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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가짜 학위, 교수, 그리고 지식인

작성자

bloom

작성일자

2007-07-17

이메일

bloom.pe.kr

조회

3205


1.
여자 황우석이라는 ‘영광’(sic!)스러운 별칭을 듣게 된 모대학 교수 신아무개씨의 가짜학위 사건으로 떠들썩한가보다. 착잡한 일이지만 한국사회에서는 능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여기에는 몇 가지 문제가 얽혀있다. 교수인사 문제가 있을 때마다 거의 매번 빼놓지 않고 경험하는 투명하지 못한 교수채용심사과정의 문제, 외국의 소위 유명대 박사학위 선호 현상, 그만큼 여전히 신뢰를 주지 못하는 국내 대학원의 열악한 교육연구 현실, 박사학위 취득 과정에 대한 정밀한 검증체제의 미비 등이 논의될 수 있으리라.

하지만 나는 이번 사태를 바라보면서 좀더 근본적인 질문을 하게 되었다. 한국사회에서 교수의 위상은 무엇인가? 지금 한국사회에서 교수는 과연 비판적 지식인이 될 수 있는가라는 질문. 대학선생을 하고 있는 나 자신에게 먼저 던지는 질문이다.


2.
많은 사람이 지적하지만, 한국사회에서 지식인은 거의 교수라는 직위와 동일시된다. 인터넷의 등장으로 ‘지식의 대중화’ 현상이 일어나면서 다른 유형의 지식인들, 소위 '대중지식인'이 새롭게 나타나고 있다는 진단도 있다. 그렇지만 여전히 한국사회에서 상당한 ‘상징권력’을 행사하는 교수는 다른 지식인과는 구별되는 대접을 받는다. 까놓고 말해 같은 글을 써도 교수라는 간판을 달았을 때와 그렇지 않았을 때는 다른 대접을 받는다. 그게 바람직하다고 전혀 생각하지 않지만, 현실은 그렇다.

더욱이 학벌주의가 팽배한 한국사회에서 소위 잘 나가는 대학의 정규직 교수라는 간판은 그런 간판을 단 교수의 ‘실력’과는 별개로, 사회적으로 상당한 상징권력을 행사한다. 그러니 이왕이면 브랜드네임이 높은 대학의 교수가 되는 것이 좀더 많은 지식의 ‘상징권력’을 행사하기에 유리하다. 지식인일수록 학벌주의에서 벗어나기 힘든 이유는 여기에도 있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대한민국에서 교수는 '지식노동자'들에게는 여전히 대단한 선망의 대상이다. ‘상징권력’만이 아니라 실질적인 생활의 조건에서도 정규직 교수직은 매력적이다. 학교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어느 대학에 있든 크게 먹고 사는 문제로 고민할 정도는 아닌 정도의 월급은 챙기고 있을 테니까 말이다.

그러니 제도권 대학원 교육을 마친 이들은 모두 교수직을 선망한다. 가짜 학위소동을 벌이고 있는 신아무개씨든, 내 생각에 제대로 검증해보면 한국대학에 적지 않게 자리 잡고 있을 것으로 보이는 가짜 학위를 소유한 교수들, 혹은 교수 후보생들이 그렇게 ‘사기’ 행각을 해서라도 교수직을 얻고자 애쓰는 데는 이런 ‘상징권력’이나 실질적인 잇점의 유혹이 크게 작용한다. 한마디로 한국사회는 교수하면서 ‘폼잡기’가 좋은 사회이다.


3.
한국사회에서 교수라는 직업이 갖는 매력은 분명하다. 하지만 다르게 질문을 던져보면 이야기는 착잡해진다. 내 생각에 적어도 1980년대까지, 혹은 90년대 초반까지는 교수 중에도 자신이 지닌 ‘상징권력’을 출세나 입신의 수단이나 안온한 생활의 방편이 아니라, 날카로운 현실비판의 무기로 사용하는 비판적 지식인이 적지 않았다. 물론 교수보다 더 날카롭게 현실을 해부하고 비판하는 재야 지식인도 많았지만 교수 중에도 ‘지식인’이라는 이름에 값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다. 그만큼 대학은 그때까지는 한국사회의 공공성과 민주주의의 보루였다.

