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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흐르는 강물처럼 -- <디 아워즈>

작성자

성은애

작성일자

2003-02-15

이메일

easung@yahoo.com

조회

5462


<디 아워즈>(The Hours). 뭔 소린지 아리송한 이 제목은 Virginia Woolf의 <댈러웨이 부인> (Mrs Dalloway)에서 영감을 받은 Michael Cunningham의 원작 소설을 <빌리 엘리어트>(Billly Elliot)의 감독 Stephen Daldry가 만든 영화이다. 울프의 <댈러웨이 부인>이 클래리싸 댈러웨이 주변의 인물들과 전쟁 나갔다가 정신이 나가버린 셉티머스의 이야기를 오가며 진행되는 것처럼, <디 아워즈>도 <댈러웨이 부인>을 집필하는 버지니아 울프(Nicole Kidman 분), <댈러웨이 부인>을 읽으며 주인공과 자신을 동일시하는 50년대 미국의 전업주부 로라 브라운(Julian Moore 분), 그리고 실제의 삶 속에서 마치 댈레웨이 부인 같은 역할을 하는 2000년대의 작가 클래리싸 본(Meryl Streep 분)과 셉티머스에 해당하는 역할을 하는 리처드 브라운(Ed Harris 분)의 이야기가 절묘한 교차편집으로 진행된다.

‘각색불가능’이라고 여겨졌던 커닝햄의 소설은 달드리의 깔끔하고 정교한 연출과 아름다운 음악과 어우러진 리드미컬한 편집으로 다시 태어났다. 작가 커닝햄은 <뉴욕 타임즈>에 실은 영화 관람기에서 달드리의 연출에 대체적으로 만족감을 표했고, 특히 메릴 스트립이 리처드의 옛 애인과 얘기를 하다가 감정에 복받쳐 균형을 잃고 부엌 바닥에 주저앉는 장면은, 소설로 쓰면 몇 페이지에 걸쳐 묘사해야할 것을 단 한 장면에 보여준 연기라고 감탄했다.

이 외에도 꽃, 계란 등, 일상적인 디테일들이 각 이야기마다 서로 다른 의미로 드러나면서 세 가지 이야기를 하나의 전체로 묶어주고 다시 그 이야기들이 <댈러웨이 부인>이라는 소설과 연결된다. 특히 계란을 톡톡 깨는 장면이 그렇게 엄청난 긴장감을 유발할 수 있다니, 이건 아무나 못하는 일이다.

어쨌든 실력있는 연극 연출가에서 <빌리 엘리어트>로 단번에 흥미로운 작품을 선보인 신예 감독으로 자리잡았던 달드리 감독은 다시 <디 아워즈>로써 복잡하고도 애매할 수 있는 작품을 깔끔하고 섬세하게 풀어낸 능력있는 감독으로 인정받게 되었다. 각기 다른 시간들을 살아가는 세 명의 여성 인물이 보이는 내면의 균열을 보여주는 솜씨도 일품이려니와, 어떻게 평온한 일상 가운데 ‘생사’를 건 싸움이 진행되고 있는가 (이는 사실 <댈러웨이 부인>의 테마이기도 하다) 하는 과정을 세심하게 짚어낸 것은 남성 감독으로서 상당히 독보적인 성취라 여겨진다.

딱이 뭐 남성 감독이라고 편견을 가질 거야 없지만, 그리고 이건 좀 웃기는 얘기지만 아무튼 나는 이 영화를 보고 나서 감독이 게이일 거라는, <빌리 엘리어트>때부터 품어온 심증을 확실하게 굳히게 되었다. 영화에 동성끼리의 키스 장면이 계속 나와서는 아니고, 말하자면 관습적인 생각을 주입받은 남성으로 성장한 사람이라면 이런 면들을 이렇듯 세심하게 짚어내기 힘들 것같다는 막연한 느낌이었다. 예컨대 일상을 섬세하게 짚는 걸로는 내로라는 홍상수나 허진호 감독이 여전히 "남성 감독이라 저건 좀 뭉퉁하네..."라고 느껴지는 것과는 사뭇 대조적이다.

