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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김윤식, 유종호, 김우창 그리고 사이드

작성자

bloom

작성일자

2008-09-11

이메일

bloom.pe.kr

조회

2763


사이드가 제기했던 '말년의 양식'이라는 키워드로, 사이드와 김윤식, 유종호, 김우창을 비교하는 글을 퍼온다. 때로 지나친 단순화의 느낌도 들지만, 글의 문제의식은 새겨들을 만하다. 예컨대 이런 대목.

> "평가의 공통점은 자본주의적 근대와 세계화에 순응하는, 더 정확히 말하면 타협하는 객체에서 벗어날 가망이 없다는 점이다. 세 대가들은 글에서 자본에 저항하는 문학이 인간 수호의 陣地라고 주장하지만 사실 투항일 뿐이며, 자본과의 대결에서 비타협을 제창하지만 학습된 시장주의를 넘지 못했다. 이것은 모두 청년 김윤식, 청년 유종호, 청년 김우창의 연속성의 말년적 형식이다."

나이가 들고 소위 '원로'가 될 수록 세상과 원만하게 지내기 쉽다. 그러나 세상과 불화하지 않는 지성은 지성이 아니다. 이스라엘군에게 돌을 던졌던 노년의 사이드의 모습은 세상과 불화하는 지성의 한 예이다. 나는 현실에 초연하고, '공자님 말씀'같이 지당한 얘기를 늘어놓는 고매한 원로가 아니라, 부르디외의 표현대로, '아가리를 벌려' 세상에게 외치는, 비판적 발언을 그치지 않는 원로, 현실에 개입하는, 행동하는 원로의 모습을 보고 싶다. 우리 지식사회에는 '고매한' 원로가 넘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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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교수신문

근대성·자유성·세계성이라는 ‘末年의 양식’
김윤식, 유종호, 김우창 그리고 사이드

김승환 충북대 국어교육과 editor@kyosu.net

* 이 글은 <오늘의 문예비평>(2008, 가을호)에 수록된 김승환 교수의 글 ‘한국문학의 말년’ 필자가 재문맥화해서 정리한 글입니다.

시대와 불화하면서도 충돌하지 않는 지략, 타자의 담론을 이해할 줄 아는 지혜가 그 불화와 모순을 잠재운다. 그러나 고결한 문학주의로 시종한다는 점에서 아쉽다

지금으로부터 8년 전인 2000년 미국, 이스라엘, 한국에서는 각각 흥미로운 사건이 진행되고 있었다. 한국의 지식인들이 2000년대의 신자유주의를 개인이 돌파해야 한다고 선언했던 때의 일이다. 자본이 독재하는 신자유주의를 돌파하는 것에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道士가 되는 것, 능력 있는 자본의 노예가 되는 것, 신의 제단에 영혼을 바치는 것, 철저하게 정신분열증에 걸리는 것 등이 있을 수 있다. 한국의 작가와 예술가들은 그 중 두 번째, ‘능력 있는 자본의 노예’를 택했다. 2000년, 한국문학에는 국제적인 감각, 상품생산자로서의 글쓰기 능력, 대중의 기호 분석, 적당한 기회주의적 양심, 통일문제나 소수자 문제 외면하지 않기 등 온갖 장사꾼 책략이 난무했다.

한편 2000년 7월, 사이드는 돌을 던지고 있었다. 팔레스타인 지구에서 이스라엘 병사를 향해 던진 돌로 인하여 그는 세계적인 지탄을 받았다. 말년에 이른 그의 팔 힘은 약해서 그가 던진 돌이 병사에게 닿지는 못했다. 그러나 그의 돌은 기회주의적이고 타협적인 세계의 여러 작가들을 적중하면서 2000년의 천하를 울리는 종소리가 되었다. 그런 2000년에 한국에서는 세계화의 시대를 자축하는 문학세미나가 열렸다. 사이드는 즉각 ‘2000년 서울 국제문학포럼’의 정 중앙을 조준했다. 그때 작가들은 다 피했고 하필 그 돌을 맞은 학자이자 비평가들이 있었다. 그들이 김윤식, 유종호, 김우창이다.

