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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어교육, 어떤 새로운 옷을 입혀야 할 것인가

작성자

이병민[자료실]

작성일자

2006-12-02

이메일

조회

5297


영어교육, 어떤 새로운 옷을 입혀야 할 것인가

이병민
서울대 교수.

1. 들어가는 말

우리 사회에서 영어교육이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한마디로 영어가 학교 교육의 울타리를 벗어났다는 것이다. 학교가 영어에 대해서 해줄 수 있는 부분이 미약해질 대로 미약해져서, 학교 영어교육이 무엇인가를 해주고 있다는 판단을 유보할 때가 되었다. 이런 환경에서 영어가 학생의 능력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고, 대학 입학의 기준이 된다는 것은 희극적인 상황이다.

학교 영어교육의 틀 속에서 다른 교과목들처럼 영어를 다루어서는 우리 사회에 내재하고 있는 영어교육의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영어교육은 학교 내에서 이루어지는 교육이라는 제한된 틀을 벗어나서 좀더 거시적인 관점에서 접근해야 한다. 국가 단위의 접근을 요구하며 더불어 전사회적인 차원에서 접근을 요구한다. 예를 들어 우리 사회에서 영어는 어떤 위치를 갖고 있으며 갖게 될 것인가? 국민들은 영어를 어떻게 인식하고 있으며 어떻게 교육시키고 있는가? 또한 영어로 인한 사회지배계급의 변화(예 영어에 자유로운 집단과 그렇지 못한 집단), 권력과 부의 분배는 어떻게 달라질 것인가? 이런 문제들도 영어교육과 관련하여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러한 문제의식을 가지고 학교 영어교육, 초등학교 조기영어교육, 그리고 영어마을의 문제를 점검해보고자 한다. 먼저 학교 영어교육이 어떠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내재적인 한계는 무엇인지 살펴볼 것이다. 더불어 영어교육을 초등학교 1, 2학년으로 끌어내리는 것의 의미가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그리고 지방자치단체에서 추진하고 있는 영어마을은 어떤 의미가 있는지 다양한 영어 사교육의 틀 속에서 검토하고, 마지막으로 어떤 대안이 가능한가에 대해 논의해보고자 한다.


2. 현 학교 영어교육의 내재적 한계

학교 영어교육은 지난 60년 동안 근본적인 틀에 있어서 거의 달라진 것이 없다. 필자는 2006년 4월 17일자 중앙일보 시론 「영어교육 새 판을 짜자」에서 이 점을 지적했다. 물론 일부 학교에서는 새로운 실험을 하는 곳도 있다. 예를 들어 서울 영훈초등학교나 민족사관고등학교 등은 일종의 영어 몰입교육(immersion education)을 실시하고 있다. 또한 일부 외국어고등학교의 국제반도 어떤 측면에서는 영어 몰입교육을 실시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몰입교육이란 전체 교과목이나 또는 적어도 50% 이상의 교과목을 해당 외국어로 교육하는 방식이다.

세상이 많이 변화했음에도 불구하고 학교 영어교육은 거의 제자리걸음을 하고 있다. 이것이 문제의 본질이다. 학교는 일주일에 3, 4시간 영어 교과 시간을 배정하고 제한된 틀 속에서 영어를 가르친다. 그 형태는 반세기 전이나 지금이나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지속적으로 영어교육과정이 개편되었고, 형식적으로 최근에 이르기까지 여덟 차례에 걸쳐 영어교육과정이 개편되었다. 개편된 교육내용에 따라서 주로 교과서 개편작업이 이루어졌으며, 어떤 면에서 보면 교육과정의 개편은 단지 교과서의 개편과 일치한다고 볼 수 있다.

1997년 이후 초등교육과정에 영어교육이 도입되었지만 학교 영어교육의 근본 틀에 변화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현재 학교 영어교육의 현황은 이렇다. 초․중고등학교 영어교육을 통해서 제공되는 전체 교육시간은 약 730시간 정도이다. 이병민 「EFL 영어학습 환경에서 학습시간의 의미」, ꡔ외국어교육ꡕ 10권 2호(2003) 107 ~29면.

무엇보다 노출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 심지어 대학에 입학하기 전까지 학생들이 학교 영어교육을 통해서 음성영어에 노출되는 시간은 평균 2백 시간 미만이다. Kim and Margolis “Korean student exposure to English speaking and listening: Instruction, multimedia, travel experience, and motivation,” The Korea TESOL Journal 3권 1호(2000) 29~54면.

한 언어를 어느정도 유창하게 구사하기 위해서는 적어도 2천 시간에서 3천 시간 정도의 집중적인 노출이 필요하지만 학교 현실은 전혀 그렇지 못하다. 그것도 비효율적으로 일주일에 조금씩 시간을 배분해서 물방울을 똑똑 떨어뜨리는 방식이다. 언어교육에서 분산방식과 집중방식의 효과에 대한 논의를 보면 집중방식이 분산방식보다 일반적으로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그러한 조건에서 영어라는 나무가 뿌리를 내리고 꽃을 피우기는 거의 불가능하다.
근본적으로 학교 영어교육은 영어를 외국어로 접근하고 있다. 이 글에서는 전통적인 방식의 ‘외국어로서 영어’와 ‘제2 언어로서 영어’ 또는 ‘추가적인 언어로서 영어’를 구별하고자 한다. 여기서 말하는 ‘제2 언어’나 ‘추가적인 언어’라는 것은 자신이 갖고 있는 주된 언어 이외에 의사소통에 필요한 언어를 가리킨다.

