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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학 영어교육 담당 비정규직 교원의 심각한 현실

작성자

김명환[자료실]

작성일자

2006-05-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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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 영어교육 담당 비정규직 교원의 심각한 현실

김명환


우리 사회에서 시간강사 문제가 공론화된 것은 1987년 6월항쟁 직후 몇몇 대학에서 강사노조가 결성된 이후였다. 그러나 일용잡급직에도 못 미치는 형편없는 처우의 시간강사들의 현실은 이후에도 별로 개선되지 못했으며, 대학 개혁과 대학의 국제경쟁력 향상이 강조되던 지난 10여년 동안에도 변화는 거의 없었다고 말해 틀리지 않다.

대학교수의 임용방식이 기간제 임용에서 계약제 임용으로 바뀐 2002년 이후 여러 대학들은 주로 교양과목을 전담하는 계약교수인 강의전담교수를 본격적으로 채용하기 시작했다. 국어, 영어, 컴퓨터 등의 소위 '도구과목'에서 주로 두드러진 이런 현상은 교육부가 강의전담교수 3인을 1인의 전임교원 충원으로 인정해줌으로써 더욱 확산되기도 했다. 계약제 강의전담교수는 그동안 강사노조(현재는 비정규직교수노조)가 꾸준히 요구해온 강사료의 현실화를 비롯한 기본적인 처우 개선이 이루어진 '시간강사'라고 하는 것이 정확한 표현일 것이다. 그러나 그것이 정말 실질적인 진전과 개선을 이루었는지는 따로 검토할 문제이다.

그런데 지난해부터는 강의전담교수 외에 '비정년트랙 전임교원'이라는 귀에 선 이름의 교수 채용이 급증하고 있다. 이 현상은 교육인적자원부가 2004년 11월 발표한 '대학 구조개혁 방안'과 '대학 자율화 추진 계획'에서 교원 확보율이 높은 대학을 집중 지원하고 낮은 대학에는 국고 지원을 하지 않는 원칙을 밝힘으로써 확산되기 시작했다. 2003년 Y대에서 처음 도입했다고 하는 이 제도에 따라 채용된 교원이 2∼6년 동안 단기로 계약 임용되는 불안정한 신분임에도 불구하고 교육부가 1명의 비정년트랙 전임교원을 1명의 전임교원으로 인정함으로써 대학들이 부담 없이 교원 확보율을 채우기 위한 편리한 방안으로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교육부의 지침에 따를 때 연구 중심 일반대학의 경우 오는 2009년까지 전임교원 확보율을 65% 이상으로 끌어올리지 못하면 정부 지원이나 구조조정에서 불이익을 당하기 때문에 앞으로 이 제도는 더욱 확산될 전망이다. 교육부조차도 이 제도가 악용될 소지가 있어서 "비정년트랙 전임교원의 대학별 임금, 교수회 참여, 총장 선출시 투표권 등 계약조건 등에 대해 실태조사를 벌여 정년트랙 전임교원과 차이가 클 경우 전임으로 간주하지 않을 방침"이라는 보도가 나온 바도 있었다. 비정년트랙 전임교원의 규정 자체가 불분명하고 대학마다 차이가 크지만 이전의 강의전담교수와 굳이 다른 점을 꼬집어낸다면 동일 경력일 경우 정년트랙 전임교원의 70∼80%의 급여를 보장한다는 점이 눈에 띄며 학문 분야에 따라서는 전임교원과 동일하게 주당 책임시간을 9시간으로 하여 지나친 강의 부담에서 벗어나는 듯하다.

