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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웃기지도 않는 영문학

작성자

성은애

작성일자

2002-02-20

이메일

easung@yahoo.com

조회

3632


개강 앞두고 가뜩이나 정신이 없는데다가, 요새 별로 땡기는 영화도 없어서 남는 자투리 시간에는 소설책이나 읽고 웹 써핑이나 하며 빌빌거리고 있다.

그래, 아직은 방학이야, 아직은....!! 개학 전날 우리 학교에 확 불이나 나게 해주세요 하고 간절히 바라고, 아침에 일어나 멀쩡한 학교 건물 바라보며 다음 방학까지는 며칠 남았나 꼽아보던 초딩때 버릇이 이 나이 되도록 남아 있는 듯. -.-;;

하여, 오늘은 영 기운이 없으니, 좀 실없고 영양가 없는 소리나 늘어놓아보도록 한다. 오늘만은 뭔가 심오하고 아카데믹하고 델리키트하고 컴플리케이티드하고 소피스티케이티드한 논의가 나오겠지...하고 기대하셨던 분덜은 (아마 필자를 갠적으로 아시는 분덜은 전혀 그러지 않으시겠지만^^;;) 조용히 오른쪽 위에 있는 네모곽 속의 X표를 눌러서 브라우저를 종료해주시거나, 재빨리 다른 화면으로 이동해주시기 바란다.

요즘 개봉 영화도 별로 없는데다, 기왕에 개봉된 영화들도 영 션찮다. 부시 방한 기념으로 <블랙 호크 다운>이나 볼까도 생각했지만, 방한 반대 시위는 못할 망정 부시 아버지가 벌인 전쟁 영화를 극장가서 맥없이 보기도 짱나서 그만 두었다. 그러니 오늘은 비디오 야그 되시겠다.

생각없이 심심풀이로 빌려다보는 비디오에서 엉뚱하게도 낯익은 영문학 작품을 만날 때가 있다. 학교 다닐 때는 세계인이 공유할만한 문화 유산이요, 위대한 고전이라고 배웠고, 나 또한 영문학도라면 그 이름 정도는 알아두어야 한다고 서슴없이 침튀기며 떠들어대는 그런 엄청난 작품들이, 엉뚱하다 못해 웃기지도 않는 맥락에서 등장하는 영화들이 있다.

수많은 영문학 작품들이 영화화되었지만, 고전의 반열에 오른 작품들 치고 영화로서 재미있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원작의 압력에서 자유롭지 못한 탓이다. 오히려 원작의 명성에서 벗어나 감독 나름의 독창적인 해석을 가미한 작품들이 영화로도 완성도가 높아지는 경우도 많다. 예를 들어 <막대한 유산>이나 <올리버 트위스트>를 영화화한 데이빗 린 감독은 다채롭고 명랑한 디킨즈를 배제한 채, 힘없는 아이의 시각에서 본 음울하고 쓸쓸한 세계를 강조함으로써 독창적이고도 특이한 영화를 만들어냈다. 바즈 루어만의 <로미오 & 줄리엣>이나 알폰소 쿠아론의 <위대한 유산>은 작품의 배경을 완전히 현대화함으로써, 원작의 위대성을 전달하는 데는 좀 문제가 있다손 쳐도 영화로서는 오히려 개성있는 작품이 되었다.

