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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달과 손가락: '영어광풍' 논쟁

작성자

bloom

작성일자

2007-0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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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om.pe.kr

조회

3185


자주 마실 가는 finching님의 홈피에 올라온 강준만의 글과 그에 대한 finching님의 논평을 퍼온다. 나는 기본적으로 아래 논평에 공감한다. 특히 이런 대목.

> "학벌, 부동산, 대학입시, 세금, 군복무, 취업 등 한국 사회의 골아픈 문제들은 다 이런 식이다. 그 시스템에서 혜택을 보았던 사람은 자신이 누렸던 그 혜택이 아까와서 차마 비판을 못하고, 혜택을 못 보았던 사람들은 혜택을 누릴 형편이 아니었던 '못난' 처지에 대한 컴플렉스가 있다는 얘기를 듣기 싫어서 비판을 못한다. 이렇게 되면 결국 아무도 비판적인 의견을 내놓지 못한다는 얘기다. 영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영어를 잘 못하는 '국수주의자'가 영어 공부 필요없다고 외치면 그것은 국제 감각이 떨어지는 못난 사람의 투정으로 들리고, 영어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이건 아니라고 하면 너네는 그것 때문에 먹고 살면서 그런 소릴 하다니 가증스럽다고 한다. 그러면 도대체 누가 무슨 얘기를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런 얘기까진 좀 야비하지만, 강준만 교수 자신도 미국에서 영어로 쓴 논문으로 받아온 학위 때문에 대학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비판을 하려면 비판의 대상에 대해서만 얘기하면 된다. 그게 비판과 논쟁의 기본이다. 달을 가리키며 달에 대해 논의하자는데 논의 대상인 달에 대해서는 얘기하지 않고 가리키는 손가락의 주인공이 누구인지를 따지는 것은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생산적이지 못한 논쟁이다. "학벌, 부동산, 대학입시, 세금, 군복무, 취업 등 한국 사회의 골아픈 문제들"이나 강준만이 논의하는 영어광풍 문제든, 그 내용에 대해 적실성과 현실적합성을 논의하면 된다. 그렇지 못하고 비판을 제기하는 이들의 '자격'과 '출신'을 언급하는 것은 생산적이지 못하다.

예컨대 학벌주의가 그렇다. 소위 '학벌'이 좋든 나쁘든 학벌주의가 잘못된 거라고 생각하면 왜 그렇게 생각하는가를 논하면 된다. 반면에 학벌주의 비판이 못마땅하고 학벌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왜 그런지를 역시 비판의 내용을 갖고 논쟁하면 된다. 학벌주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의 '자격'이나 '출신'이 어디인가를 따지는 것은 달을 가리키는 데 달이 아니라 가리키는 손가락을 시비하는 꼴이다. 이런 입장은 전형적인 김빼기 수법이다. 예컨대, 학벌주의의 상위에 있다고 평가되는 학교를 나온 이가 학벌주의를 비판하면 학벌주의의 '수혜자'인 주제에 그런 얘기를 하는 것은 '위선'이라고 비판한다. 반면에 소위 좋은 학벌 출신이 아닌 이가 학벌주의를 비판하면 열등감 때문에 저런다는 말이 종종 나온다. 결국 입 다물고 가만히 현실에 순응하라는 말이다. 학벌주의만이 아니라 대한민국 사회의 거의 모든 사회적 문제나 모순들에 대한 문제제기는 이렇게 '봉쇄' 당한다.

영어광풍 문제도 마찬가지이다. 강준만처럼 영어광풍을 비판하는 논의들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면, 기존 논의 내용의 어떤 대목이 문제인지, 가능한 대안이 무엇인지를 실사구시적으로, 내용을 갖고 논의하면 된다. 강준만의 지적처럼, "영어 광풍을 비판하는 것으로 그칠 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간 대안을 모색"할 때 생산적인 논쟁이 된다. 몇가지 의미있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강준만의 아래 글은 그렇게 생산적인 "대안"을 제시하지 못한다.

