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세미나들

 *영미연 안팎 소식

 *이달의 학술행사

 *문화 리뷰

 *다른 집 가기

 *책읽기,세상읽기

연구회소개 / 회원가입 / 분과연구실 / 도서실 / 회의실 / 사이트맵 / 자료회원연구실 / 자유게시판

                     

제   목

 중도와 진보

작성자

bloom

작성일자

2007-09-25

이메일

bloom.pe.kr

조회

2641


이번 대선에 입하는 '중도주의'의 입장을 설득력있게 개진하는 글을 퍼온다. 나는 한국사회에서 중도주의의 현실성에 회의적이다. 지난 5년 동안 노정권이 보여준 중도적 개혁주의는 중도주의와 기회주의가 종이 한장 차이라는 걸 잘 보여주었다. 중도주의는 립써비스 개혁주의로 변질되기 십상이다. 그런 꼴을 또 봐야 하는가?

내 생각에 이제 한국사회의 정치지형은 보수와 진보의 정면승부로 새로 짜여져야 한다. 더이상 중도의 이름으로 진보쪽 유권자들에게 표를 구걸하는 짓은 곤란하다. 비판적 지지론은 그런 표구걸의 세련된 포장일 뿐이다. 하지만 중도주의의 비전으로 "신자유주의에 맞설 패러다임을 제시하라"는 요구는 옳다. 지금 중도를 자처하는 이들, 특히 정치가들이 그런 패러다임을 수용할 준비가 되어 있는지는 의심스럽지만 말이다. 어쩌면 중도와 진보가 '전술적'으로 연대할 수 있는 고리도 반신자유주의 투쟁에 있으리라. 하지만 나는 그런 연대는 단지 전술적 연대가 되어야지, 선거때만 되면 나오는 비판적 지지론과 같은 '전략적' 연대론이 되어서는 안된다고 본다.

각자가 자신의 입장을 갖고 선거라는 게임에서 정당한 승부를 펼치면 된다. 왜 다른 정치적 입장을 가진 이에게 자신의 입장을 바꾸라고 요구하는가? 무슨 권리로? 무슨 근거로? 입장의 차이에 대해 토론하고 논쟁할 수는 있다. 하지만 상대방의 입장을 전략적으로 무효화시키려는 짓은 곤란하다. 나는 지금도 지난 대선과 총선때 유시민 같은 허울뿐인 중도주의자들이 떠들던 비판적 지지론이 역겹다. 반보수연합/민주세력연합이라는 알맹이 없는 구호로, 진보에 표를 던지려는 이들을 중도로 끌어들이려는 호객질은 이제 그만할 때가 되었다. 비판적 지지, 그만 우려 먹자. 신물난다.

-----------------
출처: 프레시언

신자유주의에 맞설 패러다임을 제시하라
[2007 대선이야기] 중도여, 국민 절반의 요구를 돌아보라

2007-09-24 오전 10:12:31

쟁점이 없는 대선이다. 채 세 달도 남지 않았건만 이번 대선은 구도도, 흐름도 여전히 모두 불투명하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한나라당 후보 경선이 전국민적 관심을, 민주노동당 후보 경선이 진보 진영의 관심을 끌었던 게 고작이었을 뿐이지 않았나 싶다. 중도 세력의 경우 탈당 러시에서 시작해 대통합민주신당 출범으로, 그리고 우여곡절 끝에 후보 경선이 이뤄지고 있지만, 국민들은 물론 지지 그룹에게조차도 감동을 주고 있지 못하다.

상황이 이러하다 보니 정작 국민들의 관심은 다른 사건들에 더 쏠려 있는 듯하다. 추석 민심이 한 분수령을 이뤄온 과거와 달리 이번 대선은 이렇게 흘러가다 어느 날 갑자기 기표소 앞에 서 있게 되는 것은 아닐까 하는 우려마저 갖게 한다. 이제까지의 상황을 지켜보면 한나라당의 이명박 후보, 대통합민주신당의 정동영·손학규·이해찬 후보, 민주노동당 권영길 후보, 민주당 조순형·이인제 후보, 그리고 독자 출마한 문국현 후보 중 한 사람이 연말에 대통령에 당선되는 것이 분명해 보이는데, 1997년 또는 2002년 대선과 같은 열기를 느끼기 어렵다.

