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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볼링 영화 아니에요! - <볼링 포 콜럼바인>

작성자

성은애

작성일자

2003-01-19

이메일

easung@yahoo.com

조회

4903


다큐멘터리 영화가 극장에서 개봉되는 것은 우리 나라에서는 드문 일이다. 그러므로 어떤 영화 수입업자가 "양심에 손 -- 혹은 발 -- 을 얹고 생각할 때 이건 꼭 소개할 필요가 있겠다"고 결심하지 않으면, 우리나라 극장에서 마이클 무어(Michael Moore)의 다큐멘터리 <볼링 포 콜럼바인>(Bowling for Columbine, 2002)을 보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임권택 감독이 폴 토마스 앤더슨과 공동으로 감독상을 수상했던 55회 깐느 영화제에서 사십 몇년만에 다큐멘터리가 본선에 올랐다고 화제가 되었던 <볼링 포 콜럼바인>은 10월에 미국에서 개봉된 이래 놀랍게도 4개월째나 미국 전역의 극장에서 상영되고 있다. 길어야 두어달 지나면 간판 내릴 것이며 곧 비디오로 출시될 거라고 짐작했던 나로서는 더이상 미룰 수 없어서 어렵사리 시간을 내어 오늘 이 영화를 매우 재미나게 보았다.

그리고 당분간 이 영화를 볼 가능성이 별로 없는 독자들을 대상으로 '메롱, 나는 봤지~'라는 내용의 글을 쓰고 있는 중이다. 이거 뭐 하는 짓인지....-.-;

제목에서 밝혔듯이 이 영화는 볼링 영화가 아니다. (볼링장 장면이 자주 등장하긴 한다…) ‘콜럼바인’이라는 이름이 낯설게 들린다면, 1999년 4월, 미국이 코소보의 민간 시설에 최대 규모의 폭탄을 퍼부었던 바로 그날, 미국의 콜럼바인 고등학교에서 두 학생이 총을 난사하여 12명의 학생과 1명의 교사가 사망하고, 십수명이 부상당한 사건을 언급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여담이지만 <사우스 파크>의 작가 중 하나인 맷 스톤이 바로 콜럼바인 고교 출신이라는 이유로 영화에 잠깐 등장한다. <사우스 파크>의 팬들에게는 의외의 선물…^^) 그렇다고 이 영화가 콜럼바인 고교 총기 난사사건에 관한 다큐멘터리도 아니다.

그럼 도대체 볼링하고 콜럼바인 고등학교 총기 사건하고 무슨 상관이 있단 말인가? 영화에 의하면 에릭과 딜런이라는 두 학생은 그날 아침 총기를 난사하기 전에 볼링장에 있었다고 한다. 아니, 체육 수업의 일부였던 볼링 수업을 들어갔다가 중간에 땡땡이쳤다던가? 아무튼 그 두 학생이 볼링 수업을 들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게 총기 사건하고 무슨 상관이냐고? 글쎄…-.-;;

마이클 무어는 이렇게 말한다. 음….그날 아침 이들이 볼링장에 갔었다. 그리고 그 직후 총을 들고 마구 갈겨댔다. 볼링이 혹시 총기 난사를 하고픈 충동을 유발했던 것은 아닐까? 볼링 핀을 쓰러뜨리는 대신 사람을 쓰러뜨리고 싶었던 거 아닐까? 아니면 혹시 볼링 수업이 좀 더 재미있었더라면, 볼링에 정신 팔린 이 아이들이 총 쏘는 사건이 발생하지 않을 수도 있지 않았을까?

이런 추측이 황당하다고 생각하시는가? 볼링하고 충쏘는 거하고 무슨 상관있어! 이렇게 말씀하실 건가? 그럼 이건 어떤가? 이 사건이 일어난 후, 사람들은 이들이 평소에 즐겨 들었다던 매릴린 맨슨(Marilyn Manson)을 타겟으로 삼았다. 성별을 분간할 수 없는 기괴한 앨범 자켓, 악마적인 이미지의 화장, 절규하고 포효하는 창법, 때로 무대 위에서 별로 잘생기지도 못한 맨 엉덩이를 내놓고 흔드는 기행까지 서슴지 않는 ‘그 또라이’ 말이다.