조사가 가능했던 범위 안에서만 살펴보더라도 강의전담교수나 비정년트랙 전임교원에 관한 규정이나 실제 관행은 대학마다 다르다. 특히 계약기간, 계약 갱신 조건, 재직연한 제한, 승진 여부 등의 신분상의 구체적 내용이나 급여 산정 및 주당 책임시간, 강의 외의 추가 의무 등 매우 중요한 사항들에서 일관된 지침이 존재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해당사자가 충분히 납득할 수 있게끔 명확한 규정과 절차에 따라 계약조건들이 결정되지 못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대학들은 이제 각종 평가나 정부 지원에 대비하면서 그때마다 필요에 따른 교수 충원율 계산에 근거해서 강의전담교수나 비정년트랙 전임교원을 입맛에 맞게 채용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한마디로 이런 상황을 조장한다는 점에서 교육인적자원부의 책임은 엄중하게 추궁되어야 마땅하며, 더불어 교수 충원율에 관해 교육부의 지침을 별다른 이의제기 없이 따르면서 대학 평가사업을 추진하는 한국대학교육협의회의 책임도 못지않게 크다고 본다.

계약교수들의 처우조건이 얼마나 천차만별이며 해마다 악화되는 방향으로 변화가 일어나고 있는지 몇가지만 사례를 들어보자. A대는 교수학습개발원의 후신으로 일종의 학부대학을 만들어 강의전담교수를 두고 있는데, 여기에 영어영문학과 교수와는 별도의 정규직 전임교수와 강의전담교수가 함께 있지만 강의전담교수가 전임교수와 비슷하게 승진과 급여 인상의 혜택도 있고 재직 연한의 제한이 없어 사실상 신분 보장을 받는 제도를 가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 대학도 최근의 변화에 영향을 받아 재정 부담을 의식한 탓인지 작년부터는 영어교육 담당교수를 비정년트랙 전임교원으로 선발하기 시작했으며, 결과적으로 한 조직 안에 서로 다른 근로조건의 교원들이 병존하는 거북한 상황이다.

B대는 주당 책임시간 15시간에 200만원 남짓한 급여를 주는 가장 평균적이라고 할 강의전담교수 제도를 몇년 전에 도입했는데, 2년 전까지만 해도 재직 연한의 제한이 없어 안정된 조건이었다. 그러나 뒤늦게 3년의 재직 연한을 도입했고 몇몇 교원은 채용시에는 듣지 못한 새로운 규정에 따라 퇴직해야 했다. 또 C대에 신규 채용된 강의전담교수들은 주당 12∼15시간의 수업을 기대했다가 학교가 목표한 숫자만큼 신규 채용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일부 강의전담교수에게 실제 책임시간을 무려 17∼19시간으로 배정한다는 통보를 뒤늦게 받기도 했다.

반면에 D대는 외국어교육원 소속의 강의전담교수에게 재직연한 제한을 두지 않다가 재직 연한을 두어야 한다는 논의가 나왔고 현재 주당 책임시간을 다소 늘리는 것으로 정리가 되고 있다고 한다. 그런가 하면 올해 처음으로 비정년트랙 전임교원을 선발한 지방의 E대는 대학 민주화를 이뤄낸 사학답게 교수협의회의 의견이 강하게 작용하여 동일 경력의 정규직 교수와 동일한 급여를 주도록 하고, 책임시간이 주당 15시간이지만 9시간을 넘는 강의시수에 대해서는 따로 초과수당을 지급한다. 물론 이 경우도 2년 계약에 1회만 재계약이 가능하다는 조건은 변함이 없다.

이처럼 학교마다 차이가 많지만 강의전담교수이든 비정년트랙 전임교원이든 한마디로 시간강사와 본질적으로 다를 것이 없는 조건이기 때문에 이들을 '비정규직 교수'라고 통칭하는 것이 가장 정확하다. 이대로 간다면 이들과 관련된 문제는 몇년 후에는 법적 다툼도 빈발하면서 사회문제로까지 비화할 것이 예상된다. 실제로 교수노조나 비정규직교수노조가 법조계로부터 법적 다툼의 소지가 충분하다는 답을 들었다고 하며, 2월 말 국회 환경노동위를 통과한 비정규직 관련 법안의 본회의 의결과 발효에 따라 어떤 변수가 생길지도 살펴봐야 한다.