그러나 몇 번 지적했지만, 이제 자본과 시장 논리가 사회를 지배하는 ‘기업사회’가 된 한국에서 비판적 지식인으로서의 교수를 찾아보기는 점점 힘들어진다. 이런 내 진단이 사실에 부합하는지는 모르지만, 적어도 나는 그런 인상을 받고 있다. 소위 사회적으로 평판이 높고 잘 나가는 대학일수록 교내에 빼곡하게 들어서는, 기업이 지어준 이름을 단 기부건물들. 행여 자기들 학교의 졸업생이 졸업 후 해당 기업의 취직에 문제가 될까 연신 기업의 눈치를 보는 유명대학들의 웃기지도 않는, 하지만 그만큼 절박한 행태.

지나가는 얘기지만, 모대기업 회장에게 수여하는 명예‘철학’(sic!)학위에 반대하는 시위를 했다고 학생들을 ‘출교’조치 했고, 그에 대해 (적어도 내가 알기로는) 그 대학 교수들이 아무런 비판의 목소리도 내지 못한 모유명사립대학의 경우는 한국의 대학이 얼마나 자본과 기업의 논리에 종속되어버렸는가를 여실히 입증하는 사례이다. 그래서 나는 그 대학의 교수들이 먼저 나서서 ‘인문학’ 위기론을 언급하면서 비장하게 발표한 성명서가 어쩐지 위선적으로 비쳤다.

인문학의 중흥은 대학 밖에서 국가나 기업에게 관심과 돈 좀 더 달라고 앵벌이 짓을 해서 가능한 게 아니다. 대학 안에서 벌어지는 위와 같은 황당한 자본의 폭력에 맞설 때만 인문학의 부흥은 가능하다. 인문학은 그런 일 하라고 있는 것이니까. 다른 교수들은 몰라도 인문학 교수들은 대학을 점령하는 자본의 논리에 저항해야 한다. 그런데 지금 한국 대학에서 그런 저항의 목소리는 찾기 힘들다. 대학교수와 비판적 지식인의 거리는 그만큼 멀어졌다.


4.
이런 이야기를 적자니 몇 달 전에 읽은 박노자의 글이 생각난다. 박노자의 글은 내가 지금 고민하는 문제인 교수와 비판적 지식인의 관계에 대해 깊은 고민을 보여준다. 그는 이렇게 적는다.

> “가끔가다가 그러한 상상을 해봅니다. 막상 철학 박사를 취득한 젊은 날의 마르크스가, 그가 그 때에 한 때에 원하고 공작을 했던 대로 독일에서 교수직을 얻을 수 있었다면 과연 우리가 지금 <자본론>을 읽을 수 있었을 것입니까? 글쎄, 알 수야 없지만 아마도 그가 해직을 당해 대학을 떠나지 않는 한 그의 "반란적인" 저서들을 독일 대학의 분위기에서 계속 쓰기가 쉽지 않았을걸요? 우리가 알고 있는 "마르크스"는, 영국에서의 극빈한 망명 생활의 결과물인 셈이지요. 다산 선생이 강진에서의 어려운 유배살이의 결과물인 것처럼.
한국 현대 사상사를 봐도 그러한 느낌이 들지요. 서울대 교수 박종홍과 무직자 영감쟁이 함석헌을 생각해보시지요. 한 사람이 일시적으로 집권자들에게 그 이데올로기를 제공해주고 그 대가로 "학계의 원로" 대접을 누릴 만큼 누렸지만, 누릴 게 별로 없었던 다른 사람은 20세기 한국 철학사의 가장 창조적인 존재가 된 것이지 않습니까? 함석헌, 유영모, 시인 김남주를 대학 연구실의 안락의자에 앉은 모습으로 상상이나 해볼 수 있습니까?”

박노자의 진단은 지금 한국사회에서 대학교수가 처한 위기를 정확히 진단한다. 박노자의 지적대로 지성사에 또렷하게 이름을 새긴 지식인은 대개 “대학 연구실의 안락의자에 앉은” 교수들보다는 그렇지 않은 이들이 더 많았다. 칸트나 헤겔, 하이데거 같이 ‘교수’이면서도 ‘대가’가 된 이들도 물론 있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이들이 예외가 아닐까? 어쨌든 80년대까지는 한국사회에서도 비판적 지성의 모습을 보여준 교수를 심심치 않게 찾을 수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별로 그래 보이지 않는다. 한국대학의 위기는 이렇게도 나타난다. 이제 교수들은 비판적 지식인이 아니라 권력과 자본의 요구에 철저히 순응하는 기능적 지식인이 될 것을 요구받고 있고 대개 그 요구에 순응하고 있다. 이런 내 진단이 틀리면 좋겠지만 별로 그런 것 같지가 않다.


5.
좀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보자. 박노자는 이렇게 적는다.

