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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인터넷, 대중, 지식인

작성자

bloom

작성일자

2007-09-26

이메일

bloom.pe.kr

조회

2737


내가 동인으로 있는 아무개 비평동인의 홈피에 여기 게시판에도 올린 디워 논쟁 관련 글을 올렸었다. 그에 대해 동인 중 한 분이 긴 댓글을 올려 주었다. 그 댓글에 인터넷 시대에 대중과 지식인의 관계, 지식인의 글쓰기 방식 등의 문제에 대한 의미있는 문제제기가 담겨 있다는 생각에 나도 꽤 긴 답글을 썼다. 내 답글을 그대로 퍼온다. 디워 논쟁을 다른 각도에서 조명하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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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생님의 긴 댓글 잘 읽었습니다. 거기에 다시 댓글을 달려다가 아무래도 논의가 다른 쪽으로 전환된 듯해서 새 글을 올립니다. 박선생님 말씀에 의견을 다는 식으로 짧게 제 소견을 밝히겠습니다.

제가 박선생님의 글을 제대로 읽었다면 이제 영화 [디 워]의 수준에 대해서는 더 할말이 없겠다는 생각입니다. (이 영화를 ‘어둠의 경로’를 통해 보려고 시도했는데, 화면은 나오는데 소리가 안나와 보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더 이상 영화의 질 낮은 수준에 대해서는 논의하지 않겠습니다. 미국에서 흥행에 실패하고 [뉴욕타임즈]를 비롯한 주류언론에서 혹평을 받은 것은 한국에서 통했던 ‘애국심’ 마케팅이 냉정한 시장의 논리에서는 통하지 않았다는 증거겠지요. 아마 디빠들은 이런 혹평조차 미국의 음모라고 해석하고 싶겠지만요.

하기야 광기에 사로잡히면 모든 게 다 노랗거나 벌겋게 이상한 색깔로 보이는 법이지요. 디빠의 선배들이신 노빠들이나 황빠들이 그걸 잘 보여준 바 있지요. 한가지 첨언. 저는 노빠나 황빠와는 달리 디빠들의 연령대는 대략 초딩에서 고딩, 높게 잡아야 대딩 초반이라고 봅니다. 이런 세대론적 분석도 흥미로운 작업이 되겠지요. 그런 수준 낮은 ‘아해’들과 대화를 하려는 진중권의 노력을 일단 존중해야겠지요. 저라면 그런 아해들과 놀고 싶지 않을 것 같거든요.

그런데 박선생님이 말씀하신 인터넷과 지식인, 대중의 관계는 또 다른 중요한 문제라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하신 지적들에 저도 많이 공감합니다. 앞으로 인터넷 시대를 사는 지식인 혹은 대중이라면 더 깊이 궁구할 중요한 문제를 제기해주셨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몇 가지 면에서 저와 입장이 달라 보입니다. 그 얘기를 조금 하고 싶습니다.

박선생님은, “진중권의 '논의방식'”(이하 인용부호 안의 구절은 박선생님 글에서 따온 것입니다)을 문제 삼고, 진중권이 이번 논란을 통해 “많은 것을 잃고 있는데, 첫째는 인터넷이라는 이 놀라운 새 매체를 긍정적으로 전유할 수 있는 기회를 스스로 좁히”고 있다고 지적하셨습니다.

그런데 저는 과연 인터넷을 긍정적으로 “전유”한다는 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두 번째 문제로 지적하신 것, “네티즌들을 혹은 인터넷 문화를 건강하게 이끌 수 있는 기회 또한 상실하고 있다”는 말씀도 역시 잘 이해가 되지 않습니다.

그 아래 부분에 박선생님은 진중권의 글쓰기가 “'계몽'과 '교육'의 맥락에 위치”한다는 점을 지적하고 있는데 아마 이것이 진중권을 비판하는 핵심적 문제의식으로 제게는 읽힙니다. 그런 문제의식에서 진중권이 “인터넷 미디어의 질 낮은 요소들을 그는 무비판적으로 습용하고 있”다든지, “실제로는 인터넷의 긍정적 전유를 포기한 듯이 행동하고 있”다든지, “빠'들을 '빠들 수준에서' 상대하는 것은 이 문제에 대해 전혀 생각지 않는 경우에만 나오는 행동이 아닐까”라는 결론이 나오는 것이겠지요.

그래서 진중권의 대응 방식은 “네티즌들의 문화적 안목을 높이는 이른바 계몽은 가능할 수 없다”고 판단하십니다. 결론적으로 진중권은 “대중 계몽의 장으로 활용하는 인터넷이라는 미디어를 생산적으로 전유해야 한다는 보다 큰 문제에 대해서 사실상 아무런 고민도 없었음을 만천하에 보”였다는 것이지요.

