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세미나들

 *영미연 안팎 소식

 *이달의 학술행사

 *문화 리뷰

 *다른 집 가기

 *책읽기,세상읽기

연구회소개 / 회원가입 / 분과연구실 / 도서실 / 회의실 / 사이트맵 / 자료회원연구실 / 자유게시판

                     

제   목

 기억하라, 기억하라! -- <메멘토>

작성자

작성일자

2001-11-29

이메일

조회

3285


나이 들면서 잊어버리는 것도 많지만, 새로 알게 되는 것들도 있다. 나이 들어 입력된 새로운 앎도, 젊은 시절의 깨달음 못지 않게, 신선하고 짜릿하다. 그렇지만 결국 내가 기억하는 것은 내가 겪은 일, 내가 읽은 것, 내가 본 것의 아주 조그만 일부이다. '어떤' 일부를 기억하느냐에 따라 내 판단은 달라진다. '무엇'을 기억할 것인가를 나 스스로 결정하는 것은 아니다. 별 것도 아닌 게 평생 기억에 남기도 하고, 중요한 일이라고 여기는데도 까맣게 잊어버리는 일도 있다. 잊어버리기 때문에, 그것도 매우 불규칙하고 혼란스럽게 잊어버리기 때문에 사람은 시를 쓸 수 있는 거라고 누가 그랬다. 물론, 누가 그런 말 했는지는 잊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메멘토>(2000)를 보고 나면 한번쯤 그 영화의 형식을 그대로 따서 글을 쓰고 싶어진다. 인터넷 게시판에서 그런 비슷한 글들을 이미 몇 개 봤다. 왜 저렇게 쓰나 했더니, 그게 바로 영화의 영향이었다. 그리고 영화롤 보고 나자, 나도 당장 한번 그렇게 쓰고 싶어졌다.""



좀 찌그러질 텐데... 무슨 상관이랴. 요새는 사람을 만날 약속을 적느라고 수첩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이미 일어난 일을 적느라 사용하기도 한다. 누가 찾아왔으며, 누구에게 전화를 했으며, 누구에게 돈을 송금했으며...무슨 영화를 봤으며... 그런 것들을 적어놓는다. 적어놓지 않으면 그 일이 아예 일어나지 않은 것처럼 잊어버린다. 특히 돈을 부친다든가 하는 것은, 언제 부쳤는가를 수첩에 적어놓지 않으면 정말 곤란한 경우도 있다. 가방을 다 헤집으며 송금 영수증을 찾아 헤매야 한다. 그래서 할아버지는 옛날에 수첩에다가 매일 똑같은 일과를 적고 또 적고 하셨던 것같다. 신문에 난 오늘의 주요 뉴스와 함께 말이다. 매일 반복되는 일과를 뭐 저렇게 적으실까 하고 비웃었더랬다. 지금은 왜 그러셨는지 알 것같다. 나이 들면서 잊어버리는 것도 많지만, 새로 알게 되는 것들도 있다. 나이 들어 입력된 새로운 앎도, 젊은 시절의 깨달음 못지 않게, 신선하고 짜릿하다.



""영화롤 보고 나자, 나도 당장 한번 그렇게 쓰고 싶어졌다. 시간 속에서 항상 직진만 하는 게 좀 지겹기도 하고, 이걸 토막내서 다시 조립하면 어떻게 될까 궁금하기도 하니까. 물론 플래쉬 백이라는 것도 있지만, 그거 말고, 워드 프로세서에 다 있는 자르기-붙이기 기능을 이용해서 정말로 시간의 순서들을 조각내어 다시 배치하면 어떻게 될지, 해보고 싶어졌다.""



