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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리는 사춘기 -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

작성자

성은애

작성일자

2002-11-18

이메일

easung@yahoo.com

조회

4358


드디어 1년만에 해리가 돌아왔다.

애초에 나는 그런 애들 영화 안 본다...하시는 분들에겐 "작년에 왔던 할리우드 각설이가 죽지도 않고 또 온" 정도겠지만, 별로 짧지도 않았던 1편보다 10여분이 더 길어져 장장 161분의 러닝타임을 자랑하는 <해리 포터와 비밀의 방>이 상영되는 동안 한 장면이라도 놓칠세라 눈동자를 빛내는 아이들의 긴장된 얼굴을 보노라면 이게 보통 일이 아니란 생각이 드실 거다.

책을 읽으셨으면 <비밀의 방> 줄거리는 대충 아실 거고, 돈을 얼마나 쳐들였는지 들으셨다면 최소한 볼거리는 풍성하여 입장료 아깝진 않다는 거 짐작하실테고, 1편이 소설에 대한 새로운 해석보다는 원작을 꼼꼼하게 옮기는 데 치중했다는 거 아신다면 같은 감독의 작품인 <비밀의 방>도 그런 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는 것도 예상하실 터이다.

그럼 뭐...별로 더 할 얘기 없는 거 아녀? 작년에 했던 얘기 되풀이하는 거지....?! 그렇다. 나도 영화를 보기 전엔 그렇게 생각했다. 마법이든 그냥 공부든, 그게 '학교'인 바에야 일상생활은 뻔하디 뻔한 거다. 단지 그 학교의 지루한 일상을 어지럽히는 악의 세력 볼드모트가 다가오니까 위기가 생기고 재미있는 것이다. 그걸 해리 포터가 해결하는 거고....내내 그런 패턴이 아니던가. 도대체 이걸 7편까지 끌고 가겠다는 작가의 야심은 제대로 실현되기나 할 것인가? 소설은 계속 쓴다 쳐도 그걸 계속 영화로 만들 수는 있을 것인가? 지겹지 않을까?

그러나 영화를 막상 보고나서는 생각이 달라졌다. 이걸 어떻게 계속 끌고 나갈지는 작가에게나 감독에게나 상당한 도전이 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 도전을 포기하고 그냥 현란한 환타지 액션물로 계속 울궈먹을 가능성도 농후하고, 그렇게 해도 '장사'는 할 수 있을 것이지만.

<비밀의 방>이 <마법사의 돌>과 결정적으로 달라진 점은 향상된 CG도 아니고, 주접떠는 도비나 왕자병 말기 록하트같은 새로운 캐릭터도 아니며, 그야말로 '더티 해리'가 되도록 혈투를 마다않는 액션 장면의 격렬함도 아니다.

작품의 설정상, 이제 주인공 해리와 그의 친구들은 호그와트 2년차로 진급했다. 당연하지. 그리고 등장 인물이 한살 더 먹은 것과 마찬가지로, 배우들도 한 살씩 더 먹었다. 그런데 그걸 그냥 책으로 읽으며 그러려니 하는 거하고, 1년 사이에 훌쩍 커버린 아역 배우들을 보는 거 하고는 상당한 차이가 있었다.

요맘때 아이들은 하루가 다르게 훌쩍 커버려서 전혀 다른 사람이 된 것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마치 다리에 물을 준 콩나물처럼 키가 쭉 늘어나버린 해리, 변성기를 겪느라 끽끽거리는 요상한 소리를 내서 웃음을 머금게 만드는 론, 그리고 제법 봉긋한 가슴과 성숙해진 표정을 보이는 허마이오니. 여드름이 날까말까 하는 싸가지 밥맛 말포이. 이제 이들은 더이상 새로운 환경에 눈이 휘둥그래지는 신입생이 아니고, 또한 솜털 뽀송거리는 아기의 얼굴을 간직하고 있는 소년소녀가 아니다.

이들은 이제 사춘기에 돌입했다. 해리는 "내가 누구인가?"라는 존재론적 고민에 휩싸이기 시작하고, 론은 북적거리고 유쾌한 가정에서 사랑받으며 자랐지만 부러져 말을 안 듣는 마법 지팡이를 새로 마련할 수 없을 정도로 가난한 자신의 계급적 위치를 다시 한번 실감하게 된다. 똑순이 허마이오니는 아무리 악착같이 노력해도 '머글'(=인간)의 혈통이라는 '원죄'때문에 말포이같은 '순종혈통'의 공격 목표가 된다는 현실에 직면한다(이 대목에서 서구의 인종주의와 네오 나찌가 연상되는 건 비약일까?). 선-악의 대립과 '힘'의 문제, 운명과 자유의지의 문제가 해리의 내면을 복잡하게 한다면, 론과 허마이오니가 겪는 내적인 고민은 각기 계급과 인종(혹은 성) 문제를 희미하게 암시한다.