> “대학 교수라는 직함이 지성과 문학의 무덤이라고 단정 지으면 좀 과한 말씀이 되겠지만 위험이 크다는 것이 제 평소의 느낌이지요. 한편으로는 특히 한국에서는 대학교수가 "누릴" 것이 너무 많아 "비판 정신"을 살리려고 아무리 노력을 해도 존재가 의식을 결정짓는 그 규칙을 거역하기가 쉽지 않아요. "누린다"는 건, 월급 이야기가 아니고 상징 자본 획득의 가능성들을 이야기하는 것이지요. 그런데 또 한편으로는, 대학교수로서는 - 역시 특히 한국에서 - 지켜야 할 불문율들이 너무 많다는 것입니다. 옆 연구실 동료의 여학생 추행쯤을 눈감아주는 것부터 재단 관계까지...
특권을 누리고 "온건한 처신"으로 그 대가를 지불하는 이 과정에서는, 제 정신이 날라가기가 너무 쉬워요. 유럽은 정도의 차이가 (상당히) 있어도 근본적인 위험성이야 같지요. 글쎄, 저는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입장에서 대학의 안락의자를 발로차기가 쉽지 않지만 이게 황금의 우리가 아닌가 라는 의심이 들 때가 있지요. 유럽에서 대학 교수가 고급 숙련공 정도의 대우를 받는다 해도, 좀 그런 불안한 마음이 가라앉지 않습니다.”

남 얘기가 아니라 나만 해도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는 입장에서 대학의 안락의자를 발로차기가 쉽지 않”다고 생각한다. 언제나 그렇듯이 머리/관념보다 몸/현실이 힘이 세다. 나는 머리로는 “이게 황금의 우리가 아닌가” 라는 의심을 갖고 지내고 있고 앞으로 그렇겠지만 감히 “우리”를 박차고 나가지 못할 것이다. 그러니 이런 이야기들이 결국은 관념의 체조로 그칠 수도 있으리라는 생각도 든다. 그래도 “황금의 우리”를 벗어나지 못하더라도, 가능한 “제 정신”을 지키도록 노력하는 것은 필요하겠다. 박노자에 공감하면서 나는 “대학 교수라는 직함이 지성과 문학의 무덤”이라는 생각을 더 많이 하고 있다. 그리고 박노자는 맑스의 사례를 언급했지만, 어쩌면 서구지성사의 역사가 박노자의 진단을 뒷받침해준다는 생각이다.


6.
몇 가지 예를 들어보자. 그나마 내가 사정을 조금 아는 게 서구지성계이니 그쪽 얘기만 조금 해보자.

지금 세계 지성계의 총아로 떠오른 지젝은 슬로베니아의 별 이름도 없는 대학의 선임연구원에 불과하다. 그 흔한 대학교수도 아니다. 어느 대담에서 지젝이 한 말로는 공산정권때 학생들에게 영향력을 미칠 것을 우려한 당국의 조치로 박사 학위 취득 후 정규 교수직을 얻지 못했고, 연구만 할 수 있는 연구원직을 얻었는데, 그게 자신에게는 오히려 전화위복이 되었단다. 가르치는 부담없이 하고 싶은 공부를 하고 글을 쓰고 여기저기 강연 다닐 수 있었다는 말이다. 착잡한 동유럽의 현실에서 지젝은 교수라는 상아탑의 지식인에 갇히지 않고 현실로 뛰쳐나갔고, 현실과 호흡하는 지식인이 되었다. 물론 거기에는, 나도 그의 대중강연에서 경험했던, 지젝의 열정과 강렬한 지적 호기심이 또한 작용했으리라.

하지만 과연 지젝이 동구나 서구의 잘 나가는 대학의 교수였어도 이만한 학문적 성취를 이뤘을까를 가정해보면 교수직의 매력과 위험성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아마도 이런 이유로 서구의 여러 대학에서 제시된 교수직을 뿌리치고 여전히 재야(?) 지식인의 길을 걷기를 지젝은 선택한 것이라 나는 판단한다.

맑스, 헤겔과 함께 지젝의 사상적 ‘대부’ 격인 라캉도 사정은 마찬가지이다. 라캉은 평생 교수직은커녕 그가 제시한 이론의 ‘혁신성’ 때문에 제도권 정신분석학회로부터 수차례 제명조치를 당했다. 그가 남긴 창조적 사유는 거의 대개 전문가 혹은 대중을 상대로 한 강연의 산물이다.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서 루카치와 벤야민은 어떤가? 루카치의 경우 잠깐 부다페스트에서 대학교수 생활을 했지만 그가 이룬 거대한 지적 성취의 성채는 교수생활을 할 때가 아니라 살벌한 이념투쟁의 현실에서 벌인 지적 ‘게릴라’전의 산물이다. 그가 평생을 안온한 대학교수직에 있었다면 그런 성취를 거둘 수 있었을까?