논의의 대상이 무엇이든 비판의 입장은 다양할 수밖에 없다. 논쟁도 당연히 벌어질 수밖에 없다. 문제는 논쟁을 할 때 논의대상의 내용을 갖고 논쟁을 해야한다는 것이다. 이 당연한 상식이 잘 지켜지지 않는 게 한국사회, 특히 지식인 사회의 문제점 중 하나이다. 논의 내용이 아니라 상대방의 '자격'과 '출신'을 따지는 것은 달이 아니라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을 시비하는 꼴이다. 강준만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이 아니라 달에 대해 논의하는 것의 중요성을 강력하게 옹호해온 지식인이다. 그래서 지금까지 나름의 현실비판력을 행사해왔고 그 점에 대해 나는 그를 존경한다.

그런데 영어광풍론에 대한 아래 글은 별로 그렇지 못하다. 물론 나나 finching님의 판단이 그렇다는 말이다.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면 역시 왜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지를 내용을 갖고 논의하면 된다. 영어광풍이든 어떤 사회적 문제이든 본말을 호도하지 말고 생산적으로 논쟁하는 풍토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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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finching.net

* 제목은 센세이셔널하지만, 내용은 간단하다. [영어, 내 마음의 식민주의]나, SBS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지적한 영어 광풍의 문제점에는 공감하나, 결국 문제는 영어가 성공과 출세의 도구가 되어온 우리 사회의 시스템을 바꾸는 것이라는 얘기.

[영어, 내 마음의 식민주의]라는 책에 대한 강준만의 비판은, 그것이 '영어 열풍'의 선봉에 서서 다른 사람보다 훨씬 더 영어 공부를 많이하여 그 '문화자본'으로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획득한 영문과 교수들에 의한 것이므로 "어쩐지 허전"하고 설득력이 떨어진다는 거다.

내 생각에, 다른 사람은 몰라도 강준만은 이렇게 말하면 안 된다. 이건, 강준만 자신이 대한민국의 학벌 중시 풍토를 비판할 때에도 똑같이 들었던 얘기다. 서울대 나오고 '가방끈 긴' 사람이 학벌 사회에 대해서 비판하면, '자기는 일류학교 나와서 그 덕 보고 살면서 뭔 위선이냐'라고 하고, 그렇지 못한 사람이 비판하면 '자기가 못해봤으니까 컴플렉스 때문에 저런다'고 비아냥거린다. 강준만이 유명 인사들을 실명비판하고 학벌 중시, 조폭 문화, 문화 권력을 비판할 때, 어떤 사람들은 그가 서울대를 나오지 않았고 따라서 학계의 네트워킹이 딸리는 상황에선 저렇게 '터뜨리는' 방식으로 자신을 알릴 수밖에 없다고 수근거렸던 거다. 그런데 이제와서 그 자신이 칼럼 쓰는 데 의지했던 책의 내용이 아닌 (사실 아래 칼럼의 앞부분은 [영어, 내 마음의 식민주의]에 수록된 내용을 정리한 것으로 보이는데 말이다) 필자의 신원을 들먹이는 것은 조금 '에러'가 아닌 가 싶다.

학벌, 부동산, 대학입시, 세금, 군복무, 취업 등 한국 사회의 골아픈 문제들은 다 이런 식이다. 그 시스템에서 혜택을 보았던 사람은 자신이 누렸던 그 혜택이 아까와서 차마 비판을 못하고, 혜택을 못 보았던 사람들은 혜택을 누릴 형편이 아니었던 '못난' 처지에 대한 컴플렉스가 있다는 얘기를 듣기 싫어서 비판을 못한다. 이렇게 되면 결국 아무도 비판적인 의견을 내놓지 못한다는 얘기다.

영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영어를 잘 못하는 '국수주의자'가 영어 공부 필요없다고 외치면 그것은 국제 감각이 떨어지는 못난 사람의 투정으로 들리고, 영어로 먹고 사는 사람들이 이건 아니라고 하면 너네는 그것 때문에 먹고 살면서 그런 소릴 하다니 가증스럽다고 한다. 그러면 도대체 누가 무슨 얘기를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런 얘기까진 좀 야비하지만, 강준만 교수 자신도 미국에서 영어로 쓴 논문으로 받아온 학위 때문에 대학에 자리를 잡을 수 있었을텐데 말이다.