중도 세력의 부진

왜일까. 그 이유는 아무래도 중도 세력의 부진에 있다. 지난 20년간 우리 사회 중도 세력을 이끌어 온 김대중 전 대통령의 리더십을 대신할 후보가 눈에 띠지 않는다. 2002년 대선에서는 기득권 세력에 도전장을 내민 노무현 후보가 포스트 디제이 리더십을 이뤘던 것에 반해, 현재 대선 후보들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포스트 디제이(DJ)와 포스트 노무현을 대체할 수 있는 리더십을 찾아보기 어렵다. 일각에서 제시하는 '문국현 대안론'도 지난 2002년 노풍(盧風)과 비교하면 한여름 열기를 식히는 한줄기 시원한 바람 이상의 위력을 갖고 있지 못한 듯하다.

이런 상황을 낳은 원인에 대한 분석은 이미 여러 사람들에 의해 제시된 바 있다. 무엇보다 한나라당 이명박 후보의 신자유주의 또는 신개발주의에 맞설 수 있는 중도 세력 내지 진보 세력의 비전 및 담론이 여전히 취약하다는 게 그 일차적인 원인일 것이다. 민주화 시대를 계승하든 극복하든 한나라당식 발전전략에 대응할 수 있는 대항 담론이 요구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필적할 수 있는 비전은 여전히 모호하다.

얼마 전 이명박 후보가 '87년 체제'를 넘어서서 2008년 신발전체제로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을 때 사회학 연구자로서 내심 당혹스러웠다. 87년 체제가 지향한 민주화의 가치는 여전히 유효하며, 이 민주주의 가치들을 새롭게 열리고 있는 세계화 시대에 어떻게 위치시킬 것인가에 관심을 두고 있는 나로서는 87년 체제를 넘어서자는 주장에 동의하지는 않았지만, 이명박 후보의 언설에는 우리 사회의 거시적 흐름을 읽어내고 새로운 대안을 모색하려는 보수 세력의 나름대로 진지한 고민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87년 체제를 넘어서

문제는 이에 대해 문국현 후보를 제외하고 내가 과문한 탓인지 몰라도 별다른 대응이 없었다는 점이다. 87년 체제가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에 대응할 필요성을 느끼지 않았기 때문일까. 아니면 이명박 후보의 주장이 개발독재로 상징되는 그의 이미지와 어울리지 않아 평가절하해도 괜찮을 것 같기 때문이었을까. 아마도 그 이유는 중도 세력이 여전히 87년 체제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갖고 있기 못하다는 데에 있을 것이다.

87년 체제는 분명 새로운 전환점에 도달해 있다. (개인적으로 87년 체제라는 개념을 선호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정치적 민주화와 사회적 권리의 향상이라는 점에서 87년 체제는 나름대로 의미를 갖는다.) 87년 체제의 한계는 경제적, 사회적 민주화의 지체에 있다. 민주화는 이행 단계를 지나면 공고화 단계로 이어져야 하는데, 우리 사회 민주화는 정치적 민주화에서 경제적, 사회적 민주화로의 전환이 더딘 것으로 나타났다. 게다가 그 방향도 '국가 주도'에서 '국가와 시장의 균형'이 아니라 '시장 주도'로 전환됐으며, 그 결과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지난 10년간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사회 양극화가 강화돼 왔다.

사회갈등의 분출은 87년 체제의 또 하나의 특징을 이룬다. 민주화 과정이 진행되면서 군부 독재 하에서 억압돼 온 사회갈등이 분출하고 사회균열이 다원화돼 왔는데, 자본 대 노동, 중앙 대 지방, 개발 대 환경, 기성세대와 신세대 사이의 긴장 및 갈등이 지속적으로 폭발해 왔다. 오늘날 신자유주의 시대에 어느 사회이건 영국의 사회학자 제솝이 말한 바 있는 두 국민 (two nations) 국가로 분단되지 않는 나라는 거의 없다.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두 국민 국가의 경향은 유독 빠르고 심원하게 진행돼 왔다.

신자유주의적 개발주의의 그늘

87년 체제를 계승하든 극복하든 현재 우리 사회에 부여된 과제는 신자유주의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 훼손된 사회통합을 어떻게 복원할 것인가에 있다. 이명박 후보가 말하는 신발전체제는 한마디로 신자유주의와 신개발주의의 조합, 시장중심주의와 박정희주의의 결합이다. 문제는 이 전략이 가져 올 명암이다. 신자유주의 정책이 더욱 강화되면 투자가 활성화되고 성장률이 다소 높아질 가능성은 있다. 하지만 이 전략은 사회안전망을 부분적으로 강화한다하더라도 결국 사회 양극화를 더욱 증대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신자유주의가 낳고 있는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는 불안의 확산이다. 시장에서의 경쟁의 강화는 끊임없이 낙오자들을 만들고, 이는 다시 살아남기 위한 경쟁을 더욱 강화시키는 과정을 반복함으로써 사회적 불안을 증대시킨다. 가시적인 경제성장이 어느 정도 이루어짐에도 불구하고 변화에 적응하기 위한 부단한 노력들은 결국 삶의 존재론적 불안과 무의미를 강화시킬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 대단히 우려스럽다.