외국어로서 영어는 학교에서 배우는 여러 교과목 중 하나에 불과하다. 그 또한 지난 60년 동안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그러한 체제하에서 영어는 영어 수업 내에서만 다루어진다. 또한 비슷한 교육과정을 통해서 전국이 동일한 기준에 의해서 교육된다. 마치 수학에서 초등 3학년이 다룰 수 있는 내용과 수준이 있고, 대학에서 다루어야 할 내용과 기준이 있는 것처럼 영어도 그러한 기준에서 교육과정을 설정하고 가르친다.

그러나 학생들은 해외경험이나 사교육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서 영어에 노출된 결과 영어능력이 그야말로 천차만별이다. 어느 교과목보다 개인별 수준차가 심한 과목이 영어과목이다. 그렇지만 현실은 미국에서 1, 2년 살다온 학생들도 그가 중학교 3학년이라는 이유로 중학교 3학년의 내용을 배워야 한다. 사교육을 통해서 영어를 추가적인 언어로 접근하고 배운 학생과 외국어로 배운 학생이 한 교실에서 같은 내용으로 공부하는 것이 현실이다.

따라서 실질적으로 학생들 개개인별로 벌어지고 있는 능력의 차이를 담아낼 수 있는 교육과정을 구상하기는 힘들다. 교육부가 통제하고 설계하는 교육과정을 각 교육지방자치단체나 학교 단위로 이양하지 않는 한 현재의 교육과정 체제 내에서 그 간극을 메우는 것은 한계가 있다. 수준별 교육이니 학생 중심의 교육이니 하는 것은 빛 좋은 개살구에 불과하다. 실질적으로 학교 영어수업 시간을 각 학년에 1시간 늘리는 것도 여러 교과목들의 이해관계가 얽혀서 전혀 건드릴 수 없는 상황이다. 심지어 교육부의 어떤 관리는 이 부분에 대해서 대통령 외에는 수업 시수를 늘리는 문제에 대해서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고 할 정도로 현실적인 벽이 크다고 지적했다. 따라서 현행 영어교육 시수를 그대로 유지한 채 그 속에서 약간의 방법론을 변화시키고, 원어민을 투입하고, 영어교사가 영어로 수업한다고 해서 학교 영어교육이 학부모들의 기대를 만족시키고 사교육을 대체할 수 있을 것으로 보지 않는다. 그것이 학교 영어교육이 맞고 있는 현실이며 구조적 한계이다.

3. 영어에 대한 인식의 변화와 그 원인

그러면 무엇이 이런 결과를 초래했는가? 현실적으로 우리는 단일어 배경을 가지고 있으며, 내부적으로 언어적 갈등이 전혀 없는 지구상에 몇 안되는 혜택받은 국가 가운데 하나이다. 우리는 태어나 가족과 친지들에게 배운 모국어만 가지고 평생을 살아가도 그다지 어려움이 없는 언어환경을 가지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반 국민들은 영어가 일상생활에서 꼭 필요한 언어라고 믿고서 그것을 자유자재로 구사하고 싶어한다. 그들이 살아가는 현실의 모습과는 달리 관념적으로 그렇게 믿고 있다.

그들이 이상화하고 있는 영어는 단순한 외국어로서 영어가 아니라 제2언어나 추가적인 언어로 인식된다. 영어공용어 논란에서 드러난 것처럼 일반인들이 원하는 영어교육은 학교에서 수업시간에 제한적으로 배우는 영어교육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대학 가기 위해서 공부하고 떠듬떠듬 책을 읽을 수 있으면 만족하는 수준이 아니다. 그들은 영어라는 언어를 통해서 자유로운 의사소통을 원한다. 유창하고 자유롭게 원어민처럼 영어를 구사하고 싶어하는 것이다. 이병민 「영어의 마법에 걸린 사회」(서울경제신문 2006년 6월 8일자 시론) 및 「교육시론: 영어교육을 바라보는 새로운 틀이 필요하다」, ꡔ교육정책포럼ꡕ 132호(2006) 3~6면.

영어에 대한 인식이 이처럼 달라지고 조금은 왜곡된 이데올로기를 가지게 된 데에는 여러가지 요인이 영향을 미쳤다. 무엇보다 국가가 그동안 음으로 양으로 기여한 바가 크다. 특히 김영삼 정부 시절 핵심적인 정책이론이었던 ‘세계화’ 논리는 영어교육과 직결되었으며, 초등학교 영어교육이라는 정책적 산출물을 낳게 되었다. 조기영어교육이라는 미명 아래 도입된 초등학교 영어교육은 결국 영어가 우리 아이들에게 필수적인 언어라는 인식을 모든 국민들에게 심어주었다. 또한 김대중 정부 시절 ‘정보화’라는 화두가 영어와 손을 마주잡으면서, 정보화를 위해서 그리고 정보화 세상에 살아남기 위해서 영어는 필수 언어라는 인식이 국민들 사이에 자리잡았다.