나중에 찾아본 바에 의하면 원작 소설의 작가와 달드리 감독은 둘다 게이였다. 더 특이한 것은 영국에서 가장 영향력있는 게이 50인에 선정되기도 했던 달드리 감독이 최근에 결혼을 (물론 여성과!) 했다는 것이다. 도대체 정체가 뭐냐는 기자의 질문에 그는 어떤 형태로든 사람을 미리 만들어진 틀 안에 넣어서 보는 것을 가장 혐오한다고 밝힌 바 있다. 참, 이 정도면 재미난 뒷공론을 넘어서, 스스로의 정체성에 대해 보일 수 있는 유연성의 극치라 하겠다. 감독의 다음 행보가 기대된다. ^^

얘기가 옆길로 샜다. 아무튼 <디 아워즈>는 평범하고 매끄러워 보이는 일상의 밑에서 조용히 일어나는 생사를 건 싸움과, 회복할 수 없는 균열과, 상실과 좌절, 그리고 이런 것들을 어떻게 감싸안을 수 있느냐 하는 문제를 거창하지 않게, 그리고 아름답지만 아프고 쓸쓸하게 보여주는 영화다. <댈러웨이 부인>에 감동먹었던 독자들에게는 필수, <댈러웨이 부인>을 읽고 “이게 뭐여? 시시해….”라고 느끼셨던 분들이라도 영화가 실망스럽진 않다. 일단 세 여배우들의 불꽃튀는 열연을 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즐거우니까. 하지만 다음 사항은 주의하시기 바란다.

경고 1) <빌리 엘리어트>의 아기자기한 스토리와 그에 딱 맞춤으로 어울리는 Marc Bolan과 Paul Weller의 음악들, 그리고 눈물콧물 나게 만드는 감동 스토리를 인상적으로 기억하시는 분들, 그거 염두에 두고 이 영화보다가는 큰코 다친다. “에레….? 이게 뭐여?”하고 짜증을 낼지도 모른다. 거 왜….있잖은가. 보고나면 멋지고 좋은 영화 같긴 한데, 도대체 뭐 하자는 수작인지 얼른 머리에 안 들어온다는….-.-;;

경고 2) 플롯상으로 나중에 드러나는 연결점이 있긴 하지만, 그게 무슨 대단한 ‘반전’ 씩이나 되는 건 아니니까 그것도 너무 기대마시라. 또한 <댈러웨이 부인>을 읽은 독자들은 대충 플롯의 흐름을 예상할 수 있다. 즉, 영화 자체의 극적인 긴장감이 뭐 그리 대단한 것은 아니니까, 어렴풋이 기억나는 <댈러웨이 부인>과 비교해보는 재미로 만족하시라.

경고 3) 큰 그림보다도, 조그만 디테일들을 눈여겨 보시라. 계란 얘긴 이미 했지만, 파티라는 테마, 꽃을 사는 행위며, 울프가 어린 조카와 나누는 대화, 로라의 어린 아들, 그리고 클래리싸의 딸, 나쁜 사람들은 아니지만 띨빵하고 눈치없는 남자들, 각 인물 뒤에 도사린 역사적 배경들…뭐 이런 자잘한 것들을 보는 재미가 영화의 반 이상 되시겠다.

경고 4) 이 영화가 아마 골든 글로브 상도 받고, 아카데미 상 후보에도 여러 부문 올라 있으며, 베를린 영화제 폐막작이기도 하다. 아무튼 이거 되게 잘 만든 영화라고 칭송받는 분위기임은 사실. 버뜨, 자기가 보기에 재미없으면 없는 거이다. “분위기만 잡고, 이게 뭐여?” 라고 반응해도 상관없을 것이다. 남들이 칭찬한다고 나한테도 좋으란 법은 없으니깐. 약간 취향이 유치한 나로 말하자면, 이게 꽤나 ‘심오한’ 영화고 또한 심오한 것 치고는 산뜻하게 ‘잘 만든’ 것같긴 한데, 내 취향엔 <빌리 엘리어트>가 더 잼나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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