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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목

 너무 근사한 셰익스피어

작성자

김희진(자료실)

작성일자

2006-02-17

이메일

조회

5221


너무 근사한 셰익스피어

―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와 <햄릿>을 통해 본
할리우드 셰익스피어 영화 ―


김희진


Ⅰ.
2004년 개봉한 현대판 신데렐라 이야기 <내 남자 친구는 왕자님>(The Prince and Me)에는 여주인공이 새 학기 수강 과목에 대해 친구들과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온다. 주인공 페이지는 의사가 되는 꿈을 이루기 위해 연애도 하지 않고 공부에 열중하고 밤에는 아르바이트를 해가며 열심히 살아가는 여대생인데 그런 그녀가 새 학기를 맞아 골머리를 앓고 있다. 다름 아닌 필수 교양 과목으로 들어야 하는 셰익스피어 때문이다. 그녀는 셰익스피어를 “어리석은 인문학”이라 칭하며, 왜 그런 “쓸모없는” 과목을 수강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모르겠다고 불평한다. 햄릿조차 그녀에겐 “완전한 실패자”일 뿐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그처럼 어리석고 쓸모없는 셰익스피어가 지난 10여 년간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영화로 제작되었을 뿐 아니라, 그렇게 불평하는 여주인공을 연기하는 배우가 다름 아닌 스타일즈(Julia Stiles), 90년대 말부터 현재까지 세 편의 셰익스피어 영화에 출연하면서 배우로서 자신의 입지를 공고히 한 이 시대의 ‘셰익스피어 뮤즈’라는 점이다. 게다가 영화에서 덴마크 왕자는 펜싱 검을 휘두르며 덴마크 궁정을 벗어나고 싶다고 외치는 등 여러 면에서 햄릿을 패러디한다. 그 뿐인가, 미국의 여대생 스타일즈가 덴마크 왕자와 사랑하고 결혼하게 되는 신데렐라 로맨스가 가능한 것도 실은 그녀가 쓸모없고 어리석다고 말하는 셰익스피어 덕분이다.

완벽한 영국식 영어를 구사하며 셰익스피어 대사를 줄줄 외우고 있는 왕자님 도움으로 골칫거리 셰익스피어 과목에서 좋은 성적을 받고 그렇게 함께 셰익스피어를 공부하다 사랑에 빠진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여자나 따라다니고 놀기 좋아하는 철없는 왕자는 멋진 임금님, 사랑하는 여자의 꿈을 이해하고 기다려주기까지 하는 근사한 남자가 되고, 그와 더불어 셰익스피어 또한 매우 낭만적이고 근사해진다.

셰익스피어 영화를 이야기하면서 일견 셰익스피어와 상관없어 보이는 이 영화에 주목하는 이유는 영화의 이와 같은 면모가 최근 할리우드 셰익스피어 영화의 특징과 상당히 닮아 있기 때문이다. 특히 90년대 말부터 현재까지 셰익스피어 영화는 셰익스피어를 현대 미국 젊은이들의 이야기로 만드는 데 주력하는데, 이들 영화는 주로 할리우드에서 유행한 10대 로맨스를 그 틀로 삼고 있으며, 패러디와 상호텍스트성, 다양한 대중문화 코드의 혼용이 두드러진다.

[각주 80년대 말부터 최근에 이르기까지 셰익스피어 열풍(Bard Boom)이라고 불릴 정도로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셰익스피어 영화가 집중적으로 제작되었는데, 이 시기 셰익스피어 영화의 전반적인 흐름은 이 열풍에 견인차 역할을 했다고 평가되는 브래너(Kenneth Branagh)의 영화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헨리 5세>(Henry Ⅴ)(1989), <헛소동>(Much Ado About Nothing)(1993), <햄릿>(Hamlet)(1996), <사랑의 헛수고>(Love's Labour's Lost)(2000)로 이어지는 그의 영화는 근대 초기에서 19세기, 그리고 1930년대로 그 배경이 점차 현대로 옮아갔을 뿐 아니라, 출연 배우 또한 연극 무대의 경험이 많은 영국 배우에서 할리우드 젊은 스타로 바뀌었다.