언론들도 영어교육에 관해서 결코 책임을 벗어날 수는 없다. 지난 10여년 동안 언론은 거의 매일 영어교육 관련 기사를 쏟아내었다. 영어교육에 관한 한 보수나 진보언론에서 내세우는 주장이 서로 다르지 않았다. 즉 영어는 배워야 하는 것이며, 누구나 잘 해야 하는 것이었다. 여기에 기업, 정부, 학자들도 모두 통일된 목소리를 내었다. 결과적으로 쉽게 배울 수도 없고, 쉽게 상당한 수준의 영어능력을 보여줄 수도 없으며, 우리의 언어사용 환경이나 영어에 대한 수요나 필요성을 고려하면 상당한 수준의 영어능력은 일부 소수의 사람들에게 필요한 것임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그런 수준의 영어가 필요하다고 믿게 되었다. 조금은 불편하다 해도 별 무리 없이 나름대로 문제를 해결해나가면서 생활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영어의 필요성을 지나치게 침소봉대한 결과이다.

한편 중간단위(Meso­Level) 차원에서 이루어진 국부적인 영어정책들도 우리가 영어에 대해서 새로운 인식을 갖게 하는 데 크게 영향을 미쳤다. 한 국가에서 외국어로서 영어에 대해서 취하고 있는 정책적 접근을 여러가지 차원에서 살펴볼 수 있다. 개인이나 국가 차원에서 영어정책이 있다면, 그 이외 개별 기관이나 기업 또는 학교 단위에서 취하는 정책도 있을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이런 국부적인 차원의 영어정책들이 해당 구성원들에게 더욱 구체적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다. 이런 차원의 영어정책을 개인이나 국가 단위의 정책과 비교해서 중간단위 차원의 정책이라고 한다.

예를 들어 한국학술진흥재단에서 주도했던 학문의 경쟁력 강화와 국제화의 핵심에는 항상 영어가 자리잡고 있었다. 영어논문으로 상징되는 학문의 국제적 경쟁력 강화는 대학사회에 중요한 영향력을 행사했으며, 이로 인해서 전공에 관계없이 영어로 진행되는 국제학술대회나 영어로 발표되는 논문을 조장하는 결과를 초래했다. 어느 대학이 강좌의 50% 이상을 영어로 개설하겠다고 발표한 것이나 대학 내에서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하겠다는 발상, 교수를 선발하는 데 전공에 관계없이 영어능력을 평가하는 것 등은 모두 이런 차원에 벌어지고 있는 영어 관련 정책들이다. 필자가 최근에 조사한 내용에 의하면 서울대학교를 비롯해서 많은 대학들이 더 많은 영어 논문을 발표할 것을 강조하고 있지만 현재 상황은 영어를 많이 사용하고 있는 서부 유럽 대학들과 비교해도 크게 차이가 없다.

예를 들어 서울대학교 자연대학이나 공과대학의 일부 학과는 2000년 이후 거의 모든 석․박사과정 논문들이 영어로 제출되고 있다. 그러나 다른 인문사회 전공의 경우 영어 논문 비율은 그렇게 높지 않다. 그러나 이러한 학문 분야별 영어 논문 비율의 차이는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는 유럽 대학들과 비교해도 거의 차이가 없다. 즉 우리 대학에서 영어 논문과 관련하여 각 학문 분야별로 나타나고 있는 차별성은 우리 대학이 매우 적절히 잘 적응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또다른 한 사례는 비록 매우 개인적인 경험이기는 하지만 우연히 어느 자연대학 교수로부터 잘못 배달된 전자우편에서도 찾을 수 있다. 그 메일은 실은 한국인 조교에게 전달되어야 하는 것인데, 필자에게 잘못 배달된 것이었다. 흥미롭게도 내용은 영어로 작성되어 있었고, 내용도 일상적인 학교 강의와 관련하여 조교에게 부탁하는 내용이었다. 잘못 배달된 내용을 알고 그 교수에게 영어로 답장을 보냈는데, 그 교수는 역시나 영어로 나에게 답장을 보내왔다. 한가지 사례에 불과하지만 실제로 대학에서 영어는 영어교육과나 영어영문학과보다 오히려 자연대학이나 공과대학에서 더 폭넓게 사용되고 있다.