승자독식주의를 저지하기 위한 방안들을 하나씩 실천해야한다는 강교수의 말은 백번 옳다. 나 역시 영어 광풍이 맘 한번 고쳐먹어 '내 마음의 식민주의'를 떨쳐버린다고 해결되지는 않는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영어 광풍을 조장해온 그 '어쩔 수 없는 시스템'을 어떻게 고쳐야 할지, 그 일이 어디서부터 시작되어야할지가 문제일 것이다. 사실 강교수에 글에는 그런 실천에 대한 요구만 있지 그 방안은 (아주 사소한 것이라도) 역시 제시되어 있지 않다. 결국 그도 그가 비판한 수많은 영문학자들과 마찬가지로 '원칙론'을 강조하는 데서 끝난 것이다.

가령, 강교수의 말대로 영어 광풍의 상당 부분이 대학입시 전쟁에 기인한 것이라면, 예컨대 초등학교 고학년부터 아이들을 입시 모드로 옭아매는 특목고, 그중에서도 외국어고 문제를 건드리지 않을 수 없다. 내 주변의 몇몇 사람들도 그런 생각이고 나 역시 개인적으로는 외국어 고등학교 제도가 이점보다는 폐해가 더 많다고 생각하는 편이다. 딱 대놓고 말하자면 외국어고를 일단 모두 단계적으로 폐교하거나 일반고로 전환하는 것이 옳다고 보지만, 이 역시 아이의 '성적 미달'로 인해 외국어고를 보내지 못한 학부모의 '앙심'으로 들릴 수 있을 듯하다. 물론 그렇다고 외고 다니는 아이들의 학부모가 이런 비판을 제기할 수는 없을테니, 결국 이 문제 또한 아무도 건드리지 못하는 채로 그냥 흘러갈 모양인 게다.

이거 원, 서두가 너무 길었다. 강교수의 글이나 읽어보시라. ^^;;
앗차차, 글은 [한겨레 21]에서 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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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준만의 세상읽기 영어 광풍은 합리적인 행위다
‘내 마음의 식민주의’가 아닌 어쩔 수 없는 시스템에 주목하자

▣ 강준만 전북대 신문방송학과 교수

한국인은 왜 영어 공부를 하는가? 한국 최초의 영어 교육 기관인 동문학교가 서울 재동에 설립된 1883년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120여 년의 긴 세월 동안 한 가지 일관된 이유가 있었다. 그건 바로 영어가 성공과 출세를 위한 필수 도구였다는 사실이다.

120여 년간 성공·출세의 도구

개화기 시절 미국 교육 선교사 헨리 아펜젤러가 지적했듯이, 조선 학생들이 영어를 배우는 목적은 한결같이 ‘벼슬을 얻기 위해서’였다. 그런 의도가 있었건 없었건, 이 시기부터 영어의 위력을 가장 드라마틱하게 보여준 인물은 이승만이었다.

1886년 6월 정식 학교로 개교한 배재학당에 몰려든 학생들이 배재학당에 가장 큰 기대를 걸었던 건 바로 영어 공부였다. 1894년 말 배재학당에 입학한 이승만도 훗날 “내가 배재학당에 가기로 한 것은 영어를 배우려는 큰 야심 때문이었고, 그래서 나는 영어를 열심히 공부했다”고 회고했다.

개화기의 대표적인 영어 천재는 윤치호로 알려져 있지만, 이승만의 영어 능력도 만만치 않았던 것 같다. 그는 영어를 공부한 지 6개월 만에 배재학당의 신입생반을 맡아 영어를 가르칠 정도로 급성장했다. 이승만은 입학한 지 2년 반 남짓한 때인 1897년 7월에 배재학당을 졸업했는데, 이승만은 각국 외교관들까지 참석한 졸업식 행사의 일환으로 ‘조선의 독립’이란 제목으로 영어 연설을 해 명성을 떨쳤다.

이후 이승만은 미국 유학을 떠나, 조지워싱턴대학 학사, 하버드대학 석사, 프린스턴대학 박사학위를 따냈다. 제2차 세계대전 뒤 미국이 세계 최강대국으로 부상한데다 한반도 문제에 소련과 더불어 결정권을 가지면서 이승만의 영어 실력, 미국 학력, 미국 인맥은 그 누구도 넘보기 어려운 이승만의 독보적인 정치적 자산이 되었다.

해방과 함께 남한에 진주한 미군은 영어를 공용어로 사용한다는 포고령 1호를 발표함으로써 영어 능력이 권력의 원천이 될 것임을 예고했다. 해방 정국에서 가장 먼저 나온 신문은 국문 신문이 아닌 영어 신문이었으며, 좌익 계열 신문인 <조선인민보>의 창간호(9월8일)마저 1면에 영어로 ‘연합군 환영’이라는 톱기사를 실었다는 게 그걸 잘 말해주었다.

