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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예술의 생존, 생존의 예술 --<피아니스트>

작성자

성은애

작성일자

2003-02-03

이메일

easung@yahoo.com

조회

4323


누군가가 이 영화를 보고 나면 허기가 진다고 하기에, 러닝타임이 좀 길고 지루한가보다 했다. 저녁을 든든히 먹고 로만 폴란스키 감독의 <피아니스트>(2002)를 보고나니 밤 12시가 넘었다. 과연, 이렇게 허기가 질 줄이야…! 두시간 반 동안 끼니때 장면은 왜 그리 많이도 나오는지. 그런데 사람들이 뭘 제대로 먹는 꼴을 못 봤으니 허기가 질 수밖에.

화끈한 총쌈질도, 온 세상 다 불꽃으로 터져나갈 듯한 스펙터클도, 썩어가는 시체와 내장 비질비질 기어나오는 참혹한 사실주의도 많지 않지만, 엄연히 이건 ‘전쟁’에 관한 영화다. 하루하루의 끼니와 생존이 아슬아슬하고 무서운 2차 대전 기간의 바르샤바를 배경으로 한 이 영화에서 사람들은 너나 할 것없이 굶주린다.

땅에 흘린 거 줏어먹기, 콩알 숫자 헤아려 끓여먹기, 싹나고 상한 감자 반으로 썰어 먹기, 통조림 하나 따려다가 독일군에게 들키기, 마른 오징어처럼 딱딱해진 빵 이가 부러져라 뜯어먹기, 오랜만에 본 잼 허겁지겁 세손가락으로 찍어 먹기, 그리고 캐러멜 하나로 여섯 식구가 나눠 먹기.....!! 아무튼 전쟁 때문에 겪을 수 있는 궁상이란 궁상은 다 보여준다. 잘 다듬어진 머리에 타이까지 꿋꿋하게 매고 다니던 주인공은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의 영양실조에 시달리고 <캐스트 어웨이>의 주인공 못잖은 참혹한 몰골이 된다.

그러나 가만 따져보면 주인공 슈필만(에이드리언 브로디 분)은 그래도 무척이나 운이 좋은 편에 속한다. 그는 일단 전쟁의 와중에 살아남았다. 그 끔찍한 전쟁을 겪으며 그냥 죽은 사람이 더 운이 좋은 것인지, 그런 상처를 안고 계속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이 운이 좋은 것인지는 몰라도, “개똥밭에 굴러도 이승”이라는 속담을 생각하면 일단 살아남았다는 건 그래도 운이 좋았다는 것을 뜻한다. 물론 너무 끔찍한 상황에서는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죽어본 사람은 없으니까, 그런 비교는 함부로 하는 게 아니다. 아무튼 슈필만이 기어이 살아남으려고 발버둥치는 것을 보면 사는 게 그래도 죽는 것보다는 조금 나은 모양이라고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그는 그냥 일개 필부가 아니라, 꽤 명성이 있는 피아니스트였다. 덕분에 그는 유태인 게토 안에서도 식당에서 피아노를 치는 아르바이트를 할 수 있었고, 자기를 알아본 독일군 덕에 아우슈비츠로 끌려가버린 가족과 헤어져 살아남을 수 있었다. 게다가 지인들의 도움으로 유태인 게토에서 빠져나와 독일군 주둔 지역의 안가에 숨어서 살아남을 수도 있었다. 유태인들이 무기를 밀반입하여 저항을 시도하다가 박격포에 몰살당할 때에도 그는 그 광경을 길 건너편에서 지켜보기만 했다. 그는 중간에 끼니를 제대로 때우지 못해 병이 나기도 하지만, 심각한 부상도 당한 적이 없고, 피아니스트의 생명인 손가락도 끝내 말짱하게 간직했다. 꼼짝 못하고 발각된 상황에서도 피아노 연주로 독일군 장교의 심금을 울릴 수 있었고, 아주 악질은 아니었던 놈을 만나서 이런저런 도움을 받을 수도 있었다. 막판에 띨빵한 행동으로 러시아 군인들에게 죽을 뻔 했으나, 총알마저 용케 그를 비껴갔다. 사실 전쟁통에 이 정도면 아주 양호한 편이다. 몸이 날렵한 것도, 수완이 유달리 좋은 것도, 건장하고 튼튼한 것도 아닌, 그저 길다란 손가락으로 건반을 두들기는 것밖에는 별로 할 줄 아는 것도 없어보이는 그가 그래도 그정도로 버틴 건 참으로 요행한 일이었다.

그러나 관객의 입장에서는 그런 생각을 할 여유가 별로 없다. 관객으로서는 그저 슈필만의 고통스러운 생존과정을 고스란히 같이 느끼며, 그의 행적을 따라가는 수밖에 없다. 간간이 자막으로 나오는 연도와 날짜를 보며 ‘에혀…아직 1년 더 버텨야 하네…”하고 한숨을 내쉬어야 한다. 그리곤 그의 아득하고 막막한 고통에 동참할 수밖에 없다. 이건 그렇게 생겨먹은 영화다. 매우 인상적인 연기를 보여주는 에이드리언 브로디의 모습과, 유태인이 당한 피해를 사실적으로 보여주는 가차없는 화면들이 공감을 더욱 진하게 만든다.