또한 국가고시를 비롯한 거의 모든 인력 선발시험에 영어를 도입하는 것이나, 일부 대기업에서 영어를 공용어로 채택하고, 임원회의에서 영어로 회의를 진행하는 현실, 승진심사에서 영어능력이 중요한 평가기준으로 인정되는 현실은 한마디로 영어가 우리 사회 곳곳에서 현실적인 힘으로 작용하고 있으며, 삶의 여러 관문을 통과하는 데 수문장(gatekeeper) 역할을 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이러한 여러가지 요인들이 결국 통합적으로 상승작용을 일으켜, 일반 국민들은 영어라는 언어를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다. 결국 영어를 우상화하게 되고, 영어교육에 대해 과거와는 전혀 다른 기대와 목표를 갖게 된 것이다. 특히 학부모들은 자식들의 영어교육에 대해서 남다른 기대를 갖고 있다. 즉 현재 우리나라 학부모들은 자식들이 영어의 굴레에서 벗어나기를 원하며, 영어로 자유로운 의사소통이 가능하게 하는 것이 목표다. 적어도 그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믿는다. 2004년도 필자의 조사결과에 의하면 일부 학부모의 경우 학교 영어교육의 목표를 여러가지로 설정하고 있다. 그 중에서 주로 언급된 것을 보면 “원어민들과 자유로운 대화가 가능한 수준” “영어권 대학에서 공부할 때 기초가 될 수 있는 수준” “일상회화가 가능한 수준” “자유롭게 책을 읽을 수 있는 수준” 등으로 매우 다양하며 목표 또한 매우 높다. 만약에 학교에서 이러한 목표를 달성해줄 수 없다면 본인이 어떤 희생을 감수해서라도 이루고 말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고 있다.


4. 초등학교 조기영어교육이 대안이 될 수 있는가?

현실과 이상 또는 현실과 목표의 이러한 구조적 모순 속에서 초등학교 영어교육이나 경기영어마을과 같은 대안들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영어교육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초등 영어교육이 근본적인 대안이 될 수 있는가? 결론부터 말하면 초등학교 조기영어교육으로 근본적인 변화를 기대하기는 어렵다. 우리 조건에서 영어교육을 언제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하는 잘못된 문제제기에서 초등 영어교육은 도입되었지만 그것은 대표적인 정책적 오류에 불과하다. 오히려 학교 영어교육에서 고려되었어야 할 사항은 영어 노출에 필요한 전체 교육시간과 집중도(intensity)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나이에 초점을 맞추어 초등 영어교육에 매달렸던 것은 잘못이다.

영어교육 실패의 가장 주요한 요인으로 사람들은 몇가지를 주목했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조기영어교육이었다. 영어교육에 대한 가장 확실한 대안으로 조기영어교육에 집착한 것이다. 그러나 조기영어교육의 이론적 토대가 되었던 ‘결정적 시기 가설’(critical period hypothesis 또는 the earlier, the better)을 우리나라 현실에 적용한 것은 일반화의 오류였으며, 결국 초등학교 영어교육이 실질적으로 영어교육에 기여한 부분은 거의 없다. 필자는 여러 경로를 통해서 조기영어교육의 허실에 대해서 지적한 바가 있다. 특히 가장 논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점은 ‘결정적 시기 가설’이나 조기영어교육의 효과가 어떤 조건에서 나타나는가 하는 점이다.

조기교육의 효과는 영어를 매일 상용하는 국가에 언제 이민을 갔느냐 하는 것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영어를 매일 사용하고 매일 노출되지 않는 환경에서 결정적 시기 가설이나 조기교육의 효과를 검증한 논문은 한편도 없으며, 따라서 우리 환경에서 조기교육의 효과 운운하는 것은 논리적 모순이다. 같은 논리에서 초등학교 영어교육을 초등학교 1, 2학년으로 낮추겠다는 생각은 조기영어교육의 효과라는 가설에 의지하고 있지만 우리의 경우 그러한 가설이 성립하기 위한 영어환경이 아니다. 따라서 일주일에 40분 정도 주어지는 영어교육을 통해서 조기교육의 효과나 영어능력의 실질적인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

심지어 최근에 교육부는 사회나 일반 학부모들의 요구에 부응하기 위해서 초등학교 1학년부터 영어교육을 실시하겠다는 방안을 제시했다. 이미 사교육기관을 통해서 수십가지 형태의 조기영어교육 실험이 이루어지고 있는 마당에 대안이라고 제시한 것이 영어교육을 초등학교 1, 2학년으로 끌어내리겠다는 발상이다. 그러나 대안이라고 하는 것 자체가 대안이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그것으로 인해서 현재 사교육이 줄어들거나 학교 영어교육이 달라질 것으로 보지 않는다.

초등학교 조기영어교육이 기대만큼의 효과가 없다는 논리는 다음과 같다. 첫째, 교육과정을 설계하는 데 주요하게 고려되어야 할 요소들이 몇가지 있는데,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영어 노출에 필요한 교육시간이다. 그와 함께 교사가 영어를 사용할 수 있는가, 그리고 교육시간을 어떻게 배분할 것인가 하는 질적인 측면도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초등학교 1, 2학년에 영어를 도입한다고 해서 달라질 것은 거의 없다. 먼저 교육시간을 보면 2년에 걸쳐 약 30시간 증가하는 효과가 있다. 그리고 영어를 조기에 가르친다는 변수도 있다. 그러나 영어를 외국어로 접하고 교실 이외의 공간에서 영어에 노출되지 않은 환경에서 조기영어교육의 효과를 논한다는 것은 논리적으로나 과학적으로 타당한 근거를 찾을 수 없다. 또한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그 어떤 실증적 증거도 갖고 있지 못하다.

