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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민족해방, 계급, 인간: 영화<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단상

작성자

bloom

작성일자

2006-11-03

이메일

bloom.pe.kr

조회

3521


1. 후유증
아래 올라온 성은애선생님의 영화평에 자극(?)받아, 오늘 짬을 내어 영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을 보았다. 2시간이 조금 넘는 영화였다. 그런데 마치 3시간은 영화를 본 듯했다. 영화 내내 긴장을 해서였다. 영화를 보고나서 머리가 아팠다. 오랜만에 한시도 긴장을 풀지 못하게 하는 영화를 본 후유증’(?)이었다. 이 영화는 영화 자체에서 피비린내 나는 아일랜드 현대사를 직간접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그래서 사전지식이 없이 봐도 충분히 당대 아일랜드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영국과의 아일랜드 식민역사를 알고 보면 좀더 실감나게 느껴진다.

2. 형제
영화의 시작은 1920년이다. 감독은 첫 장면에서 아일랜드의 고유민속경기인 헐리를 보여주면서, 이 영화의 구도인 데이미언(Cillian Murphy역)과 테디(Padraic Delaney역) 형제의 대립 관계를 드러낸다. 장래가 촉망되는 의사로서 영국 병원에 가기로 되어있던 데이미언은 그녀의 애인이 되는 시네드의 동생 미하일이, 단지 이름을 영국식으로 발음하지 않았다는 황당한 이유 때문에, 영국군(the tans)에 의해 맞아 죽는 모습을 본다. 이런 장면은 언뜻 생각하면 너무 과장된 묘사처럼 보인다. 하지만 당시 영국이, 특히 아일랜드 주둔 영국군이 보여주었던 식민통치의 폭압성에 견주어보면 과장이 아니다. 영국인들, 그렇게 ‘신사’가 아니라는 말씀.

이어서 데이미언은 그가 타려던 기차의 기관사 댄(Liam Cunningham역)이 영국군에게 역시 뚜렷한 이유 없이 폭행당하는 걸 본다. 이 두개의 사건을 겪은 뒤, 그리고 아마도 그 이전에 그가 겪었을 많은 고뇌 끝에--자기는 말만 앞서는 사람이었다는 데이미언의 자탄은 의미심장하다--데이미언은 아일랜드 공화군(IRA; Irish Republic Army)에 가입한다. 그 뒤에 이어지는 영국군과의 전투, 그 과정에서 겪는 인간적 고뇌, 특히 자신이 잘 아는 동생 같은 아이를 밀고자라는 이유로 직접 처형해야 하는 끔찍한 경험. 그리고 아일랜드 자치령 찬반을 둘러싼 내전(civil war) 등이 관객에게 한 치의 여유도 주지 않고 숨 가쁘게 펼쳐진다. 그리고 그 결말은 역시 예상대로 비극적이다. 그 비극는 이념으로 갈라진 형제의 비극이다.

3. 영화의 힘
사실 이런 스토리 전개는 어느 정도는 예상했던 것이다. 이야기의 전개는 전통적이며, 인물들의 형상화도 예상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혁신적 영화의 기수라는 왕가위가 심사위원장을 맡았던 올해 깐느영화제 심사위원단이 이 영화에게 황금종려상을 준 것은 그런 점에서 나로서는 조금 의외이다. 그러나 이 영화에는 이런 조금은 구태의연한 이야기 전개와 인물형상화의 밋밋함을 넘어서는 힘이 있다. 이 영화는 점점 말랑말랑한 이야기들만이 선호되고 무겁고 머리를 아프게 하는 이야기들은 의도적으로 회피하려는 대중이나 비평가들의 감수성에 뭔가 강한 충격의 망치를 내리친다. 당신들이 외면해 온 이런 역사적 진실도 있다는 걸 다시 들이밀면서 말이다. 영화의 이야기는 물론 허구이다. 하지만 요즘 유행하는 팩션이 예증하듯이, 때로는 허구가 더 깊이 역사의 진실을 드러낼 수 있다. 그 진실에 깊이 접근하기 위해서는 몇 개의 역사적 ‘팩트’를 알 필요가 있다.

4. 반식민투쟁과 내전
영화에서 다루는 시기는 대략 1920년부터 1922년까지이다. 영화에서도 언급되는 1913년의 부활절 반란에서 1920년까지의 치열한 대영독립전쟁 뒤에 1921년 12월에 아일랜드 공화군(IRA)의 창립자요 총사령관이었던 마이클 콜린즈(Michael Collins)와 신페인당의 대표였던 아서 그리피쓰(Arthur Griffith)가 이끄는 협상단이 런던에서 영국정부와 자치정부구성에 협의한다. 1995년인가 베니스 영화제 대상을 받은 영화 <마이클 콜린즈>는 <보리밭>에서도 그가 주도한 자치정부구성안에 극명한 찬반을 불러일으키는 마이클 콜린즈의 비극적 삶을 다룬 영화이다. 그는 1922년, 나중에 아일랜드 공화국 지도자가 되는 발레라(Eamon de Valera)가 이끄는, 데이미언이 지지하는 완전독립파에 의해 암살된다. 이런 역사는 마치 해방전후 한국의 정국을 보는 듯하다. 이 영화가 다루는 아일랜드 내전의 핵심은 1922년에 구성된 아일랜드 자유국(the Irish Free State)의 의미를 둘러싼 논쟁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좌파감독답게 민족해방문제를 단지 민족문제로 보지 않고 언제나 계급문제와 연결해 사유하는 감독의 시선이 깔려 있다.

