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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19세기 영국판 X-File ? - <프롬 헬>

작성자

성은애

작성일자

2002-03-25

이메일

easung@yahoo.com

조회

3483


세기말의 영국을 뒤흔든 연쇄 살인범의 이야기를 다룬 <프롬 헬>(From Hell, 2001)을 보게 된 것은 예정에 전혀 없었던 일이었다. 원래는 홍상수 감독의 신작 <생활의 발견>(매번 제목은 왜 일케 이상하게 붙인담...참 특이하기도 하지. 임어당 수필하고 뭔 상관이 있길래?)을 보러 일요일 아침의 그 귀한 잠을 희생하고 극장으로 갔던 거였다.

아, 그런데, 4000원짜리 조조를 보러 부지런떨며 나온 관객들이 의외로 많아서 줄을 서서 기다리다가 그만 영화 시작 시간인 8시 50분에서 5분이 지나버린 거였다. 통상적인 경우, 광고며 예고편 등등 생각하면 얼른 표 사서 들어가면 되겠구만서도, 첨단 매표시설을 자랑하는 복합 상영관의 매표구 아가씨는 5분이 지나면 해당 회분이 화면에서 사라져서 표를 끊어줄 수가 없다고 잘라 말하는 거였다.

그럼 그 다음회 분을 사서 살짝 들어가 보면 안 되느냐고 했더니, 그것도 안 된다는 거다. 관객 수의 정확한 집계, 객석 관리, 등등의 이유로 절대 안 된단다. 뭐 말이야 맞는 말이지만, 이거 너무 빡빡한 거 아녀? 하기야 나도 수강 인원 초과한 과목에 추가로 신청하게 해달라는 학생들 딱 잘라서 다음에 들으라고 거절하는 판이니까, 할 말 없지 뭐.

이대로 두어시간을 기다린단 말이냐, 아니면 다른 걸 본단 말이냐? 해서 결국 낙착된 영화가 <프롬 헬>이다.(영화를 아예 안 보긴 좀 섭섭한 상황이었다. 왜냐면 이 외출 역시 지난 번에 이은 '경로효친' 코스의 일환이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번엔 전도연, 최민식 주연의 <해피 엔드>에서 매우 깊은(!) 감명을 받은 것이 마지막 극장 나들이였던 아버지도 동행하셨으므로 아무튼 영화는 뭐든 봐야 했다. -.-;;)

나, 참....황사도 개운하게 사라진 화창한 일요일 아침에 볼만한 영화는 도저히 아닌 듯했고, 같이 관람한 아저씨는 '공포영화'의 기역자도 입에 올리기 싫어하는 사람이다. <디 아더스>(The Others)도 이거 '전체 관람가'야, 하나도 안 무서워....글구 의외로 재미있당...니콜 키드만 좋아하잖아...하며 겨우 같이 봤다는 거 아닌가.

자...잡스런 얘기가 너무 길었다. 영문학을 전공하는 사람이라면, 특히 19세기 전공자라면 1888년경 런던의 이스트 엔드(East End)에서 벌어진, 온 영국을 떠들썩하게 했던 엽기적인 연쇄 살인사건을 기억할 것이다. 흔히 잭 더 리퍼(Jack the Ripper)라는 별명으로 불렸고, 수많은 모방 범죄를 낳았던 이 살인 사건의 범인은 적어도 다섯건, 혹은 여섯건의 잔혹한 살인을 저지른 것으로 되어 있다. (이 다섯건은 모두 창녀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그 당시 열 몇건의 살인이 있었으나, 그 중 정확히 몇 건이 동일범의 소행인지는 아직도 논란의 대상이다.)

당시 경찰의 사건 기록에는 유태인 도살업자와 미국인 돌팔이 의사 등 너댓명의 별볼일 없는 용의자가 올라 있었으나, 별 소득 없이 수사는 공전했고, 어느 순간 살인 사건이 더 이상 일어나지 않음으로써 이 잭 더 리퍼의 사건은 영원한 미제 사건으로 남게 되었다. 벽에 남긴 낙서가 정말 살인범의 것인지, 언론사에 보낸 편지들이 모두 그의 것인지, 아니면 국가적인 화제에 편승하고픈 또라이들의 장난질이었는지, 아무도 모른다. 그러니 영화의 첫머리에 나오는 '20세기를 여는 사람'으로 자부하는 잭 더 리퍼의 말도, 그 자신의 말인지 어쩐지 믿기 힘들다. '오리무중'이란 이런 경우를 두고 하는 말이렷다.