그러나 그런 식의 각색이 늘 성공하는 것은 아니다. 그레엄 베이커 감독의 1999년작 <베어울프>(비디오 가게에는 "전사 베오울프"라는 제목으로 출시되어 있다)는 고대 영문학의 대표적인 서사시를 영화로 각색한 것이다. 우연히 이 비디오를 발견했을 때의 기대감은 곧이어 베어울프를 <하이랜더>의 주인공 크리스토퍼 램버트가 연기한다는 것을 알고 반 이상 꺾이고 말았다. (크리스토퍼 램버트는 스티븐 시걸, 돌프 룬드그렌과 더불어 뻣뻣함과 느끼함을 겸비한, 웬만하면 보고 싶지 않은 3대 액션 배우에 속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두운 성곽과 사람들을 죄어오는 정체모를 공포를 보여주는 초반부는 그런대로 괜찮았다. 문제는 베오울프가 처단해야 하는 그 괴물이 어떻게 나올 것이냐 하는 것이었다. 대개 심각한 분위기를 잡다가 막상 그 공포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 엉성한 화면과 유치한 설정 때문에 실소를 자아내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최근 본 영화 중에선 <늑대의 후예들>이 그러했다. CG는 심형래의 '용개뤼'가 낫더라....) 아무튼 내내 그 문제로 불안해하면서 영화를 보던 나는 그렌델의 정체가 드러나는 순간, 글쎄,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던 것이다. 게다가, 그렌델의 엄마는 더 심했다. 영화를 보지 않은 분덜을 위해 차마 얘기하진 못하겠고, 궁금하시면 직접 영화를 보시기 바란다. 음울하고 심각하던 영화가 갑자기 플레이보이판 코믹 액션으로 둔갑하는 순간이었다....-.-;; 그렌델과 그렌델의 엄마라는 두 괴물의 성을 '여성'으로 설정함으로써 여성의 섹슈얼리티가 주는 공포, 뭐 이런 얘길 하고 싶었던 모양이기도 했으나, 결과는...쩝...-.-

이런 상황에서 <베어울프>를 염두에 두고 썼다는 마이클 크라이튼의 소설을 영화화한 존 맥티어넌 감독의 <13번째 전사>(1999)를 볼때는 아예 영문학사에 나오는 <베어울프>는 머릿 속에서 지워버리고, 고대판 <다이 하드>를 보듯이 즐기자고 맘 먹었다. 기대를 하지 않으니, 차라리 속이 편했다. 크리스토퍼 램버트보다는 안토니오 반데라스가 그나마 좀 낫다는 판단도 영화를 즐기는 데 한 몫 했다....^^;;

최근에 본 영화 중에서는 브라이언 헤겔랜드 감독의 <기사 윌리엄>(A Knight's Tale)(2001)이 아주 웃겼다. 나는 이 영화의 예고편을 극장에서 두어 차례 본 적이 있는데, 중세를 배경으로 한 마상시합(joust)이 펼쳐지는, 아주 심각한 영화인 줄 알았다. 긴 창(lance)를 옆에 끼고 갑옷과 투구로 중무장한 채 서로 돌진하여 팍팍 부딪히는 무지막지한 경기 장면은 박진감 넘쳤고, 말에서 떨어져 질질 끌려가는 스턴트도 대단했다.

아, 그런데 막상 비디오로 본 <기사 윌리엄>은 사실은 제프리 초서의 명작 <캔터베리 이야기>를 살짝 훔쳐와서, 말하자면 <셰익스피어 인 러브>식의 허구적인 스토리를 만들어낸 것이었다. 겉보기에 이 영화는 기사의 시종 신분이었으나 주인의 느닷없는 죽음으로 가짜 기사 행세를 하던 주인공이 결국 진정한 '기사도'를 실천함으로써 '윌리엄 경'이 된다는, 다소 황당무계한 스토리이다.

그러나 영문학도로서 눈이 번쩍 뜨이는 이 영화의 곁가지 줄거리는, 실속 없이 떠돌며 도박이나 일삼던 뜨내기 시인 '제프' 초서가 자신의 도박빚을 갚아준 가짜 기사 윌리엄의 전령이 되어 이런저런 사람들을 만남으로써 중세의 온갖 계층을 실감나게 그려낸 <캔터베리 이야기>의 기초를 얻게 된다...뭐 그런 얘기다.

