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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귀신 이야기(4): 인간의 문화는 자연의 휴식공간

작성자

장시기

작성일자

2002-11-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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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회

4344


귀신 이야기(4): 인간의 문화는 자연의 휴식공간

인간/비인간이나 문화(문명)/자연의 이분법적 사고는 서구적 근대에 의하여 만들어진 잘못된 사유방식이다. 인간이나 비인간은 자연의 일부로 존재하는 동일한 생명체이고, 문화와 자연은 상호 대립적인 영역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인 관계를 맺으면서 끊임없이 생명을 잉태하는 수많은 존재들의 공간이다. 이들의 차이는 인간이나 문화가 맺고 있는 관계를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반면에, 비인간이나 자연의 관계맺음을 우리는 인식할 수 없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인간과 비인간이 상호작용하는 관계나 문화(문명)와 자연이 상호작용하는 관계를 파악하기 위하여 인간의 비인간적 요소와 문화의 비문명적 요소를 사유와 인식의 중심에 놓아야만 한다.

인간의 비인간적 요소는 우리의 몸이고, 문화의 비문명적 요소는 자연이다. 그리고 모든 가시적이거나 비가시적인 몸들은 근원적으로 선이나 악으로 규정되는 것이 아니라 이러저러한 관계맺음에 의하여 좋은 귀신과 나쁜 귀신으로 생성되는 자연의 법칙을 따른다. 교수나 학생, 남성이나 여성, 혹은 노동자나 농민이라는 명칭이 "나"가 아니라, 그 어느 것으로 규정되지 않는 "기관들 없는 몸"이 진정한 "나"인 이유가 여기에 있다. 문화(문명)도 마찬가지이다.

비가시적인 자연의 귀신들을 다루고 있는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에서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 즉 사방으로 바다와 안개에 휩싸여 있는 온천장이라는 문화(문명)의 공간은 일본 전역에 흩어져 있는 팔백 만의 귀신들이 휴식을 취하는 자연의 휴식공간이다. 비가시적 자연의 귀신세계를 다루고 있는 이 영화에서 우리가 인식할 수 있는 온천장이 등장하는 이유는 자연이 그 내부에 비자연적 요소라고 할 수 있는 문화를 내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자연의 문화를 우리는 꽃이나 나무, 돌, 물고기, 기러기들의 세계, 혹은 바람이나 구름의 세계라고 부른다.

이러한 자연의 문화를 우리는 인간의 문화를 통하여 인식한다. 따라서 동물들의 세계를 약육강식의 세계로 바라보는 것은 인간의 문화가 약육강식이기 때문이고, 물고기나 기러기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이유는 아프가니스탄이나 이라크, 혹은 아프리카의 어느 작은 나라에서 인간들이 떼죽음을 당하는 것은 물론이고 뉴욕이나 런던, 혹은 동경이나 서울의 지하철이나 슬럼가에서 인간들이 물이나 공기를 마시고 질식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간의 문화가 약육강식의 문화가 되고, 인간이 비인간은 물론이고 인간마저도 떼죽음으로 몰고가는 문화가 된 이유는 문명이 문화의 영역에 침투하여 인간의 문화를 문명으로 호도하였기 때문이다. 인간의 몸을 지칭하는 건강(health)이라는 언어와 마찬가지로 문화(culture)나 문명(civilization)이라는 언어는 서구적 근대화와 더불어 일본에 의하여 영어를 한문으로 번역하여 만들어진 수입된 언어이다.

근대 이전에 우리는 우리의 몸의 건전한 양육을 지칭하기 위하여 섭생(攝生:몸의 생명력을 지키거나 유지하기)이라는 언어를 사용했고, 근대 이전의 서구는 인간의 공동체적 삶을 지칭하기 위하여 문화(culture: 자연의 생명력을 지키거나 유지하기)라는 언어를 사용했다. 서구적 근대를 수입하는 과정에서 문화(文化)와 문명(文明)의 번역은 자연이나 생명력의 요소는 사라지고 인간이나 도시, 혹은 시민을 강조하는 문명으로 문화를 인식하도록 만들었다. 문화를 자연과 대립적인 문명으로 호도하는 특성은 서구도 마찬가지이다. 그래서 미국의 전형적인 제국주의 지식인이라고 하는 사람이 오늘날의 세계를 "문명의 충돌"(헌팅턴)이나 "문명의 종말"(후쿠야마)이라고 말한다. 문명은 항상 충돌하여 서로서로 죽음을 지향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오늘날처럼 문명이 흥성한 시대는 역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그들이 지칭하고자 하는 것의 옳고 그름을 떠나서 "문화의 충돌"이나 "문화의 종말"이라고 말해야 옳을 것이다.