뒤져보니 잭 더 리퍼의 이야기를 다룬 영화가 이것이 처음은 아니다. 사람을 아예 저며놓다시피 한 잔혹한 살인 수법과, 영원히 신비의 베일에 싸여버린 범인의 윤곽, 이 어찌 사람들의 상상력을 자극하지 않겠는가. 정신병자 잭 더 리퍼가 결국 자기 아내까지 잔인하게 죽이고 그것을 목격한 어린 딸이 정신적인 상처를 안고 자라나는 스토리에서, 잭 더 리퍼의 반지를 입수한 사람들이 그의 망령에 씌어 같은 수법의 살인을 저지르게 되는 다소 황당한 이야기까지, 세기말을 뒤흔든 연쇄 살인범의 초상은 온갖 종류의 뒷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프롬 헬> 역시, 경찰 기록과 역사서를 토대로 하되, 잭 더 리퍼는 도대체 누구이며 왜 창녀들을 잔인하게 죽였는가, 하는 질문에 대한 새로운 답안 하나를 제출한다. (아, 황당한 연상이지만, 스탠리 큐브릭 감독의 <닥터 스트레인지러브>에 나오는 그 소련에 핵무기 쏴대야 한다고 개기는 또라이 장군 이름도 잭 리퍼인데...-.-;;)

세기말의 음침한 분위기, 빈부 격차가 극심한 런던이라는 대도시, 근대 과학의 첨병인 의학과 근대적인 국가 제도의 첨단을 상징하는 경찰, 그리고 매춘여성과 그들에게 기생하는 갱 조직들로 붐비는 이스트 엔드, 아편굴, 늙은 여왕과 불안한 후계자, 먹고 살 길을 찾아 런던으로 밀려드는 외국인들에 대한 영국인들의 적개심, 이러한 요소들이 적당히 뒤범벅이 된 <프롬 헬>은 예상과는 달리 공포 영화가 아니다.

프레드 에벌라인(Fred Abberline - Johnny Depp 분)이라는 실존의 수사관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이야기는 그가 아편 중독자이며 아편, 혹은 로더넘(Laudanum)에 취한 상황에서 살인 사건에 대한 환각을 보는 설정으로 인하여, 몽환적이면서도 섬찟하고 강렬한 화면들을 보여준다. (참고로 이 영화의 촬영감독은, 최근 보면서 너무너무 골치가 아파서 나중에는 막 화가 났던 <멀홀랜드 드라이브>(Mulholland Dr.)도 찍었다는데, 어쩐지 칙칙하고 몽롱한 분위기가 비스무레하다...)

아마 이런 화면들이 예고편에 나오는 바람에 공포 영화라고 생각했던 것같다. 그런데, 잔인한(거의 사람으로 정육점, 혹은 사시미 집 풍경을 연출하는...-.-;;;;) 장면들이 좀 나와서 그렇지, 절대로 공포 영화 아니다. 그냥 뻘건 색 많이 나오는 스릴러 정도로 생각하심 되겠다.

시나리오 자체는 처음부터 상당히 뻔한 '음모론'의 구도로 흘러가고, 결국 이 신비로운 미제 사건은 앞뒤가 맞아 떨어지게 딱 설명이 되어 맥이 좀 빠진다. 물론 나중에 에드워드 7세가 되는 앨버트 왕자가 문란한 생활로 구설수에 올랐다는 사실이나, 뇌의 전두엽 부분 제거하는 게 정신과 치료라고 생각했던 당시의 무지막지한 의학 기술들, 잠깐 등장하는 '엘리펀트 맨'의 모습 등이야 역사책에서 꺼내온 것일게다.

수사관 에벌라인의 옷차림(구렛나룻과 둥근 모자)와 경찰관이 시신을 발견하는 장면, 난자된 시신의 모습(특히 메어리 켈리의 시신과 그 상태를 묘사하는 문구) 등은, 당시의 신문에 실린 그림이나 사진의 구도와 아주 흡사하여, <프롬 헬>이 제시하는 설명에 그럴듯함을 더해준다.