또한 교사는 내국인 교사일 것이며, 그 교사가 수업시간에 제대로 영어를 구사할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다. 영어 수업은 일주일에 어느 하루를 택해서 40분 동안 제공될 것이다. 그렇다면 초등학교 1, 2학년 시기 동안 약 30시간의 영어 노출과 조기교육이라는 요소가 합쳐져서 어떤 변화를 가져올 것인가? 그것은 소위 하나마나한 행위이다. 30시간이면 하루 8시간씩 진행하는 영어마을과 같은 프로그램에서 4일이면 충분한 시간이다. 4일이면 되는 시간을 2년에 걸쳐 조금씩 물방울을 떨어뜨려 주었을 때 어떤 효과가 나타나는지는 이미 수많은 연구결과들이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병민 「조기영어교육, 효과가 있는가」, ꡔ녹색평론ꡕ 89호(2006) 70~82면 및 「우리나라에서 조기영어교육이 갖는 효과와 의미」, ꡔ외국어교육연구ꡕ 5권(2002) 13~38면. Abutalebi, Cappa, Perani, “The bilingual brain as revealed by functional neuroimaging,” Bilingualism: Language and Cognition 4(2001) 170~90면.

문제는 그것을 통해서 나타날 부작용이다. 학부모들은 어떻게 반응할 것이며, 사회는 또 어떻게 반응할 것이고, 사교육 기관들은 또 어떤 행동을 취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변화에 느린 거대 공룡처럼 되어버린 교육부가 전국 단위의 교육과정 개편을 통해서 민간에서 이루어지는 여러가지 영어교육 대안들보다 앞서서 어떤 변화를 이끌어 나갈 것이라고 믿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결국 영어교육은 사교육을 통해서 초등학교 이하, 즉 유치원 수준으로 확산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며 (물론 일부는 이미 유치원으로 내려가 있다), 학부모들의 경제적 능력과 관심에 따라 영어능력의 편차가 더욱 심화되는 결과를 낳게 될 것이다.

5. 학교 밖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영어교육 실험들

학교 영어교육이 초등학교 조기영어교육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자위하고 있는 사이에 사교육에서는 다양한 영어교육 실험들이 진행되었다. 속칭 ‘기러기 아빠’의 출현은 사교육에서 진행되고 있는 영어교육 실험의 극단적인 사례에 불과하다. 영어를 구사할 줄 아는 필리핀 파출부를 고용하는 것에서부터 영어 원어민들이 가르치는 ‘취학 전 어린이 영어학 원’, 유아교육 전공 학자들이나 그와 관련된 분야에 종사하는 사람들은 취학 전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각종 원어민 영어학원에 대해서 ‘영어유치원’이라는 명칭을 사용하는 것에 대해서 반대한다. 실제 이들 유아대상 영어학원의 교육내용을 보면 영어가 중심이지, 어린이들의 정서발달이나 유아교육을 목표로 교육내용이 구성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그들의 지적이 적절해 보인다. 그래서 여기서는 ‘영어유치원’이라는 용어 대신에 ‘취학 전 어린이 영어학원’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원정 출산을 통한 미국 시민권 취득 및 외국인 학교 입학, 영어권 국가로의 조기유학, 여름방학을 이용한 미국, 캐나다, 뉴질랜드, 필리핀 등에서의 단기 영어연수, 예를 들어 여름방학 동안 이루어지는 영어체험 활동이나 다양한 영어교육 내용을 보면 그 실체를 이해할 수 있다. 국외에서 벌어지는 것들은 8주간 이루어지는 영어체험 캠프나 현지 ESL 교육기간이나 학교에서 벌어지는 영어 학습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국가는 미국을 비롯해서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등 매우 다양하며, 최근에는 비용 문제로 필리핀이 새로운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기도 하다. 필자는 지난 7월에 필리핀 현지를 방문한 경험이 있는데, 공항에서 수십명의 초등학교 어린이들이 단체 어학연수를 위해서 필리핀에 입국하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또한 현지에서 영어교육 시설을 운영하고 있는 사람의 말을 빌리면 여름 기간에만 수만여명의 학생들이 필리핀 전역에서 영어 어학연수를 받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한편 국내에서는 사설 학원은 물론 대학들까지 이러한 대열에 편승해서 각종 어학캠프를 개설하고 있다. 필자가 살고 있는 지역에만 해도 2006년 여름에만 연세대학교, 명지대학교, 홍익대학교, 상명대학교 등이 초․중고등학생을 대상으로 이러한 합숙형 또는 몰입형 영어캠프 프로그램을 개설했다.

국내에 존재하는 각종 영어 사교육 기관, 일부 대학에서 제공하고 있는 영어캠프 등은 수많은 사례의 일부에 불과하다. 방학을 이용하여 각 대학에서 제공하고 있는 영어캠프에서부터 사교육 기관에서 제공하고 있는 영어캠프까지 수많은 기관에서 영어캠프를 실시하고 있다. 문화일보 2006년 7월 18일자 보도에 의하면 2006년 여름방학에만 영어캠프 참가자는 약 10여만명을 헤아리며, 사교육 기관에서 이루어지는 영어캠프를 포함하면 수십만명의 초중학교 학생들이 각종 영어캠프에 참가하고 있다고 한다.

