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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머가 아름답다는겨? - <뷰티풀 마인드>

작성자

성은애

작성일자

2002-03-12

이메일

easung@yahoo.com

조회

3381


"천재, 광기, 그리고 노벨상"이라는 카피가 붙은 존 포브스 내쉬(John Forbes Nash, Jr.)의 전기 <뷰티풀 마인드>(A Beautiful Mind, 1998)를 읽은 건, 순전히 론 하워드(Ron Howard) 감독이 만든 영화 <뷰티풀 마인드>를 보기 위한 전초전(?)이었다.

<뉴욕 타임즈>의 경제담당 기자라는 저자(Sylvia Nasar)의 약력에 걸맞게 각종 수학 공식과 경제학의 학설들이 난무하는 책을 읽는 건 내게 결코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다. 보기와는 달리 (보는 관점에 따라선, 생긴대로....-.-;;) 숫자에 영 젬병인 탓도 있고, 현대의 경제학 이론들에 어두워 미리 겁먹은 탓도 있겠다.

그러나 그보다 더 큰 이유는 따로 있었다. 이게 다 못돼먹은 심사 탓이겠지만, 나는 살아 생전에 갈채 받고 세속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의 전기는 썩 재미없다고 느끼는 편이다. 내 기억에 남는 평전들의 주인공, 전태일, 김수영, 체 게바라, 파농...이런 사람들은 사실 '노벨상'같은 명예나, '고생 끝, 행복 시작'류의 이야기와는 거리가 먼 인간들이 아니던가. 영화도 마찬가지여서, '성공시대' 풍의 스토리보다는 좌절한 욕망, 아웃사이더의 따끔한 반격, 끔찍한 실패의 기록들에서 더 큰 감동을 받는 편이다. 그러니 책은...대목대목 재미도 있었지만, 그저 그랬다.

그런데, 영화는 이 전기와 얼마나 다를 것인가 생각할 여유도 없이 개강 첫 주가 정신 없이 닥쳐온 것이다. 조금만 시간이 지나면 읽은 거 다 까먹는, 공부하는 사람으로서는 치명적인 결함을 가진 나의 메모리로서는 책 내용은 물론, 영화를 봐야지...하는 생각마저 머릿 속에서 대충 지워진 상태였던 것이다. 흐이구...되는 일이 없다....-.-

그러다 결국 없는 시간 쪼개고 별러서 억지로(?) 이걸 보게 된 것은 다름 아니라, 몇 년만인지 기억도 안나는 오랜만의 극장 나들이로 러쎌 크로우가 나오는 이 영화를 꼭 봐야겠다고 주장하시는 나의 모친과, 멋지기로는 장동건이 더 멋지지만 친구따라 강남을 가시겠다는 어머니의 친구분에 대한 '경로효친' 사상 때문이었던 거디어따...

나는 떡벌어진 어깨에 두터운 가슴과 굵직한 팔뚝을 지닌 튼실튼실한 마당쇠 타입의 러셀 크로우가 의외로 할머니들 사이에서 인기 '짱'이라는 것을 첨으로 알았으며, 또한 의외로 책에서 보았던 내쉬의 이미지와 아주 흡사한 것에 놀랐다. 섬세한 것과는 거리가 좀 멀어보이던 러쎌 크로우는 수줍은 듯 오만하고, 복잡한 듯 순진무구하고, 착잡한 듯 불쌍한 내쉬의 심리를 빼어나게 연기했고, 매력적인 그의 목소리는 분열증 환자의 횡설수설하는 대사를 마치 시낭송처럼 기꺼이 귀기울여 듣도록 만들었다.

영화에서 보여주는 내쉬의 삶이 내쉬의 평전과 같으니 다르니 하는 그런 논란들을 일단 제껴놓고, 또한 왜 하필 1994년의 시점에서 내쉬의 이론이 경제학에서 각광을 받게 되었는가, 게임 이론에 노벨경제학상을 줘야 한다는 합의에 깔린 속뜻은 무엇인가, 이런 논란들도 제껴놓고 보면, <뷰티풀 마인드>는 나름대로 짜임새 있게 잘 만든 영화다.