마이클 무어는 마릴린 맨슨을 인터뷰한다. 짝짝이로 콘택트 렌즈를 끼고, 흰바탕에 검은 줄을 찌익 그은 화장을 한 매릴린 맨슨은 의외로(!) 논리 정연하게 왜 자신이 청소년범죄의 원흉으로 지목되었는가를 설명한다. 충격적인 사건으로 인해 사람들은 누군가를 희생양으로 삼아 자신의 분노와 복수심을 발산해야 했고, 그게 평소에 삐딱하게 보였던 자신이라는 것이라는 것, 그리고 이런 일은 미국 사회에서 늘 있었던 일이며, 미국 사회는 한마디로 미디어와 정치가들이 국민들에게 공포심을 주입하고 그 공포를 해소하기 위해 ‘소비’를 하게 만드는 사회라는 것. (와, 얼굴 보면 그럴 것같지 않은데, 되게 똑똑하네….!^^;)

그러나 매릴린 맨슨을 비난하는 여론의 한편으로, NRA는 총기 사고가 일어난 것에도 개의치 않고 방방곡곡을 돌면서 집회를 연다. (NRA의 현재 회장은 영화배우 찰턴 헤스턴이며, 치매 증세를 보이고 있는 그의 후임으로는 톰 셀렉이 유력시되고 있다고 들었다.) 폭력적인 게임이나 영화, 록 음악을 범죄의 원흉으로 지목하기는 손쉬운 반면, 미국에 총이 지천으로 흔하다는 사실을 범죄의 원인으로 지적하는 목소리는 의외로 드물다. 이런 불균형은 어디서 오는가?

NRA의 공식 입장은 한마디로 말하면 ‘총이 무슨 죄가 있어. 총 쏘는 나쁜 놈들이 문제지.’이다. 과연 그런가? 가사를 조금 바꿔 볼까? ‘핵무기가 무슨 죄가 있어. 김정일 같은 또라이가 그걸 가지는 게 문제지.’ 오호…어디서 많이 듣던 가락이다….?

미국에서 총기에 의한 살인 사건은 연간 1만1천여건을 넘어선다. 이는 일본의 60여건은 물론, 유럽 국가나 캐나다와 비교해도 엄청나게 많은 숫자라고 한다. 특히 마이클 무어의 고향인 미시건 주의 플린트에선 초등학교 1학년짜리 남자 아이가 외삼촌의 총을 학교에 들고 와서 동급생 여자아이를 쏴서 죽이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하여, 최연소 학교 총기 사건의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인가? 실제의 범죄율은 낮아지고 있다는데 왜 미국인들의 공포심은 점점 더해가고 (특히 9.11 이후) 총기의 판매는 급격하게 증가하고 있는 것인가? 마이클 무어의 물음은 이렇게 시작된다.

아시다시피, 미국에선 총기 휴대가 비교적 자유롭다. 자기 방어를 위해서건, 아니면 사냥 같은 취미 생활을 위해서건, 쉽게 총기를 휴대할 수 있다. 영화에 의하면 미국에서는 월마트나 K마트에서도 총기와 탄약을 팔고, ‘뱅크 오브 아메리카’의 어떤 지점에서는 계좌를 개설하면 잔고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유지한다는 조건으로 총을 ‘사은품’으로 준다! 은행 안에서 총을 사은품으로 받고 휘두르는 광경이라니....!

오클라호마 연방 청사 폭탄 테러 사건에 연루되었던 미시건 민병대 출신의 한 아저씨를 인터뷰한 장면에선 마이클 무어가 침실까지 따라들어가 직접 베개 밑에 놓인 권총을 확인하는데 (카메라는 따라들어오지 말라는 조건으로), 아찔하게도 이 사람이 장전된 권총을 자기 관자놀이에 들이대는 장면까지 연출하여 마이클 무어를 당황케 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비슷한 정도로 총기 휴대가 흔하고, 사냥이 대중적인 취미로 자리잡고 있는 캐나다의 총기 사고 비율은 미국과 비교도 안 되게 낮다는 것이다. 가령 디트로이트와 마주 보고 있는 캐나다의 윈저에서는 지난 2-3년간 총기에 의한 살인이 단 1건이었는데, 그것도 디트로이트에서 건너온 사람이 미네소타에서 구입한 총으로 저지른 사건이라고 한다. 도둑이나 범죄가 아예 없는 것도 아닌데도, 캐나다 사람들은 미국인들에 비해서 훨씬 덜 긴장된 모습이며, 총을 들어서라도 나와 내 가족을 지키겠다는 비장한 결의는 별로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뭐가 다른가?