물론 초서의 전기적인 사실과는 별 상관 없을 듯한 이 서브 플롯은 초서를 떠벌이에다가 치사한 잔머리 굴리기의 천재로 만들어 놓았다. 거짓말을 포함하여 말솜씨는 초특급울트라수퍼캡숑하이테크 이빨인데, 본인은 늘 '꾸밈없이 말한다'(speak plain)고 주장한다. 도박빚 독촉하려고 초서가 입고 있던 옷까지 홀딱 벗기는 가혹한 빚쟁이들의 모습에서 <캔터베리 이야기>의 소환리(Summoner)와 면죄사(Pardoner)의 모습을 찾아내는 재미도 쏠쏠하다.

초서가 쓴 <캔터베리 이야기> 속의 <기사 이야기>는 테세우스 시대 그리스 도시 국가들을 배경으로 마상시합 펼치는 아주 황당한 설정에다가, 에밀리라는 예쁜 여자를 두고 그 여자와 가까이 있기 위해 일부러 기사 신분을 버리고 하인으로 변장하는 아르시테의 비극적인 연애 스토리와 그의 벗이자 라이벌(?)인 팔라몬의 이야기다. (하도 옛날에 읽어서리....대충 책 들춰보니까 그런 것같던데...아무리 내가 영미연 싸이트 영화평에 목숨걸었다 해도, 다시 그걸 다 읽을 정성까진 없다. 중세 전공자덜, 줄거리가 맞아여? 아님 은밀하게 알켜줘요, 고치게......^^;;)

영화 <기사 윌리엄>은 거꾸로 조슬린이라는 아리따운 여인을 프랑스 출신의 귀족 에디마와 경쟁해서 빼앗기 위해 '기사'로 변신하려다가 도리어 감옥에 가게되는 '하인' 윌리엄 쌔처의 이야기이다. 마상 시합에서는 이겼으나 어이없이 말발굽에 가슴을 밟혀 죽고 마는 비극적인 운명의 아르시테와 달리, 창에 찔리고도 말에서 떨어지기는 커녕 그 길다란 창을 팔에 묶고 답답한 철갑옷까지 벗어던지고 맨몸으로 승리를 거두는 윌리엄의 모습이야, 전형적인 할리우드 영화의 주인공답다.

마상시합 경기장을 실감나게 재현한 세트는 <캔터베리 이야기>의 <기사 이야기>에 말로 설명되는 경기장 못지 않게 멋지다. 물론 배경 음악으로 Queen의 "We Will Rock You"가 흐른다든가, 궁정에서 춤을 추다가 갑자기 음악이 요상하게 바뀌면서 요즈음의 막춤으로 변하는 것은 정말이지 유치하다 못해 실소를 자아낸다. 게다가 관중들이 영국 축구장의 훌리건들처럼 얼굴을 각양각색의 페인트로 칠하고 파도타기 응원을 한다든가, 프랑스로 원정 경기를 간 주인공 일행이 술집에서 프랑스인들과 감정 격해져서 패싸움 직전까지 가는 등(국제 경기때 영국 응원단들이 흔히 벌이는 소동들....), 아무튼 말도 안 되는 설정은 한둘이 아니다.

물론 이러한 시대착오적인 설정들은 초서의 <기사 이야기> 자체가 고대 그리스에서 중세식 마상시합을 하는 이야기라는 엉뚱한 시대착오를 보여준 데서 착안한 것일 터이다. 의 감독은 <음모 이론>, <엘 에이 컨피덴셜>(왜 일케 쓰냐면, 이 게시판은 < > 사이에 영어를 쓰면 안나오거덩요...참 이상하지...-.-a), <암살자들> 같은 꽤 재미있는 영화의 시나리오 작가이기도 했다. 다 재밌는 시나리오였는뎅.... 감독은 중세의 마상 시합과 현대의 축구 경기의 모습을 묘하게 겹쳐 보이게 하면서 영국 문화에 대한 재미있고 우스꽝스러운 이중의 시선을 제공하려 한 것일까? 한마디로 머리 텅 비우고 그냥 시간 때우기 좋은 영화인데, 갑자기 '제프' 초서가 등장하는 바람에 긴장을 해야 했다. 물론 결과적으로는 전혀 긴장할 필요가 없는 것이었지만 말이다.