전기 영화가 흔히 자아내는 지루함, 혹은 그 인물의 삶에 흥미가 별로 없을 때 느껴지는 생소함을 털어내려고 발버둥을 치는 이 영화는 결국 그 해결책으로 스릴러의 요소를 차용하고 있다. 깔끔한 편집과 빠른 전개, 의외의 대목에 숨어있는 웃음, 그리고 두어 번의 반전을 통해서 관객들은 짧지 않은 러닝 타임동안 내쉬의 삶에 쉽사리 빠져들고, 그의 망상과 혼란, 좌절과 고투를 고스란히 함께 경험하게 된다.

내쉬에게 비밀 임무를 부여하는 냉전 시대의 정부 요원 윌리엄 파처를 연기한 에드 해리스(Ed Harris)나, 당돌하고 예쁜 여학생에서 천사표 아내로 변신한 제니퍼 코넬리(Jennifer Conelley), 그리고 내쉬와 공통점이 전혀 없이 자유분방하기 그지없는 룸 메이트 찰스 허먼역의 폴 베터니(Paul Bettany) -- 요 영국 배우는 앞서 소개했던 <기사 윌리엄>에서 촐랑대는 떠벌이 제프리 초서를 연기한 바로 그 넘 되시겠다 -- 등, 조연들의 호연도 이 영화의 완성도를 높여주는 데 기여하고 있다.

물론, 같이 영화를 관람했던 할머니들은 정신과 의사 역의 크리스토퍼 플러머(Christopher Plummer)가 도대체 올해 몇 살인데 저렇게 팽팽한 거시냐...월매나 돈을 쳐들여 얼굴을 땡겼으면 저렇게 정정해보이냐...하시면서, <사운드 오브 뮤직>의 폰 트랩 대령이자 한때는 그 시대의 '옵빠'였던 이 머리 허연 할배에게 상당한 관심을 보이는 것도 잊지 않으셨다....

이 영화의 교훈(?) -- 글타, 이런 미국 영화의 특징은 반드시 '교훈'을 주는 데 있다 --은 마지막 노벨상 시상식에서 내쉬가 하는 감격어린 연설에 집약되어 있다. 숫자만을 신봉하던 자신이 엄청난 정신적인 혼란을 겪고 그 와중에도 다시 평정을 회복하고 이만큼 될 수 있었던 것은 숫자로는 설명되지 않는 그 무엇 때문이었다는 거다. 물론 그 '무엇'이란 아내 알리샤의 헌신과 사랑, 그 '아름다운 마음씨' 되시겠다. (나훈아 노래 가사같은 유치찬란한 사랑의 대사를 읆조리는 요 대목에 가서 할머니들은 바야흐로 '감동의 물결' 분위기로 콧물을 훌쩍였고, 나는 그게 마치 러쎌 크로우의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수상 소감 리허설 같아서 '힝!'하고 콧방귀를 뀌었던 거시다...-.-;;;)

자, 요 대목에서 이 영화가 '감동의 물결'을 자아내기 위해 얼마나 음흉하게 굴었는지 짚어보자. 사실 내쉬의 이론이 경제학에서 어느 정도의 위치를 차지하는 것인지, 그 이론의 이데올로기적인 함의가 무엇인지, 나로서는 차근하게 따져볼 깜냥도 못되고 그럴 지면도 아니므로 그건 일단 넘어가기로 하자.

글구, 뭐 영화에서야 그 이론 자체가 그다지 중요한 건 아니다. 이쁜 여자 한 명 두고 서로 피터지게 싸우기보다는, 한단계 기대를 낮춰서 차선을 취하는 것이 서로가 사는 길이다...이런 게 내쉬 이론의 핵심이라고 영화는 설명하고 있는데, 그게 뭐 그리 탁월한 것인지 영화만 보고서는 전혀 짐작할 수 없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라는....그런 정도만 하고 넘어가자.