2000년 7월 사이드가 던진 돌

2000년은 이 네 문제적 인물이 모두 말년의 문을 통과한 기념비적인 해다. 사이드 자신의 말년은 예사롭지 않은 불화의 말년이었다. 이스라엘 병사를 향해서 돌을 던졌던 사이드의 말년은 평안함, 조화로움, 관용, 여유, 관조 등을 넘어서는 격정의 말년이었다. 사이드 자신이 보여준 것과 같이 예술가의 말년은 불화(intransigence), 난관, 풀리지 않는 모순이 있는 시기다. 따라서 평안하고 안락하게 말년을 보내는 예술가는 사이드가 말하는 말년이라는 개념으로 분석할 대상이 아니다. 사이드는 그런 말년이 아니라 불화하는 말년, 모순의 말년, 곤란에 처한 말년을 상정했다. 사이드가 창안한 말년의 담론은 모든 국가 모든 민족의 예술가에게 다 적용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사이드는 비록 한국문학을 논의한 적은 없지만, 지하에서 말년에 이른 한국의 비평가들을 호명했고 거기에 김윤식, 유종호, 김우창이 등장하게 됐던 것이다. 백낙청이나 조동일, 염무웅은 마침 그 자리에 있지 않았으므로 돌을 맞지는 않았지만 사이드의 돌은 이들도 겨냥했음은 물론이다.

그런 상황인 2000년 어느 날 김윤식은 ‘희대의 사기꾼 에드워드 사이드’라고 말했다. 그 문맥에서의 詐欺는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할 수 있겠으나, 사이드가 사기꾼으로 명명될 수 있다는 사실은 여러모로 중요하다. 학문도 그렇지만 예술도 높은 경지에 이르면 예술과 사기가 구분되지 않는다. 예술이 사기고 사기가 예술이라고 한 것은 백남준을 위시해 고래로부터 전해오는 이야기 아닌가. 다른 사람을 완벽하게 속이면서 審美性이 있다면 그것은 예술이고, 일반적으로 예술 또한 사람들의 미적 감각을 현혹시키는 것이므로 사기의 속성이 있다. 사이드가 사기꾼으로 명명되는 것은, 적어도 예술가의 말년을 논의하는 것에서만은 큰 의미가 있다. 오리엔탈리즘을 사기라고 하는 것과 예술가의 말년(lateness)을 사기라고 하는 것은 다르다.

하지만 그런 사기꾼 예술가 사이드의 돌에 맞았다는 것은 세 대가들로써는 참으로 鬱抑한 노릇이다. 그 어려운 식민지를 겪었고, 문학으로 나라세우기와 나라만들기에 복무했으며 현실에 순응하지 않고 견결하게 불화를 해 왔기 때문이다. 이들 세 비평가는 각각 근대성, 자유성, 세계성이라는 청년시절 이래의 일관된 세계관 때문에 2000년 이후에도 세상과 불화하고 있다. 오히려 2000년 이후의 말년에 이르러 김윤식은 탈근대성이 아니라 근대성을, 유종호는 전체성이 아니라 자유성을, 김우창은 민족성이 아니라 세계성을 강조함으로써 불화를 더욱 강화시키고 있다. 타협할 줄 모르는 결연함과 견고함은 그러나, 조화와 원숙으로 상쇄하면서도 표면적으로는 평온과 순응으로 나타난다. 아울러 연륜에서 뿜어 나오는 격조 높은 무게, 불화하면서도 충돌하지 않는 지략, 타자의 담론을 이해할 줄 아는 지혜가 불화와 모순을 잠재운다. 그렇다면 세 대가들의 말년은 무슨 의미가 있는 것인가.

2000년 전이나 2000년 이후나, 김윤식에게는 탈근대나 포스트모더니즘 또는 탈식민주의가 모두 근대에 속한다. 김윤식은 어떤 비평을 하더라도 근대라는 개념을 중심에 두는데 가령 봉건, 중세, 반근대, 비근대, 탈근대, 포스트모더니즘, 탈식민주의도 근대로 용해시킨다. 이처럼 근대란 무엇인가에 화두를 매고, 오십년 면벽 정진을 하고 있는 修士가 바로 김윤식이다. 그 묘지기의 김윤식은 2000년대에 ‘갈 수 있고, 가야 할 길, 가 버린 길’과 같이 문법적으로 불완전하지만 묘한 조화를 이루는 불화의 말년에 이르러 있다. 괴괴한 형용으로 근대문학의 근대성을 파헤치는 김윤식은 무시무시한 인내를 가진 수사다. 사이드가 말하는 말년의 불화는 그에게는 오히려 행복이다. 그런 점에서 김윤식이 감행하는 세상과의 불화는 절대화된 불화다. 하지만 이 세상에, 그러나 그리고 그러므로 김윤식처럼 예술적으로 사는 예술가가 세상에 또 있겠는가!