운이 꽤 좋은 편이었던 슈필만이 겪는 생존의 고통이 이러할진대, 더 운이 나빴던 사람들의 삶은 도대체 얼마나 더 끔찍했을 것인가. 그런 의미에서 슈필만의 생존은 ‘반전’의 메시지를 강하게 전달한다. 전쟁은 전쟁의 발발이나 진행과 별 상관이 없는 사람들의 삶까지도 얼마나 힘들과 황폐하게 만드는가. 그가 유태인이건, 팔레스타인 인이건, 아니면 아프간이나 이라크 사람이건, 전쟁으로 인해 겪는 고통에는 민족 구분이 있을 수 없다. 폴란스키는 유태인의 역사적 특수성보다는 극한 상황에서의 ‘생존’에 초점을 맞춤으로써 상투적이지만 또한 꽤 효과적인 ‘반전’의 메시지로 다가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넘들에게 당하고 또 당하는 유태인들.....독일군은 악마, 불쌍한 유태인들.....이런 공식 사실 이제는 좀 지겨울 때가 된 것도 사실이다. 중동에서 벌어지는 일 생각하면, 이스라엘과 미국이 저지른 일들 생각하면, 이제는 이스라엘과 미국이 독일군처럼,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유태인처럼 묘사된 영화도 나와야 하는 거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그렇지만 글쎄….유태인인 스필버그나 폴란스키에게 그런 거 만들라고 주장하는 건 좀 무리가 될라나? 물론 이 영화 자체에 대한 평가와는 좀 별개의 이야기다. 이건 마치 작품 자체로는 별로 흠잡을 데가 없었던 타카하타 이사오의 ‘눈물없이 볼 수 없는’ 애니메이션 <반딧불의 묘>를 보면서 한구석에서 느꼈던 불편함과 비슷한 종류의 것이다.

그런데 곰곰 생각해보니 영화를 보면서 마음이 불편한 이유는 또 있었다. 주인공이 군인이나 정치가나 레지스탕스가 아닌, 도대체 전쟁의 와중에는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는 예술가라는 사실은 슈필만의 삶을 더욱더 고통스러운 것으로 만든다. 그렇다면 피아노가 놓여진 안가에서 들킬까봐 두려워 차마 피아노 건반을 누르지 못하고 공중에서 손을 놀려 연주를 하는 슈필만의 모습은 슈필만이라는 예술가에게 가해진 전쟁의 횡포를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 될 것이다. 그러나 영화의 초점은 전쟁에 의해 생존을 위협받는 예술가의 운명이라기보다는, 후반으로 갈수록 그의 생존 자체가 그 무엇보다 감동적인 ‘예술’임을 보여주는 데로 옮겨가고 있었다. 슈필만이 끝내 살아남아 독일군마저 감동시키고 전후의 화려한 무대에서 멋진 협연을 보여주는 장면은, 이미 그 자체로 예술적인 감동을 선사한 생존’이라는 과정에 따라붙는 일종의 ‘덤’인 셈이다. 감독은 슈필만의 ‘생존’ 자체를 예술적 감동과 등치시킨다. 슈필만의 생존은 그가 연주한 어떤 곡보다도 감동적이다. 이렇게 되면 전쟁은 무고한 사람들과 예술의 생존을 위협하는, 그러므로 어떤 경우에도 피해야할 어떤 것으로 부각되는 것이 아니라, ‘생존’이라는 감동적인 ‘걸작’을 돋보이게 하는 ‘배경’으로 한풀 물러나버린다. 전쟁으로 피폐해진 눈 덮인 바르샤바의 폐허 장면이 불러일으키는 감흥은 끔찍한 전쟁의 잔해라는 느낌보다는 가슴 벅찬 숭고미에 가깝다. 흠....나는 그런 종류의 ‘아름다움’이 참으로 불편하다.

전쟁 중의 ‘생존’은 멋있거나 예술적인 게 결코 아니다. 그러나 감독은 이 영화를 ‘생존의 예술’로 만들어버렸다. 그것이 몇몇 인상적인 장면들과 거장다운 연출, 주인공의 뛰어난 연기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를 아무 유보없이 ‘감동적’이라고만은 할 수 없는 이유다. 전쟁을 배경으로 한 아름다운 휴먼 드라마….이런 거 기대하시는 분들에게는 자못 감동적인 영화일 것이다. 그러나 나는 그 잘난 ‘휴먼 드라마’ 같은 감동은 꽃 피우덩가 말덩가, 전쟁을 정면으로 다룬 영화일수록 어느 정도는 관객들이 전쟁 자체를 비판적인 시선으로 보도록 ‘선동'할 도덕적 의무가 있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종종 한다. 감독이 그 전쟁의 '피해자'였다면 더더욱 그러하다. 긍께, 전쟁하지 말자니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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