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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뙤놈이 벌고...<팬디모니엄>

작성자

성은애

작성일자

2002-09-28

이메일

easung@yahoo.com

조회

5157


영문학을 전공했다는 사람들이 자기 전공을 의식하면서 보게되는 영화에는 대개 세가지 부류가 있다. 그 첫째는 익히 아는 영미문학 작품을 영화로 만든 것이다. 사전찾아가며, 밑줄 그어가며 읽었던 (혹은 그 명성만 듣고 아직 읽지 못했던) 작품들을 누군가가 영화로 만들었다면 한번쯤 보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작품 읽을 시간이 없는 경우에는 문자 텍스트를 읽는 경험을 두어시간만에 영상을 보는 걸로 때울 수 있다는 장점도 있고, 텍스트를 읽은 경우에는 읽으며 내가 상상한 것들을 어떻게 그림으로 풀어냈을까 하는 궁금증도 작용한다. 철저하게 원전에 충실한 것은 충실한대로, 아주 느슨한 각색은 느슨한 각색대로 각기 보는 재미가 있다. [Beowulf]를 액션 영화 비스므리하게 만들어버린 <전사 베오울프>에서부터 스티븐 킹의 원작을 바탕으로 한 <하트 인 아틀란티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영미문학 작품들에서 나온 수많은 영화들이 있다.

두번째 부류는 직접 영미문학과 상관은 없더라도, "영미 역사와 문화" 같은 과목에서 보면 괜찮을 법한, 영미 역사나 사회의 어떤 특징적인 면을 드러내주는 영화들이 있다. 왕조사를 중심으로 한 것이긴 하지만 <엘리자베스>나 <미시즈 브라운> <조지왕의 광기>같은 역사물들이 그러하고, <아름다운 사람들>이나 <레이닝 스톤> <아버지의 이름으로>같이 당대의 여러가지 사회문제를 이런저런 방식으로 건드려주는 영화들도 있다.

오늘 얘기하려고 하는 영화는 세번째 부류인데, 이 부류의 영화들은 영미문학과 자주 연관되는 역사적 사건, 혹은 인물의 이야기를 다룬 것이다. 가장 유명한 작가이면서도 개인사는 미스테리에 싸인 셰익스피어의 일생에서 특정한 국면을 다룬 <셰익스피어 인 러브>나, 제임스 조이스와 노라 바나클의 얘기를 다룬 <노라> 같은 것이 그 예가 될 것이다. (곁다리지만, 이언 맥그리거의 조이스 연기는 좀....아니올시다였다...-.-;;)

문제는 어떤 작가의 전기적인 사실(그것이 사실이든 허구이든)을 다루는 영화치고 영화로서 썩 재미있는 것은 드물다는 것이다. 이유가 뭔지는 잘 모르겠는데, 영문학의 경우는 더욱더 그러하다.

바이런, 셸리, 메어리 셸리, 고드윈 가계의 얽히고 섥힌 드라마를 엮은 영화 <로잉 윈드>(Rowing againt the wind)(비디오 가게 구석에 처박혀 있을 거다. 찾아보시라.)는 가령 메어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 서문에 나오는 제네바에서의 정황들이나, 바이런의 이탤리 생활, 셸리의 익사 같은 사실들을 정교하게 재현하고 있지만, 영화로서 그다지 인상적인 것은 아니다. 엉.. 휴 그랜트가 바이런이넹...? 혹은 <7가지 유혹>(Bedazzled)에 나오는 엘리자베스 헐리가 클레어로 나오넹....? 뭐 그런 거 밖에 볼 게 없다. 얘네들, 워낙 기구하게, 짧고 굵게, 웃기는 짜장으로 살았는데, 역쉬...영화로 만들어 놓아도 꽤나 황당하다.

오늘 얘기할 영화는 낭만주의 시인들을 다룬 또 하나의 영화로서, Julien Temple 감독의 2000년도 작품인 <팬디모니엄>(Pandaemonium)이다. 이 영화는 바로 토머스 하디 원작의 <캐스터브릿지의 읍장>에서 영감을 얻은 [The Claim]이라는 영화의 시나리오를 썼고, 영국의 좌파 잡지인 [Living Marxism]의 TV 칼럼니스트이기도 했던 Frank Cottbell Boyce가 시나리오를 썼다. 미리 말하자면, 이 영화의 내용이 역사적 사실과 100% 일치한다는 건 장담 못하지만, 전기적 사실을 다룬 영화 치고는 꽤 흥미진진하다.

<팬디모니엄>은 워스워스, 콜릿지, 그리고 워즈워스의 여동생 도로시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인데, 콜릿지가 브리스톨에서 열렬한 정치 연설을 하는 것을 보고 워즈워스가 감명을 받는 장면에서 시작되어, 워즈워스가 확고한 명성을 쌓고 사우디가 계관시인으로 임명되는 시점에서 마약에 중독된 콜릿지가 파티장에 난입(?)하는 시기까지를 다루고 있다.

