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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저 푸르른 자유의 추억

작성자

성은애[자료실]

작성일자

2006-10-31

이메일

조회

3822


성은애 선생님 홈피에서 퍼온 영화평입니다. -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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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finching.net

언제부터 우리나라에 켄 로치 팬들이 이렇게 많았던가. 하이퍼텍 나다에서 열리고 있는 켄 로치 특별전의 첫날 저녁에 상영되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The Wind That Shakes the Barley, 2006)의 표를 예매하지 못한 나는 이렇게 투덜거렸다. 일요일 밤 9시, 집 근처 극장에서 하는 '유럽 영화제'의 마지막 프로그램도 이 영화였는데, 이건 가까스로 막판에 제일 가장자리 뒷 좌석 2개를 예매할 수 있었다.

다음날 출근을 해야하는 일요일 밤 9시, 그래도 극장은 만원이었고, 도대체 강남 한복판의 극장에서 일요일 밤에 상영하는 켄 로치의 영화에 옷을 잘 차려입은 관객들이 꾸역꾸역 몰려드는 광경이 신기하기도 했다. 한편에서는 386간첩단 어쩌구 하면서 '빨갱이 사냥'이 한창인데, 다른 한편에선 나이 먹고도 여전히 꿋꿋하게 '좌파'인 켄 로치의 영화표를 구하지 못해 안달이라니.

칸 영화제의 황금종려상을 거머쥔 켄 로치의 신작은 1920년대 초 아일랜드 내전 발발 전후를 다룬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이다. 다 알려진대로, 이 영화는 영국의 식민지였던 아일랜드가 독립을 쟁취해나가는 과정에서 과도기라고 할 수 있는 '아일랜드 자치국'(Irish Free State)이 설립되기까지의 앵글로 아이리쉬 전쟁 막판의 상황과, 자치국의 설립을 두고 벌어진 민족주의 진영 내부의 분열로 인한 내전 초반까지를 다루고 있다.

물론 다큐멘터리는 아니므로, 이러한 역사적 격변기를 데이미언과 테디라는 두 형제의 엇갈린 운명을 통해 보여주고 있다. 내전으로 인해 형제간의 운명이 엇갈린다는 점에서는 아일랜드판 [태극기 휘날리며] 쯤이라고 보면 될 것이며, 좋은 의사가 되겠다고 생각하던 한 청년이 조국과 신념을 위해 목숨을 내건 전사로 변신하는 과정을 다루었다는 점에서는 체 게바라의 초반 이력을 연상케 하기도 한다.

첫 장면에서 헐링(자막에선 '하키'라고 나오는데, 헐링이라는 경기 명칭에 익숙지 않은 관객을 위한 배려일 듯) 경기를 하던 청년들 가운데 데이미언(Cillian Murphy 분)과 테디(Padraic Delaney 분) 형제가 있다. 경기 중 계속 앞뒤 안 가리는 지나친 승부근성과 거친 플레이로 경고를 먹는 것이 테디이던가 (기억이 확실하지않다). 데이미언은 주변 사람들의 만류와 곱지못한 눈길에도 불구하고 런던으로 의학 수업을 떠나려 하는 참이다. 데이미언은 친구이자 애인 비슷한 시네드의 집에 인사를 가겠다고 들렀다가, 불법 집회를 단속 나온 군인들에게 붙잡혀 친구들과 함께 수모를 당하는 신세가 된다. 시네드의 동생 '미하일'은 이름을 영어식인 '마이클'로 발음하기를 거부했다가 군인들에게 맞아 죽는다. 이때까지만 해도 데이미언은 식민지 상황이 씁쓸하지만, 그래도 자신의 갈 길을 가야하겠다고 결심하고 있는 상태이다.

데이미언의 마음이 결정적으로 돌아서게 된 것은 기차를 타려고 나선 역에서이다. 조합의 결정에 의해서 영국군과 군수 물자는 태울 수 없다고 하는 차장과 기관사 댄(Liam Cunningham 분)이 군인들에게 폭행당하는 것을 보면서 데이미언은 곧바로 런던행을 포기하고 아일랜드 공화국에 충성을 맹세한다. 행동으로 보여주는 형에 비해서 자신은 늘 말만 앞섰다는 자의식을 가지고 있던 데이미언은 형 테디와 한 팀으로 게릴라전을 펼치면서 점차 강인한 전사로 변모한다.

영국군을 암살하고, 무기고를 탈취하고, 비밀 은거지를 밀고한 어린 소년을 손수 처형하면서 데이미언은 과연 조국이 이럴 가치가 있을까 회의하기도 하지만, 이 모든 것은 조국의 완전한 독립이라는 흐름의 일환으로, 데이미언 개인으로서는 어떻게 할 도리가 없는 것으로 그려진다.

치열한 전투가 이어지던 중, 영국과 아일랜드 공화국 사이에 평화 협정이 이루어진다. 이 조약으로 인해 아일랜드는 '자치국'의 위치를 획득하지만, 북아일랜드의 6개주는 자치국에 합류하기를 거부하고 영국의 일부로 남는다. 또한 경제, 무역, 관세 등의 자치권은 획득하였지만, 여전히 영국의 국왕에게 충성을 맹세한다는 점에서는 완전한 독립에 미치지 못한다. 아일랜드는 이 조약을 인정할 것인가 말 것인가로 격렬한 내분에 휩싸인다. 아일랜드 의회에서는 64대 57이라는 근소한 차이로 이 조약이 비준되고, 조약의 주도 세력인 마이클 콜린즈(Michael Collins)와 그의 옛 동료이자 조약 반대파인 이먼 드 발레라(Eamon de Valera)는 서로 돌이킬 수 없는 사이가 된다.

