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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Made in 20 - <고양이를 부탁해>

작성자

성은애

작성일자

2002-01-15

이메일

easung@yahoo.com

조회

3196


놀란 듯 약간 불안정한 눈망울의 소녀가 기괴하고 몽롱하고 야릇한 화면 속에 등장하는 휴대전화 광고는 '스무살'이라는 화두를 던지며 여전히 괴력(!)을 발휘하고 있다. 요새는 그 이쁜 애가 퍼런 천을 칭칭 몸에 감고 찢고 끌고 하면서 도대체 뭘 하자는 건지 알 수 없는 동작들을 선보인다. 배경에는 "니가 진짜루 원하는 게 뭐야~~!"라고 절규하는 노래가 흐른다. (그 여자애가 원하는 건 뭔지 모르지만, 적어도 그 광고가 원하는 건 확실하다. 011을 부탁해!)

스무살 아이들은 그 여자아이가 예뻐서, 혹은 그 광고의 이해못할 불안정함이 맘에 들어서, "메이드 인 퉨티"라는 카피가 따라 다니는 그 조그만 휴대전화를 앞다투어 구입한다. 오케스트라 연주를 방불케 하는 전화벨 소리도 즐긴다. 그리고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엄지손가락을 번개처럼 놀려 온갖 메시지를 쳐댄다. 웃고 우는 얼굴도 그리고, 크리스마스 트리도 그리고, 돼지도 그린다. 온갖 자질구레한 수다도 다 그걸로 떤다.

그렇게 조그만 휴대전화에 매달려 사는 스무살, 그녀들이 궁금한가? 나도 그 시절을 거쳤건만, 스무살 여자애들은 여전히 수수께끼다. 그들은 속내를 잘 보이지 않고, 상냥하게 가르릉거리다가 갑자기 발톱을 세우고 덤비는, 예쁘지만 배은망덕한 고양이들 같다. 기껏 밥줘서 기르던 고양이에게 할퀴어본 적이 있는 사람은 이 말이 뭔지 알 거다. 강아지들은 절대로 그러지 않는다. 왜 그런지 고양이는 수컷도 여자같다. -.-

정재은 감독의 데뷔작 <고양이를 부탁해>를 보게 된 것은 그런 호기심 때문이었다. 그리고 '도대체 요즘 애들은...???'이 입에 붙은 이 아줌마의 '호기심'은 영화를 보고 나서 그런대로 충족되었다. (극적인 반전, 뚜렷한 클라이맥스, 강렬한 감정들, 이런 것들 없으면 영화가 아니라는 분들께는 불면증 치료제 되시겠다...)

<고양이를 부탁해>에는 다섯 명의 여자아이들이 등장한다. 혜주와 지영에게는 나름대로 사는 일이 만만치 않다. 이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의미에서 현실의 가파른 길을 위태롭게 걸어간다. 그들은 제일 친한 친구였지만, 졸업하고 나서는 서로 상처주고, 무례하게 굴고, 속을 뒤집어 놓으며 위태로운 관계를 유지한다.

똑같이 생긴데다가 늘 붙어있어서 별로 외로워보이지 않는 일란성 쌍둥이 비류-온조는 어쩐지 '비현실적으로' 즐거워 보인다. (이름도 웃기잖아...^^) 그래서 그들은 늘 '완충지대'를 제공한다. 자신만 빼고는 별 문제 없이 그럭저럭 화목한 집안의 딸인 까닭에 별로 급할 게 없어서 늘 두리번거리며 실속없이 구는 태희 또한 친구들 사이에선 '완충지대'이자, 감독이 감정적으로 탐닉하는 '주인공'이다. (배두나의 귀엽고 친근한 모습을 보는 것도 적잖이 즐겁다.)

빨간 리번을 맨 조그만 고양이는 지영에게서 혜주에게로, 다시 지영에게로, 그러다가 태희에게로, 결국은 비류와 온조에게로 맡겨진다. 아이들이 세상과 부대끼며 조금씩 '어른'이 되면서 고양이도 조금씩 덩치가 커진다. 고양이는 자존심 탓에 내보여주기 싫은 여자애들의 복잡한 속내이기도 하고, 그렇게 티격태격하면서 아슬아슬하게 이어지는 그들의 우정이기도 하고, 어쨌든 끌어안고 돌봐야 할 그들의 현실이기도 하다. 일상의 풍경과 과히 거슬리 지 않으면서 적절한 상징성도 띠게 하는 재치.

그렇다. 여자애들 노는 건 세월이 흘러도 비슷하다. 실속없는 즐거움, 약간의 경쟁심, 절대로 먼저 엎어지거나 솔직담백하기 싫은 자존심, 의리라고는 약에 쓰려해도 없어보이는 사이에도 결국은 그래도 어쩌랴...싶은 실낱같은 믿음. 그러면서 끊어질 듯 말 듯 지속되는 오래된, 군내나는 우정.

그들이 스쳐가는 남루한 일상 속의 어른들처럼 그들은 곧 '어른'이 될 테고, 더 이상 '방황'하지 않을 것이며, 더 이상 고양이를 서로 맡기지도 않을 것이다. 불안하고 위태로와보이는, 또한 그래서 자유롭게 떠날 수도 있는 스무 살의 젊음, 아이들은 차차 그 젊음을 '안정'과 맞바꾸게 될 것이다.

젊음과 안락함을, 자유와 안정을 동시에 취할 수는 없다. '성장'을 관통하는 그 이율배반의 욕망. 젊은이들은 빨리 어른이 되고파서, 그리고 어른들은 다시 젊어지고 싶어서, 우리는 늘 헛되고 모순된 생각을 품고 살아간다.

한국 영화에서 스무살 여자애들은 늘 하나의 극단적인 '이미지'이거나 고정된 '대상'이었다. <고양이를 부탁해>에 와서야 우리는 비로소 지극히 평범하지만 생생하게 '살아있는' 스무살 여자아이들을 만날 수 있게 되었다. 부드러운 재치와 따뜻한 색조로 지루하면서도 불안정한 스무살의 풍경을 깔끔하게 담아낸 <고양이를 부탁해>를, 한때 그렇게도 아름답고 활달하고 우울한 스무살이었던 당신에게 권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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