5. 민족해방과 계급문제
이 영화가 단순한 반식민투쟁 영화가 아닌 이유. 과연 그렇게 민족해방을 이룬다고 해서 세상이 나아질 것인가? 이런 질문을 계속 던지기 때문이다. 이 영화의 후반부에 벌어지는 내전은 민족-계급의 갈등이 전면화된 것이다. 영화에서 전직 기관사이자 1913년 사회주의자 오코넬이 주도했던 부활절 봉기에도 참여했던 것으로 나오는 댄이 계속 던지는 질문은 이 문제를 바라보는 감독의 시선을 표현한다. 아일랜드 독립투쟁은 단지 아일랜드 사람들만이 아니라 아일랜드의 모든 자연과 자원과 재산의 해방을 위한 것이라는 것. 따라서 아일랜드 사회에 존재하는 사회경제적 불평등을 회피해서는 안된다는 것.

민족해방이라는 이름으로 아일랜드 사회에 현실적으로 존재하는 부의 불평등과 빈곤 문제를 덮으려할 때 영국의 식민지배는 단지 다른 형태로 반복될 거라는 중요한 문제제기를 하고 있다. 일종의 해방구에서 벌어진 재판에서 유죄판결을 받은 ‘민족자본가’를 옹호하는 테디의 입장과 댄/데이미언의 대립구도는 이 문제와 관련된다. 테디는 민족자본가들이 무기를 구입할 돈을 대주기에 그들을 탄압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과연 그럴까?

6. 민족해방과 민주주의
최근의 탈식민주의이론이 밝히고 있듯이 민족해방운동은 민족해방의 끝이 아니다. 단지 시작이다. 민족해방 이후에 사회경제적 불평등의 해소, 민주주의의 구현, 성적/계급적 갈등이 제대로 해결되지 않는다면 수많은 ‘민족국가’들이 민족해방이후에 보여주었던 더 악화된 형태의 억압--예컨대 한반도 북쪽에서 여실히 드러나는 기이한 독재체제--으로 반복된다는 걸 이 영화는 경고한다. 그런 점에서 바로 그런 민족-계급의 간단히 않은 관계를 고민했던 댄이나 데이미언이 영화에서 비극적 최후룰 맞는 것은 지금의 현실을 바라보는 감독의 간단치 않은 시각을 드러낸다. 이 영화는 단순한 반식민투쟁/민족해방투쟁 영화가 아니다. 이 점이 [마이클 콜린즈]와 이 영화를 구분하게 만든다.

7. 이념과 인간
이념이 과연 삶이나 인간애보다 더 가치있는 것인가? 데이미언이 밀고자를 처형하면서 비통하게 토로하듯이, 과연 조국이나 민족은 그런 살해를 용납할 만큼 값진 것일까? 감독은 이 질문을 놓지 않는다. 손쉬운 답변을 내놓지도 않는다. 단지 이념으로 갈라져 싸우는 형제와 사람들, 그리고 그 와중에 환멸을 느끼고 떠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줄 뿐이다. 하지만 데이미언이 형 테디에 대해 말하듯이, 그런 싸움 중에 그들의 마음 속의 무엇이 죽어버린 것은 아닐까? 이 영화는 이런 중요한 질문을 제기한다. 과연 이념, 조국, 민족은, 그것을 위해 우리가 나의 목숨, 혹은 설사 그것이 밀고자의 것일지라도, 다른 사람의 목숨을 바칠 만큼 소중한 것일까? 영화를 보고나서도 남는 질문이다.

8. 역사의 반복
영화에서 감독은 의도적으로 역사가 반복됨을 보여준다. 그들이 맞서 싸웠던 영국군이 보여주었던 비인간적인 모습이 내전을 통해 아일랜드인의 모습에서 반복되어 나타나는 걸 비통하게 그린다. 한때 영국군이 그랬듯이, 이제 아일랜드 자치국 군인들이, 국가의 이름으로, 정부의 이름으로, 민족해방투쟁 때 그들에게 밥을 주고 쉼터를 주었던 동지들을, 지지자들을 몰아붙이고 죽인다. 생각과 이념이 다르다는 이유로. 내가 주목한 켄 로치의 날카로운 안목은 여기에 있다. 감독은 영화에서 소위 '좌파'의 이념을 선동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는 혁명이나 민족해방이나 하는 거창한 대의 아래 스러져가는 개별적 삶들의 의미에 시선을 둔다. 나는 그렇게 이 영화를 읽었다. 어떤 면에서 진짜 좌파는 이념이 아니라 어떤 이념으로도 희생할 수 없는 개인 삶들의 고유성을 최대한 존중하는 것이 아닐까. 나는 여기서 이념의 무가치함을 주장하는 해묵은 인간주의적 입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이념이 필요할 수밖에 없지만, 그 이념의 한계에 유념해야 한다는 것이다. 내가 이 영화를 보고 해석한 감독의 입장이다.

9. 경의
하도 말랑말랑한 영화들이 판치는 시대인지라 이런 무거운 영화를 보는 것은 쉽지 않다. 오늘 내 경험을 봐도 그렇다. 하지만 위에 언급한 무겁지만 중요한 문제들을 다시 한번 생각해보기 위해서, 혹은 우리의 현대사와 너무나 비슷한 아일랜드 현대사의 고통을 추체험하기 위해서, 그리고 지금도 국가와 민족의 이름으로 벌어지고 있는 침략전쟁의 야만성을 다시 상기하기 위해서라도 볼만한 영화이다. 영화의 '예술성‘과는 별개로, 이런 중요한 문제들을 묵직하게 제기해준 감독에게 경의를 보낸다. 아일랜드와 너무나 비슷한 현대사를 겪은 한국 영화계에도 이제는 또 다른 '켄 로치'가 나타날 때가 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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