여기에 더해서 지방자치단체들이 추진하고 있는 영어마을은 또다른 형태의 영어교육 모형이다. ‘영어마을’ 개념은 실은 1990년대 말 당시 충청북도 도지사로 있던 이원종이 처음으로 도 차원에서 추진하고자 했던 영어교육 모형이다. 이후에 손학규 전 경기도 도지사가 경기도에 영어마을 개념을 본격적으로 도입했다. 그것이 사회의 주목을 받으면서 새로운 성공적인 영어교육 모형으로 인식되고 블루오션으로 인식되기 시작했다. 실제로 서울시를 비롯해서 여러 지방자치단체들이 앞을 다투어 영어마을을 추진하고 있다. 영어마을은 영어캠프나 다른 영어교육 기관과는 달리 실제 영어권 국가의 생활공간을 제공함으로써 그 속에서 영어를 배우고 활용하는 개념으로 이해할 수 있다. 현재 전국적으로 지방자치단체에서 추진하고 있는 영어마을은 40여개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특히 최근에 논란이 되었던 경기도 영어마을은 최초로 시도된 거주 형태의 영어교육 모형이다. 이러한 영어마을은 학교 교실 공간에서 원어민 교사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영어교육과는 여러가지 면에서 차이가 있다. 가장 두드러진 차이점은 교실을 비롯한 전체 생활공간에서 영어를 사용함으로써 자연스럽게 영어에 노출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준다는 데 있다. 여러가지 면에서 소위 영어몰입교육 환경과 비슷하다. 학교에는 한두명의 원어민 교사가 있지만 영어마을에는 다수의 원어민 교사가 있고, 영어수업뿐만 아니라 일상생활 공간에서 원어민 교사들과 접촉이 일어난다. 따라서 학교와는 달리 학생들은 일상생활에서 영어를 사용해야 하고, 반드시 영어를 사용해야지만 의사소통이 가능하다. 달리 얘기하면 생존이 가능하다. 결국 영어가 주요 의사소통 수단이 되고 학생들은 그러한 현실에 적응하게 되며 영어로 말문을 열기 시작한다. 특히 학교 영어수업과 달리 동료 학생들끼리 영어를 사용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새로운 표현을 시도해보려고 하는 행동의 변화가 일어난다. 이병민 「경기영어마을 5박6일 프로그램 평가보고서: 경기영어마을 5박6일 교육과정의 이론적 재검증」(2006) 1~128면 참조.

5박6일이라는 단기간의 교육을 통해서 나타나는 이러한 소극적인 효과에도 불구하고, 영어마을은 여러가지 논란에 휩싸였다. 특히 영어마을이 과연 영어 사교육을 대체하고 해외로 빠져 나가는 영어교육 수요를 대체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다. 물론 이러한 논란은 초점이 빗나간 점이 있다. 영어마을은 영어교육의 궁극적인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주장보다는 보완적 역할로 규정짓는 것이 바람직하다. 즉 5박6일이나 2주 또는 30일 정도 영어마을이라는 공간에서 학생들이 영어를 체험한다고 해서 조기유학 수요나 사교육 수요를 대체할 수 있다는 발상은 현실 영어교육의 문제를 너무나 안이하게 바라보고 있다는 반증이다.

그렇다고 해서 학교 영어교육이 영어마을 프로그램보다 훨씬 효율적으로 이루어질 수 있는가 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그리고 교육인적부나 전교조 또는 일부 언론에서 주장하는 것처럼 영어마을에 투자한 비용을 학교 영어교육에 투자하면 영어교육의 효과를 향상시킬 수 있다는 주장도 그다지 설득력이 없어 보인다. 효율성이나 효과의 측면에서 본다면 학교 영어교육보다 영어마을이 소기의 목적을 더욱 효과적으로 단기간에 충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영어마을을 바라보는 시각은 오히려 이렇게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그동안 이마저도 공공기관에서 제대로 다루어주지 못한 영어교육을 더욱 새로운 방식으로 접근한 것이라고. 그리고 근본적인 대안은 아닐지 모르지만 학교 영어교육을 도와주는 보완적 기능과 효과는 기대할 수 있으며, 오히려 축소하는 것보다 전국의 영어마을을 통합하고, 체계적으로 운영하여 프로그램의 질을 향상시킬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바람직한 방향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 또한 일반 국민의 기대나 민간의 영어교육 실험에 비추어본다면 근본적인 대안이 되지 못하기는 매한가지이다.

6. 마무리하면서

초등학교 1, 2학년으로 영어교육을 끌어내리겠다는 발상이나 경기영어마을과 같은 대안은 미시적이고 파편적인 접근에 불과하다. 그와같은 대안들이 우리나라 영어교육의 문제를 해결해주는 근본적인 처방이 될 수 있다고 보지는 않는다. 지금 우리 어린이들은 영어를 배우기 위해서 많게는 몇 적게는 몇달 동안 영어권 국가를 전전하고 수많은 영어 사교육 기관의 문을 두드리고 있다. 현재 그들은 학교 영어교육의 틀 밖에서 영어를 습득하고 있으며, 이러한 현실에서 초등학교 조기영어교육이나 영어마을을 둘러싼 논란은 핵심에서 벗어나 있다.