그러면 이 각각의 지적들에 대해 간단히 제 생각을 적어보겠습니다.

1. 진중권의 글쓰기가 “'계몽'과 '교육'의 맥락에 위치”한다는 지적에 대해.

저는 이 말씀이 참 이해가 되지 않는데, 바로 이런 논리가 디빠들이 진중권을 비판하는 논리가 아니던가요? ‘대중의 취향’을 존중하지 않는 지식인의 오만함 어쩌구하는 황당한 논리. 김규항도 비슷한 지적을 했지요. 잘난 척 하는 평론가들이, 대중을 “계몽”하고 “교육”하려는 오만함을 보이고 있다구요. 그런데 그런가요? 대중의 무뎌지고 비논리적이고 감상적인 취향을 논리적으로 비판하는 것이 왜 꼭 “계몽과 교육의 맥락”에서만 이해가 되어야 하는지 모르겠습니다.

더 나아가 드는 질문. 지식인이 대중을 계몽하고 교육하려는 문제의식을 지니면 안 되나요? 저도 인터넷 시대에 대중과 지식인의 관계가 문자매체와 많이 달라졌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어떤 면에서 역사적으로 볼 때 모든 지식인의 글쓰기는, 그것은 의식했든 그렇지 않든, 이미 계몽과 교육의 역할을 해왔습니다. 사실은 그게 근대사회가 역사적으로 지식인에게 상당한 정신적이고 물질적인 여유 공간을 제공하는 이유이구요. 대중이 먹고 사는 문제로 힘드니까 지식인 너희들이 좀 공부도 더 하고 정신도 차리고 해서 사회가, 문화가, 대중의 감수성이 문제가 있으면 먼저 나서서 지적도 하고 필요하면 “계몽”도 하고 “교육”도 하라고, 밥 먹기 힘든 사회적 공간에 지식인의 자리를 마련해준 것 아닌가요?

비평의 역할도 비슷하지요. 잘은 모릅니다만, 한때 문제가 되었던 ‘주례사비평’도 바로 대중의 잘못된 감성에 영합하고 대중의 잘못된 취향을 무비판적으로 ‘존중’했기 때문에 생긴 것 아닌가요? 제가 비평이 지닌 ‘공론의 장’의 성격을 누차 강조한 것도 그런 까닭입니다. 비평의 공간에 들어온 이상 지식인이든, 대중이든 자신의 논거를 갖고 논쟁을 해야 합니다. 말 그대로 계급장 떼고요. 거기서는 쪽수도 문제가 아니지요. 제가 보기에 진중권은 그 나름의 방식으로, 그게 어떤 이에게는 ‘독고다이’의 모습으로 비칠지도 모르겠지만, 비평이라는 ‘공론의 장’에서 자신의 입장과 논거를 갖고 일부 빠돌이 대중들의 무뎌진 감성에 맞서 싸웁니다.

그래서 그가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계몽과 교육의 효과를 거두고 있지요. 저는 디빠들이, 아니 지금까지 그가 맞서 싸워온 다양한 빠돌이, 빠순이들이 진중권의 비판에 맞서 논거를 갖고 반론을 펴는 것 읽어 본적이 없습니다. 그냥 진중권이 싫다는 것이지요. 그의 글쓰기 방식이 마음에 안 든다는 것이지요. 그게 비평인가요? 상대방이 설득력 있는 논거를 갖고 주장을 펴는 데 그에 맞서 반론을 제기할 말이 없으면 입 다물 줄 아는 것도 비평의 자세이지요. 되도 안 되는 말 떠들지 말구요. 그걸 못하는 게 과연 누구 잘못인가요? 이런 태도도 ‘대중의 취향’을 존중하지 못하는 지식인의 오만함인가요?

남의 말을 들을 줄 모르는 디빠들의 무뎌진 감수성과 무식함 때문에 생기는 책임을 진중권 같은 지식인에게 묻는 게 온당한지 저는 이해가 잘 안됩니다. 박선생님은 진중권이 “가르치는 계몽가가 아니라 꾸짖고 욕하는 선생에 불과할 뿐”이라고 지적합니다. 그 지적이 진중권이 자신의 입장을 개진하는 방식이나 스타일을 문제 삼은 것이라면 저도 어느 정도 동의합니다. 진중권이 지금보다 조금 덜 시니컬하게, 조금 더 곡진하게 논지를 전개할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그건 문제의 본질이 아닙니다.