내가 가장 좋아하는 사상가 중 한명인 벤야민은 더 극적인 예이다. 그는 대학교수가 되려고 애를 많이 썼지만 나중에 탁월한 저서로 판명된 [독일비극의 기원]이 당대 독일의 제도권 박사 학위논문 체제에 맞지 않는다고 퇴짜를 맞았다. 그가 간절히 원했던 교수직에서 거부된 것이다. 그 뒤 벤야민은 길지 않은 삶 동안 일종의 룸펜 지식인으로 살았다. 먹고 살기 위해 글을 썼고, 비극적으로 자살했다. 역사의 아이러니지만, 벤야민의 짧은 삶은 그 개인에게는 분명 비극이었지만, 그가 안온한 대학교수가 되지 못했기에 현대지성사는 가장 찬란한 지성의 별 하나를 얻게 되었다.

비트겐슈타인은 어떤가? 20세기 철학의 혁명이라는 그의 지적 성취는 잠깐 재직했던 켐브리지대학의 안온한 연구실이 아니라 전쟁터의 참호에서, 대학 밖에서 거둔 사색의 산물이다. 많이 알려진 사실이지만, 비트겐슈타인은 제도권 철학에 대해 극도로 불편해 했다.

한국의 경우는 어떤가? 박노자는 “함석헌, 유영모, 김남주”를 언급했지만, 그런 예는 많다. 한국문학사에서 내가 좋아하는 시인이자 평론가이고, 한국현대사의 가장 비극적 인물중 한명인 임화의 경우는 전형적인 예이다. 그는 교수는커녕 역시 평생 변변한 직업하나 없이 살았다. 그냥 문필가로 비평가요 시인이었다. 그리고 현실의 격랑 속에서 45세의 아까운 나이로 총살당했다. 1970년대까지 그의 이름은 남북한 모두에서 ‘이념적’ 이유로 잠시 잊혀졌지만, 이제 한국지성사, 한국문학사는 그의 이름을 또렷이 새겨놓고 있다.

임화 당대 조선의 잘 나가는 학교들에 자리를 잡았던 조선인 교수들, 상징권력을 휘두르던 저명인사들의 숱한 이름은 역사의 흐름에서 모두 잊혀졌다. 하지만 변변한 직업하나 갖지 못했고 억울하게 총살형을 당했던 비운의 지식인이고 생업이라고는 문필가요 비평가, 시인이 전부였던 임화는 지워지지 않을 이름을 한국문학사, 한국지성사에 새겼다.

지금의 한국지성계를 봐도 그렇다. 그들의 입장에 대한 찬반과는 별개로, 한국을 대표하는 논객의 한명이 되었고 새로운 유형의 지식인의 전형이 된 진중권이나 자신만의 고유한 사유세계를 탐색하고 있는 이진경, 이정우 등의 경우는 어떤가? 그들의 사유는 안온한 대학 교수 연구실의 산물이 아니다. (이진경은 뒤늦게 교수가 되었지만, 그의 직장이 ‘상징권력’과는 조금 거리가 먼 학교라는 점, 그리고 그의 사유의 산실이 다른 곳에 있다는 것은 많이 지적되는 얘기이다.)


7.
이상의 사례들이 “대학 교수라는 직함이 지성과 문학의 무덤”이라는 박노자의 통렬한 비판의 단단한 근거가 될지 어떨지는 잘 모르겠다. 하지만 몇 예를 들었지만, 서구 지성사, 혹은 한국 지성의 빛나는 성취들은 대개 대학의 안온한 연구실이 아니라 살벌한 모순이 존재하는 현실과 투쟁의 격랑에서 생산된 것이라는 진단이 많이 틀린 것이라고 여겨지지는 않는다. 지금까지 논의들은 두 가지를 말해준다.