영어 문제를 총체적으로 바라보지 못하고 파편적으로 접근하고 있기 때문에, 앞으로도 영어교육의 문제는 미완의 숙제로 남게 될 가능성이 크다. 그리고 교육인적부나 전교조 등은 학교가 영어교육의 주체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지만 그럴 가능성은 적어 보인다. 그 속에서 ‘초등학교 1, 2학년 영어교육 도입’과 같은 정책들은 오히려 영어교육 이데올로기를 부추기는 단기적 처방으로 끝날 것이며, 결국 영어교육은 각 개인이 책임져야 하는 대상으로 남게 될 것이다. 영어를 정복(?)하기 위해서 많은 돈과 시간을 들여서 영어공간(영어권 국가가 되었든 원어민들이 상주하는 영어사설학원이나 영어캠프가 되었든)을 지속적으로 두드릴 것이며, 그러한 공간은 우리가 발붙이고 살고 있는 자연스러운 공간이 아니기 때문에 그만큼 시간과 경제적 희생을 개인에게 요구하게 될 것이다. 또한 개인의 경제력을 기반으로 영어에 충분히 노출된 집단과 그렇지 못한 집단이 한 울타리에 공존하게 될 것이며, 앞으로 영어가 준비된 소위 연어족 일부 언론들은 중등이나 고등교육을 영어권 국가를 비롯해서 해외에서 받고 국내에 귀국해서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을 소위 ‘연어족’이라고 표현하고 있다.

이러한 영어교육의 문제를 좀더 현실적으로 바라보고 접근하기 위해서 몇가지 제언을 해보면 다음과 같다. 우선 영어교육에 대해서 좀더 거시적 관점에서 체계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다. 첫번째 작업으로 영어에 덧씌워져 있는 이데올로기나 우상화를 걷어내는 것이 필요하다. 수요와 필요에 따른 목적지향적인 영어교육을 위해서 우리 사회 영어 현실을 객관적으로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 필요하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 영어가 어떤 위치를 차지하고 있고, 영어가 어떻게 수용되어 활용되고 있으며, 분야나 직종에 따라서 어떤 차이가 있는지 조사할 필요가 있다. 예상 수요에 대한 실체를 모르는 상태에서 영어교육의 목표를 설정하고 필요성에 대한 과장된 이데올로기를 심어주는 것은 사회적으로 엄청난 손실을 발생시킬 뿐이다.

더불어 학교 영어교육의 효과나 도달 가능한 수준에 대해서도 객관적으로 자료를 수집할 필요가 있다. 이를 바탕으로 현실에 부합하는 영어교육과정을 설계해야 한다. 특히 말하기․듣기 수준에 대해서 더욱 구체적인 자료를 가지고 있을 필요가 있다. 영어 말하기․듣기 능력은 읽기․쓰기 능력과는 여러가지 면에서 다른 차원의 언어 능력이다. 그러한 음성영어 능력은 설령 우리나라에서 조기교육을 실시한다고 해도 단기간에 상당한 수준에 도달할 수 없다. 또한 경험적으로 보아도 교육과정에서 듣기․말하기 목표는 너무 높게 설정되어 있으며, 학교 영어교육과정을 통해서 이런 부문에서 어느정도 성취가 가능한지 객관적인 자료를 갖고 있지 못하다. 결과적으로 쉽게 도달 가능하지 않은 꿈을 학부모들이나 사회에 심어주고 있는 상황이다.

또한 영어교육을 초․중고등학교 수준에서만 다루어져야 한다는 생각을 버릴 필요가 있다. 실제 영어교육은 고등학교 수준에서 어느정도 완성하고 대학에서는 좀더 학문적인 접근을 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 대학의 영어 관련 학과 교육과정을 보면 비영어권 대학의 영어 관련 학과 전공과정과 많은 차이가 있다. 이병민 「우리나라 및 비영어권 대학 영어 관련 학과 학부 교과과정 비교 연구」, ꡔ영어교육ꡕ 58권 2호(2002) 219~48면. 일부 교수들은 대학이 영어학원이 아니라고 주장한다. 대학이 시중의 영어학원과 교육내용이나 목표가 같을 수는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현재 대학이 영어교육과 관련해서 제 역할을 해주고 있다고 보이지도 않는다. 어떻게 보면 중요한 한 부분을 방기하고 있는 상황이다.

다른 나라 언어를 배우는 과정은 매우 복잡하며 단기간에 이루어질 수 없다. 우리 현실에서 초․중고등학교 과정을 통해서 영어의 모든 분야에서 일정 수준 이상의 언어 능력을 갖춘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 면에서 대학이 해줄 부분이 있다. 또한 대학은 학생들에게 높은 수준의 영어 문식력을 원하지만 사회에서 요구하는 것이나 초중등 교육과정은 듣기, 말하기가 중심이다. 그 어느 것도 목표로 하는 수준에 따라서 많은 시간을 요하며 어떻게 보면 평생의 과업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대학도 영어교육과 관련해서 일정 부분 책임을 져야 한다. 대학은 비교적 초․중고등학교에 비해서 나은 교육여건과 준비된 인적 자원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좀더 나은 영어교육을 시킬 수 있다. 물론 전공에 따라서 영어교육의 내용과 목표를 차별화할 필요가 있지만 교양교육 차원에서도 영어교육을 더욱 실질적으로 강화할 필요가 있다.