미군정 치하에선 영어를 할 수 있는 통역관들이 막강한 권력을 휘두르는 ‘통역 정치’가 판을 쳤다. 그런데 영어 통역을 할 수 있을 정도의 실력을 갖춘 이는 거의 모두 일제 때 해외유학을 했거나 국내에서 고등교육을 받은 대지주 집안 출신으로 해방 전엔 친일, 해방 뒤엔 친미 노선을 취한 사람들이었다. 해방 정국의 정치가 왜곡된 주요 이유 중 하나다.

미국 가려면 교회 먼저 가라

한국 군대 창설의 최대 문제 가운데 하나도 영어였다. 미군과의 소통이 가장 중요했기에 미군정은 1945년 12월5일 군사영어학교를 만들었다. 이 군사영어학교 출신이 한국군을 좌지우지하게 된다.

영어 능력은 개인적 벼락 출세를 가능케 한 유일한 길이기도 했다. 일부 통역관들은 일본인이 남기고 간 적산가옥을 차지하고 온갖 특혜를 챙기거나 중개하는 역할을 했다. <조선일보> 1948년 8월12일자에 실린 ‘악질통역: 건국을 좀먹는 악(惡)의 군상’이라는 제목의 기사는 “밤이 되면 이 집 저 집으로 찝차를 몰고 돌아다니며 뚜쟁이 노릇하기에 분주하여 양쪽에서 몇 푼 안 되는 푼돈이나 얻어먹는 추잡한 통역으로부터 호가호세(狐假虎勢)하여 진주군의 권한을 최대한대로 악용하고 사복을 채우는 통역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비리 유형을 소개했다.

그렇게 영어 능력이 우대받는 해방 정국에서 최초의 베스트셀러는 영한사전이었다. 많은 청소년과 젊은이들이 “그 영어사전 속에 밝은 미래가 있는 것처럼 느끼면서 보물처럼 소중하게 간직하곤 했다”는 게 한결같은 증언이다.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이 된 이승만은 영어를 잘하는 사람을 우대했다. 이기붕은 미국 유학생 출신으로 미군정 통역을 하다가 이승만의 비서가 되어 그의 후계자 위치에까지 오르게 되었다. 영국 배를 타던 마도로스였던 신성모도 뛰어난 영어 실력으로 이승만의 사랑을 받아 국방장관에 올랐다.

6·25 전쟁을 겪으면서 한국인은 영어와 미국의 위대함을 온몸으로 느꼈다. 전쟁 중인 1952년에 나온 <샌프란시스코>라는 가요는 “뷔너스 동상을 얼싸안고 소근대는 별 그림자/ 금문교 푸른 물에 찰랑대며 춤춘다/ 불러라 샌프란시스코야 태평양 로맨스야/ 나는야 꿈을 꾸는 나는야 꿈을 꾸는 아메리칸 아가씨”라고 노래했다.

개신교 교회는 그런 이상향의 언어인 영어를 배우고 실제로 그 이상향에 유학을 갈 수 있는 주요 통로였다. 당시 YMCA는 “영어 수학 강습회를 하는 곳이다”라는 말이 널리 퍼질 정도로 영어 강습에 주력했는데, 1950년대 말까지 약 20만 명이 YMCA의 영어 강습회를 수강했다. 그렇게 영어를 익히면서 선교사나 미션계 학교를 배경으로 하면 미국 유학 가기도 쉽고 미국에 가서도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근자에는 미국 가기 위하여 교회를 이용하려는 사람이 많다”는 말까지 나올 정도였다.

이승만만 영어를 잘하는 사람을 우대한 건 아니었다. 세상이 그랬다. 야당 인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이승만 시절은 물론 그 이후에도 장면, 조병옥, 윤보선, 장준하 등의 경우처럼 정치적 거물들은 모두 영어가 능통한 인물이었다. 5·16 쿠데타 당시 육군 참모총장이었던 장도영도 비록 박정희와의 권력투쟁에서 패배했지만 한국군 장성 중에선 영어가 가장 능통한 인물이었다.

