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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내겐 너무 후진 당신?! - <타인의 취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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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12-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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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33


얼마전 모임의 뒷풀이에서 우연히 책표지 디자인 얘기가 나왔다. 사람들이 영 '디자인'에 대한 생각이 너무 없다는 의견과, 학술적인 책이 그만하면 깔끔하지 '디자인'이 뭐 그리 중요하냐는 의견이 팽팽하게 맞섰다. 기왕이면 이쁜 게 좋은 거 아니냐, 이쁜 게 뭐 그리 중요하냐, 내용이 문제다, 그래도 이쁘면 한 사람이라도 더 쳐다본다, 그게 뭐 나쁘냐, 그럼 니가 디자인 함 해봐라... 뭐 그런 얘기들이 두서없이 오갔다. 그런데 이건....아무래도 '취향'의 문제다.

새로 이사한 집에 놀러갔다. 모처럼 자기 가족에게 쾌적하게 어울리는 집을 장만한지라, 돈과 정성을 엄청 들여서 인테리어를 했단다. 들어가는 순간, 으윽... 이렇게 해 놓으려면, 차라리 그냥 더럽게 살고 그 돈은 재미난 일에 펑펑 쓰고 사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 멋지군여..."하고 인사를 건네야 하는데, 맘에 없는 소린 잘 못하는지라, 버벅거렸다.("이...이건, 멋져. 멋진 거야. 정말로.. 멋진 집이야..."하고 자기 최면을 걸어볼 시간도 없었던 것이다.) 게다가 새 집에 맞추어 모처럼 새로 장만한 가구들도 가관이었다. 저런 걸 뒤져서 돈주고 사려고 해도 힘들겠다 할 정도였다. 그것도 '취향'의 문제다.

사생활 보호 위해서 이름 밝히기 곤란한 지인, ***은 늘 '아, 깜딱이야!' 풍의 의상으로 나를 놀래킨다. 모든 옷에는 '빤짝이'가 달려야 한다는 것이 그녀의 소신인 듯, 스웨터에도 바지 주머니에도, 항상 뭔가 반짝거리는 것이 달려있다. 심지어 상을 당한 직후에도 후드에 흰 토끼털이 달려 얼굴이 해바라기처럼 보이는, 무지개색 꽃무늬가 한가득 반짝거리는 원단의 코트를 새로 사입고 나타나 나를 질리게 만들기도 했다. 그것도 역시 '취향'의 문제다.

이렇게 남들의 '취향'을 비웃거나, 내 선택이 더 '옳다'고 믿는 사이, 내가 좋아하고 싫어하는 것, 혹은 일상적으로 취하는 대부분의 선택들이 대개는 '취향'의 문제이며, 다른 사람들도 내 '취향'에 대해 이런저런 '판단'을 내릴 거라는 사실을 종종 잊어버린다. 중요한 건, 아주 가까운 사람들, 특히 아주 가까운 친구나 가족, 서로 사랑한다고 주장하는 연인, 혹은 부부 사이에서도 늘 그런 문제가 발생하고, 사실은 그것이 관계를 결정적으로 바꾸어 놓기도 한다는 것이다.

도대체 어디까지가 '취향'이고 어디까지가 '옳고 그름'인가? 내가 다른 사람에게 무엇을 권하고, 다른 사람의 선택에 초를 치고, 저런 선택은 정말 후지다고 비웃고, 그럴 수 있는 건가? 어느 정도나 우리는 타인의 취향에 대해 '간섭'하며 살아갈 수 있는가? 아니면 어느 정도나 그것을 존중하며 살아야 하는 것인가?

아녜스 쟈위라는 젊은 여성감독이 각본, 감독을 하고 마니라는 캐릭터로도 등장하는 아기자기한 프랑스 영화 <타인의 취향>(1999)은 세 남자와 세 여자의 사랑 이야기이다. 물론 그냥 연애하는 얘기가 아니고, 다른 사람과 인간적인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무엇인가 하는 질문을 던져놓고, 지극히 일상적인 에피소드를 중심으로 섬세하게 얘기를 풀어나가는 그런 영화다. (즉, 5분마다 한번씩 총성이 나거나 이쁜 것들이 옷을 벗거나 하지 않으면 못 견디는 분덜은 즉시 취침 되시겠다.)

이야기의 중심은 중견 기업체의 사장인 까스뗄라 아저씨다.(이름이 카스테라가 뭐냐.. 빵 생각 난당..) 훌떡 벗겨진 머리에, 볼품없는 몸매, 어울리지도 않는 콧수염, 썰렁한 매너... 아무튼 매력적인 데라고는 하나도 없는 전형적인 중년 아자씨다. 소매없는 런닝 셔츠 바람으로 개고기 집에 앉아서 화투패나 돌리면 딱 어울릴.... 이 아자씨, 조카가 단역으로 나온다고 억지로 끌려간 연극 공연에서 한 여배우를 보고 홱 가버린 것이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그 여배우는 자기 사무실에서 며칠 전에 시큰둥하게 인터뷰를 하고 내보낸 영어 개인교사 끌라라다. 도대체 공통점이라고는 하나도 없는 이 두 사람, 가까와질 수 있을까?