이들 삼총사가 겪는 문제들은 이제 사춘기에 직면한 모든 소년 소녀들이 장차 현실에서 맞닥뜨리게 될 문제들을 마법과 환상의 공간 속으로 끌어들인 데 지나지 않는다. 그리하여 영화는 한편으로 더욱더 현란해지고 과격해진 액션 장면으로 관객들의 흥미를 돋구면서, 동시에 더이상 새로운 환경에 신기해하는 단계가 아니라 "나는 어떤 사람인가?"에 대해 자못 심각한 고민들을 품게 되는 세 주인공의 내면까지도 아주 슬~쩍 암시해본다. 그리고 그러한 '성장'의 테마는 작년에 비해 확연하게 숙성해진 세 배우들의 변화에서 좀 더 시각적으로 분명하게 드러난다.

이렇게 되면 내년, 아니 내후년에나 개봉된다는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는 더이상 꼬맹이들의 영화가 아니게 될 지도 모른다. 사실 <비밀의 방>만 해도 1편보다는 훨씬 과격하고 어두운 편이어서 미국에서도 PG 등급이냐, 아니면 PG-13 등급이냐 하며 꽤나 예측이 분분했던 모양이다.

아마도 <해리포터> 시리즈의 작가와 감독은 <해리포터>가 계속 열 두어살 남짓한 나이에서 아이들의 벗으로 계속 남아서 새로운 꼬맹이 관객들과 독자들을 끌어들이는 식으로 나아가야 할지, 아니면 관객들과 더불어 나이를 먹으며 성장하는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면서 관객과 더불어 어른으로 '성장'해야 할지 이 즈음에서 결단을 내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

만약 <해리포터>가 해리의 성장과 보조를 맞추어 하나의 성공적인 '성장소설'로 발전해나간다면, 그것은 <스타워즈>나 <반지의 제왕>이 보여주지 못한 독보적인 경지를 개척할 수도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귀여운 꼬맹이 아나킨이 갑자기 멋진 청년으로 둔갑해버린 <스타워즈>의 에피소드 I-II의 연결 과정에서 생략되어버린 부분을, 혹은 책에선 50대요 영화에선 청년의 모습이었던 <반지의 제왕>의 프로도가 보여주지 못한 것을 <해리포터>가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사춘기는 정말 누구 말마따나 '지랄맞은' 나이다. 몸은 어느 순간 쑥 커버려 주체가 안 되고, 아이도 아니고 어른도 아닌 불안정함이 기분 더럽다. 어느 순간엔 세상 고민을 몽땅 짊어진 애늙은이 같다가도, 또 어느 순간엔 아무 생각없는 '아동'의 행태를 보이기도 한다. 성격도 급격하게 바뀌어 소심한 모범생이 하루 아침에 비딱이가 되기도 하고, 수다장이 까불이가 갑자기 내면이 복잡한 철학자가 되기도 한다. 게다가 생활은 판에 박히고 억눌려 있다. 규칙이란 규칙은 다 어기고 싶고, 낼 갑자기 무슨 일 터지지 않나...그런 생각도 자주 한다.

이런 지랄맞은 사춘기를 다룬 만화나 소설들은 꽤 많이 있지만, 이렇듯 엄청난 물량을 쏟아부어 관객들을 끌어모은 울트라 수퍼급 블록버스터 환타지 영화가 그 착잡한 청소년기의 성장 과정을 흥미롭게 다루면서 관객과 더불어 나이를 먹어보는 것도 흥미로운 도전거리가 되지 않을까 하는 기대도 해본다.

물론 꼬맹이 관객들의 열광과 걔네들이 부모 졸라서 사대는 엄청난 분량의 해리포터 학용품이며 인형들 때문에 들어오는 수입을 생각하면 그냥 손쉽게 애들용 환타지로 매년 하나씩 비슷비슷하게 만들어가는 것도 할리우드식 장삿속에는 비위가 맞을 지도 모른다. 아역 배우가 너무 커져서 징그러워(?) 보이면 좀 더 뽀송뽀송한 어린 애로 다시 교체해가면서 말이다.

어떻게 될지는 아직 미지수이지만, 아무튼 그래서 나는 2004년 가을에나 개봉된다는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를 한 번 더 기다려보기로 했다. 어린아이가 어른으로 위태롭게 그러나 경이롭게 커가는 모습은, 그(녀)가 마법사의 옷을 입고 있든, 우주전사의 옷을 입고 있든, 아니면 우리 곁에서 무거운 책가방을 든 모습을 하고 있든, 지켜볼만한 가치가 충분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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