그러니까 NRA의 주장대로 총이 많은 것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고 할 소지도 있다는 것이다. 사격을 취미로 삼는 것이 매우 자연스러운 환경에서 성장했고 NRA의 평생 회원이기도 한 마이클 무어는, 총이 흔하다는 사실 자체만으로는 문제의 본질에 온전히 접근하기 힘들다는 입장을 취한다. 물론 총기 사용을 조장하는 미국 사회의 어떤 분위기에 NRA의 입김이 '기름'을 부어준다는 것을 분명히 밝히기는 하지만 말이다.

여기서 마이클 무어는 2차 대전 이후 미국이 국외에서 수행한 수많은 테러와 전쟁의 행위들을 낱낱이 고발하고, 미국의 역사와 정치가 다름 아닌 ‘백인의 두려움’에 기초해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 <스타워즈>의 제목처럼 ‘보이지 않는 위협’에 대한 두려움은 무장과 폭력의 필요성을 낳고, 단단히 무장된 두려움은 조그만 자극에도 공격적인 반응을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게다가 그 두려움이 실제로는 별로 두려워할 것이 없는 ‘강자’의 두려움이 되었을 때, 미국은 그 ‘두려움’의 원인이 되는 '악의 무리’들을 응징하고 처단해야 한다는 소명의식에 불타는, 세계에서 가장 많은 전쟁에 연루된 ‘전쟁의 화신’으로 등극한다. 여기에는 또한 이미 많은 이윤을 내고 있으면서도 ‘더 많은’ 이윤을 내기 위해 혈안이 된 다국적 거대 기업의 자본주의적 ‘탐욕’이 배경으로 자리잡고 있다.

미국 사회와 '총'이라는 화두에서 미국 사회의 특성과 미국의 역사, 그리고 현재 미국이 개입된 모든 종류의 국제적 분쟁들, 9.11 이후의 미국 사회의 변화, 빈부 격차의 문제, 자본주의의 문제까지 종횡무진 짚어나가는 마이클 무어의 행보는 유쾌하되 경망스럽지 않고, 그의 메시지는 간결하되 유치하지 않다.

알고 보면 별로 새로울 것도 없는 이야기지만, 단 3분만에 미국 역사 전체를 ‘정리’해버린 기막힌 애니메이션과, NRA 회장 찰턴 헤스턴과의 흥미진진한 인터뷰, 적절한 자료 화면과 음악의 배치, 메시지를 훼손하지 않는 유머감각, 그리고 무엇보다도 약자에 대한 따뜻함과 맹수처럼 목표물을 놓치지 않고 파고드는 집요함을 겸비한 마이클 무어의 캐릭터로 인해 이 다큐멘터리는 영화사에 손꼽히는 걸작 다큐멘터리의 반열에 올라 서기에 전혀 손색이 없다.

미국이라는 나라를 싸잡아 욕하기 어려운 면이 있다면, 바로 이런 영화에서 보이는바, 자신이 속한 집단에 대한 치열한 비판정신이 살아있다는 것 아닐까. 미국이 가까운 시일 내에 쫄딱 망하지 않는다면, 그건 마이클 무어의 영화를 보며 박장대소하며 공감을 표하는, 그리 크지 않은 대학가의 극장을 반쯤 채운 관객들의 덕분일 거라는 생각을 했다. 물론 이 영화에 대한 리뷰에다가 '빨갱이' 운운하며 도배질을 해놓은 답글들을 보면서 '무지몽매한 미국'의 일면을 엿보기도 했지만 말이다.

* 사족: 마이클 무어의 책 <멍청한 백인들>을 읽으면서 진중권을 얼핏 떠올렸던 나는, 이 다큐멘터리를 보면서 <딴지일보>를 떠올렸다. 아마 <딴지일보>식으로 다큐멘터리를 만들면 이것과 비슷한 것이 되지 않을까 싶었다. 마이클 무어의 목소리에 해당하는 우리 사회의 비판적인 목소리들이 무엇일까를 생각해보면서, 그런 목소리가 얼마나 활력과 공감을 얻을 수 있는가가 바로 우리 사회의 발전을 가늠하는 척도가 될 것이라고, 그런 생각도 잠깐 해보았다.... 자아...총쏘지 맙세, 전쟁하지 맙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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