서구적 근대의 문명이 만든 귀신이 얼마나 무차별적으로 죽음의 공포를 만들고 있는지는 장예모 감독의 <붉은 수수밭>에서 주인공 역할을 했던 지앙 웬이 각본, 감독, 주연을 맡은 <귀신이 온다>라는 영화가 잘 보여주고 있다. 아주 오래 전에 전쟁터를 떠돌아 다니며 문명의 비자연성이나 비생명성을 처절하게 경험한 한 조상이 문명의 세계를 떠나서 대대로 이어져 내려온 중국 벽촌의 산간마을은 근대의 제국주의 문명에 의하여 풍지박산이 된다. 흔히 이야기하는 너무나도 상투적인 줄거리라고 생각하지 마시라. 자연의 휴식처인 마을이 불바다가 되고 자연의 생명체로 살고 있는 마을 사람들이 몰살을 당하게 되는 겉으로 드러난 원인은 중국을 점령한 일본 제국주의 국가라는 귀신과 일본 제국주의가 물러간 이후에 나타난 중국의 아류 제국주의 국가라는 귀신이다. 그러나 그러한 귀신을 불러들인 진짜 귀신은 "나"라는 귀신이다.

"나"라는 귀신은 영화가 시작하면서 조그마한 산골마을의 어두컴컴한 방안으로 에로틱한 소리를 내면서 등장하는 과부가 된 여자와 마을의 건장한 청년이 나체의 몸을 드러내면서 뒤엉키는 순간에 다급하게 문을 두드리며 나타난다. "나"라고만 밝힌 이 귀신은 두 개의 큰 자루를 주인공에게 맡긴다. 두 개의 자루 속에는 일본인 장교와 중국인 통역병이 들어있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 일본인 장교와 중국인 통역병이 왜 이 마을에 나타나서 주인공이 그들을 숨겨야만 하는지에 대한 이유는 밝혀지지 않는다.

시간과 공간을 가로질러서 우리는 왜 우리 땅덩어리의 곳곳에 미국인 장교(군인)들과 모든 학문과 지식의 최고 자리에 통역(병)이 있어야만 하는지 이유를 알지 못한다. 동양과 서양을 막론하고 역사를 가로질러 모든 학문과 지식의 최고 자리에는 항상 자연의 이치를 아는 것이었고, 또한 자연의 이치를 통하여 자연의 휴식처인 인간의 문화를 구성하는 것이었다. 중국을 중심으로 하는 유교적 지식을 통치이념으로 삼았던 조선시대 조차도 한문을 통한 자연의 이치를 알고자 했던 선비의 학문체계와 단지 통역만을 담당했던 역관의 역할은 철저하게 구분되었다. 역관의 역할은 단지 기능인의 역할이었지 학문이나 지식을 담당하는 역할이 아니었다.

<귀신이 온다>라는 영화처럼 마치 보물단지 숨기듯이 애지중지 숨겨야만 일본인(미국인) 장교와 중국인(한국인) 통역병은 서구적 근대와 일본을 통하여 들어온 번역된 근대의 주체인 "나"와 함께 들어온 근대의 귀신이다. 근대 이전의 중국이나 한국에서 명명되는 나(我)는 너(如)와 동일한 존재이거나 관계를 맺고 있는 우리들 모두를 지칭하는 언어이다. 그래서 근대 이전의 나는 한 마을의 과부일 수도 있고 청년일 수도 있다. 따라서 <귀신이 온다>에 등장하는 중국 벽촌의 오지마을에서 "나"를 대표하는 진정한 "나"는 마을에서 가장 연장자인 노인이다. 노인은 관계의 생성에 따라서 청년이 되기도 하고, 과부가 되기도 하며, 또한 아이가 되기도 한다.

그러나 서구적 근대와 더불어 들어온 나(I)는 (귀)신(God)의 절대적 권력을 대체한 절대적인 존재의 "나"이다. 아무런 설명도 없이 가장 사적인 우리의 문앞에 나타난 "나"(이 영화의 영어 제목은 이다)라는 귀신은 청년이 되거나 과부가 되거나 아이가 되는 "나"가 아니라 청년과 과부와 아이를 모두 그것(it)으로 만드는 절대적인 "나"이다. 이 절대적인 "나"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우리의 문화 속에 들어와서 모든 관계를 "나와 그것(I and it)"의 관계로 만들어 우리(you, he, she, and it)의 문화를 불바다로 만들고 그 구성원들의 생명을 앗아간다.

근대 이전의 나와는 달리 서구적인 근대와 일본을 통한 번역된 근대와 더불어 들어온 절대적인 "나"라는 귀신이 파괴적이고 폭력적인 이유는 이 새로운 "나"가 항상 서구와 백인, 그리고 남성을 대변하는 일본이나 미국의 이름으로 명령하기 때문이다. 절대적인 "나"는 아무런 이유도 없이 일본이나 미국이 더 좋은, 그리고 더 훌륭한 문명이라고 끊임없이 명령한다. 이러한 명령을 따르는 "나"는 문명이라는 이름으로 미국이나 일본을 따르는 국가가 되거나 일본(미국) 장교가 되고, 혹은 통역병이 되어 또 다른 "나"인 청년, 여성, 그리고 아이들에게 국가나 일본(미국) 장교, 혹은 통역병이 되라고 명령한다. 그것이 마침내 우리의 문화를 불바다로 만들고, 우리 모두의 떼죽음을 몰고오는 것이 눈앞에 확실함에도 불구하고...

귀신 이야기의 마지막이라고 할 수 있는 맑스귀신과 예수귀신에 대한 이야기는 다음으로 미루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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