그러나 교육 당국은 이 사안에 대해 갈지자 행보를 거듭하고 있으며 개별 대학들은 그 틈을 타 자의적인 행정을 일삼고 있고, 전임교수들 역시 대체로 무관심하기는 똑같다는 점에서 비판을 면하기 어렵다고 본다. 이 글은 영어 관련 분야의 전임교수들이 과연 어떤 문제의식과 책임감을 가져야 하느냐는 견지에서 비정규직 교수 문제를 좀더 생각해보고자 한다.

또래의 동학들에 비해 전임교원이 되기까지 훨씬 더 긴 기간이 걸린 경험 때문에 내게는 시간강사 시절의 씁쓸한 경험이 적지 않다. 그 중 가장 생각나는 것은 시간강사를 시작한 초기의 어느 학기엔가 두 대학에 각각 6시간, 9시간을 출강하게 되면서 주당 15시간을 강의했던 때이다. 그리 체력이 뛰어나지도 못한 나로서는 그야말로 한 학기 내내 수업에만 매달리는 바람에 전공 공부를 한다거나 다른 일을 돌보지 못하고 말았다. 또 동원예비군 훈련통지서가 나오는 바람에 꼼짝없이 1주일을 휴강함으로써 수업에 큰 차질이 생기고, 시위로 인한 수업 중단이 잦은 80년대 중반이었던 탓에 거의 한달 만에 학생들 얼굴을 다시 대하는 일도 있었다. 아무리 군사정권 시절이라지만 어떻게 자기 대학의 수업을 맡은 선생을 직장예비군에 편성하지 않아 학기중에 동원예비군 훈련에 나가도록 방치했는지 지금도 마치 거짓말처럼 느껴지곤 하는 추억이다.

그렇다면 한 학기 단위로 위촉이 되는 임시직으로서 방학중에 월급이 나오지 않는 것은 물론이요, 심지어 도서관 출입이나 도서대출도 자유롭지 않았던 과거의 시간강사 제도에 비한다면 1년 단위로 계약을 하고 방학중에 급여도 지급되는 '강의전담 계약교수'나 '비정년트랙 전임교원'은 한결 진전된 제도가 아니던가? 박사학위를 가진 신진 연구자로서는 이런 계약직을 얻어 생활에 안정을 얻으면서 열심히 공부하고 논문을 씀으로써 전임교원이 되는 길로 나아가면 문제는 해결되는 것이 아닌가. 불행하게도 이런 질문에 긍정적으로 답하기는 무척 어렵다. 오늘 우리 대학에서 시간강사를 포함하여 다양한 형태와 명칭으로 존재하는 영어과목 담당 비정규직이 겪게 되는 심각한 문제는 세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첫째는 담당 강의시간의 문제이다. 필자가 조사한 범위 안에서 말하는 것이지만 강의전담교수의 주당 책임시수는 보통 15시간이며, 실제 책임시간은 16∼19시간에 이르는 경우도 적지 않다. 앞서 개인적 경험을 말했지만 한 주에 15시간 수업을 하면서는 젊은 학자가 자기 연구를 병행하기 어렵다. 혹자는 대개 국어나 영어 등 '도구과목'을 가르치는 것이고, 또 같은 내용을 반복하는 경우가 많으니 주당 6∼9시간을 담당하는 전임교원의 부담과 비교할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것은 받아들이기 곤란한 얘기이다. 교양영어를 가르쳐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실감하는 것이지만 주당 3시간 총 16주의 제한된 수업시간에 설정된 영어 구사력 목표를 달성하려면(아니 그런 목표를 학생 스스로 달성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고 방법을 체득해준다는 것이 좀더 현실적인 표현일 것이다), 매주 약식 시험을 치르게 하고 채점 결과를 다음 주에 바로 돌려주는 등 남다른 투자가 불가피하다.

그 외에도 알찬 영어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교재 선정과 개발, 중간/기말시험 공동 출제, 수업 보조자료의 공동 개발과 관리, 온라인상의 수업상담, 수업개선을 위한 워크샵 등 다양한 일들이 따라 오게 마련이다. 따라서 주당 9시간의 전임교수와 주당 15시간의 교양영어 강의전담교수가 동일한 강의 부담을 진다는 논리는 성립하기 어렵다. (물론 정규직 교수들은 강의 외에도 연구실적 압박, 학교 행정 업무, 학생 진로지도 등으로 시달리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 사실이 현재의 심각한 차별을 정당화할 수 있는지는 의문이다.)

