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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죽인다! [TTT]

작성자

성은애

작성일자

2002-12-25

이메일

easung@yahoo.com

조회

4353


요새는 기억력이 거의 RAM의 상태로 퇴보했다. 하루 자고나면 다 까먹는다. 사람 이름이며 얼굴을 잊어먹는 건 어려서도 있던 현상이라 종종 사람이 시건방지다느니, 무심하다느니, 하는 소릴 듣기도 했지만, 요새는 방금 읽었던 책이나 조금 전에 보았던 신문 기사의 내용도 홀랑 까먹곤 한다. 그러니 연재 소설이나 TV 미니 시리즈를 보는 것도 심히 귀찮다.

그런데 하나의 이야기를 영화로 다 만들었다면서 그걸 셋으로 나누어 1년에 한편씩 개봉한다니, 이 고약한 노릇을 어쩌란 말이냐. 그래도 할 수 없이 이건 봐야헸다. 일명 [TTT], <반지의 제왕: 두개의 탑>(The Lord of the Ring: The Two Towers)다. (이하 TTT라 쓴다. 처음에 이 약자를 보고는 무슨 눈 셋 달린 괴물이 눈물 흘리는 이모티콘인 줄 알았다.-.-;;)

J. R. R. 톨킨 원작의 소설을 3부작 영화로 각색한 피터 잭슨 감독의 <반지의 제왕: 반지 원정대>에 대한 글을 올린 게 아마 올 초인 걸로 기억이 되는데, 올해가 가기 전에 그 두번째 이야기인 <반지의 제왕: 두 개의 탑>을 보게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올해가 가기 전에 이 영화를 보게 된 것이 무척 행복하다.

세시간이 어떻게 지났는지 모르게 진행되는 [TTT]는 사실 원작 소설에서는 가장 방대하다면 방대하고 또한 지루하다면 지루한 부분에 속한다. [TTT]는 기본적으로 반지를 버리러 가다가 골룸과 함류하는 샘과 프로도, 오크에게 붙들렸다가 엔트와 조우하는 피핀과 메리, 그리고 포로가 된 두 호빗을 찾아나섰다가 사루만의 군대와 로한 왕국의 피비린내나는 싸움에 휘말려드는 아라곤-김리-레골라스 3총사, 이렇게 3 곱하기 3의 구조로 되어있다. 원정대의 이야기가 세갈래로 갈라지고 거기에 곤도르와 로한이라는 두 인간 왕국, 그리고 사루만의 스토리가 덧붙여져 상당히, 적지않게, 사실은 불면증 치료 기능이 있을 정도로 산만하고 지루하게 보일 수도 있는 가운데 토막이다.

줄거리? 별거 없다. 기본적으로 이게 절대적인 힘을 가진 "One Ring"을 버리려는 과정이라는 거 1편에서 다 봤고, 원정대가 누구인지도 다 봤다. 결국 반지를 버리게 될지, 어쩔지는 내년에 가서야 판가름날 예정이다. 그럼 2편에서는? 그냥 다들 '죽어라죽어라'한다. 간단히 말해서 다들 억쑤로 고생한다, 이 말이다. 줄거리 요약 끝.

이걸 어떻게 안 졸린 영화로 만드느냐....이것이 바로 피터 잭슨의 각색 포인트 되시겠다.

누구나 보면서 "와...."하고 입을 딱 벌리게 되어있는 헬룸 협곡의 전투 장면은 영화 개봉보다 앞당겨 출시된 게임 프로그램에서도 중심부에 위치한다. 물론 게임의 줄거리는 등장 인물 중 하나를 택하여 온갖 공격 기법과 필살기를 동원하여 비내리는 성벽을 오가며 오크를 죽이면서 점수를 올리는 것이다. 이 장면은 게임의 중심일 뿐만 아니라, 영화의 중심이기도 하다.

하기야, 반지의 힘때문에 더더욱 번민에 시달리는 프로도의 내적 갈등과 고통을 게임으로 형상화하기 쉽지 않을테고, 설사 만든다 하더라도 플레이하려면 굉장히 짜증이 날 지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은 현실이 그렇지 않으므로(혹은 현실도 그렇다고 여기기에), 이쪽은 멋있고 좋은 편, 저쪽은 지저분하고 나쁜 편, 이렇게 갈라놓고 싸우는 것을 좋아하지, 선과 악이 모두 내 안에 있다는 거, 별로 달갑게 여기지 않는다. -.-;;