물론 그 사이에는 콜릿지의 정치적 열정과 좌절, 존 쎌월과의 관계, 혁명의 소용돌이에 빠진 프랑스와 전쟁, <서정담시집>을 출판하게 된 과정과, 워즈워스와 여동생 도로시,그리고 콜릿지의 묘한 관계, Lake District에서의 생활 등이 담겨져 있다.

다수의 영문학자들에게 자문을 거쳐 철저한 고증을 했던 것처럼 보이는 이 영화는, 따분한 전기 영화가 아니라 [아마데우스] 뺨치는 극적인 갈등으로 가득차 있다. 게다가 <서정담시집>의 주요 시들 (Tintern Abbey, Frost at Midnight, Ancient Mariner...)을 비롯하여 <쿠블라 칸>에 이르기까지 적어도 학부 수업 시간에 다루는 두 시인의 주요 시들을 아주 아름다운 영상과 함께 듣고 볼 수 있으며, 그 시들이 나온 정황까지 상세하게 알려준다. 사실 나는 영문학사의 낭만주의 파트를 공부한 뒤 이 영화를 학생들에게 보여줘야 겠다고 생각하고 있다.

문제는 (이건 나랑 같이 사는 아저씨가 가장 불만스러워한 대목이기도 한데) 이 영화가 철저하게 콜릿지의 편에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라이너스 로슈(Linus Roache -- 배우가 누군지 궁금하시면 <시암 선셋>을 보시기 바란다)가 천재 시인 콜릿지 역을 맡고, 존 해너(John Hannah -- 이런저런 영화에 개성있는 조연으로 많이 출연했으나, 유치한 내 감성으로 최근에 기억에 남는 것은 <미이라> 시리즈의 그 촐싹거리는 아저씨역과, <네번의 결혼식과 한번의 장례식>에서 오든의 시를 멋들어지게 낭송하던 모습이다. 알고보니 나랑 동갑이다....쩝.)가 싸가지 없는 워즈워스 역을 맡았다.

콜릿지는 천재 시인이나 현실적인 계산속에 능하지 못하고, 워즈워스는 재주는 썩 없는데 자기 앞가림 하나는 똑부러지게 잘 한다. 콜릿지의 정치적인 동지였던 쌔러 프리커는 시인의 아내가 되어 고달프게 살고 있지만 알 건 다 안다. 늘 워즈워스의 그늘에 가려져 있던 도로시는 활달하고 열정적인 페미니스트이지만, 콜릿지와의 시적인 교감도 한계가 있고 더욱이 드센 오빠의 그늘에 가려 움직일 수 있는 여지는 별로 없다. 아마 콜릿지 학자들의 입김이 더 세었다보다. 워즈워스 숭배자는 기분 되게 나빠지니까 각오를 하고 보셔야 할 거다.

한마디로 이 영화는 [아마데우스]의 영국 낭만주의 버전이다. 즉, 콜릿지는 모짜르트고, 워즈워스는 살리에리다. 엄청난 천재성을 보이는 콜릿지는, 도로시의 도움으로 <늙은 수부의 노래>를 완성하고, 워즈워스가 건네준 아편의 힘을 빌어 <쿠블라 칸>을 써내려간다. 시 쓰는 일을 무슨 달리기 연습처럼 그냥 매일매일 일정량을 착실하게 하면 된다...는 생각으로 여기는 워즈워스는 도대체 시가 안 써져서 어쩔 줄을 모르고, 콜릿지의 술술 풀리는 시상에 약이 오른다. 워즈워스는 은행원이 되었어도 아주 좋았을 것같은, 그런 인물로 나온다.

벌판을 거닐며 워즈워스가 "I wandered lonely as a cow...."라고 기껏 목에 힘주고 읊었더니 여동생이란 뇬이 "cow 말고 cloud라고 하면 어떠냐"라고 딴죽을 건다. 워즈워스란 놈, 속도 없지..."어, 그래? 그게 더 낫네...."하고 말하는 워즈워스의 모습은 웃음을 자아낸다. 설마하니 'cow'라고 까지 했을까나....? 이런저런 장면들이 다 워즈워스를 철저하게 '븅신' 만들자는 장치다. 아편 먹고 뿅 가서 써내려간 <쿠블라 칸>을 보며 이건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고 자기 기질에도 안 맞으니 안 되겠다고 내치는 워즈워스의 모습, 은근히 기대했던 계관시인 타이틀을 사우디가 먼저 가져가자 떫떠름해하는 모습 등은 모두 '속물'이자 '변절자'인 워즈워스의 모습을 강조한다.