이처럼 셰익스피어 영화를 만들되 현대를 배경으로 할리우드 스타를 출연시키는 경향은 브래너의 <햄릿>, 파치노(Al Pacino)의 <리차드를 찾아서>(Looking for Richard), 루어만의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로미오 + 줄리엣>이 발표된 1996년을 기점으로 한층 뚜렷해진다. 19세기 유럽 왕조를 배경으로 한 시대가 무너지고 새로운 시대가 오는 전환기 역사의 움직임을 웅장한 서사극으로 담아낸 브래너의 <햄릿>은 과거에 대한 아련한 향수로 가득하면서도 피할 수 없는 역사의 흐름을 보여주는데, 그것은 곧 과거 1세기에 걸친 셰익스피어 영화 또한 그 한 시대를 마감하고 새로운 시대로 접어들고 있음을 나타낸다. 셰익스피어 영화 열풍을 선도한 브래너에게조차 이제 셰익스피어는 더 이상 르네상스 시대의 것도, 더 이상 서사극이나 역사극도 아니다.

실제로 브래너의 다음 셰익스피어 영화는 텍스트의 대사를 대폭 삭제하고 1930년대 뮤지컬 형식을 취한 <사랑의 헛수고>였다. 『리차드 3세』(Richard Ⅲ)의 제작 과정을 다큐멘터리 식으로 보여주는 <리차드를 찾아서>에서 파치노는 시적인 셰익스피어 영국 영어를 모르는 미국 배우가 과연 셰익스피어를 연기할 수 있는가를 고민하고 결국 할리우드 배우들과 함께 셰익스피어를 무대에 올리는 데 성공한다. 이제 셰익스피어는 더 이상 연극 무대 경험이 많은 영국 배우의 전유물이 아니다. 그리고 루어만 영화는 그러한 파치노의 고민에 종지부를 찍고 셰익스피어를 포스트모던한 현대 미국 10대들의 이야기로 만들면서 다양한 대중문화 기법을 동원해 과거 셰익스피어 영화의 전통을 패러디한다.]


셰익스피어를 현대 미국 고등학교로 가져온 정거(Gil Junger) 감독의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10 Things I Hate About You)(1999), 넬슨(Tim Blake Nelson)감독의 <오>(O)(2001), 루어만(Baz Luhrmann) 감독의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로미오 + 줄리엣>(William Shakespeare's Romeo + Juliet)(1996), 앨머레이더(Michael Almereyda) 감독의 <햄릿>(Hamlet)(2000) 등이 그 예이다. 이 글에서는 이러한 최근 셰익스피어 영화의 특징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와 <햄릿>, 두 편의 영화를 함께 살피면서 셰익스피어가 최근 영화를 통해 이해되고 해석되고 전유되는 방식을 점검하고자 한다.


Ⅱ.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
[각주 Gil Junger, 10 Things I Hate about You. Perf. Heath Ledger and Julia Stiles. Touchstone Pictures. 1999]


1)― 로맨스와 페미니즘의 화해

『말괄량이 길들이기』를 시애틀의 한 고등학교로 가져온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는 텍스트의 대사를 단 한 줄도 그대로 사용하지 않았다. 그러나 이 영화가 텍스트의 배경과 플롯, 언어를 모두 변형시킨 <키스 미 케이트>(Kiss Me Kate)(1953), <웨스트 사이드 스토리>(West Side Story)(1961), <로미오 머스트 다이>(Romeo Must Die)(2000) 등의 영화와 구별되는 점은 플롯과 대사를 셰익스피어 텍스트와 다르게 바꿨음에도 불구하고 영화 전반에 걸쳐 셰익스피어를 직간접으로 끊임없이 언급하면서 텍스트와의 관계를 의식적으로 부각시킨다는 사실이다.