두번째로, 남을 가르치는 업을 택한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위신과 자긍심을 지켜줄 뿐만 아니라 교육의 질을 유지, 개선하는 일에 필수적인 민주적 의사결정 구조의 문제이다. 비정규직 교수와 관련된 각 대학의 규정들을 살펴보면 우리 사회가 민주화되었다는 말이 다 거짓처럼 들린다. "강의초빙교수는 강의만을 전담하며 학과교수회의 등 학교의 제반 의사결정 참여에서 제외된다"(F대)면서 아예 비정규직 교수와 관련하여 비민주적 조항을 버젓이 넣어둔 대학도 없지 않지만 대부분의 대학에서 강의전담교수가 영어영문학과이든 교양교육원이든 자신이 소속된 기구의 의사결정과정에 참여하려는 노력을 아예 엄두도 내지 못함은 누구나 잘 안다. 그런 점에서 비정년트랙 전임교원이 "학과 및 학부 교수회의에 참석할 수 있다"(G대)는 애매한 규정은 차라리 없느니만 못한 위선적인 것이다.

왜 비정규직 교수가 재직 대학의 의사결정기구에 굳이 참여해야 할까? 어차피 임시직이라면 회의에 오라 가라 하지 않는 것이 훨씬 더 편한 것이 아니냐는 반론도 있겠다. 그러나 비정규직 교수들이 교육과 관련된 의사결정 과정에 참여하는 일이 불가능하다면 수업과 학생지도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며 교육 프로그램을 개선하고 발전시키는 노력은 또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대학 규모에 따라서는 영어 강의전담교수만도 10여명 이상인 경우도 있을 터인데, 이 경우에도 영문학과든 교양교육기관의 외국어교육위원회든 강의전담교수들이 자신의 의견을 개진할 수 있는 공식 통로는 반드시 필요한 것이다.

비정규직을 회의구조에 참여시킨다고 해도 신분 불안정 때문에 전임들의 눈치를 살피며 의견을 적극적으로 개진하기 어려울 수 있지만 비정규직을 학내 의사결정 과정에서 소외시키는 것은 무엇보다도 관련 교육프로그램이나 강좌의 질을 유지하고 향상시키는 일에 무관심하다는 비난을 면하기 어렵다. 실제로 대학 현장을 살펴보면 영어교육 프로그램을 책임지는 보직은 정규직 교수가 담당하게 되지만 교육을 전담하는 비정규직보다 실무에 어둡거나 프로그램 자체에 대한 애정과 사명감을 바탕으로 일을 맡은 것이 아닌 경우가 적지 않아 갈등과 혼선이 생겨나기도 하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것은 교원 신분의 안정성이다. 사실상 앞의 두 문제는 모두 교원 신분 보장이라는 핵심적인 사안에 포섭되는 문제이다. 요즘은 실적이 부진하면 가차없이 불이익을 주거나 자르는 제도를 도입해야 조직이 제대로 돌아간다는 것이 마치 상식처럼 통하는 험한 세상이다. 물론 (비정규직 교수 문제에 책임을 느껴야 할 교육부 관료들과 정규직 교수들처럼) 일부 직종의 소위 '철밥통'이 안고 있는 문제가 없지 않고, 지구화시대에 세계적 대세를 무시하고 '평생직장'의 보장을 외친다고 일이 풀리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교원의 신분 보장과 실적 평가에 따른 차등대우라는 두마리 토끼는 쉽게 잡기 어려운 것이지만 흔히 생각하는 것처럼 모순되는 것은 결코 아니다.