그것보다 더 음흉한(?) 점이 있다. 영화의 중심에 있는 스릴러적인 요소는 다름 아닌 소련의 암호 해독 임무와 관련된 것인데, 영화에서 관객의 뒤통수를 치는 부분은 바로 이 임무의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디까지가 내쉬의 망상이냐 하는 경계선에 있다. 그런데 바로 이러한 반전(?!) 때문에 실제 내쉬가 살았던 시대의 냉전 분위기, 특히 내쉬가 한때 실제로 몸담았다가 동성애 성향이 들통나 쫒겨났던(동성애자들은 협박에 약하다는...'이론'을 근거로 그런 규정을 만들었다고 한다) RAND라는 연구소의 존재는 허구의 것이 되어버리고, 마침내 영화 속 현실에서 슬그머니 지워지고 만다.

미국이 소련보다 군사적으로 우세한 전력을 갖기위해 내로라하는 과학자들을 동원하여 공군과 긴밀한 연관을 맺도록 설립된, 미공군과 원자력 위원회의 돈으로 운영되었으며, 수소폭탄과 대륙간 탄도 미사일 작업에 깊숙하게 연루된 RAND라는 실존의 연구소, '미공군의 인재 유치 벤처'의 존재는 한낮 내쉬의 망상으로 치부되고 마는 것이다. 내쉬의 정신분열증이 RAND를 그만두면서 본격적으로 드러났다는 점, 그리고 그 분열증의 내용조차 고스란히 냉전 시대의 이미지를 '반영'하고 있다는 점 또한 영화에서는 그다지 크게 부각되지 않는다. 흠....'인간 승리'를 보여주려고 '역사적 사실'을 희석시킨다...할리우드 영화의 전형적인 수법. -.-

자, 그럼 도대체 뭐가 아름답다는겨? 러쎌 크로우의 연기가 아름답단 말인감? 엉뚱한 얘기일지 모르지만, 정작 이 영화에서 아름답게 느껴졌던 것은 그다지 사교적이지도 못하고, 같이 있기에 유쾌하지도 않은, 심지어 주위 사람들에게 '민폐'를 끼치는 내쉬같은 학자를 대학이라는 공동체가 아주 따뜻하게 감싸주고 수용해주었다는 점이다.

프린스턴 대학을 30여년간 유령처럼 떠돌던 내쉬는 점차 자신의 망상을 극복하고 다른 사람들과 의사소통하는 법을 배우며 서서히 일상으로 돌아온다. 수학자로서 발군의 실력을 발휘하기엔 너무 많은 나이지만, 어쨌든 그는 현실에 다시 발을 디디고 서게 된다.

그나마 대학이 내쉬에게 쉴 곳과 공부할 곳, 그리고 부담없이 이야기 나눌 수 있는 사람들을 제공했고, 그러한 배려와 관용 덕분에(?) 내쉬가 '회복'될 수 있었다는 것은, 그것이 과학적인 근거가 있건 없건 참으로 부러운 모습이었다. 실제로 프린스턴 대학이 그랬건 아니건, 그건 또 별개의 문제지만 말이다.

학교다닐 때는 서로 싸가지 없이 굴던 동료들이 결정적인 위기의 순간에 그를 배려해주고 받아들여주는 것 또한, 대한민국의 각박한 현실에 길들여진 관객으로서는 다소 비현실적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모든 '유토피아'적 이미지가 그러하듯 매우 인상적이었다. 우리같으면 어떠했겠는가? 정신분열증은 고사하고 조금만 비사교적이거나 언사가 직선적이어도 '인사성이 없네' '시건방지네' '선배를 몰라보네' 하면서 흠집을 내기 일쑤 아니던가.

내쉬가 가진 수학자로서의 미덕을 충분히 인정해주고, 그 미덕을 존중하여 그의 모든 인간적 결함과 좌절과 질병을 감싸주는 집단으로서의 대학, 그리하여 그 개인의 '아름다운 정신'이 다시 빛날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대학, 그렇게 개개인의 마음을 열어주고 평안하게 만들어주는, 그리고 진지하게 탐구하고자 하는 사람들 사이의 의사소통이 가능하도록 해주는 대학의 모습이야말로 참으로 아름다운 학문적 공동체의 모습이 아닐까?

책에서도 영화에서도, 정작 '아름다운 정신'이라고 느껴진 것은 다름아닌 그런 대목들이었다. 배우의 매혹적인 연기나 감독의 의도와는 상관없이 내 맘대로 보고 싶은 대목만 골라보고 즐거워 하는 못된 관객의 소감....-.-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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