좋았을 것이다.)

그러나 플라톤을 떠올리며 자신을 집안의 '머리'라 칭하는 이 아버지는 사실은 그냥 힘없이 늙어가는 초로의 가장에 불과하다. 부엌에서 매일 음식만 하는 것 같지만 아버지보다 여러 수 윗길인 어머니 마리아는 남자가 집안의 ‘머리’라면 여자는 집안의 ‘목’이고, ‘머리’를 원하는 방향으로 돌리는 것은 바로 여자들이라고 주장한다. (혹자는 스테레오타입이라고 비난하지만, 이 영화에서 보면 그리스 여자들 무지 기세등등해서, 여차하면 뼈도 못 추리게 생겼다. 한국 여자들은 너무 온순하다.....^^;;) 얼핏 보기엔 전통적인 가부장제의 분위기를 풍기는 툴라의 집안도, 따지고 보면 여자들이 쥐락펴락하는 상황이다.

툴라의 집에서 아버지의 ‘권위’란, 유리 세정제 ‘윈덱스’를 만병 통치약이라 주장하는 아버지의 고집만큼이나 우스꽝스럽다.(근데 이거, 한번 실험해 보고픈 충동을 느끼게 만든다. 정말 잘 들을까?) 그렇게 고집을 부린 결과? 아버지 뜻대로 된 건 아무 것도 없다. 딸은 앵글로 색슨의 고등학교 선생과 결혼하여, 무미건조한 시부모를 맞이한다. 그러나 아버지는 끝까지 최선을 다한다. 처음에는 말리기 위해서, 그리고 다음에는 딸을 축복하기 위해서. 다 그리스식이다. 그리고 딸도 그런 아버지를 적절한 선에서 유쾌하게 수용한다. 너무 설렁설렁 해결되어 좀 싱겁지만, 그런대로 유쾌한 해피엔딩.

반면 슈미트씨의 ‘가부장적 권위’는 그나마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다 물 건너간 후이다. 아버지의 실직으로 시작된 영화에서 딸은 이미 집을 떠나 독립해 있는 상황이고, 영화의 초반에 아내마저 죽어버림으로써, 슈미트씨가 큰소리칠 수 있는 대상은 아무도 없다. 그나마 자신에게 찍소리 못하고 순종해왔던 아내가 한때 자기 아닌 다른 남자(그것도 자신이 잘 아는….!)와 사귀었다는 것을 아내가 죽은 다음에서야 발견한 슈미트씨의 배신감이란! 부엌일이라고는 도대체 아무 것도 할 줄 몰라서 삽시간에 집안을 거대한 쓰레기통으로 만들어놓고야 마는 우리의 슈미트씨는, 껄렁하고 믿을만한 구석이 하나 없는 말총머리 사위가 맘에 안 들어 미칠 것 같은 슈미트씨는, 이제는 사회적으로나 자식에게나 또 주위 사람들에게나 별 ‘쓸모’가 없어진 슈미트씨는, 가족들은 자기를 다 떠받들고 위하고 배려해줘야 한다는 헛된 생각을 품고 있던 슈미트씨는, 이제 홀로 커다란 캠핑카를 몰고 별 목적도 없는 여행을 떠난다.

슈미트씨는 얼굴도 모르는 ‘은두구’라는 아프리카 소년에게 (전달이 되거나 말거나)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기 시작하며, 가장’으로서 마지막 ‘권위’를 행사하기 위하여 딸의 결혼식에 참석하기 위한 긴 여행을 시작한다. 그러나 이 아버지의 여행은 마지막 가부장적 권위를 행사하는 여행이긴커녕, 사사건건 스타일 구기는 사건의 연속이다. 그리곤 결국은 깔끔한 회사원으로 살아왔던 자신과는 전혀 다른, 히피 분위기의 사돈댁을 받아들이고, 결혼식도 무사히 치른다. 도대체 뭐 극적인 줄거리가 하나도 없어서 (데이비드 린치의 <스트레이트 스토리>도 연상된다…) 그냥 보시란 말밖에 못하겠다.

보기에 따라선 꽤나 밋밋하지만, 잭 니콜슨이 아니면 어떻게 저런 표정이 나오랴 싶은 명장면들이 간간이 있다. 특히 사돈댁 물침대 장면과, 캐시 베이츠 아줌마의 올 누드에 직면한 자쿠지 장면은 두고두고 생각해도 압권이다. 혼자 북치고 장구치고, 꽹과리 치기는 물론 간간이 상모 돌리기도 하고, 아무튼 잭 니콜슨 혼자 설치는 영화다.

그런 우여곡절을 겪고 딸의 결혼식을 치른 아버지들이 얻은 것은 무엇일까? 세상 일은, 특히 자식 일은 전혀 맘대로 되질 않으며, 고집 부려봐야 다 헛일이라는 깨달음? 자식은 어차피 배신자이고 그러니 첨부터 정을 주지 말아야 한다는 교훈? 그래도 결국은 딸이 옳았다는 반성? 나이를 먹으니 점점 힘이 없어져 아무도 자신에게 관심을 가져주지도 않는다는 외로움?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라며 마지막 눈물을 훔쳐내는 “캔디 정신”? 어쨌든 최후의 일각까지 꿋꿋하게 살자는 다짐? 나는 아버지들의 그 복잡한 속을 잘 모르겠다. 어찌 알 수 있으랴, 그 나이가 되어보기 전까지는. 앗, 게다가 나는 아버지도 아니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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