합당한 신분 보장을 하되 객관적인 평가제도를 도입하여 (교육부가 그렇게도 선호하는) 연봉제에 준하는 유연한 인사관리를 할 수도 있는 것이다. 어쨌든 지금과 같은 비정규직 확대는 궁극적으로는 정규직 교수의 신분 보장에도 악영향을 끼칠 것이며, 교육의 질 향상이나 대학의 경쟁력 강화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다.

최근의 비정규직 증가를 비판적으로 보는 이들은 3, 4년 후에 그만둘 사람들이 학생들에게 영어를 얼마나 열심히 가르치겠느냐, 다들 퇴직 이후의 준비를 해야 하니 정성어린 교육이 이루어질 수 없다고 말한다. 옳은 말이다. 한창 연구하고 가르쳐야 할 젊은 선생들은 자신의 생계와 미래를 걱정하며 하루하루를 마치 이중 생활처럼 보내게 마련이다. 그러나 여기에도 한가지 유보조건을 달고 싶다. 객관적 통계자료를 가지고 증명할 길은 없지만 적어도 대다수의 비정규직 선생들은 그만두는 날까지 학생들을 위해 힘닿는 대로 노력한다. 곧 그만둘 사람들이라 열심히 가르치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은, 전임교원이 정년보장만 받으면 강의평가든 뭐든 눈치 보지 않고 멋대로 가르칠 거라는 주장만큼이나 보편타당하게 '입증이 가능한' 진실은 아닌 것이다. 관념적인 인간관은 배격해야겠지만 인간의 인간다움을 궁구하는 인문학 연구자로서 우리가 뜻밖에도 인간의 존엄성과 가능성을 별로 믿지 않는 행동을 하고 있지 않은지 스스로 물어봐야 할 때이다.

백보를 양보해서 근무평가에 따라 재계약 대상에서 탈락시키는 것이 옳다고 해보자. H대처럼 비정규직 교수들에게 학진 등재(후보)지에 매년 논문 한 편씩을 쓰라는 의무를 요구하는 대학도 없지 않지만 다수 대학들이 비정규직 교수를 평가할 방법은 강의평가 밖에 없다. 정상적인 조건에서라면 강의평가는 신뢰도가 매우 높은 제도이며 그 결과가 교수에게 피드백됨으로써 강의를 개선하는 효과가 크다. 그러나 강의평가를 교수의 신분 보장을 좌우할 사안에 활용하는 것은 신중해야 한다. 강의평가 결과에 따라 교수가 잘릴 수도 있다고 한다면 교수는 강의평가를 잘 받기 위해 학생들에게 영합하게 되며 심지어는 강의평가의 의미를 잘 아는 학생들이 악용할 수도 있다.

물론 복수의 학기와 강좌에 걸쳐 매우 낮은 강의평가를 받을 뿐 아니라 주관식 문항에서 동일하고 심각한 문제제기가 구체적으로 반복되는 경우라면 소명 기회를 포함한 정해진 절차를 거쳐서 계약을 해지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평가제도라면 당연히 정규직에게도 도입하여 급여나 정년 보장, 연구년 혜택 등에서 차등을 둠으로써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차별을 없애는 것이 바른 길이다.

그렇지만 어느 대학이든 강의평가를 통해 비정규직 교수의 재계약 여부를 결정한다는 것을 명확하고 자세하게 규정한 경우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다시 말해 해가 갈수록 경험이 쌓여 더 좋은 선생이 되었을 뿐 아니라 해당 대학의 영어 프로그램의 역사와 실상을 소상히 이해하고 있는 고참을 별 이유도 없이 잘라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은 어떤 식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노동착취이자 인권침해이며 대학의 경쟁력을 스스로 파괴하는 행위이다. 달리 말하자면 이런 행태의 배후에는 대학에서의 영어교육이라는 게 결국 해봐야 소용없는 겉치레다, 영어실력 제대로 향상시키려면 학생들 스스로가 알아서 노력하는 것밖에 없다는 식의 패배주의나 무사안일주의가 깔려 있다고 볼 수밖에 없다. 아니면 오래 근무한 선생은 타성에 빠져 잘 가르치지 못하니 적당한 시점에서 젊은 선생으로 교체해야 한다는 논리일 터인데 그것이야말로 65세까지 정년 보장의 혜택을 받을 전임교수에게는 무시무시한 칼날이 아닐 수 없다.

