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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판적 지지라는 '악령'

작성자

bloom

작성일자

2007-10-14

이메일

bloom.pe.kr

조회

2757


지난 번 디워 논쟁에서 진중권이 신랄하게 비판했듯이, 때로 나는 김규항(이나 그와 비슷한 '취향'을 지닌 소위 '대중지성')의 반지성주의가 불편하다. 비평적 논증이 필요한 때 근거없는 대중의 취향을 들먹이는 대중주의가 마땅치 않다. 대중은 항상 옳은가? 아니다. 대중은 많은 경우 옳지 않다. 숫자의 다수가 어떤 주장과 판단의 옮고 그름의 근거는 아니다. 이 점을 김규항은 무시할 때가 많다.

이들 대중지성인들은 지식인을 비아냥댄다. 잘난 체 하는 지식인이 대중의 취향을 무시한다고. 대중의 취향을 '존중'해야 한다고. 그런데 그 대중의 취향은 항상 존중받을 가치를 지니는가? 그 근거는 무엇인가? 그것이 존중받을 가치가 없다면 어떤가? 그래도 무조건 대중이 다수이니까 존중해야 하는가? 김규항의 착각과는 다르게, 문제는 엘리트주의와 대중주의의 대립이 아니다. 요는 각자가 내놓는 주장과 판단의 논리적 근거이다. 엄밀한 지적 논증이 필요한 때 취향을 들먹이는 것은 일종의 지적 사기행위이다.

지식인은 대중에게 아부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 안에서 자신이 고민하고 사유하는 것을 대중적인 방식으로 대화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대중에게 대화하는 방식에서 필요한 '대중성'(이른바 대중적 글쓰기)의 문제를 사유의 깊이나 엄밀하고 논리적인 근거와 등치하는 것은 곤란하다. 둘은 다른 범주의 문제이다. 김규항은 이 둘을 혼동할 때가 있다.

대중의 취향을 존중하라는 주장을 할 수는 있다. 하지만 그런 주장의 논거가 있어야 한다. 왜 대중의 취향을 존중해야 하는가? 어떤 근거로? 그들이 다수이기 때문에? 다수는 언제나 옳기 때문에? 아니면 대중이나 지식인이나 어차피 정답은 없으니까 서로 존중하자는 가치의 상대주의 때문에? 논거가 없는 대중취향의 존중은 일종의 현실추수주의, 대중추수주의이다. 진중권의 지적대로 "지식인에게는 무식할 자유가 없다." 그런 점에서 지난 번 디워 논란때 보여준 '지식인' 김규항의 대응은 저으기 실망스러웠다.

하지만 김규항의 정치분석은 직선적이고, 문제의 핵심을 파고드는 간결한 칼날같은 느낌을 주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가령 이런 지적.

> "우리에게 필요한 건 ‘선량한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에 대한 강력한 견제력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통해 우리는 비판적 지지란 그저 그 견제력을 없애는 선택이라는 것을, 진정한 사회진보를 포기하는 선택이라는 것을 충분히 체험했다. 체험에서 배우지 못하는 사람,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사회엔 미래가 없다."

그는 에둘러 말하지 않는다. 그것이 그만의 장기이다. 그런 글을 퍼온다. 물론 나는 그의 지적에 공감한다.

이번 대선을 앞두고 다시 나올 것이 뻔한 비판적 지지론은, 강하게 표현해, 일종의 사기극이다. 물론 내 생각이다. 그게 사기극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삼세판이라는 마음으로 이번에도 한번 더 '개혁'(sic!) 진영을 비판적 지지를 할 용의가 있는 분이 있다면 나는 그이의 '취향'을 존중한다. 하지만 그 취향의 근거에 대해서는 논거를 갖고 대화를 나눌 용의가 있다. 내가 보기에는 그것은 별로 설득력이 없는 정치적 '취향'(정치적 이념이 아니라!)에 불과하니까 말이다. 두번 속아주었지면 되었지 다시 한번 더 속아달라고 하는 짓은 염치없다.

보수든, 진보든, 개혁이든, 수구든 자신의 입장과 이념과 정책을 분명히 내걸고 선거라는 경기장에서 당당하게 승부하면 된다. 거기서 누가 이기든 지든 그건 각 진영이 지닌 역량의 문제이다. 역량이 모자르면 게임에서 지는 건 당연하다. 자기의 모자라는 역량은 돌아보지 않고 어떻게든 경기에 이기겠다고 우기는 짓은 추하다. 역량이 모잘라 이번 게임에 진다면, 역량을 쌓아 다음 번 게임을 준비하면 된다. 치사하게 남의 표를 구걸하거나, 너는 나오지 말고 나나 응원하라고 작전 쓰는 짓은 이제 하지 말자. 한때 유행어를 빌어 말하자. '비지'찌개, '그만 해라, 마이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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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한겨레21/gyuhang.net

악령 97, 02, 07

“'비판적 지지'의 첫번째 대상은 김대중이었다. 밝히자면, 나도 지난 대통령선거에서 그렇게 했다. 비판적 지지론이 아닌 진보 독자 후보론을 주장하던 진영에 더 가까웠지만, 나는 망설임 끝에 그렇게 했다. 드디어 김대중은 대통령이 되었고 그에게 표를 몰아준 진보주의자들은 그의 개혁성에, 그의 개혁성을 통해 도모될 진보의 미래에 기대했다.

