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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첨밀밀> 이야기: 중국영화에 대한 몇가지 단상

작성자

오길영

작성일자

2003-01-23

이메일

조회

4703


오래전에 다른 곳에 썼던 홍콩 영화 <첨밀밀> 감상기를 조금 손봐서 올린다.

나를 아는 사람들은 알지만 나는 중국영화를 좋아한다. 이때 중국영화란 중국본토영화, 이제는 한물간 것처럼 여겨지는 홍콩영화, 대만영화를 모두 지칭한다. 그리고 중국영화의 특별한 장르를 선호하는 것도 아니다. 볼만한 수준이 된다면 장르 불문하고 다 좋아한다.

가령 <비정성시> 등의 진지한 혹은 뭔가 찐한 느낌을 주는 드라마 영화, <황비홍>, <동방불패>, 그리고 곧 개봉예정이라 그거 볼 생각에 약간 과장해 가슴이 떨리는 <영웅> 등의 무협 영화, <천녀유혼> 등의 팬터지 영화.

그리고 <영웅본색>, <첩혈쌍웅> 등의 이른바 홍콩 느와르 영화, <소림축구> 등의 코미디 영화, 그리고 오늘 몇자 끄적여 볼 <첨밀밀> 등의 사랑 영화. 웬만한 수준만 되면 다 좋아한다.

(그러니 기억난다. 대학원 시절 억수로 비가 내리는 어느 여름날 대학원 연구실에 모여있던 십수명의 원우들을 대거 끌고 우리 집에서 좋지도 않은 비디오로 <천녀유혼>을 관람하며 그 영화의 '위대성'(?)을 설파하던 기억.

그때만큼 이 영화가 '위대한' 영화라는 생각까지야 들지 않지만 여전히 나는 이 영화가 잘 만들어진 좋은 영화라고 생각한다. 꼭 주제가 진지해야지만 좋은 영화라는 상투적인 견해를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그건 사실 문학작품의 경우도 마찬가지겠다는 생각도 든다.)

물론 중국영화, 특히 홍콩영화의 문제점은 수준이 되는 영화보다는 그렇지 않은 영화가 거의 대다수라는 점이다. 하기야 다른 나라 영화도 사정은 비슷하지 않을까. 그러니 이렇게 말하면 공연히 홍콩영화에 대한 지나친 폄하로 들릴 수도 있겠다.

그래서 나도 수준 낮은 중국영화, 홍콩영화나 좋아한다는 이유로, 영화를 보는 내 '미적 감수성'의 수준을 꽤나 의심당했었다. (이 억울함을 어디 가서 풀꼬?)

그래도 나는 헐리웃 영화보다는 중국영화나 일본 영화를 보면서 가슴이 찡한 적이 더 많았다. 이게 같은 아시아인으로서 느끼는 어떤 비슷한 정서의 공유 때문인지 (이것도 또하나의 인종주의적, 혹은 문화적 편견인가?) 혹은 다른 이유 때문인지는 모르겠다. 어쨌거나 사실이 그렇다.

여담이지만 이런 중국영화에 대한 '편견'을 교정하는 좋은 글들을 아주 오래전에 <씨네 21>이라는 잡지에서 읽었었다. (지금 <씨네 21>에 실리는 글 중에서는 고종석이 연재하는 <아줌마 vs 아저씨>라는 영화감상란이 재미있다. 고종석글의 특장이 잘 드러나는 좋은 꼭지다).

지금 서울 모대학 중문과에 재직중인 유모 교수가 쓴 중국영화, 중국문화에 관해 꽤 오랫동안 연재했던 글들은 분석과 감상의 날카로움만이 아니라 읽는 재미를 주는 좋은 연재였다.

나는 나중에 책으로 묶여 나오면 기꺼이 사보리라는 다짐까지 했는데, 중국영화를 홀대하는(?) 우리 영화판, 출판계의 풍토때문인지 출판되지 못해 몹시 아쉬웠던 기억이 난다.

오늘은 그 중국영화중에서 장만옥, 여명 주연의 <첨밀밀>이라는 사랑영화에 관해 몇마디.

내가 재직중인 대학이 위치한 곳의 비디오 대여비가 서울보다는 조금 싼지라 게을러서 극장에서 보지 못했던 영화를 뒤늦게 빌려 많이 본다.

그런 중에 <첨밀밀>이라는 꽤 오래전에 나온 홍콩영화를 보았다. 영화를 보며서, 보고나서 이런 저런 생각이 많이 들었다. 이와이 슈운지 감독의 <러브레터>나 <4월 이야기>를 연상시키기도 하고. (이와이 슈운지 감독의 이 두 영화에 대해서는 나중에 기회가 되면 다시 몇마디 하고 싶다).

