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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버지니아 총기난사와 언론의 선정주의

작성자

bloom

작성일자

2007-04-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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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loom.pe.kr

조회

2952


미국 버지니아 공과대학(Virginia Polytechnic Institute)에서 총기난사 사고가 났다. 최소 30여명이 죽고, 그만큼의 사람들이 다쳤다. 충격적이다. 더욱이 지금까지 조사에 따르면, 용의자가 한국계 영주권자라니 더 충격적이다. 경위야 어찌되었던 무고한 사람들이 죽고 다친 것은 슬픈 일이다. 더욱이 아직 어린 학생들이 그렇게 무참하게 죽었으니 더 마음이 안 좋다. 여기 미국 언론도 지금 거의 하루 종일 사건관련 보도를 하고 있다. 궁금해서 한국에서는 이 사건을 어떻게 보도하나 싶어 봤더니 가관이다.

이번 사건은 분명 충격적인 사건이지만,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그 본질은 개인적 치정에 얽힌 총기난사사건이다. 물론 그 배경에는 한인 1.5세대의 개인 정체성 문제나 아시아계를 비롯한 미국 내 소수인종의 위상 문제도 작용했겠지만, 직접적인 원인은 치정 문제로 보인다. 그리고 이 용의자가 한국 국적의 영주권자라고 하지만, 어릴 때 미국에 이민을 온 한국계 미국인이나 다름없다. 시민권만 없을 뿐인, 한국계 미국인이나 다름없다. 그런데 한 개인이 저지른 끔찍한 행각 때문에 앞으로 한국과 미국의 관계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둥, 한미 FTA 비준이 어려워질 것이라는 둥, 미국 교민들은 이제 살기 힘들어졌다는 둥, 앞으로 한국인들은 미국 비자 받기 어려워질 것이라는 둥, 말도 안 되는 소리들을, 구체적 근거도 없이 한국 언론에서는 늘어놓고 있다. 한국 언론의 수준을 여실히 보여준다.

물론 나도 이런 충격적인 사건의 용의자가 '한국인’이라는 것이 마음이 편치 않다. 나는 기본적으로 민족이라는 것의 실체를 믿지 않는 편이지만, 그건 내 생각이고 많은 사람들은 ‘한국인’이라는 것이 실제로 있다고 믿으니까 말이다. 과연 나와 이번 사건의 용의자를 같은 '한국인'으로 묶어주는 틀은 무엇일까? 왜 사람들은 자기랑 아무 상관도 없어 보이는 사람의 행동, 그게 이번 같은 끔찍한 짓이든, 박찬호나 박지성이 보여주는 자랑스러운 일이든, 그런 일들을 보며 같은 ‘한국인’으로서 분개하고, 안타까워하고, 기뻐하는 걸까? 내가 제기하고 싶은 질문이지만, 여기서는 접어 두자. 그리고 ‘한국인’이라는 것이 있다고 치자.

하지만 한국인이든 일본인이든, 미국인이든, 한 특정한 개인이 저지른 특정한 사건(그것이 계획적이든 우발적이든 상관없이)을 두고, 왜 그걸 국가 대 국가의 문제, 인종 대 인종의 문제, 민족 대 민족의 문제로 침소봉대해 떠드는 걸까? 그런 꼴을 보고 있자니 그게 더 마음이 불편하다. 이런 논리면 미국 내에서 일어나는 수많은 개인 범죄들은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백인, 흑인, 중남미계(hispanic), 혹은 아사아인들이 저질렀거나 지금도 어디선가 저지르고 있는 끔찍한 살인사건들 말이다. 그들 중 어느 특정한 개인이 이번처럼 끔찍한 학살극(rampage)을 저지른다고 해서 흑인 전체, 백인 전체, 히스패닉 전체가 매도당하고, 사과해야 하나? 웃기지도 않는 짜장이다. 지난 몇 년 동안 미국 내에서 이와 유사한 총기난사사건은 계속 있어 왔다. 그리고 이번 사안의 본질인 총기규제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 한 앞으로 또 일어날 것이다. 제 정신인 언론이라면 이 문제를 제기하고 분석해야 한다.

개별적 사안을 구체적으로 분석해서 문제의 원인을 규명하지 않고, 감정적으로 손쉽게 그 개별사안을 전체로 일반화해 확대해석하는 것. 논리학에서 성급한 일반화, 혹은 범주착오의 오류라고 한다. 물론 이번 사건으로 한동안 미국 내에서 아시아계, 특히 ‘한국인’들에 대한 시선이 곱지 않으리라는 걸 나도 잘 안다. 인종주의는 없어져야 할 이데올로기이지만, 미국 같은 사회에서는 그런 그릇된 이데올로기가 현실적으로 힘을 행사하는 것도 사실이니까. 그게 이데올로기의 힘이다.

그래서 지금 미국에 있는 나도 마음이 편치 않고 조금 걱정도 된다. 하지만 그게 오래 가리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개중에는 당근 선정주의적 보도가 나오겠지만, 지금 미국 언론이 대체로 보여주는 나름의 차분하고 냉철한 보도가 그걸 입증해준다. 여기 언론에서는 한국 언론의 전매특허인 호들갑떠는 선정주의 보도는 일절 나오지 않고 있다. 주로 학교나 경찰의 초기 대처 미숙, 총기규제의 문제 등이 언급되고 있다. 앞으로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이 두 문제가 더 언론의 심층적 분석대상이 될 것이고 책임추궁이 제기될 것이다.

되풀이 말하지만, 내 생각에 이번 사안의 본질은 총기규제의 문제이다. 미국은 마이클 무어의 다큐 영화 [Bowling for Columbine]을 다시 볼 필요가 있다. 쓰라린 과거에서 배우지 않으면 비극은 반복된다는 걸 이번 사건은 다시 예증한다. 총기규제가 없으면 이런 일은 미국사회에서 반드시 다시 일어난다. 그 규모가 어떻든 말이다. 이런 사태의 본질을 호도하기 위해 인종주의나 기타 잡스러운 이슈가 동원될 수도 있다. 꼴통언론이나 정치인이 그걸 선동할 수도 있다. 그리고 그럴 리야 없다고 판단하지만, 미국 대중이 거기에 일시적으로 동조할 수도 있다.

설사 대중이 그런 경향을 보이더라도 언론은 냉철하게 무엇이 사안의 핵심인지를 밝히고 설득력 있는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그게 언론의 존재이유이다. 미국의 양식 있는 언론이나 방송은 그런 모습을 상당히 보여준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런데 언제나 그렇듯이, 한국 언론은 거꾸로다. 지들이 먼저 선정적으로 호들갑을 떤다. 씁쓸하다.

삼가 고인들의 명복을 빈다. 나도 아이들을 키우는 부모로서 마음이 아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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