배경이 되는 고등학교 이름을 페두아로, 남녀 주인공의 성을 베로나, 스트랫포드로 했을 뿐 아니라, 수업 시간에 선생님은 셰익스피어 소네트를 랩으로 불러주며 소네트 창작 과제를 내준다. 주인공 캣과 패트릭은 캣이 지은 소네트를 통해 두 사람의 사랑을 확인하는가 하면, 또 한 쌍의 커플 마이클과 만델라는 셰익스피어의 대사를 암송하기 좋아하고 그러한 인연으로 맺어져 셰익스피어 시대 의상을 입고 졸업 무도회에 나가 짝을 이루는 등 셰익스피어가 젊은이들의 사랑을 이루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와 같이 영화는 셰익스피어 텍스트와 다르지만 동시에 그 다름을 부각시킴으로써 관객으로 하여금 그 차이를 인식하고 비교하도록 한다. 특히 말괄량이 여주인공을 페미니스트로 설정하는데, 이는 근대 초기 사회 ․ 문화가 여성성과 남녀 관계를 정의하는 방식을 극화하는 셰익스피어 텍스트의 문제의식을 전면에 부각시킨다는 점에서 중요하다. 더구나 핸더슨(Diana E. Henderson)이 지적하듯 <말괄량이 길들이기> 영화는 페미니즘이 보수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켜 반페미니즘의 목소리가 강해진 시기에 특히 많이 제작되어 여성으로 하여금 가정에서 기쁨을 찾도록 적극적으로 부추기는 역할을 해왔다.
[각주 Diana E. Henderson, "A Shrew for the Times," Shakespeare, the Movie: Popularizing the Plays on Film, TV, and Video. eds. Lynda E. Boose and Richard Burt (London: Routledge 1997) 150면.]

따라서 영화가 페미니스트 캐서리나를 통해 현대적 감수성으로 보면 역겨울 정도로 남성우월주의를 표방한다는 비난을 받기도 했던 [각주 Bernard Shaw, Shaw on Shakespeare, ed. Edwin Wilson (London: Arno 1961) 186-87면] 텍스트와 번안의 역사를 자의식적으로 문제 삼고 있다 할 수 있다.

영화에서 선생님부터 학생들까지 자타가 인정하는 페미니스트 캐서리나는 그 이름부터 ‘살쾡이’(wildcat)를 떠올리는 캣(Kat)으로 불린다. “예쁘지만 예쁘게 보이지 않으려고 애쓴다”는 대본 설명 그대로 머리는 질끈 묶은 채 티셔츠에 헐렁한 바지를 입고 낡은 구형차를 몰고 다니는 축구 선수로, 똑똑하고 공부도 잘해서 동부의 명문 새라 로렌스 대학에서 입학 허가를 받은 상태다. 그녀가 즐겨 듣는 록음악 가사, “여자는 자기가 원하는 것을 할 수 있어/ 그게 바로 내가 하려는 거야”가 말해주듯 그녀는 다른 사람들이 뭐라든지 자기 뜻대로 말하고 행동하는 여성이다.

때문에 그녀는 유행하는 신형 차를 몰고 다니며 판에 박힌 듯 귀엽게 차려입고 장신구와 패션, 졸업 무도회와 남자 이야기에 정신없는 여학생들과는 분명하게 구별될 뿐 아니라 그런 여학생들을 드러내놓고 경멸한다. 또 수업 시간에 헤밍웨이의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에 대해 토론이 시작되고 바로 이어 한 여학생이 낭만적이어서 좋아한다고 답하자 캣은 다음과 같이 쏘아붙인다.