이런저런 생각이 많이 든다고 했지만 더 솔직히 얘기하자면 그것은 생각이 아니라 내 감정에 남긴 어떤 인상의 강렬함이었다. 쑥스러운 얘기지만 어떤 장면에서는 슬그머니 나오는 눈물을 참느라고 어려웠던 부분도 있다.

기본적으로 남녀간의 '사랑'의 본질에 대해 회의적인 나같은 사람도 받은 인상의 강렬함이니까 단순히 감상주의만은 아니라고 생각해주면 고맙겠다. 물론 이 영화를 보고서 그런 느낌이 없었다고 하신다면 그거야 그분의 감상이니 그걸로 그만이다.

영화를 보면서, 혹은 보고 나서 내가 받은 어떤 인상의 강렬함에 대해, 왜 그랬을까하고 생각해 보았다. 이게 다 따지고 분석하는 게 몸에 밴 '문학선생'의 고질병이라는 것을 잘 알지만, 왜 그랬을까?

이 영화의 무엇이 나의 감정선을 그렇게 건드렸을까? 나는 영화에는 문외한이지만 내 견해로는 영화는 문학에 가깝다기 보다는 미술, 특히 그림/회화에 가깝다. 굳이 문학에 비유하자면 영화는 아주 짧은 단편소설에 가깝다. 그리고 그런 단편소설의 힘은 줄거리가 아니라 어떤 인상의 강렬함이라는 것이 내 지론이다.

그게, 내가 줄거리와 인물분석에 치중하면서 되지도 않는 서양이론 갖다가 분석이랍시고 하면서 영화보기의 즐거움을 제대로 음미할 줄 모르는 많은 '영화평론'들을 불신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줄거리를 분석하는 것으로 한 영화가 준 어떤 감동이나 인상을 설명하기 힘들다는 것. 마치 한편의 그림이 준 강렬한 인상은 어떤 글로도 대신할 수 없고 그 그림을 직접 보는 경험을 해보는 것밖에 달리 전달한 방도가 없듯이.

<첨밀밀>은 그냥 쉽게 얘기하면 잘 만들어진 한편의 멜로 영화다. 엇갈리는 젊은 남녀의 운명, 그 운명을 싸고도는 중국, 홍콩, 미국이라는 서로 다른 문화의 충돌. 그렇다고 이 영화가 단지 하이틴 로맨스나 멜로 영화라는 말은 아니다.

그랬다면, 내가 요새 아무리 외롭고 울적한 느낌이 있다고 해도, 적잖게 나이도 먹은 '문학선생'으로서 그냥 감상적인 눈물을 흘리지야 않았겠지.

토를 달자면, 감상적인 눈물이 값어치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나는 오히려 우리시대에 필요한 것은 진정으로 슬픔을 느낄 줄 아는 것, 그것이 어렵다면 감상적이 눈물이라도 많이 흘려볼 기회를 가져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다.

하기야 모든 눈물은 감상적인 것이 아닌가. 감상적이 아닌 눈물은 뭐지? 어쩌면 우리 시대의 또 다른 비극은 우리가 진정으로 마음에서 슬픔을 느끼고 그래서 울 수 있는 '능력'을 상실했다는 것인지도 모른다.

이상한 이데올로기지. 특히 남자는 나이가 들면 어떤 경우에도 울어서도 안되고 감상적인 되어서도 안되고 강해야 하고.

그런데 왜 그래야 하는 것일까. 어쩌면 한국사회는 매우 여성 억압적인 사회인만큼 남성들에게도 다른 종류의 억압을 행사하는 사회가 아닐까. 자신의 감성에 솔직해서는 안될 것을 강요하고 항상 강하고 이성적이고 흔들림 없는 남성/가장이 될 것을 강요하는 사회. 우리사회의 억압성은 이렇게도 드러나지 싶다.

각설하고. 요새 현대문학이론에서야 한물간 얘기로 치부되고 있지만 나는 문학, 영화, 예술은 결국은 삶에 대한 '통찰'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본다.

매우 진부한 얘기처럼 보이지만 내가 이 <첨밀밀>을 보고 어떤 '감동'을 받았다면, 그리고 이 영화가 단지 또 하나의 멜로영화나 하이틴 로맨스가 아니라면 그것은 이 영화에 삶에 대한 통찰, 인간관계, 사랑에 대한 통찰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데 그게 무엇일까. 다시 말하자면 아직 영화를 안 보았다면 한번 봐! 하는 게 정답이다. 그냥 한마디하자면 우리가 살아가면서 뭔가를 잊고 사는 게 아닌가 하는 물음을 이 영화는 던진다.