진중권의 글쓰기가, 특히 아래 올라온 [군중이냐 다중이냐]라는 글이 “가르치는 계몽가”가 아니라 “꾸짖고 욕하는 선생”의 글이라고는 저는 판단하지 않습니다. 쓰신 비유를 달리 쓰자면, 오히려 제 생각에는 진중권은 그 나름대로 찬찬히 “가르치는 계몽”의 글을 쓰고 있는데, 기본적인 독해력이 딸리고 비평의 기본도 안 되어 있는 일부 디빠 대중들이 그의 글을 “꾸짖고 욕하는 선생”의 글로 오독하고 있는 것이지요. 선생이 아무리 잘 가르치려고 해도 채석장 수준의 머리 나쁜 학생들이 안 따라주면 그건 누구 잘못인가요? 여전히 끝까지 선생이 모든 걸 책임져야 하나요?

저는 이런 태도야 말로 나쁜 의미의 민중주의, 대중주의, 파퓰리즘이라고 생각합니다. 제가 그런 집단주의적 개념들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구요. 대중, 다중, 민중은 언제나 옳은가요? 아니지요. 그들은 많은 경우 잘못된 판단을 합니다. 지식인은 그런 잘못된 판단에 경종을 울리라고 존재하는 것이구요. 이건 대중과 소통하는 방식의 문제는 일단 제쳐두고 하는 말입니다.


2. 진중권이 “인터넷 미디어의 질 낮은 요소들을 그는 무비판적으로 습용하고 있”다든지, “실제로는 인터넷의 긍정적 전유를 포기한 듯이 행동하고 있”다는 비판에 대해.

사실 제가 하고 싶은 말은 위에 다 한 셈입니다만, 이런 지적들이 저는 여전히 이해가 안됩니다. 미루어 짐작하기로는, 박선생님은 진중권이 디빠들의 “질낮은” 수준에 맞춰서 “질낮은” 글쓰기 방식으로 대응하고 있다고 판단하는 걸로 보입니다. 그렇지요? 설령 그렇다 해도 저는 그게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지식인이 대중과 관계를 맺는 것, 특히 인터넷 시대같이 온갖 잡스러운 말들이 홍수처럼 쏟아지는 말의 바다에서 지식인이 대중과 소통하는 방식은 어쩌면 바로 그 지저분하고 “질낮은” 것처럼 보이는 글쓰기 방식--진중권의 글쓰기가 꼭 그렇다는 뜻은 아닙니다만--을 최대한 전용하면서, 대중과 소통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게 왜 문제인가요?

제가 알기로 진중권은 한국의 지식인 어느 누구보다도 광대한 넷의 바다에서 글쓰기가 지니는 의미, 박선생님이 지적하신 문제들인 “인터넷으로 대표되는 현대의 미디어 환경의 문제, 그에 따른 글쓰기의 양태 변화와 지식의 위상 변화, 공론(장)의 성격 변화 등을 지적하고 그 의미를 따져보는” 작업을 선구적으로 실천해 왔다는 판단입니다. 대부분의 지식인들이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대중매체 앞에 쩔쩔 매거나 그 새로운 담론의 공감을 아예 무시해버리면서 아카데미즘의 좁은 울타리 안에서 안주하고 있을 때, 진중권은 대중과 소통하고 때로는 대중과 맞서 싸우고, 때로는 대중을 가르치는 계몽의 역할을 독보적으로 실천해왔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저도 진중권의 방식만이 옳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정말 진중권의 글쓰기가 인터넷에서의 소통방식이 “저급”한 것으로 본다면, “고급”한 소통의 방식이 무엇인지가 저는 참 궁금합니다. 대중의 감수성이 저급하다면 그 감수성의 수준을 고려하면서 그들의 언어로 소통하려는 노력이 저는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지금 우리 시대 제도권 지식인들에게 정말 모자란 능력이 바로 이런 소통의 노력이라는 생각도 하구요. 과연 진중권이 “빠'들을 '빠들 수준에서' 상대”하는 것인가요? 제가 보기에는, 빠들의 수준이 그것밖에 안되기에 그들이 알아먹을 만한 말로, 소위 "저급“한 스타일로 글을 쓰는데도 기본 독해력이 안 되는 빠들은 그런 글조차 제대로 해독하지 못한다는 게 더 합당한 설명이 아닐까요?

아래 [군중이냐 대중이냐]는 글이 레디앙 홈피에도 올라와 있습니다. 그에 달린 디빠들의 댓글을 읽으면서 저는 이런 제 생각이 그리 틀리지 않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디빠들은 진중권이 이 글에서 인용하고 있는 역사적 사례들의 의미, 그것을 끌어들여 풍자적이고 반어법적으로 사용하는 진중권 나름의 수사학이 지닌 미세한 의미들을 거의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만큼 무식하고 둔감하지요. 무식한 자들은 지식인이 ”가르쳐야“하지 않나요? 가르쳐도 안 되면 때로는 ”꾸짖고 욕하는 선생“ 역할도 해야 하지 않나요? 그것도 안 되는 채석장 수준의 머리와 감수성이라면 그때는 포기해야 하구요.