기대가 의구심으로 의구심이 다시 지루한 실망으로 바뀌는 데는 단지 몇 달이 필요했다. 어리석게도 진보주의자들은 보수주의자인 김대중이 진보적이기를 기대했다. 실망에 찬 그들은 말하기를 김대중이 변했다고 했다. 그러나 변한 건 아무 것도 없었다. 김대중은 예나 지금이나 보수주의자이며 그의 정치는 예나 지금이나 그의 이념에 충실하다.

노무현의 판타지에 젖은 사람들은 오늘 김대중을 잠시 접고 옛 김대중을 떠올려볼 필요가 있다. 그는 한 때 오늘 노무현과는 비교가 안 될 판타지를 가진, '선생'이라 불리는 정치인이었다. 노무현에게 남은 질문은 하나다. 노무현은 개혁적 보수주의자인가 진보주의자인가. 지역주의에 당당히 맞선 노무현은 신자유주의에도 당당히 맞서는가?” (2004년 4월, ‘네 이념대로 찍어라’에서 중간 중간 줄여 인용)

비판적 지지에 대해 글을 쓰려고 5년 전 같은 주제로 쓴 글을 꺼내 읽다 문득 처연해졌다. “김대중”을 “노무현”으로 “노무현”을 “문국현”으로 바꾼다면 새롭게 할 이야기가 없다는 걸 깨달았기 때문이다.

물론 제도 정치란 순결한 게 아니라서 현실적인 고려와 타협이 필요한 법이다. 그러나 현실적 고려와 타협에도 하한선이 있다. 우리의 하한선은 신자유주의 반대다. 지난 10년 동안 한국 인민의 삶을 궁지로 몰아넣고 너나 할 것 없이 자본의 악령에 사로잡혀 박정희 전두환 시절에도 마음껏 뛰어놀던 아이들이 감옥의 수인처럼 학원에서 시들어가는 생지옥을 만든 건 독재도 군사파시즘도 아닌 신자유주의다. 신자유주의는 인민에게 순수한 폭력이다.

비판적 지지? 당신의 아이가 교사에게 상습적으로 매를 맞고 있는데 ‘당장 구출하려는 어리석은 생각은 버리고 좀 덜 때릴 것 같은 선생에게 맡기자고, 그게 아이를 위하는 길’이라고 한다면 동의하겠는가? 그것도 5년씩 두 번 10년을 속아놓고도? 하지만 문국현 씨는 신자유주의를 반대하지 않느냐고? 과연 그런가? 그는 ‘신자유주의를 반대하면서 (신자유주의의 또 다른 이름인) FTA는 찬성한다’는데 그런 모순에 빠진 태도는 스스로를 ‘좌파 신자유주의자’라고 뇌까리는 노무현 씨와 뭐가 다른가? 노무현 씨가 대통령이 아니었어도 FTA에 그리 우악스럽게 올인했을까?

민노당을 지지하지만 아직은 세가 적어서 현실적으로 실현가능한 진보를 선택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묻는다. “세가 적어서 지지하지 않는 게 아니라 당신마저 지지하지 않아서 세가 적다고는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이명박과 문국현의 차이는 한국사회에서 유의미하다, 고 말하는 사람에게 정중하게 묻는다. “물론 차이가 있지요. 그런데 그 차이가 진보정치의 성장을 미루거나 포기할 만큼 중요한 차이일까요?”

민주주의의 경험이 짧은 우리에겐 정치가 통치력만으로 이루어진다는 오해가 있다. 정치는 통치력과 견제력의 두 가지 힘에 의해 이루어진다. 그리고 한국의 민주화를 비롯한 대개의 진정한 사회진보는 통치력이 아니라 견제력에 의해 이루어져왔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선량한 신자유주의’가 아니라 신자유주의에 대한 강력한 견제력이다.

김대중 노무현 정권을 통해 우리는 비판적 지지란 그저 그 견제력을 없애는 선택이라는 것을, 진정한 사회진보를 포기하는 선택이라는 것을 충분히 체험했다. 체험에서 배우지 못하는 사람,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사회엔 미래가 없다. 1997년, 2002년, 그리고 2007년, 그렇게 당하고도 비판적지지의 악령을 다시 한 번 불러들이는 우리에겐, 어떤 미래가 있을까? (한겨레21, 일러스트 김대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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