자본주의적 근대와 문학적 투항

2000년 전이나 2000년 이후나, 유종호에게는 세상에 문학이 존재할 뿐, 영문학이나 국문학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 무렵 유종호는 성장의 신화와 혁명이 신화가 함께 공멸했다는 선포를 하게 된다. 문학의 영토가 포괄해야 하는 자본주의적 세계화에 대한 인문주의적 진단을 내린 것이다. 자본주의적 성장의 위험이 비인간화와 자연수탈로 드러나면서 終焉을 해야 하는 운명에 처했고, 독재와 싸우던 혁명의 신화 또한 이상의 상실로 인하여 종언을 고해야 하는 운명에 처했다는 것이다. 유종호는 상업주의의 문화적 제패 때문에 병리적 현상이 만연했으므로 성장의 신화를 고수할 수 없으며, 인민전선과 체게바라의 몰락에서 보는 것처럼 혁명의 신화를 고수할 수 없다고 선언했다. 이것은 21세기의 벽두인 ‘2000년 서울 국제문학포럼’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발표한 것이기 때문에 더욱 의미가 깊다. 이렇게 유종호는 사이드가 이스라엘 병사를 향해 돌을 던지고 있을 2000년에도 고상한 형식으로 성균관 출신 대제학의 품격을 유지하고 있었다.

2000년 전이나 2000년 이후나, 김우창에게는 사해동포주의자, 휴머니스트, 지성과 감성을 겸비한 인문주의자라는 등의 평가가 따라다닌다. 그를 둘러싸고 있는 어휘들 가령, 보편주의, 객관성, 자유, 합리주의, 관용, 고결성, 문명 등은 모두 이성중심의 인간존재론과 상통한다. 청년 시절부터 말년에 이르기까지 김우창은 인간존재의 고결성을 믿고 그 전제하에 비평과 연구를 해 왔다. 그의 사전에 동물성이나 유전학의 자연선택설은 없다. 인간을 포함한 모든 존재는 고귀한 것이고 그 존엄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규칙을 지켜야 할 필요가 있으며 그 규칙이 바로 자기감시와 자기처벌이 가능한 자유이성이다. 김우창이 始末 자유이성이 가능하다고 믿은 낭만주의자였다는 사실이 경이롭다. 그래서 그런지 2000년 7월 사이드가 이스라엘 병사를 향해서 돌을 던지던 그 때에도 김우창은 자본과의 타협을 제안했다. 문학이 자본주의에 종속됨으로써 문학의 고유성을 유지할 수 있다는 지극히 당연한 발화를 함으로써 자본에 투항한 작가들을 합리적으로 대변하고 있었다.

2000년 이후의 말년에 이른 이들 세 비평가의 격렬성은 세련된 완숙미로 은폐돼 있지만 이들의 도전과 저항의 강열도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 이 점이야말로 말년의 양식의 미학이겠는데 또 이 점이야말로 이들의 문제점이기도 하다. 세 비평가의 공통점은 자본주의적 근대와 세계화에 순응하는, 더 정확히 말하면 타협하는 객체에서 벗어날 가망이 없다는 점이다. 세 대가들은 글에서 자본에 저항하는 문학이 인간 수호의 陣地라고 주장하지만 사실 투항일 뿐이며, 자본과의 대결에서 비타협을 제창하지만 학습된 시장주의를 넘지 못했다. 이것은 모두 청년 김윤식, 청년 유종호, 청년 김우창의 연속성의 말년적 형식이다. 말년에 이른 대가들이 신자유주의에 대한 투쟁 대신 고결한 문학주의로 始末한다는 점에서 무척 아쉽다. 하지만 이들 세 대가들이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것과 같이 세상과의 견결한 불화를 유지할 것으로 기대한다. 2008년 가을, 지하의 사이드는 자신과의 싸움인 대지하드(Great Jihad)를 하고 있으리라.

김승환 충북대 국어교육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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