이것도 대중을 무시하는 지식인의 오만함인가요? 자신의 무지를 인정하고 배워야 할 것을 배우는 것. 그게 대중 교육의 출발점 아닌가요? 제가 생각하는 인터넷 시대의 부정적인 측면 하나. 배워야 할 것을 배우지 못한 채 자신의 무식함을 자신의 고유한 ‘취향’(sic!)으로 착각하는 대중들의 존재와 그것을 옹호하는, 김규항 같은 대중주의자들의 등장이라고 봅니다.


3. “네티즌들의 문화적 안목을 높이는 이른바 계몽”의 의미, 그리고 “대중 계몽의 장으로 활용하는 인터넷이라는 미디어를 생산적으로 전유해야 한다는 지적에 대해.

되풀이 말하자면 저는 진중권이 그 어떤 지식인보다도 말씀하신 이런 문제들에 실천적으로 답을 제시하고 있다고 봅니다. 그는 말과 글의 검객입니다. 그는 글을 칼로 사용합니다. 글의 검객은 글을 칼로 쓰기에 어떤 면에서는 자신의 몸을 내걸고 글을 쓰는 겁니다. 베이고 다치는 걸 감수하면서요. 그런 태도는 그냥 밖에서 ‘평론가적으로’ 훈수를 두면서 ”인터넷이라는 미디어를 생산적으로 전유해야 한다“는 말을 편하게 던지는 것--박선생님이 그렇다는 말씀은 아닙니다^^--보다는 한걸음 더 나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진중권이 보여주는 인터넷의 개입방식에 이의를 제기하고 더 나은 대안을 모색하자는 조언은 온당합니다. 하지만 그런 조언이 한걸음 나아간 대안이 되려면 그냥 하나마나한 좋은 말이 아니라, 진중권 글쓰기의 어떤 점이 문제인지를 구체적으로 분석해야 합니다. 제가 알기로, 디빠를 비롯해서 지금까지 진중권이 말의 검을 들고 맞서 싸워온 수많은 빠들--노빠, 황빠가 대표적이지요--은 그런 생산적 대화를 진중권과 나눌 수준이 안됩니다.

그렇다면 다른 지식인들은 사정이 나은가요? 별로 그렇지 않지요. 따라서 말씀대로, 그냥 진중권의 글쓰기가 마음에 안 든다고 할 것이 아니라, ‘그 친구가 하는 현실/문화분석이 좀 그래’라고 경기장 밖에서 속편한 훈수를 둘 것이 아니라, 지식인들이 좀더 적극적으로 인터넷이라는 대중소통의 경기장에 뛰어들어, 진중권과 같이, 혹은 그에 맞서 말의 검을 들고 게임을 해야 한다고 봅니다. 관객으로서 훈수를 던지는 짓은 이제 지식인도 그만해야 하지 않을까요?

아래 댓글에도 제가 적었지만, 비평은 훈수두기가 아니라 현실에의 개입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개입하는 방식과 내용에 대한 논쟁은 그 다음의 문제이지요. 저는 그 점에서 지금 진중권이 벌이는 외로운 싸움에 개인적으로는 미안함을 느낍니다. 인터넷이라는 말의 경기장 안에 들어가 싸우는 지식인은 그밖에 없는 것처럼 보이니까요. 소위 영화평론가들이나 대다수 지식인들은 경기장 관중석에 편히 앉아, 자기들 옆에서 광기 어린 응원을 보내는 빠들의 환호성 앞에 주눅이 들어 입도 뻥긋 못하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다시 묻고 싶습니다. 지금 벌어지는 디워 논란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는 게 누구인가요? 진중권인가요? 아니면 디빠들인가요? 아니면 관람석에 편히 앉아 있는 영화평론가들, 지식인들인가요?  

글을 쓰다보니 마치 제가 '진빠'처럼 된 듯해, 좀 거시기한데 저는 누구의 빠돌이가 되고 싶은 생각 손톱만큼도 없습니다^^;; 제가 진중권의 입장에 동의한다면, 그건 그 개인이 아니라--저는 그를 개인적으로 잘 모릅니다--그가 펼치는 주장과 논거가 설득력이 있기 때문입니다. 진중권이든 누구든 설득력이 없는 무리한 주장을 편다면 그때는 또 필요한 비판을 해야겠지요.

이번 가을에 출판될 제 책의 마무리 교열 작업 때문에 사실 이런 글 쓰고 있을 시간은 없는데 막상 글을 쓰다보니 길어졌네요. 박선생님을 비롯한 동인 여러분들, 남은 추석연휴 즐겁게 보내시기 바랍니다^^ 저도 차례를 지내지는 못했지만, 송편은 먹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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