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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너 주우거쓰!! -- <공공의 적>

작성자

성은애

작성일자

2002-02-05

이메일

easung@yahoo.com

조회

3208


포스터는 스릴러 같은데 열라 웃기는 영화, <공공의 적>을 보러갔던 것은 좀 이상한 상황에서였다. 그러니까 미리 밝히건대, 이건 영화 얘기가 아니라 이 영화를 보게된 내 얘기 되겠다.

좀 개인적인 얘기지만, 새해 들어서 나는 내내 되는 일도, 기분좋은 일도 없었다. 그렇다고 딱이 내 인생의 위기가 닥쳤다는 자각도, 그렇다고 무슨 일이 심하게 꼬인 것도 없었다. 그냥 딱 내 나이 정도에 걸맞는(? -.-;;) 자질구레한 사고들과 집안 일들, 하고 싶은, 혹은 해야할 일에 비해 남은 체력+능력이 별 볼일 없다는 상황...뭐 그런 정도가 '말'로 표현할 수 있는 근심 거리의 전부였다. 누가 들으면 팔자가 늘어졌다고 할라. 그러나 한마디로, 나는 피곤했다.

뭘 열심히 하지도 않으면서 내내 무엇엔가 시달리는 듯 지치고, 기분 전환 삼아 영화를 보거나 이런 류의 '짧은 글짓기'를 하는 일도 점점 썰렁해졌다. 신문이나 뉴스를 보며 세상 돌아가는 데 관심을 기울여봐도 더이상 분하다거나 열받는다기보다는, 웃기는 넘들...니들 맘대로 해처먹어라, 하면서 점점 냉소적으로 되어갔다.

<공공의 적>을 보러갔던 그날은 맘 먹고 멀쩡하게 하루를 땡땡이치기로 했던 거였다. 돌이켜보면 아픈 것도, 무슨 급히 처리할 일이 생긴 것도 아닌데 하루를 '땡땡이'친다는 것이 좀처럼 엄두가 나질 않았던 것이다. 그러니까 그날은 뭔가 좀 '특별한' 일을 해야했는데, 그냥 특별한 일이 아니라 구질구질하고 꾸리꾸리한 기분을 다소간에 풀어버릴 껀수를 찾아야 했던 거였다.

마음 속에는 무엇인가에 대한 무지근한 화가 보글보글 끓고 있었고, 그 찝찝하고 째째한 분노의 대상이 나 자신이었는지, 아니면 옆에 있는 사람이었는지, 지리멸럴한 내 생활이었는지, 대한민국이었는지, 아니면 그 모두 다였는지, 그건 아직도 잘 모르겠다. 아무튼 그런 상태에서 선택한 영화가 <공공의 적>이었던 거다.

결론부터 말하자. 욕으로 시작해서 욕으로 끝나는, 그리고 유혈이 낭자할 뿐아니라, 사람의 뼈와 살을 퍽퍽 파고드는 칼 소리며, 썩은 시체에 달려드는 파리 소리까지 적나라하게 들리는, 게다가 줄거리나 캐릭터가 도대체 말도 안 되는, 엉성한 이 영화를 보며 나는 두어시간 내내 실컷 웃었다. 물론 불이 켜지고 좌석에서 일어나면서, 도대체 뭘 보고 웃은 것인지는 아이스크림 통에 들어있던 드라이아이스처럼 홀홀~~ 기화되어버렸다.

머리 속에 남은 것은 어떤 기자가 '연기 잘하는 배우'가 아니라 '외계인'이라고 표현했던 탁월한 배우 설경구의 모습 뿐이었다. 아마 강동서 강력반 강철중이라고 두운까지 맞춰놓은 그 웃기는 캐릭터를 설경구 아닌 다른 배우(예를 들어 <투캅스>의 박중훈?)가 연기했더라면 영화의 재미는 반 이상 줄어들었을 것이라고 나는 감히 생각한다.

나는 왜 이렇게 말도 안되는, 게다가 폭력적이기까지 한 이 영화를 보며 즐거워했던 것인가? 그리고 도대체 뭘 근거로 그 꾸리꾸리하던 기분이 다소 풀린다고 느끼고, 뭔가 '배설'하도록 도와주는 영화도 때로는 참 유용하다고 느끼게 되었던 것인가?

영화로 돌아가보자. 형사와 살인범의 대결이라는 자못 심각한 구도를 설정한 이 영화는, '사회 정의'나 '공공의 적'에 대한 영화가 결코 아니다. 사실은 무엇에 대해서인가도 불분명한채 꾸역꾸역 쌓여있는 '적개심'에 관한 영화다. 그 적개심이란 쌔끈하게 생긴 '잘 나가는 넘'에 대한 적개심일 수도 있고, 사소한 나쁜 짓으로도 추궁받고 시달리는 나보다 훠얼~씬 더 나쁜 넘에 대한 적개심일 수도 있다. 아니면 지리멸렬한 자기 인생에 대한 적개심일 수도 있고, 불공평한 세상에 대한 적개심일 수도 있다.