거기에는 이제는 지나가 버린 나의, 혹은 우리의 20대가 어떤 사무치는 그리움으로 다가오기 때문일 수도 있고. ( 이 점에 대해서는 영화 <4월 이야기>가 더 할말이 많기는 하다).

과연 남녀간의 사랑은 그냥 개인적인 것인지, 그런 사랑 속에 자신들의 힘으로는 어쩔 수 없는 사회적, 시대적 배경이 어떻게 그런 관계를 굴절시키는지, 그럼에도 이제는 해묵은, 진부한 말이 되어버린 '사랑'이라는 말은 왜 여전히 우리에게 울림을 갖는지, 인연은 무엇인지 ...

뭐, 이런 것들이 감독의 좋은 연출과 내가 좋아하는 여자 배우인 장만옥, 그리고 좋은 배우구나 하는 생각이 든 여명의 연기 속에 섬세하게 담겨 있기 때문이다.

(이 두명의 배우가 비슷한 상황이지만 훨씬 가벼운 분위기로 출연한 <소살리토>도 보았는데 <첨밀밀>에 비하면 많이 모자란 영화다. 장만옥의 연기는 여전히 좋지만 여명의 연기는 그만 못하고 씨나리오가 엉성한 느낌을 주어서 실망했다. 그만큼 <첨밀밀>에서 받은 인상이 강했기 때문인가 보다.)

그래서 이 영화가 좋다고 얘기하려니 내가 하고 싶은 인상의 정말 조금밖에는 전달이 안된다. 특히 마지막 장면은 인상적이다. 남자 주인공 여소군과 여자 주인공 이요는 1986(85년인가?)년 중국의 촌동네에서 성공의 꿈을 안고 홍콩으로 상경한다.

영화의 마지막 장면은 이 상경에 담긴 엇갈림의 모티프를 섬세하게 포착한다. 직접 보시고 느끼시길! 자신들의 감정에 솔직하지 못하고 인연의 엇갈림을 안고 굴곡진 삶을 살던 10년 뒤인 1996년 뉴욕. 두 사람은 망연히 길을 걸어가다 전자가게 앞에 멈춰 선다.

가게에서는 두 사람이 처음 만나 같이 부르던, 등려군이라는 여자가수의 사망소식과 그녀의 노래가 들린다. (이 여가수의 노래는 가사는 몰라도 참 좋다. 한번 찾아 들어보시길 강추!)

각자의 표정을 잡던 카메라는 서서히 옆으로 얼굴을 돌리는 두 사람을 비춘다. 여소군을 바라보는 이요의 놀라움과 기쁨으로 엇갈리는 표정. 영화는 거기서 1986년 그들의 홍콩 도착장면으로 돌아간다.

(내가 이런 영화의 연대에 민감했던 이유는 그 시대가 바로 내가 대학에 들어가 정신적 '성인'이 되기 시작했던 때와 얼추 겹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지금 곰곰이 생각해보니, 든다.).

아시는 분은 알겠지만 내가 원래 중국영화/홍콩영화 애호가이기는 하다. 하지만 이 장면에서, 그리고 이 영화 전체에 걸친 장만옥의 눈부신 연기를 보면서 참 배우라는 게 부러운 직업이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고백하지만 이 배우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여배우 중 한명이다. 이유는? 이유가 뭐 있나. 그냥 좋은거지).

자신의 표정과 몸짓으로 사람들에게 (설사 그것이 영화를 보는 두시간 정도일지라도) 삶에 대한 새로운 느낌과 깨우침을 갖게 만들 수 있는 직업이라니.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슬픔을 느꼈던 데는 영화 속의 두 사람은 참 행복한 사람이구나 하는 부러움 때문이기도 하다.

무슨 말이냐고? 영화의 중간부분에서 두 사람은 자신들의 살이 실패했다고 자조한다. 중국의 촌동네에서 각자 성공의 꿈을 찾아 홍콩에 찾아온 두 사람 모두는 겉으로 보기에는 성공했다. 여소군은 자신의 약혼자를 데려와 결혼하고 안락한 생활을 시작한다. 이요는 자신의 사업을 갖고 잘 살아간다.

그러나 그들은 자조한다. 사실은 두 사람 모두 실패했다고. 뒤늦게 깨달은 서로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면서--그것을 포착한 자동차에서의 키스장면은 매우 인상적이다--자조하지만 과연 그들은 정말 실패한 것일까. 적어도 그들은 매우 고통스럽게 얻은 것이지만 자신들이 진정 삶에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것을 끝까지 추구하지 않았나.