그러나 지금 와서 보면, 그리고 영문학을 공부하는 입장에서 보면, "잭 더 리퍼"의 이야기에서 더 중요한 것은, 그것이 과연 누가 어떻게 무슨 의도로 저지른 일인가보다는, 당시 그 사건을 사람들이 어떻게 받아들였고, 그것을 이용하여 누가 어떻게 여론을 이끌어갔는지, 그리고 언론은 그 대목에서 어떤 역할을 했는지, 또한 그의 이미지가 세기말의 문화적 상상력에서 어떤 위치를 차지하느냐 하는 문제일 것이다.

영화 속에서도 경찰 국장이 손쉽게 범인을 유태인이나 도살업자일 거라고 몰아붙이는 것이나, 해부학에 전문적인 지식을 가진 교육받은 사람일 거라고 하는 애벌라인의 추측을 극구 묵살하는데서 볼 수 있듯이, 엽기적 사건을 손쉽게 여론몰이에 이용하고 나아가 특정 집단을 탄압함으로써 민심 수습의 희생양으로 삼는 당시의 관행이란 오늘날에도 낯익은 수법이 아니던가.

게다가 '조신한 여자들은 밤중에 밖에 나다니는 게 아니다'라는 담론을 퍼뜨리기에 아주 좋은 기회다. 희생자들은 모두 몸을 파는 여성들이었고, 당시의 중산층 남성들은 새로이 등장한 여권운동에 적잖은 불안감을 느끼던 상황이었다. 아, 물론 사회주의와 노동계층의 성장도 불안 요소로 여겨졌던 상황이었다. 이거 참, 간단치 않은 문제다. (세기말 성/계급의 문제와 잭 더 리퍼 사건의 여파에 대한 논의로는 Judith R. Walkowitz의 City of Dreadful Delight: Narrative of Sexual Danger in Late-Victorian London (1992)을 참조하시라.)

그러나 영화는 이러한 측면을 강조하기보다는, 다시 말해서 이 살인 사건의 정치적 함의나 문화적 영향력을 캐들어가기 보다는, 아편을 즐기는 수사관 애벌라인의 환각으로 살인 사건을 풀어가면서, 사건 뒤에 도사린 거대한 음모를 서서히 드러내는 데 초점을 맞춘다. 그 음모라는 게 따지고 보면 <엑스 파일>보다 훨씬 뻔해서 여운이 별로 없어서 그렇지.....-.-;;

게다가 처음부터 뻔한 것이지만, 예리하고 고독해보이는 수사관과 마지막 희생자로 지목된 메어리 켈리(Mary Kelly -- 이 외에도 살해당한 여자들은 역사적인 기록 상의 이름과 대부분 일치한다)와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은 지극히 할리우드적이다. 하기야 그 얘기를 훨씬 더 유치하게 처리할 수도 있었는데, 그나마 그정도인 걸 다행으로 생각할 수밖에...

배우들은 좀 아깝다. 도대체가 나오는 영화마다 평범한 인물로는 절대로 출연하지 않겠다고 결심한 듯한 조니 뎁의 신비스러운 분위기도 멋지고, 직업에 비해서는 너무 깔끔하고 예쁘게 나오는 헤더 그레이엄(Heather Graham)도, 연기야 뭐 그저 그렇지만 예뻐서 즐겁다.

게다가 어의(御醫) 윌리엄 경(Sir William Gull)을 연기한, <반지의 제왕>에서 빌보 배긴스(Bilbo Baggins)로 나오는 이언 홀름(Ian Holm)의 연기는 아주 훌륭하다. 극에서 극을 달리는 다양한 그의 눈빛 때문에 그나마 이 영화의 클라이맥스가 생생하게 살아난다. 특이한 <리어왕>으로도 깊은 인상을 주었던 이 일흔두살의 노배우는 그야말로 '나이는 거저 먹는 게 아니'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실감케 해준다. 허술한 시나리오 속에서조차 빛을 발하는 노년의 카리스마!

19세기 전공자들이나, 세기말에 관심있는 분덜은 나중에 비디오로 빌려서라도 보시길 권해드린다. 당시의 그림과 사진을 그대로 살려낸 듯한 화면과, 뻘건 하늘 배경으로 한 음산한 런던의 모습이 인상적인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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