쓸 데 없는 생각이다. 하여간 이 일을 그의 아내에게는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다. 학교로 돌아오려고 버스 정류장 쪽으로 가다가, 돌아가면 이미 점심 시간을 놓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충 때우려고 빵집에 들어갔다. 항상 선택은 어렵다. 최근에는 도넛같은 단빵을 잘 안 먹어서 그런지, 뭘 먹어야 하나, 잠시 멍멍해진다. 조렇게 생긴 건 무진장 달던가? 저건 옛날에 먹어본 건데... 의외로 덤덤한 맛이었던가? 바삭바삭하던가, 아니면 말랑거리는 감촉인가? 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밑에 적힌 이름을 보고 대충 짐작해서, 이건 크림이 빵빵하게 든 거, 이건 그냥 맹숭맹숭한 거, 요건 튀겨서 파삭거리는 거.... 이렇게 '판정'을 내린다. 조금 전의 기억도 곧장 잃어버리는 레너드가 폴라로이드 사진 뒷면의 글귀를 보고서야 그 사람을 파악하는 것과 같다. 내가 잘 먹던 '애플 프리터'는 어디갔지? 아, 그건 이 집에서 파는 게 아니던가? 아니면 오랜만에 와서 제품들이 좀 달라진 것인가? 빵 몇 개를 봉투에 담고 그 봉투를 다시 가방에 넣는다. 좀 찌그러질 것같다. 무슨 상관이랴.



""자르기-붙이기 기능을 이용해서 정말로 시간의 순서들을 조각내어 다시 배치하면 어떻게 될지, 해보고 싶어졌다. 자, 영화 <메멘토> 식으로 글을 쓰는 것은 간단하다. 일단 사건과 생각들을 순서대로 주욱 쓴다.""



영화가 끝난 후 자리에서 일어나 나오려고 하니, 여자는 어느새 오간 데 없다. 어느새 나가버렸담? 어어.. 이거 진짜 수상한 걸? 꿀릴 거 없다면 그냥 인사 시켜줘도 되는 거 아닌가? 영화 하나 본 게 뭐 그렇게 대수라고. 남자는 엉뚱하게도 나와 그가 둘 다 아는 어떤 사람 얘기를 꺼냈고, 나는 반가운척 얘기를 나누다가 헤어졌다. 만난 장소가 아침의 한산한 극장 안 아니었더라면...극장에 사람만 좀 많았어도....아니, 양쪽 다 서로의 얼굴을 완전히 잊어먹고만 있었어도....이럴 때 망각이란 참 편리한 것이었을 텐데. 할 수 없이 나는 그 남녀가 무슨 사이일까... 머릿 속에서 완전히 삼류 소설을 쓰고 있다. 물론 쓸 데 없는 생각이다. 하여간 이 일을 그의 아내에게는 이야기하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중 일부는(영화에서는 모텔 방에서 전화받는 풍경과 주인공이 만난 적 있다고 '주장하는' 비슷한 증세의 소유자 새미에 관련된 일에 해당) 흑백으로 찍은 영화를 본따서 고딕, 혹은 이탤릭, 아무튼 나머지와 구분되는 폰트로 찍는다. 에.. 이 게시판처럼 폰트 조절하는 기능이 없으면 따옴표라도 빵빵 찍는다...""



모른척 해야 하나, 아는척 해야 하나, 머리 속에서 계산기가 파파팍.. 돌았다. 그렇지만 우리는 눈이 마주쳤고, 사람이 워낙 없었던지라, 도저히 모른 척하고 지나칠 수는 없었다. 나는 눈인사를 했고, 남자도 무심코 눈 인사를 했으나 나를 얼른 알아보지 못했다. 아는 사람이긴 한데, 누군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할 수 없이 나는 내 이름을 밝혀야 했고, 순간 남자의 얼굴에 당혹스런 표정이 스쳤다. 아뿔사...! 나도 누굴 하나 데리고 올 걸 그랬다. 그러면 그냥 서로 모른 척했을 거인디.....-.- 영화가 끝난 후 자리에서 일어나 나오려고 하니, 여자는 어느새 오간 데 없다. 어느새 나가버렸담?



""아무튼 일부는 나머지와 구분되는 폰트로 찍는다. 에.. 이 게시판처럼 폰트 조절하는 기능이 없으면 따옴표라도 빵빵 찍는다...그런 다음, 글을 적당한 (가령 치매 노인의 기억력이 지속되는 시간만큼) 길이로 토막 낸다. 그리고 앞의 토막은 제일 뒤로, 제일 뒷 토막은 맨 앞으로 하여 순서를 완전히 거꾸로 배열한다.""