내 대학원 때의 어떤 겨울날이 생각난다. 밤늦은 학교앞 전철역에서 오지 않는 전철을 기다리면서 나는 갑자기 밀려드는 삶에 대한 엄청난 공허감을 느끼면서 한참을 울었었다. 그때 나는 왜 그렇게 울었을까. 그게 단지 지금 돌아보면 내 어린 시절의 나약함, 혹은 그 시대의 암울함에 대한 비관 때문이었을까.

어쩌면 그것은 그만큼 그때의 나는 적어도 지금보다는 순수했고 나의 삶에 대한 강렬한 욕망과 바램이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세월은 지혜를 가져다주고 열정을 앗아간다고 누군가 말했다지만 내가 이 영화를 보면서 느낀 슬픔에는 세월은 지혜를 가져다주지 않았고 단지 삶에 대한 내 순수한 열정만을 가져가 버린 것은 아닐까라는 공험감때문 이었을 것이다.

그렇게 지나간 나의, 우리의 젊은 시절, 자신의 삶에 대한 공허감으로 절망하기도 했던 시절이 그립고 그런 그리움을 이 영화의 두 주인공 여소군과 이요의 삶과 사랑은 상기시켜 준다는 것, 그게 내가 받은 '감동'의 정체일 것이다.

하루하루 우리는 열심히 산다. 무엇인가를 얻기 위해. 아니 단지 이 살벌한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해. 그런 생활에서 우리는 뭔가 더 소중한 것을 잊고, 잃고 사는 것은 아닌가. 그런 진부하지만 여전히 우리에게는 버릴 수 없는 질문을 던지는 것.

그것이 인문학의 위기가 운위되고, 실용주의가 득세하고 모두가 돈과 고액연봉을 위해 떼 밀리듯이 살아가는 이 각박한 경쟁의 시대에 문학, 영화, 예술이 해야 할 역할이 아닐까. 뭐, 그런 생각들이 떠오른다.

하기야 한국사회는 삶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을 운위하기 이전에 기본적인 생활권조차 위협받는 후진국이니 나의 이런 말조차 사치라는 생각도 든다.

가진 자는 돈 가진 걸 삶의 성공으로 착각하며 으스대고 많은 사람들은 참된 삶이 무엇인가를 생각할 여유도 없이 하루하루 먹고사는 것, 직장을 얻는 문제로 고통받아야 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니까.

하지만 그렇게 현실이 고통스러울수록 문학은, 영화는, 예술은 그 고통스러운 현실이 왜 고통스러운지, 우리는 왜 행복을 추구해야 하는지를 물어야 한다.

작고한 평론가 김현의 표현을 빌리면 예술은 무엇이 진짜 행복인지를 묻는 데에서만 자신의 존재이유를 찾을 수 있지 않을까.

우리 시대에 이제 순수한 사랑, 제대로 된 삶에 대하 물음은 조소의 대상이 되어 버렸다. "순수한 사랑 좋아하네, 그런 얘기는 다 세상물정 모르는 얘기야, 이 세상이 얼마나 무서운 곳인지 알어, 사랑이네 삶이네 어려운 데 골치 썩이지 말고 살아남을 요령이나 찾아봐! 돈 많이 벌어 재미있게 살면 되는 거 아냐."

이런 비웃음의 목소리가 우리시대를 지배하는 주문이다. 예술은 이런 '실용주의/출세주의의 주문'을 추문으로 만든다. 김현의 표현을 다시 빌리면, "바슐라르라는 프랑스 철학자의 표현을 빌면 인간은 행복스럽게 숨쉴 수 있도록 태어났다. 그러니 숨을 잘 쉬는 것을 어떻게 포기할 수 있는가."

한 마디 덧붙이자면, 그러니 우리는 제대로 사랑하는 것, 제대로 살아가는 것에 대한 물음을 어떻게 포기할 수 있는가.

다음 번에는 곧 개봉예정인 장예모 감독, 그리고 내가 좋아하는 배우들인 장만옥, 이연걸, 양조위가 나오는 무협 영화 <영웅>을 보고 마음이 동하면 무협영화에 관해 몇자 끄적여 보련다.

(사실, 나는 미국에서 상도 받고 많은 사람들이 격찬했던 이안 감독의 <와호장룡>을 무덤덤하게 보았던지라 이번 <영웅>에 대한 기대가 꽤 크다. 과연 내 기대를 채워줄 영화이려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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