서브 플롯으로는 까스뗄라의 운전기사 브루노의 웃기는 플룻 연습, 그리고 까스뗄라의 임시 보디가드인 프랑크와 바텐더 마니(이 여배우가 바로 감독이다, 멋지당...^^)의 연애 스토리가 펼쳐진다. 여자 경험 많은 프랑크는 마니에게 결혼 이야기를 농담처럼 건네고, 마니는 프랑크 앞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대마초를 거래한다. 프랑크는 눈살을 찌푸린다. 마니는 대마초 거래를 그만 둘 수 있을까?

끌라라 눈에 까스뗄라는...돈은 많은데, 취향이 너무 후지다. 돈 버는 일밖에는 모르고, 교양도 없고, 예술의 'ㅇ'자도 모른다. 끌라라의 동료들과 만나도 도대체 얘기가 통하질 않는다. "입센 작품은.... 너무 웃겨여...하하." "마자, 마자요..." 동료들은 그를 이렇게 놀려먹는다. 그래도 까스뗄라는 끌라라와 가까와지면서 진심으로 그림을 좋아하고, 연극도 보러 가게 된다. 여자한테 잘 보이려고 그런 걸까? 아니면 정말로 그게 좋아진 것인가? 아, 그 모든 게 이 아저씨에겐 진심이었다. 그게 이 영화의 핵심이다. 끌라라가 그걸 아는 순간, 해 놓은 것도 없이 마흔 고개 넘어가는 게 한심하여 늘 소화불량 표정으로 분위기 잡던 그녀는 이 영화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활짝 미소를 짓는다.

더 중요한 인물은 까스뗄라의 아내다. 그녀는 자신이 주부로서 '완벽한 취향'을 가지고 있다고 철석같이 믿는 여자다. 그녀는 선의에 가득차 있으며, 자기 가정을 깔끔하게 관리하고, 이혼한 시누의 아파트 인테리어까지 도맡아 준다. 자신의 취향으로 완벽하게 장식한 집안에 남편이 사들고 온 그림은 절대로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하며, 시누의 취향은 그녀가 보기에 너무 후지다. 관객들이 보기엔....? 하, 그게 또 중요하다. 깔끔한 외모의 그녀가 꾸며놓은 꽃무늬 부글거리는 집안과, 푸스스한 외모의 시누가 꾸며놓은 단순한 디자인의 아파트를 비교하면... 그건 그냥 서로 존중해줘야 할 '취향'의 문제일 뿐이다. 그러나 그녀는 '타인의 취향'은 취향도 아니라고 여기는, 꼭 막힌 스타일이다. 내가 남자고, 내 아내가 저렇다면, 아마 나도 중년 쯤엔 바깥으로 돌게 될 듯하다.

그런저런 얘기를 맛깔지게 잘 풀어낸 영화. 별다른 클라이맥스도 없이, 현란한 눈요기도 없이, 그렇지만 화려하지 않은 영화를 도리어 좋아하는 분들이라면 아주 재미있게 보실 수 있다. 골 아픈 거 정말 싫어해서, 목에 힘주는 프랑스 영화는 별로 안 보는 편인 나도 킥킥 웃으면서 봤으니까.

늘 '취향'과 '옳고 그름'의 문제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당하곤 한다. 문제는 얼핏 보기에 '옳고 그름'의 문제인 듯 보이는 것이 사실은 '취향'의 문제일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 사이에서 벌어지는 대부분의 갈등과 거기에서 쌓인 앙금은 '타인의 취향'이 내 것과 전혀 다를 수 있음을 깜빡 잊어버리는 데서 발생한다.

아, 근데 이렇게 '타인의 취향'에 대해서 '열린' 자세를 가지려고 해도 막상 닥치면 좀 괴로운 게 사실. "아, 나는 요새 나훈아가 점점 좋아져.."(윽, 느끼해!), 혹은 "조성모, 넘넘 귀엽지 않냐?"(윽, 더 느끼하당...!) 이렇게 말하는 친구들에게 흔쾌히 동의하고, 그의 '취향'에 함께 젖어들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니 말이다. 그게 친구이니 망정이지, 남편이면 조금 더 문제가 심각해질 듯 싶다.

새삼 '다른' 존재와의 관계가 어렵다고 느끼는 요즘이다. 나이 먹을만큼 먹었는데 왜 이리 매사 서투르거나, 자기 중심적이거나, 앞뒤 못 가리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이 영화를 보니, 뭐 나만 그런 건 아닌 듯하여 조금 유쾌해졌다. 다른 사람도 나와 다를 바 없이 서툴고 독단적일 수밖에 없음을 아는 데서 오는 쾌감! 나같이 못 돼먹은 사람들에겐 요런 게 바로 사는 낙 중의 하나가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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