반면 콜릿지는 '불운한 천재'이다. 썰렁한 오두막에서 빽빽거리는 아이를 안고, 뿌옇게 성에가 낀 유리창과 추운 겨울날을 풍경을 보며 읊조리는 "Frost at Midnight"이나, 머릿 속에 떠오른 환상을 끄적거린 <쿠블라 칸>은 무조건 아름답다. 웬만한 뮤직비디오 저리가라 할 정도다.

콜릿지는 자신의 일상과 건강, 심지어 목숨을 걸고 시를 쓴다. 그로 인해 고통받는 것은 아내인 쌔러이다. 그리고....그 알맹이를 따먹는 것은 워즈워스다.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뙤넘이 번다. <서정담시집>에 기여한 콜릿지의 공헌이 적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익명으로 출간했던 초판이 날개 돋힌 듯 팔리고, 런던 문단의 화제거리가 되자 워즈워스는 <서정 담시집>의 재판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넣는다. "강렬한 감정의 자연스러운 넘쳐 흐름"이라는 둥, "사람에게 이야기 하는 사람"이라는 둥,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들을 지껄여서 영문과 학생들의 시험 부담을 한층 더해준 그 유명한 <서문>과 함께.....

이로써 워즈워스-콜릿지의 공동 작업이었던 (혹은 이 영화에 의하면 콜릿지의 천재성에 빚지고 있던) <서정 담시집>은 주로 워즈워스의 업적으로 알려지게 되었고, 세속적인 의미에서 부와 명예를 거머쥐고 오래오래(80살이 될 때까지...! 2세대 낭만주의자들은 다 요절한 후에도....끈질기게....) 살았던 워즈워스에 비해, 콜릿지는 아편 중독의 늪에서 오랫동안 헤어나오지 못했으며, 아마도 [Frost at Midnight]에 등장하는 아들의 대학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해 [Biographia Literaria]를 마구마구 써대야 했으며 (후반의 인용문들이 지나치게 장황하고 긴 것은 책 분량을 늘리기 위한 고육책이었다는 설도 들은 적이 있다..)... 하여간 불행했다. (영화에는 안 나오지만, 말년에는 꼭 불행하기만 하진 않았더란다....뭐, 나름대로 존경받고 살았다고 하니....-.-;;)

이것이 역사적으로 사실이건 아니건 간에, 어떤 경우에는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뙤놈이 버는 경우가 왕왕 있는 법이므로, <팬디모니엄>의 설정은 밋밋하지 않고 꽤 재미있다. 쎌월이나 월쉬와 관련된 정치적 이슈들 (가령 이들이 매일 모여서 떠들고 책읽고 방황하던 생활 자체도 프랑스 혁명이 퍼뜨린 과격한 사상과 연관지음으로 해서 생겨난 여러가지 사건들)을 좀 더 다루었어도 재미있었겠다는 아쉬움도 남고, 살리에리와 모짜르트의 스토리를 너무 많이 차용한 듯한 인상도 들긴 하지만, 전기 영화치고는 상당히 흥미롭다는 얘기다.

어떤 사람이 지닌 재능과, 그것이 발휘되는 계기는 꼭 일치하진 않는 것 같다. 워즈워스의 똑부러진 계산속과 강력한 추진력이 아니었더라면 콜릿지의 재능이 빛이나 보았겠느냐는 얘기도 가능은 하겠지만, 워즈워스가 콜릿지와 가까와질 무렵엔 콜릿지가 워즈워스보다 훨씬 유명하고 장래가 촉망되는 시인이었음을 기억하자. 워즈워스 입장에선 자신의 재주가 부족할 때는 천재적인 재주 지닌 사람들의 능력을 '동원'하여 '누이좋고 매부좋은' 일을 도모 하는 것이 나쁠 거 없다는 얘기도 할 수 있겠지만, 그러는 동안 피폐해지고 소진되는 콜릿지의 삶은, 그리고 자신의 열정과 재능을 이용하여 명성을 취한 후 본체만체하는 이기적인 동료에 대한 배신감은 또 누가 보상할 것인가?

이 영화는 전적으로 그 '동원'되는 사람의 허탈함과 배신감에 공감하는 입장에서 만들어졌다. 실제로는 워즈워스가 그렇게까지 나쁜 놈이 아니었을 수도 있지만, 하여간 이 영화에서 워즈워스는 천재 시인을 파탄으로 몰아넣고 그 재주를 효과적으로 동원하고 그에 편승하여 이름을 날리는 얍삽한 놈이다. 관객들은 아주 자연스럽게 콜릿지의 천재적인 재능과 아름다운 싯귀에 감탄하고, 워즈워스의 속물같은 행태에 침을 뱉는다. 이러한 설정이 호소력을 갖는 이유는, 아마 나 자신을 포함해서 대개의 사람들이 스스로를 엉뚱한 일에 동원되어 재능을 낭비하는 천재, 혹은 뙤놈에게 돈 벌어주는 재주많은 곰 정도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컹.....나도 재주많은 곰이기보다는 돈 버는 뙤놈이고 시푸다...ㅜ.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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