문제는 이런 신자유주의적 개발주의에 대항할 수 있는 설득력 있는 개혁적 패러다임이 여전히 제시되고 있지 못하다는 점이다. 일자리 창출, 평화경제, 사회 양극화 해소를 강조하고 있지만, 이들은 부분적 답변들이지 전체적 해답 내지 비전은 아니다.

차라리 문국현 후보의 '사람 중심 진짜 경제'나, 민주노동당 경선에서 아깝게 탈락했지만 크게 선전한 심상정 후보의 '세박자 경제론'(서민경제·평화경제·동아시아호혜경제)이 신자유주의적 개발주의에 맞설 수 있는 패러다임이라 할 수 있다.

나는 중도 세력이 제시해야 할 패러다임이 '지속가능한 세계화', 다시 말해 '사회통합적 세계화' 또는 '낙오자 없는 세계화'(globalization without losers)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세계화 시대 새롭게 형성되고 있는 구도는 '민주화 대(對) 선진화'가 아니라 '양극(화)적 세계화 대(對) 통합적 세계화'다(<표 >를 볼 것).

지속가능한 세계화와 이중의 선순환을 향하여

지속가능한 세계화는 이른바 '이중의 선순환'을 핵심전략으로 삼는다. 그것은 대외개방과 대내개혁의 선순환, 성장과 분배의 선순환을 추구한다. 경제정책은 동반성장, 지식기반경제, 고용창출을, 복지정책은 경제-고용-복지정책을 연계시키는 적극적 복지 정책과 지속가능한 고용을 위한 사회투자를 주요 목표로 한다. 이런 이중의 선순환을 모색하기 위해 지속가능한 세계화는 무엇보다 사회협약을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한다. 우리 사회의 정치적, 경제적 조건을 고려할 때 사회협약은 경쟁력과 형평성, 효율성과 공공성을 결합시킬 수 있는, 세계화 속에서 민주화를 진전시킬 수 있는 실현가능한 현실적인 전략이다. '협약 없는 발전전략'은 사회양극화를 강화함으로써 결국 민주주의의 후퇴를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더불어 이중의 선순환을 지속적으로 작동시키기 위해서는 작은 정부가 아니라 '능동적 정부'가, 이기적 시민사회가 아니라 '성찰적 공동체'가 모색돼야 한다. 정부 혁신을 통해 네트워크형 국가 시스템으로 전환하고, 민주적 거버넌스와 갈등조정 시스템을 구축하며, 책임 있는 국정운영 및 신뢰받는 정부를 이룸으로써 국가 능력을 복원해야 한다. 동시에 개인의 자율성과 사회적 연대가 조화되는 성찰적 공동체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

중요한 것은 여전히 우리 국민의 절반이 신자유주의적 개발주의와는 다른 패러다임을 원하고 있다는 점이다. 경쟁력을 높일 수 있으면서도 인간적인 사회를 실현할 수 있는, 87년 체제의 한계는 극복하되 민주적 가치들은 더욱 심화시킬 수 있는, 불안을 넘어서서 삶의 안전과 의미를 느끼며 살아갈 수 있는 새로운 패러다임이 제시되길 결코 적지 않은 국민들은 간절히 기다리고 있다.

세계화의 충격을 당당하게 수용할 수 있으면서도 민주적 가치를 강화할 수 있는 패러다임이라면 무엇이라 명명해도 좋다. 중도 세력은 더 이상 지체하지 말고 과감하게 새로운 비전과 패러다임을 제시해야 한다. 이제는 정말 시간이 그렇게 많이 남아 있지 않다.

김호기/연세대 교수(사회학)

 

   관련글 제목

작성자

작성일자

조회

중도와 진보 <- 현재글

bloom
2007-09-25
2641

 

 

 

연구회소개 | 회원 가입  |  분과 연구실  |  도서실  |  회의실  |  사이트맵  |  자료회원연구실 | 자유게시판

운영위  |  안과밖편집위  |  자료실편집위 |  영미문학연구 편집위 |  출판기획위번역평가위

Copyright 2001 All rights reserved SESK.ne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