첫째는, 상식적인 이야기지만 지성사적으로 말하자면, 지성사의 유일한 평가대상은 지식인이 어느 자리나 직위, 예컨대 교수직에 있었는가가 아니라 그 지식인이 보여준 사유와 글쓰기의 깊이라는 점이다. 불꽃처럼 자신을 태워 살았고, 그만큼 치열하게 사유하고 글을 쓴 이들만이 결국 지성사에 자신의 이름을 새겼다. 지성사의 평가는 ‘상징권력’의 표현인 사회적 직위나 자리가 아니라 단 한 가지이다. 앞서 언급한 몇몇 지성사의 이름들이 이점을 잘 보여준다. 당대 서구 지식사회의 ‘상징권력’을 지배했던 숱한 제도권 교수들의 이름과 저술은 모두 시간의 흐름 속에서 잊혀졌다. 하지만 변변한 직업하나 갖지 못했던 맑스, 루카치, 벤야민 등의 이름은 서구 지성사에서 영원히 빛나는 별자리가 되었다.

지성사의 평가는 단호하고 분명하다. 지성사는 지식인이 살아생전 누렸던 (대학교수 등의) 사회적 직위나 자리가 아니라 단 한가지 기준인 지성의 깊이, 사유와 글쓰기의 깊이와 독창성으로만 지식인을 역사적으로 평가한다. 지성사의 흐름에서 살아 남을 수 있는 단 한 가지 길은 오직 사유와 글쓰기의 깊이이다.

불행히도, 혹은 다행히도 앞서 언급한 이들은 안락한 대학교수자리를 얻지 못했기에, 삶의 깊은 고통과 좌절을 겪었기에, 더 깊이 사유하고 고뇌하고 글을 쓸 수 있었다. 그 결과 짧은 육신의 고통과 죽음과는 달리 불멸의 이름을 지성사에 새겼다. 불행한 삶을 살았던 지식인, 하지만 지성사에 또렷하게 제 이름을 새긴 벤야민의 경우가 전형적이다. 그는 일종의 '뜨거운 상징'이다.


8.

또 다른 결론이자 질문. 이런 지식인이 지금의 한국 대학 사회, 교수사회에서 다시 나타날 수 있을까? 박노자의 글이 던지는 질문이 이것이다. 그의 지적대로 상당한 ‘상징권력’과 여러 사회문화적 “특권을 누리고 "온건한 처신"으로 그 대가를 지불하는 이 과정에서는, 제 정신이 날라가기가 너무 쉬”운 것이다. 그런 현실에서 비판의 칼날을 날카롭게 벼린다는 것은 얼마나 가능할까? 이것은 한국 같은 학벌주의 사회에서 ‘상징권력’을 향유할 가능성이 더 높은 대학의 교수일수록 그만큼 “제 정신이 날라가기가” 쉽다는 말이기도 하다. 물론 이것은 가능성의 문제이지 필연성의 주장이 아니다. 하지만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은 지적이니만큼 그냥 흘려들을 이야기는 아니다.

배부른 소리처럼 들릴지 모르겠고, 과연 그때 대학선생을 했으면 어떻게 처신하고 사유했을까를 자문해보면 별로 자신 있는 답변도 안나오지만, 나는 1920-30년대, 그리고 1970-80년대가 지식인에게는 지식인으로서 살기에는 복된 시대였다고 생각한다. 물론 이것은 지식인으로서의 삶에 대한 지적이다. 생활인으로서 그 시대는 많은 고통이 있었기에 아마 나라면 그런 현실의 고통에 쉽게 굴복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현실의 고통에 굴복하지 않고 맞선 지식인들에게는 그 시대들이 어쩌면 축복이었을지도 모른다.

슬픈 일이지만, 날카롭게 벼려진 비판적 사유는 오직 고통스러운 현실과의 부딪침 속에서만 가능하다는 믿음을 나는 갖고 있다. 안온한 삶에서 날카롭게 벼려진 깊은 사유는 거의 가능하지 않다. 위에 짧게 언급한 유럽과 한국의 현대지성사가 그걸 예증한다. 대학의 안온한 연구실은 고통스러운 현실과의 부딪침으로부터 지식인을 떼어놓는다.


9.
다시 묻자. 지금 한국사회에 대학교수는 비판적 지식인이 될 수 있을까? 그 가능성이 별로 높지 않다면 비판적 지식인은 이제 죽음을 맞이해야만 하는 것일까? 새롭게 등장하는 ‘대중지식인’이 다른 가능성을 열어줄 수 있을까? 되풀이 말하지만, 안온한 “황금의 우리”를 박차고 나갈 마음은 없으면서도, 답답한 마음에 던지는 질문들이다. 문득 벤야민과 임화의 얼굴이 떠오른다. 21세기의 한국사회에서, 혹은 전지구적 자본주의 사회에서 교수이면서 비판적 지식인으로 사는 길은 정녕 불가능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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