영화 속의 범인은 그럴 법한 이유도 없이 부모를 죽인 패륜아고, 기분에 거슬린다는 이유로 사람들 죽이는, 누가 봐도 정말 정말 나아쁜 넘이다. 그렇듯 누가 봐도 패죽이고 싶을 정도로 나쁜 넘이, 아 글쎄, 웬만한 사람들 집값만큼 비싼 승용차를 타고 멋진 집에서 멋진 아내와 예쁜 아이를 거느리고 산다. 운동으로 부지런히 가꾼 탄탄한 몸매도 인상적이거니와, 명석한 머리로 수십, 수백억이라는 돈을 떡주무르듯 하며, 이 사회에서 '능력있는' 사람으로 인정받는다. 이거 이거, 정말 열받는 상황 아닌가? 사실 '공주'처럼 자라서 '온실 속의 화초'처럼 산다고 자처하는(에...요기서 '공주' 운운하는 어휘에 쬐께 속이 울렁거리시더라도 걍 넘어가주시라...^^;;) 나도 그런 넘들 진짜루 밥맛없는데, 지 머리로 생각할 수 있는 최고 수입이 월 600만원인 강력반 꼴통 강철중이야 월매나 열을 받겠는가?

자, 여기서부터는 줄거리의 개연성, 뭐 이런 거 따지면 안된다. 아무튼 그넘은 나쁜, 아주 나아아아아쁜 넘이니까, 잡아서 막 패줘야 한다. 이넘은 게다가 쌈도 꽤 잘하고, 높은 사람들도 많이 알고, 뺀질거리기까지 한다. 더 밉다. 내가 뭐 그리 깨끗하다는 거 아니다. 잘났다는 거 아니다. 내가 다 잘했다는 거 아니다. 나도 나쁜 짓 많이 한다. 소소한 비리도 저지른다. 까짓거, 대한민국에 썩어빠지지 않은 넘 있더냐? 죄 없는 자, 나한테 돌을 던져라! (파악~~팍! 짱돌 날아오는 소리....-.-;;)

그렇지만 저 범인은 진짜 나쁘다. 이건 길을 막고 물어봐도 똑같은 대답이 나온다. 그냥 가만 있어도 엄청나게 잘먹고 잘사는 넘이, 돈때문에 즈이 부모를 퍽퍽 찔러 죽이는데, 어떻게 용서할 수 있겠는가? 이제 넌 주우거쓰!! 저런 넘을 '공공의 적'이라 한다. 저런 넘은 아무리 무지막지 패줘도 괜찮다. 저런 넘한테는 피의자 인권, 그런 거 다 필요없다. 어차피 누가 봐도 뒤~게 나쁜 넘이니깐.

이렇듯 100% 나쁜 넘 하나 정해놓고, 그것도 이 사회에서 젤 '잘나가는' 넘이 사실은 엄청나게 나쁜 넘이라고 해 놓고, 엄청 무식하고 엄청 꾸질하고 도대체 아무 매력도 없는 너절한 형사가 얘를 마구 패주는 거다. 이 어찌 속 시원하지 않으랴. 나와 강철중 형사는 아무런 공통점도 없지만, 우쨌든 영화는 관객들이 강철중과 자신의 분노를 동일시하게 만들어져 있다. 뺀질거리며 피해다니다가 강철중한테 열라 얻어터지는 그 넘, 그 부모 찔러 죽인 싸이코하고 나를 동일시할 수는 없으니까 말이다.

이게 참, 건강한 건지 어쩐 것인지는 몰라도, 이런 식의 황당한 설정과 폭력적인 장면들이 사람들의 '파괴본능'을 자극하는 동시에 해소시켜 주는 것만은 확실하다. 아마 수많은 관객들이 <공공의 적>을 보면서 으하하하~~ 통쾌한 웃음을 날리고 있다면, 그건 그만큼 사람들 마음 속에 쌓인 적개심이 만만찮다는 의미일테다.

그게 자기보다 잘 사는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 섞인 적개심이든, 부패와 무능을 종합 선물쎄트처럼 드러내고 있는 현정권에 대한 적개심이든, 아예 프레쯜이든 새우깡이든 한박스 보내서 완전히 보내버릴까 싶도록 웃기게 구는 부쉬에 대한 적개심이든, 아니면 이 모든 일과는 별개로 지지부진 뭉개며 미적거리고 있는 못난 자신에 대한 분노이든...

과연 우리 사회에서 '공공의 적'이라고 할만한 존재는 누군가? 너나 나나 어차피 어느 정도는 다 싸이코 아니면 부패한 존재 아니냐는 자조 속에서, 선량한 부모를 찔러 죽인 패륜아나, 폭력으로 고리대금업 하는 사채업자 정도가 '공공의 적'이라고 할만한 사람들의 전부인가? 그렇듯 명백하게 '쥑일 놈'을 골라 실컷 두들겨 패며 후련함을 느끼는 동안, 정작 우리가 분개하고 맞서야 할 크고 작은 '공공의 적', 심지어 우리 내부에 도사린 '공공의 적'에는 오히려 둔감해지는 것은 아닐까? 웃긴 영화보고 나서, 먹물본능 못 버리고 떠올려보는 심각한(?!) 생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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