경제 개발기의 수출지상주의, 김영삼 정권 들어 외쳐진 세계화는 영어의 현실적 가치를 더욱 크게 만들었다. 1995년 2월23일 정부는 97학년도부터 초등학교 3~6학년생에게도 영어를 주당 2시간씩 정규 교과목으로 가르치기로 했다고 발표했다. 이후 어린이 영어학원이 급증하는 등 1996년 전국 방방곡곡에서 치열한 ‘영어 전쟁’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런 현실에 자극받은 작가 복거일은 1996년 11월 영어를 배우는 데 들어가는 엄청난 비용을 생각하면 그 투자의 효율을 높이는 첩경이 영어의 공용어화라는 주장을 들고 나왔다. 복거일이 1998년 6월 <국제어 시대의 민족어>라는 책을 내면서 영어의 공용어화를 둘러싼 뜨거운 논쟁이 벌어졌지만, 2000년대 들어 한국 사회는 더욱 뜨거운 ‘영어 광풍’에 휩싸이게 되었다. 이는 모두 알고 있는 것이기에, 이제 곧장 오늘의 이야기로 들어가자.

“영어도 한마디 못해? 나가”

2007년 6월23일 밤 SBS의 <그것이 알고 싶다>는 ‘영어 광풍’을 다뤘다. 이 프로그램의 메시지는 전 국민이 다 영어 광풍에 휩쓸릴 필요는 없으며, 영어가 필요한 업종에 종사하는 사람들만 영어를 잘하면 된다는 것으로 압축할 수 있겠다. 맞긴 맞는 말인데, 설득력이 떨어진다. 왜 그런가?

지난 4월 국내 영문학자들이 <영어, 내 마음의 식민주의>라는 책을 냈다. 영어 광풍에 대한 비판적인 시각을 담고 있는 책으로 <그것이 알고 싶다>의 메시지와 통한다. 소중한 작업으로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런데 아쉬움이 있다. 언론은 이 책을 소개하면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영어를 잘하고, 잘 아는 사람들인 영문학자들이 한 이야기라 귀담아들을 가치가 있다고 했지만, 내가 보기엔 바로 그 점이 설득력을 떨어뜨린다.

무슨 말인가? 나도 ‘광풍’이라는 말을 쓰긴 했지만, 나는 그 광풍이 매우 합리적인 행위라고 본다. 광풍을 비판하는 사람들은 영어를 아주 잘하는 사람들이거나 좋은 학벌을 갖춰 이미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들이다.

꼼꼼하게 살펴보자. 한국에선 애초부터 영어 공부의 주목적은 실용성이 아니다. 내부 경쟁용이다. 자녀를 영어권 국가에 유학이나 어학연수를 보낸 부모들은 그 점을 잘 알고 있다. 한국에서 좋은 위치를 차지하기 위한 수단으로 영어를 공부시키는 것이다. 한국 영어 공부 120여 년의 역사가 웅변해주는 것도 그 점이다. 영어 공부는 일종의 권력투쟁이다. 자신은 좋은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영어 광풍에 휩쓸려놓고선 이제 대학을 졸업했다는 이유로 영어 광풍을 비판하는 건 말이 안 될 건 없지만 어째 좀 허전하다.

똑같은 대학, 똑같은 학과를 나와도 영어가 우열을 결정한다. 2006년 3월 <한국일보> 기획취재팀이 서울대 경영학과 86학번 졸업생 51명을 조사한 결과, ‘영어 실력이 우수하다’고 응답한 그룹의 평균 연봉(1억600만원)은 ‘중간 혹은 그 이하’라고 답한 그룹(7천만원)보다 3천만원 이상 많았다. 이는 한국 사회 전반에 통용되는 일반적인 법칙이다.

그래서 계속 영어 광풍에 휩쓸리면서 그 광기를 키우자는 건가? 그게 아니다. 영어 광풍을 비판하는 것으로 그칠 게 아니라 한 걸음 더 나아간 대안을 모색해보자는 뜻이다. 한 네티즌의 반문처럼 <그것이 알고 싶다>의 “PD나 박상원씨도 자녀에게 그런 교육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라는 물음을 의제로 삼아야 한다는 뜻이다. 또 다른 네티즌의 감상문을 보자.