유키사다 이사오(行定勳) 감독의 청춘 영화<고!>는 재일교포 3세인 가네시로 가즈키(金城一紀)의 자전적 소설을 영화화한 것이다. 재일한국인의 정체성이라는 진지한 문제를 다루는 데 있어서 원작자는 일부러 일본인 감독을 골랐고, 감독은 마치 뮤직 비디오의 편집과 같은 빠른 장면 전환과 만화같은 영상으로 불안하고 착잡한 주인공 스기하라의 성장기를 멋지게 그려냈다. 정신을 쏙 빼놓는 도입부가 멋진 이 영화는 뒤로 갈수록 약간 늘어지는 것만 빼면 대체로 재미나게 볼 수 있는 정도다. 그런데 여기에 영문학이 웬 상관이냐구? 그러게...나도 이 영화 보기 전엔 아무 생각 없었다니깐.

그런데 영화가 시작되자마자 <로미오와 줄리엣>의 한 구절이 화면에 딱 뜨는 거이다. 2막 2장 발코니 장면에서 줄리엣의 대사다. "What's in a name?/ That which we call a rose/By any other word would smell as sweet." 서로 원수지간인 두 가문의 '이름'과 자기 앞에 선 로미오라는 남자의 실체를 놓고 읊는 줄리엣의 이 대사는, <고!>에서 한국이름이 이정호인 주인공 스기하라와 그가 좋아하는 일본인 여학생 사쿠라이 사이의 넘기 힘든 장벽을 설명해주는 계기로 사용된다.

게다가 조총련계 재일한국인의 복잡한 사회적 위치를 생각하고 이 영화를 보면 설정이 꽤나 심각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일본에서 태어나서 스스로는 일본인이라 생각하지만 결국은 외국인 등록증에 지문을 찍어야 하는 처지의 재일 조선인 주인공과 그 친구들의 처지는 '이름'과 '실체'사이의 관계를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여기서도 역시 '장미의 이름'과 '장미의 향기'는 어떤 관계인가가 문제시된다. '나는 나'이지 그 무엇도 아니라고 주장하고, 때로는 절규하는, 게다가 이 영화가 끝까지 '나의 연애 이야기'라고 반복해서 주장하는 스기하라에게 세상은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사쿠라이의 부모들은 중국인과 한국인은 워낙 피가 더럽다면서 딸이 그런 종족과 사귀는 것을 달가와하지 않는다. 겉보기엔 순종 일본인과 전혀 구분할 수 없는 스기하라도, 사람들이 구분지어 붙여놓은 민족의 '이름'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돌아서고 만다.

편협하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놓지 않았던, 그래서 재일 조선인의 미래를 좀 더 나은 것으로 만들 것이라 기대했던 친구의 어이없는 죽음 앞에 눈물짓는 스기하라가 펼쳐든 친구의 유품 역시 셰익스피어의 희곡집이다. 바로 위에 인용된 줄리엣의대사 부분에서 스기하라는 눈물을 떨구고, 스스로의 '청춘'을 한풀 벗으며 열병같은 젊음의 계절을 하나 접어버리고, '어른'이 된다.

이것이 셰익스피어에 대한 심오하고 독창적인 해석씩이나 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느닷없이 이런저런 잡다한 영화에서 툭툭 튀어나오는 영문학의 고전들은 괜히 귀를 쫑긋 세우게 한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 유난히 그런 것이 눈에 띄는 것인지, 아니면 그만큼 영문학이 알게 모르게 아주 일상적인 차원의 매체에까지 그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기 때문인지...참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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