각 대학의 관련 규정에서 발견하는 "재임용 통보가 없을 때는 해당 학기말 기준으로 임용이 자동 소멸된다"(I대), "비정년트랙 전임교원의 해임은 계약 만료에 의하며, 별도로 해임 통보는 하지 않는다"(J대) 등의 구절에 이르면 실소를 금할 수 없다. 계약 갱신이 되지 않은 사실을 해당 선생에게 사전에 통보할 의무가 없다는 말인데, 이런 규정을 삽입하는 대학 당국의 정신상태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규정상 재직 연한에 걸렸거나 재계약을 거절당한 계약교수에게 더이상 임용할 수 없음을 정중하게 알리는 것은 최소한의 예의가 아닐까? 비정규직은 다음 학기 시간표 배정에서 빠짐으로써 자신이 퇴직해야 한다는 사실을 조교에게 비로소 듣게 될 처지인 것이다. 자고로 우리 역사에서 선생을 이렇게 대접해온 전통은 없다. 실제로 비정년트랙 전임교원을 전임교원으로 취급하면서도 퇴직 과정에서 아무런 사전통보나 이의제기 절차를 두지 않고 있다는 사실이 실질적인 전임교원과 큰 차별로 인식되는 것이며, 위법의 소지가 큰 것이다.

국공립대학이든 사립대학이든 우리 대학의 취약한 재정구조와 빈약한 정부 지원을 생각할 때 비정규직 교수를 활용하는 것은 고육지책의 측면이 분명히 있으며 무턱대고 대학 당국이나 정규직 교수들을 욕할 일도 아니다. 무엇보다도 오늘의 고등교육 현실에 대해 장기적이고 일관된 정책을 펼치지 못한 당국의 책임이 크며, 대학의 비정규직 문제는 사회 전반적인 노동정책과도 깊게 연관되어 있는 동시에 범국가적인 교육정책, 대학정책과 직결된 거시적 사안인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영어영문학 분야의 정규직 교수들이 당장 고민하고 실천해야 할 일들이 없다는 결론은 나오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먼저 피부에 와 닿는 사실은 자신들이 힘들게 길러 배출하는 박사들이 비정년트랙 전임교원 같은 기이한 제도의 희생물이 될 수 있다는 점이다. 주당 15시간씩 수업을 하면서 불안정한 신분에 시달려야 한다면 무슨 이유로 최종 학위를 받기까지 10여년씩 걸리는 학문의 길에 들어설 것인가. 이대로 간다면 가뜩이나 위축된 국내 영어영문학과 대학원 과정이 결정적으로 쇠락할 위험도 없지 않은 것이다. 각자가 소속한 대학에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할지 정말 진지하게 생각할 때라고 본다.

무엇보다도 우리는 외래어가 뒤섞인 '비정년트랙 전임교원'이라는 낯선 어휘가 초래하는 혼란에서 벗어나야 한다. '비정년트랙'(non- tenure track) 교원은 말 뜻 그대로 정년 보장의 기회가 없다는 의미이지 결코 재직 연한이나 재계약 횟수에서 제한을 받는 불안정한 비정규직이라는 뜻이 될 수 없다. 특히 정규직과 비정규직을 막론하고 모든 교수 임용이 계약제로 바뀐 상황에서 업적평가에 따라 임용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사유와 절차는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동일해야 위헌이나 위법 소지에서 벗어날 수 있다. 더불어 주당 책임시간 등 근로조건에서도 상식을 벗어나는 규정을 개선함으로써 장기적으로 대학이 비정규직 채용을 남발하지 않도록 해야 고등교육의 발전을 기할 수 있는 것이다. 비정규직 교원 문제의 가장 무거운 책임은 교육부를 비롯한 정책 당국에게 있지만 정규직 교원들 역시 큰 책임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 <안과밖> 20호에 실린 학술시평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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