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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쭉~ 가는 이야기-<스트레이트 스토리>

작성자

성은애

작성일자

2002-03-04

이메일

easung@yahoo.com

조회

3570


만물이 소생하고 풋풋한 신입생들이 교정을 오가는 개강 날, 인생의 황혼을 지나 죽음으로 한발한발 다가가는 노인네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영화 얘기를 하게 된 사연?

예쁜 아가씨도, 멋진 싸나이도, 호쾌한 액션이나, 얼기설기 꼬여 가슴 졸아들게 만드는 플롯도, 가슴을 먹먹하게 만드는 절절한 대사도, 심오하고 복잡다단한 사상도 없는, 그런 밋밋한 영화를 가지고 글 한바닥을 채워 보겠다고 나선 사연?

데이빗 린치 감독 얘기 꺼내지 않고, 그의 강렬하고 찝찝하고 골치아픈 영화에 관한 얘기 다 제끼고, 감독 이름만 보지 않으면 도저히 그의 것이라고 찍어낼 수도 없는 그런 엉뚱한 영화 얘기를 하는 사연?

전체적으로 체력이 저하되고 외모가 좀 '썩은' 것 외에 아직까지는 별다른 '늙음'의 증세를 자각하지 못하는 나이에, 새삼스럽게 '늙음'에 대한 생각을 골똘히 하게 된 사연? 뭐 그런 착잡한 사연들일랑 묻지 마시라. 그냥 오늘은 쭉~~가는 이야기다.

데이빗 린치(David Lynch) 감독의 1999년작 <스트레이트 스토리>(The Straight Story)는 앨빈 스트레이트(Alvin Straight)라는 노인이 중풍 걸린 형을 만나러 잔디 깎는 기계를 타고 장장 500여 킬로미터를 그냥 '스트레이트'하게 뻗은 아이오와-위스콘신의 벌판길을 따라 '스트레이트'하게 달려가서 형 라일을 만난다는, '스트레이트'한 '스토리'다. 줄거리 요약 끝.

어이구, 시시해라. 친구 노트 돌려주려고 오후 내내 '내 친구의 집은 어디인가?'하며 헤매는 얘기보다 더 간단하네...? 그런데 지루하지 않다면, 믿으시겠는가?

일단 이 영화는 위스콘신의 아름다운 가을 풍광도 예쁘지만, 앨빈 스트레이트라는 노인의 캐릭터가 핵심이다. 그는 고관절에 문제가 있어서 쌍지팡이 아니면 거동이 불편하고, 2분 이상 서있지도 못한다. 당뇨로 시력도 시원치 않다. 의사는 당장 금연하고 식생활을 바꾸지 않으면 심각한 문제가 생길 거라고 경고하지만, 이 노인은 시가를 맛나게 피우고, 쓰레기 같은 음식의 대표격인 핫도그 소시지를 좋아한다.

그러나 고집스럽고 제멋대로인 이 노인은, 사람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정도로 황당한 66년형 잔디깎기를 타고 시속 5마일의 속도로 산넘고 강건너 빗속을 뚫고 목숨을 건 위험도 마다 않고 장장 317마일을 꿋꿋하게 주파한다. 너무나 약한 몸에, 시도 자체가 아주 황당해보여서 나름대로는 웬만한 스릴러 못지 않게 아슬아슬한 이 노인의 여행이 진행되는 동안, 관객의 시선으로 보는 앨빈은 병약하고 엉뚱한 노인네에서 진정한 '나이값'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인물로 서서히 바뀌어간다.

원치 않는 아이를 임신하여 가출한 소녀에게, 정말이지 식상한 우화, 막대기를 하나씩 꺾으면 잘 부러지지만 몇 개를 합쳐놓으면 안 부러진다는, 그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 식의 이야기를 들려주며 가족에게로 돌아갈 것을 권고하는 초반 에피소드에서만 해도 사실 앨빈은 그냥 좀 진부한 노인 캐릭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모처럼 호의를 베푼 중년 부부에게 꼬박꼬박 자기가 쓴 전화요금을 건네고, 티격태격하느라 일은 하는둥 마는둥 하는 쌍둥이 정비사에게 야무지게 수리비를 따져가며 깎는 모습에서 풍기는 만만찮은 백전노장(?)의 풍모는 은근한 웃음을 안겨준다. 2차 대전 때의 은밀한 경험을 털어놓는 장면이나 무덤가에서 어린 시절을 회상하는 장면이야 다소 신파쪼이지만, 각각의 장면이 지닌 감상적인 요소들은 이 노인의 여정 자체에 녹아들면서, 그야말로 '산전수전' 다 겪은 노인의 마지막(!) 모험이라는 감동적인 스토리의 양념 노릇을 톡톡히 해낸다.