참고로, 우리집 아동이 절대적으로 선호하는 캐릭터는 날쌘 활잡이인 엘프 출신의 레골라스이다. 아무리 싸워도 뽀송뽀송한 피부에, 흐트러짐 없이 땋아내린 귀밑머리, 엘라스틴 샴푸로 감은 듯한 찰랑이는 금발, 게다가 이번 [TTT]에서는 말 목 잡고 거꾸로 휘돌아 올라타기, 스케이트 보드 타고 활쏘기, 김리랑 농담 따먹기, 등등 현란한 개인기를 선보인다. 도대체 무슨 '성격'이라고 할만한 것이 있는지는 의심스러운 캐릭터지만, 땅딸하고 투박한 김리나, 맨날 흙투성이가 되고 쫄닥 젖어서 헥헥 거리며 간신히 버티는 인간 아라곤보다 멋지니까. 머, 요새 애들, 멋진 거에 목숨 걸지 않나?

그런데 이렇게 게임 스타일의 전투 포맷으로 세시간을 끌어갈 순 없으니까, 여기에 "컴퓨터 그래픽의 승리"라고 하는 골럼이 등장한다. <해리포터>에 등장하는 도비와 유사한 점이라면, 좀 보기는 흉하고, 맨날 징징거리며, 이 놈이 도움을 주는 놈인지 뒤통수를 칠 놈인지 도통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골럼(혹은 스미골)은 그 이상이다. 그는 섬찟할 정도로 실감나는 표정연기로, 반지에 대한 욕망과 그 욕망이 망가뜨리고 황폐하게 만들고 분열시킨 가엾은 영혼의 모습을 보여준다. 프로도의 곤경과 번민을 가장 극명하게 시각화해줄 뿐만 아니라, 원작 소설의 의도에 가장 충실하면서도 가장 실감나게 그려진 인물이 바로 골럼이라는 판단이다.

자, 이걸로도 모자란다면, 첨에는 왜 따라왔는지 도대체 이해가 안 되는 띨빵한 메리와 피핀이 있다. 이들은 갖은 고생을 하면서 자기 나름대로 이 여정에 참여한 의의를 찾아나간다. 이들은 이제 단순히 프로도의 꺼벙한 친구들이 아니라, 사루만의 요새를 격파하는 엄청난 테러리스트(!)가 된다. 사루만의 광산과 오크들이 급류에 휩쓸릴때, 엄청난 물살 가운데서 당당히 버티고 서있는, 나이를 알 수 없는 고목들과 그 나무에 매달린 두 호빗의 모습은 참으로 감동적이다. 음....속되게 이해하자면, 홍수 피해를 막기 위해서 나무를 심자....뭐 이런 교훈도 되겠다. ^^;;;

<반지의 제왕>같은 엄청나게 복잡한 소설을 9시간에 요약하려고 하다니, 피터 잭슨도 야심만만하기 짝이없다. 물론 이렇게 긴 영화를 보고 고작 글 한바닥으로 무슨 얘길 해보겠다는 나도 야심만만하기로 치면 참 어처구니없이 황당한 편에 속하겠다.

아무튼 책을 읽으며 머릿 속으로 잘 상상이 안되어 고민하던 독자들은 피터 잭슨의 장면들을 보면서 '옳거니!'하고 무릎을 칠 것이다. 톨킨 소설의 '소설적'인 부분은 과감하게 쳐내고 '영화적'인 부분의 효과를 극대화 시킨 것이 바로 피터 잭슨의 <반지의 제왕>이다.

돈을 쳐들이려면 이렇게 쳐들이는 거다. 입장료 아깝지 않다. 아직 안 보신 분들, 관객들 몰린다니 예약해놓고 가서 보시라.

* 사족: <두개의 탑>은 당연히(!) 지난 9.11때 무너진 뉴욕 무역 쎈터 쌍둥이 빌딩을 연상시킨다. 지난 학기 수업 시간에 어떤 학생이 'one ring = 핵무기'라고 해서 다들 웃은 적도 있다. 미국의 모 신문 영화평에는 프로도가 세계의 운명을 조그만(?!) 어깨에 걸머진 미국이라고 했다.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에서라도 '희망은 있다'는 아라곤의 신념을 두고 지난 대선을 연상하는 분도 있을 것이다. 혹은, 평범한 호빗 메리, 피핀의 이야기에서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친환경 메시지를 연상하는 사람도 있으리라. 물론 톨킨이 2차대전의 상황을 염두에 두고 이 작품을 쓰기도 했고, 히틀러가 좋아했다는 바그너의 오페라 <니벨룽의 반지>와 비견되기도 한다. 아무튼, 각자 다들 이리저리 갖다붙여보시라. 그런 정치적 '아전인수' 또한 환타지의 묘미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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