“영어 무지하게 씹어대는 글 몇 개 썼지만, 사실 나도 영어 공부를 하는 넘 중에 하나로서 내 자신이 모순일세그려. 한국 사회가 날 이렇게 만들었지. 제발 대한민국, 나의 조국아. 힘 좀 키워서 미국넘들이 한국어 배울 수밖에 없도록 해다오. 나이 처먹고 영어 공부하려니까 머리가 안 따라간다. 요즘은 두통까지 생겼잖아.”

아니다. 대한민국이 아무리 힘을 키워도 지금과 같은 방식의 내부 경쟁이 살아 있는 한 우리는 또 다른 광풍을 만들어낼 수밖에 없게 돼 있다. 한 네티즌이 날카롭게 지적했듯이, 우리의 현주소는 “당신 영어 잘하니까 해외 쪽으로 일하는 곳에 특별 채용하겠소”가 아니라 “영어도 한마디 못해? 이거 저질이구만. 나가”라는 식이다.

즉, 문제의 핵심은 ‘내 마음의 식민주의’가 아니라는 것이다. ‘내 마음의 식민주의’가 전혀 없다는 건 아니지만, 누구 못지않게 ‘식민주의’를 혐오하고 증오하는 사람일지라도 기존 시스템하에선 그런 식민주의의 선봉이 될 수밖에 없는 현실에 더 주목해보자는 것이다.

영어 광풍은 우리 ‘대학입시 전쟁’의 정확한 반영이다. 한번 딴 간판이 평생의 경쟁력을 결정하는 상황에서 간판 쟁취를 위해 미쳐 돌아가는 건 매우 합리적이다. 영어 광풍은 그런 합리성의 부분일 뿐이다. 대학입시 문제를 끌고 들어가면 문제의 덩치를 더 키우는 게 아니냐는 반론이 가능하겠지만, 그게 진실인 걸 어이하랴.

사실 정작 흥미로운 현상은 우리의 대학입시 광풍을 약화시킬 수 있는 방안에 대한 최소한의 국민적 합의조차 마련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기껏해야 본질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내신 문제를 둘러싸고 대통령까지 나서서 치열한 싸움을 벌이고 있는 수준이다. 왜 그럴까? 당신은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알고 있는가?

우리는 한국 사회와 관련해 ‘쏠림’ ‘소용돌이’ ‘1극 구조’라는 말을 즐겨 쓰지만, 그 원리를 자신의 일상적 삶을 이해하는 데 적용할 정도로 잘 알고 있는 것 같지는 않다. 그래서 지난 2002년 ‘월드컵 현상’과 현재의 ‘영어 광풍’은 정확히 같은 현상이라는 걸 이해하지 못한다. 좋건 나쁘건 우리는 1극으로 쏠려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사회문화적 구조와 습속을 갖고 있는 국민이라는 점을 먼저 이해할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월드컵 현상과 정확히 같은 소용돌이

우리는 자주 그런 특성에 서구적 기준으로 비판을 퍼붓지만, 그게 바로 한국이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경제성장을 이룬 이유이기도 했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그런 인정이 문제 해결의 올바른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동전의 양면 가운데 어느 한 면이 싫다고 그것만 없앨 수는 없는 일이다.

광풍은 한국적 삶의 본질이다. 이른바 ‘다이내믹 코리아’라는 말이 정확히 무슨 뜻인지는 모르겠지만 그걸 좋은 의미로 쓰는 말이라면 바로 그것의 옆얼굴인 셈이다. 광풍을 사랑할 필요는 없지만, 혐오할 필요도 없다. 우리가 혐오해야 할 건 ‘승자 독식주의’다. ‘쏠림’ ‘소용돌이’ ‘1극 구조’를 이용해 취하는 이득은 부당이득이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건 승자 독식주의를 저지하기 위한 방안들을 차분하게 하나씩 실천해나가는 일이다. 특히 개혁이라는 미명을 앞세워 승자 독식주의를 정당화하는 걸 경계해야 한다. 이젠 ‘위에서 아래로’와 ‘큰 것에서 작은 것으로’를 외쳐온 연역적 개혁의 한계를 인정하고 ‘아래에서 위로’와 ‘작은 것에서 큰 것으로’를 실천하는 귀납적 개혁을 병행해야 할 때다. 각종 자발적 시민결사체들이 거대 담론과 정치에만 집중한 나머지 각 분야에서 얼마든지 통제할 수도 있었던 ‘영어 광풍’을 키우는 데 일조했던 건 아닌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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