물론 그 사람의 얼굴은 생각나지 않는다. 아무래도 형사가 안 되긴 잘 한 것같다. 어제는 혼자 극장에 갔다. 조그만 극장의 조조 프로그램이라, 워낙 사람이 없었다. 들어가자 마자 딱 눈에 띄는 중간 자리에 결코 젊다고 할 수 없는 한 커플이 앉아 있었다. 어라..! 남자는 내가 아는 사람이다. 그런데...여자는 내가 모르는 사람이다!! 당빠, 그 남자는 유/부/남이다. 그리고 나는, 말하자면, 그 남자보다는 그의 아내와 더 가까운 사이라고 할 수 있다. 모른척 해야 하나, 아는척 해야 하나, 머리 속에서 계산기가 파파팍.. 돌았다.



""중간 연결부분에 따로 찍은 대목들을 정방향의 순서로 배열하여 적당히 흩뿌린다. 그리고 각 대목의 마지막 부분은 바로 앞에 놓인 대목의 첫부분과 약간씩 겹치게 만든다. 완전히 똑같을 필요는 없고 <오, 수정!>처럼 약간씩 달라지면 더 재미있다. 그러면 완성된다.""



책보다 사람이 더 어렵다. 특히 여학생들의 이름은 비슷비슷해서 정말 외우기 힘들다. 현주, 은주, 은영, 은희, 은지, 지연, 지현, 미현, 미영, 지영, 진영, 주영, 영미, 미영....정말 미치고 팔짝 뛰겠다. 물론 지훈, 지섭, 진섭, 태섭, 태엽, 태훈, 태석, 현석, 홍석, 형석, 형우, 현우, 현규, 현구... 뭐 이런 남학생 이름도 헷갈리긴 매일반이다. 단 조금 특이한 이름이 여학생들보다 평균적으론 약간 더 많다는 것 뿐이다. 그런 점에선 개성있는(?) 이름이 도움된다. '어수선'이라는 여학생이나, '임신배'라는 남학생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이름이다. 물론 그 사람의 얼굴은 생각나지 않는다. 아무래도 형사가 안 되긴 잘 한 것같다.



""단, 정작 중요한 '사실'은 무엇인지 절대로 끝까지 보여주지 않는다. 그러므로 이야기는 '철저하게 사실의 변죽만을 울려야 한다. ""



책 빌려주고 빌린 것을 자꾸 잊어버린다. 그래서 지난 여름부터는 커다란 포스트 잇을 사서 책상 옆에 붙여놓고 누가 빌려간 책, 내가 빌린 책들을 날짜와 함께 적어놓기 시작했다. 그리고 빌려 읽고 돌려줘야 할 책들은 한꺼번에 모아서 눈에 잘 보이는 곳에 얹어두었다. 책을 빌려가는 건 주로 학생들인데, 열심히 이름과 날짜, 책 제목을 적는 걸 좀 웃긴다는 듯이 바라본다. 어떤 넘은 "아예 개인별로 대출카드를 만드는 게...?"해서 나의 빈약한 기억력을 놀려먹으려 든다. 책보다 사람이 더 어렵다. 특히 여학생들의 이름은 비슷비슷해서 정말 외우기 힘들다.



""이야기는 철저하게 사실의 변죽만을 울려야 한다. 그러면 전체적인 이야기가 엄청나게 알쏭달쏭해지고, 심지어는 신비롭게 보이게 된다. 호오..!! 이거, 내가 무슨 얘길 하려구 했던 거지...? 진짜 잼 없다.... 영화는 아무나 만드는 게 아니다....-.-;;""

 

   관련글 제목

작성자

작성일자

조회

기억하라, 기억하라! -- <메멘토> <- 현재글

2001-11-29
3285

 

 

 

연구회소개 | 회원 가입  |  분과 연구실  |  도서실  |  회의실  |  사이트맵  |  자료회원연구실 | 자유게시판

운영위  |  안과밖편집위  |  자료실편집위 |  영미문학연구 편집위 |  출판기획위번역평가위

Copyright 2001 All rights reserved SESK.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