사실 이 영화의 핵심은, 앨빈이 일단 형에게 가야겠다고 마음 먹고, 가능한 모든 황당한 방법을 동원해서 자신의 힘으로 형에게 조금씩 다가가는 여정, 그 단순하고도 단호한 여행 자체이다. 그 굳은 결심 자체가 십수년간 말도 안 하고 지내던 형에게 건네는 절절한 화해의 몸짓인 셈이다. 그것을 알아차린 형은 눈물어린 포옹도, 감격스런 표정도 없이, '그래, 저걸 타고 왔냐?'는 한마디로 화해의 물꼬를 튼다.

그렇게 꼬인 데 없이 단순하고 단호한 결심, 그렇게도 쭈욱~ 뻗은 가을날의 들판길, 그렇게 망설임 없이 앞으로 조금씩 나아가는 용기, 그렇게 쭈욱~~ 가는 이야기가 바로 <스트레이트 스토리>이다. (남북한도 그렇게 '스트레이트'하게 만났으면 좋겠는데, 세상이 뭐 그렇게 호락호락해야 말이지....쩝.)

이 영화를 보고 '아름다운 미국'을 보여주는 영화라고 하는 사람들도 많던데, 그건 맞는 얘기다. 풍광은 아름답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다 선량하고 순진하다. 자아...그러나 이 대목에서 눈 부릅뜨고 시비걸지는 말자. 데이빗 린치야 뭐....평소에 '아름다운' 미국보다는, '악몽같은' 미국을 더욱 즐겨 보여주는 감독인 듯하니, 이 영화 한 편 쯤이야 '아름다운' 미국을 보여준들 어떠랴.

게다가 이 노인의 삶이 구체적으로는 어땠는지 몰라도, 자식 빼앗기는 불행을 겪은 가엾은 딸 로즈의 모습에서, 어린 미혼모의 모습에서, 매일 같은 자리에서 사슴과 충돌하고는 난 왜 이러냐고 절규하는 여인의 모습에서, 무엇보다도 아마도 마지막이 될 듯이 힘겨워 보이는 앨빈의 여행 자체에서, 그닥 녹녹치 않은 미국의 삶에 드리운 그늘 한 자락도 슬몃 볼 수 있지 않은가.

주인공 앨빈 스트레이트 역을 맡아 열연한 리처드 판즈워스(Richard Farnsworth)는 30년대후반부터 스턴트 맨으로 활동하다가, 50대가 넘어서야 배우로 전업했다. 이 영화를 마지막으로 권총 자살했다는 이 노배우는, 영화 속의 인물만큼이나 특이하고도 인상적인 인물이었음에 틀림없다. 한편, 영화가 끝나고 나면 "In Memory of Alvin Straight 1920-1996"이라는 자막이 뜨는데, 아마도 그러니까 영화 속의 앨빈은 실제 인물이었나 보다. 실제의 앨빈과 앨빈을 연기한 판즈워스, 이들은 세속의 기준에 의하면 '살만큼 살고'(!) -- 도대체 이 기준은 누가 만드는 건가? 노인 들처업고 응급실 갔다가 '살만큼 사셨네'하는 식의 얘기 듣고 속 뒤집혀 본 적이 있는 분들은 내가 무슨 얘기 하는지 아실 거이다... -- 이미 세상을 떠난 사람들이다.

그러나 그들의 모습과 그들의 목소리는 <스트레이트 스토리>에 고스란히 남았다. '늙음'에 대하여, 그리고 삶을 '정리'하고 '마무리'하는 일에 대하여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들어준 이 두 노인들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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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평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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