그리고 조약 반대파의 '포 코트' 점거 사건(영화에서도 언급된다)을 계기로 조약 찬성파와 반대파 간의 격렬한 내전이 일어난다. 이 내전으로 인해 사망한 인원이 아일랜드 독립 전쟁으로 인해 사망한 인원보다 더 많다고 알려져 있다. 결국 피비린내나는 동족 상잔의 모양새를 띠었던 아일랜드 내전은 조약 반대파(영화에서는 데이미언과 댄)이 자치국 군대(영화에서는 테디 등)에게 패퇴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데, 영화는 이 내전의 초창기까지를 그리고 있다.

완전한 독립과 노동계급을 위한 체제 수립까지 가야만 과업이 완수된 것이라고 주장하던 데이미언과 댄은 테디의 비난대로 '이상주의자', 혹은 '몽상가'에 불과했을까? 데이미언은 '과격한' 유인물이나 뿌려대는 자신을 비난하는 테디에게 '나는 몽상가가 아니라 리얼리스트'라고 말한다. 과연 테디와 데이미언 중 누가 더 '리얼리스트'였을까? 영화는 섣불리 대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결국 실제 역사에서는 일단 데이미언 쪽이 패퇴하는 것으로 내전이 마무리되기는 했으나, 1930년대에 들어서면서 아일랜드는 선거에서 애초에 조약 반대파 계열이었던 Fianna Fail이 서거에서 승리함으로써 국명을 에이레(Eire)로, 다시 아일랜드(Ireland)로 바꾸고, 2차 대전 이후 1949년에 아일랜드 공화국을 선포함으로써 영국의 지배에서 완전히 벗어나게 된다. 즉, 애초에 자치국 조약으로는 만족하지 못했던 사람들에 의해 아일랜드의 완전 독립이 성취되는 것이므로, 데이미언의 대의가 없었더라면 이러한 역사는 불가능했을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켄 로치는 실제의 역사를 충실하게 재현하면서도, 역사의 격변기에 휘말린 개개인의 운명을 꽤 솜씨좋게 짜넣는다. 물론 켄 로치의 이야기들이 대개 그러하듯 '전형적인 상황에서의 전형적인 인물'이라는 공식에 너무 고지식하게 맞춘 듯한 도식적인 이야기 구성임에도 불구하고, 약자에게 보내는 따뜻한 시선과 과도하게 감상적으로 과장하지 않는 연출은 여전히 켄 로치의 미덕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자고로 과거 역사를 소재로 한 이야기를 보면, 대개 성공한 영웅의 이야기보다 드높고 빛나는 이상을 품고 분투하다가 실패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더 심금을 울리는 법이다. 그러니 켄 로치가 권력을 잡게 된 테디보다 실패한 데이미언에 더 공감을 두고 있는 것은 '좌파' 감독으로서 뿐아니라, 이야기꾼의 선택으로서도 당연한 것이다.

데이미언의 마지막 표정은 용감한 전사의 것도, 빛나는 영웅의 것도 아닌, 최선을 다한 끝에 기어이 꺾이고 마는 처연한 인간의 모습이다. 데이미언이 크리스의 어머니에게 들었던 말을 고스란히 테디에게 들려주는 시네드의 슬픈 얼굴 또한 가슴을 아프게 한다. 우째 약소 민족의 운명은 지구의 반을 돌아선 그 곳에서도 이리 비슷하더란 말인가.

푸르고 아름다운 아일랜드의 풍광, 제국의 사악함, 어쩔 수 없이 내면이 황폐해지는 사람들, 무심코 적과 닮아가는 동지들, 이상과 현실 사이, 죽은 자를 옆에 두고 밤샘하면서 흐르는 구슬픈 노랫가락...80년도 넘은 옛날 얘기를 보면서, 아마도 관객들은 어쩔 수 없이 아프가니스탄을, 이라크를, 그리고 한반도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 겹쳐보이는 그림들 사이에서, 불타고 있는 오두막과 폭행 당하는 가족들을 지켜보며 총알이 다 떨어져 분노를 삼킬 수밖에 없는 아일랜드 사내와, 민족주의 진영이 내분을 겪으며 격론을 벌일 때 '아아, 난 여기서 빠질래!'라고 씁쓸하게 외치는 인물에게 무심코 감정 이입이 되는 것은 내 무기력함의 증거일까. 글쎄, 영화를 '보는' 행위야 어차피 '무기력한 방관'일 수밖에 없지만 말이다.

* 사족: 이 영화의 유일한 유머. 'T'로 시작하는 중요한 메시지를 잃어먹었다며 허둥대는 꼬맹이의 모습. 나는 그 꼬맹이가 혹시 영국군 측의 첩자면 어쩌나 하고 가슴을 졸였다가, 메시지를 찾는 장면에서 허탈한 웃음을 흘려야 했다. 켄 로치 할배는 가끔 괜찮은 유머를 구사하기도 하지만, 요건 좀 아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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