마지막으로 앞에서도 간단하게 언급이 되었지만 영어에서 나타나고 있는 개인별 격차의 문제이다. 현 교육적 틀 속에서 이런 현실을 수용하기는 어렵다. 결국 전국 단위의 통일된 학년별 영어교육과정을 수립하는 것은 한계가 있어 보인다. 소위 ‘중학교 1학년 영어’ 또는 ‘고등학교 1학년 영어’와 같은 학년을 기준으로 한 교육과정을 구성하지 말고, 별도의 기준으로 교육과정을 구성하고 학생들의 수준에 따라서 학교나 교육청 단위에서 선택적으로 교재를 선택하여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 이 과정에서 교육과정을 결정하는 데 해당 학교, 교사, 학생 및 학부모의 의사가 적극적으로 반영될 필요가 있다.
더불어 절대적 기준에 의해서 학생들의 영어능력과 학업능력을 연결시키는 것은 재고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최근 각 대학에서 개설하고 있는 국제학부 프로그램은 우리나라에서 정상적인 영어교육을 받은 학생들에게는 기회가 제한되는 모순이 있다. 대부분 모든 수업을 영어로 실시하고 입학의 가장 중요한 잣대가 학생의 영어 구사력이기 때문에, 이런 조건을 갖춘 학생들은 외국에서 오랜 기간 살다 온 학생들이거나 국내에서 사교육을 통해서 특수한 영어교육을 받은 학생들이다.

또한 이 학생들은 전반적인 학업 능력이나 영어 문식력보다는 대개 구어 영어에서 높은 능숙도를 보여준다. 어떻게 보면 국제학부 프로그램은 이런 학생들에게 대학 입학의 특혜를 주는 프로그램이라고 할 수 있다. 국제학부가 제대로 된 교육 프로그램으로 정착하기 위해서는 정상적으로 학교 영어교육을 이수한 학생들을 대상으로 집중적인 교육 훈련을 통해서 국제 전문가로 길러내는 것이 올바른 방향일 것이다.

또한 초․중고등학교 과정에서는 학교 단위의 개별 영어시험을 폐지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대안으로 전국 단위의 주기적 영어능력 평가를 통해서 학생들의 영어능력을 평가하고, 대학에서는 정상적인 학교 교육을 통해서 도달 가능한 일정 수준만을 요구해야 한다. 이 기준을 통과한 학생이면 별도의 영어시험 없이 대학 입학 조건을 충족한 것으로 해야 한다. 그리고 그 이상에 대해서는 대학이 전공별로 필요에 따라서 교육시키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렇게 되면 대학을 목표로 과도하게 벌어지고 있는 영어교육의 무한경쟁을 줄일 수 있으며, 또한 학교 단위의 시험을 통해서 영어교육이 왜곡되는 현상도 어느정도 극복할 수 있다. 초등학교 단계에서 학생들은 학교 교육이나 사교육을 통해서 의사소통 중심의 영어교육을 받는다. 그러나 중학교에 입학하게 되면 성적을 내야 한다는 현실적인 이유 때문에 학교 영어교육이 문법이나 번역을 중심으로 하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영어교육으로 변질된다. 즉 정확한 번역과 형식적인 정확성을 기준으로 영어교육이 왜곡되고 의사소통능력이나 창의적 표현과 같은 부분은 실종되어버린다.

영어마을과 같은 프로그램은 현재로서는 많다고 할 수 없다. 오히려 이렇게 우후죽순으로 조성되고 있는 영어마을을 관리하고 프로그램의 질을 유지하고 개발하는 데 좀더 집중할 필요가 있다. 전국 단위의 소위 ‘영어마을 협의체’와 같은 것은 좋은 대안이 될 수 있다. 이러한 협의체를 통해서 대개 한번의 기회밖에 주어지지 않는 영어마을 체험 기회를 확대한다면 더욱 나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예를 들어 10여년의 학교 영어교육 기간 동안 80시간씩 10번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총 8백 시간이 되며 이는 실질적으로 현재 학교 영어교육이 갖고 있는 시간적 제약을 보완해줄 수 있다.

이제는 프로크루테스의 침대를 사람에게 맞추는 새로운 인식의 전환을 필요로 한다. 그렇게 되기 위해서는 우리 현실에서 영어와 관련하여 객관적으로 무엇이 벌어지고 있는지, 우리 사회에서 영어는 도대체 무엇인지, 또한 어떤 기능을 담당해야 하는 것인지 고민해보아야 한다. 코페르니쿠스적인 인식의 전환을 통해서 영어교육의 문제를 다시 재단하고 옷을 입혀야 할 시기가 된 것이다. 물론 그 옷은 우리가 그동안 입어왔던 개성 없는 통일된 회색빛 옷은 아니며, 목적과 필요에 따라서 세분하게 재단된 개성있는 옷이 되어야 할 것이다.□
-- [안과밖] 21호에 실린 학술시평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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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교육, 어떤 새로운 옷을 입혀야 할 것인가 <- 현재글

이병민[자료실]
2006-12-02
52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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