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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중의 '환상'과 정치

작성자

bloom

작성일자

2007-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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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61


대선을 앞두고 대략지지 성향의 분포도가 나오고 있다. 내 생각에 이런 판도가 대선 때까지 바뀔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 두 이씨로 대변되는 보수파가 약 60퍼센트, 정아무개, 문아무개씨의 중도우파가 약 20퍼센트, 권아무개씨의 진보파가 약 3퍼센트이다. 나머지는 부동층이겠지만 대략 위의 분포도로 수렴되리라.

나는 이런 지지 분포를 보면서 한국에서 개혁우파나 진보정치의 실패나 취약점은 이들이 자신들을 지지하는 사람들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계급정치를 구현하는데 실패한데 있다고 판단한다. (자기를 지지했던 이들을 철저히 배신했던 소위 개혁우파 정권과 정당의 몰락은 단적인 예이다) 과연 지금 보수를 지지하는 60%퍼센트의 지지자들이 모두 정치적으로 ‘보수파’일까? 아니다. 지난 총선에서 여실히 드러났듯이, 심지어는 가장 진보적일 것이라고 여겨지는, 노동자들의 인구구성이 제일 높은 울산에서조차 압도적인 표차로 보수정치인이 당선되었다. 왜 그럴까? 보수 혹은 수구 정치인에게 표를 던진 노동자들, 혹은 이번 대선에서 역시 자기계급을 배반하는 표를 보수정치인들에게 던질 노동자, 농민, 사회적 소수자들은 과연 이들 보수정치인들이 자신들의 계급적 이해관계를 대변한다고 생각한 것일까?

내 생각에는 아마 그런 고민조차 없이, 혹은 이들이 자신들의 계급적 이해관계에 도움이 되는 정책을 펼 것이라고 막연하게 기대하기에 표를 던진 것은 아닐까? 소위 강남으로 대변되는 한국의 보수/우익 지지자들은 분명한 계급적 이해관계를 갖고 보수파를 지지한다. 그건 당연하다. 그들은 그만큼 자기계급의 이해관계에 충실하다. 문제는 보수파를 지지해야 할 아무런 계급적 이해관계가 없고, 그들을 지지하는 것이 도리어 자신에게 해가 됨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지지하는 대중의 존재이다.

까놓고 말하자. 지금 당선이 유력시되는 어느 후보가 당선이 되면 과연 한국경제가 살아나고, 좋은 일자리가 늘어나고, 비정규직이 정규직으로 대거 바뀌고, 사교육비가 줄고, 서민경제가 나아질까? 왜 그렇게 믿는 것일까? 그렇게 믿는 거야 자유지만, 내가 보기에 그런 판단은 착각이다. 그게 착각이라는 것은 정권이 바뀌고 얼마 지나지 않아 드러나리라. 그 후보와 정당은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자기를 지지하는 (강남으로 대표되는) 핵심지지층의 이해관계에 부응한 정책을 펼 것이다. 그들은 그만큼 계급적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자기 계급의 이해관계에 위배되는 정치세력을 지지하는 대중의 잘못된 선택을 탓하는 것은 별 소용없다.(국민이 노망들었다고 노망든 발언을 했던 어느 개혁파 정치인의 발언이 그런 예이다. 이런 발언을 들으면서 떠오른 기억. 60년대 동독에서 대중들이 민주화 시위를 하자 소위 인민의 전위정당이라던 독일공산당이 했다는 교시. ‘인민은 당의 이념에 위배되는 행동을 한 것을 반성하라.’ 그에 대해 브레히트가 했던 말은 이렇다. ‘그렇다면, 그 잘난 당, 당신들이 인민을 선출하라!’)

요는 대중이 왜 자신들의 계급적 이해관계에 위배되는 정치적 선택을 하는가에 있다. 왜 대중은 그런 ‘환상’을 갖는가? 요는 대중의 정치적 '환상'이 바로 정치적 힘이라는 것이다. 그런 환상을 갖고 있는 대중을 탓해야 아무 소용없다. 문제는 왜 '이쪽'이 아니라, '저쪽'이 그런 환상을 대중에게 주입하는 데 성공했는가에 있다. 자신들을 지지하면 '잘 먹고 잘 살수 있으리라는' 환상. '경제'가 나아지리라는 환상. 좋은 일자리가 늘어나리라는 환상.

맑스가 그랬던가? 이론은 대중을 사로잡는 이데올로기로 전환될 때만 물질적 힘을 발휘한다고. 정책도 마찬가지이다. 정당의 정책집에 산뜻하게 정리된 정책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 정책이 대중을 사로잡는 ‘이데올로기’가 될 때, 대중의 '환상'이 될 때 정책은 힘을 행사한다. 지금 한국정치에서 보수파는 그들이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맑스가 말한 계급정치의 논리에 매우 충실하다. 그들은 매우 계급적이고 교활하다. 그리고 현실정치에서는 언제나 교활한 정치가 승리한다. 그게 정치의 리얼리즘이다. 이걸 마키아벨리즘이라고 생각한다면 그게 바로 정치적 나이브함이다.

진보정치의 실패원인은 어쩌면 간단하다. 자신들이야말로 대중들의 계급적 욕망을 자신들이 대변할 수 있다는 것, 자신들을 지지하는 것이 대중의 계급적 이해관계에 충실한 것이라는 것을, 이론이나 정책으로가 아니라 ‘이데올로기적’으로 설명하지 못했다.(‘코리아연방공화국’같은 황당한 구호를 대선구호로 내건 어느 진보정당은 그 하나의 예이다. 그게 그들을 지지하는 대중들의 계급적 이해관계나 대중이 품고 있는 '환상'에 얼마나 부응하는가? 묻고 싶은 질문이다) 그 결과가 지금 진보정치의 참담한 지지율이다. 자신들의 계급적 이해관계에 철저하고 그 이해관계에 다른 계급들을 동원하는 보수정치의 헤게머니. 전혀 그렇지 못한 개혁우파와 진보정치세력의 역량부족. 보수지지가 60%를 넘는 지금의 정치현실이 드러내는 한국정치지형의 배경이다.

이 문제를 고민하고 방안을 모색하지 못하면, 앞으로 한국사회에서 보수정치의 헤게머니는 굳건할 것이다. 이번 대선만이 아니라 다음 총선은, 대중의 '환상'을 지배하는 정치의 헤게머니를 누가 쥐고 있는가를 드러내는 중요한 계기이다. 그리고 내 짐작에 그 예상은 우울하다. 중도우파와 진보정치는 이제 정치의 주변인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다시 ‘대중 속으로’ 들어가 계급정치를 실천할 것인가? 보수후보들의 지지율이 60퍼센트를 넘나드는 (적어도 내게는) 착잡한 현실을 지켜보며 드는 생각이다. 하지만 그게 현실이라면 어쩌랴. 대중이 지지하면 보수파든, 극우파든, 진보파든, 극좌파든 집권하는 것이 대중민주주의의 미덕이자 한계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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