캣. (분개해서)
낭만적이라고? 헤밍웨이가?! 그야말로 반평생을 피카소에게 들러붙어서 빈둥거리며 그가 남긴 떨거지나 훔치며 산 알콜중독 여성혐오자잖아. [. . .] 이 사회에서는 말이야 남자, 그러니까 사내 나부랑이라야 우리 시간을 쏟을 가치가 생기나 보죠. 실비아 플라스나 샬롯 브론테, 시몬느 드 보봐르를 읽는 건 어때요?
[각주]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고른 문학 정전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면서 헤밍웨이 대신 여성 작가의 작품을 읽자고 제안하는 캣에게 수업은 “억압적인 가부장적 가치”를 배우는 시간일 뿐이다. 영화는 이렇게 캣을 예쁘게 꾸미고 상냥하게 말하는 대신 거칠게 말하고 행동하는 “테러리스트”, “독선적이고 흉악한 계집”, 다시 말해 대중매체가 생산하는 전형적인 ‘페미나치’(feminazi)의 모습으로 재현한다. 따라서 돈을 준대도 그녀와 데이트 하겠다는 남학생 하나 없다. 셰익스피어 텍스트에서 캐서리나와 결혼하느니 “매일 아침 광장에서 매를 맞겠다”(1.1.127)는 [각주 William Shakespeare. The Taming of the Shrew. ed. Ann Thompson (Cambridge: Cambridge UP 2003). 이하 셰익스피어 텍스트의 인용은 막, 장, 행만 표시하기로 한다] 그레미오가 그랬던 것처럼 영화에서 남성들은 “세상에 캣과 단 둘만 남게 된다 해도 염소와 사귈지언정 절대 그녀와 데이트하지 않겠다”며 모두 그녀를 멀리한다.

그러나 영화는 텍스트와 달리 이처럼 모든 남성들이 멀리하고 싶어 하는 말괄량이를 고분고분한 아내로 길들이는 과정을 아예 생략한다. 대신 “자기 생각을 표현하는 것은 테러리스트의 행동이 아니다”고 당당하게 말하는 캣의 대사에서 드러나듯 캣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데 주력한다. 실제로 영화 속 캣은 다른 어떤 인물보다 대사가 많고 그 때마다 자기 생각을 서슴지 않고 표현한다.

셰익스피어 텍스트에서 캐서리나는 “잔소리꾼”, “악마의 혀”라고 불리지만 사실 그녀는 결혼 이후 길들이기 과정에서 침묵 당한 채 말할 기회를 잃고 있다. “내 혀는 내 가슴의 울분을 말할 것이다, / 그렇지 않고 화를 감추고 있다가는 가슴이 터져버릴 거다”(4.3.77-78)는 그녀의 항변에서 드러나듯 캐서리나는 잠도 못자고 먹지도 못할 뿐 아니라 말할 자유도 잃었다.

그녀가 말할 기회를 부여받은 것은 마지막 장면에서 남편에 대한 아내의 복종을 이야기할 때뿐이다. 때문에 호지던(Babara Hodgedon)은 텍스트에서 캐서리나가 남편에 대한 복종을 웅변하는 마지막을 장면을 가리켜 통제되었기에 여성의 말이 허락될 수 있었다며 “행복한 겁탈”의 상태라고 지적한다.
[각주 Babara Hodgedon, "Katherina Bound, or Play(K)ating the Strctures of Everyday Life," The Shakespeare Trade: Performances and Appropriations (Philadelphia: U of Pennsylvania P 1998) 8면.]

영화는 이처럼 가슴에 화를 품은 채 침묵당한, 그리고 남편에 대한 복종을 이야기할 때만 그 침묵을 벗어날 수 있었던 캐서리나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준다. 물론 영화는 돈을 받고 캣과 데이트에 나선 패트릭이 캣을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고 캣 또한 그를 사랑하게 되면서 끝난다. 때문에 홀든(Sthephen Holden) 같은 평자는 패트릭이 교내 밴드부를 동원해 전교생이 보는 앞에서 유명한 팝송 “당신에게서 눈을 뗄 수 없어요”를 열창하는 순간 캣이 단번에 마음을 허락하는 데서 드러나듯 영화가 페미니스트 말괄량이를 아주 쉽게 길들여버린다고 평한다.
[각주 Stephen Holden, "It's Like, You Know, Sonnets and Stuff," New York Times 31 Mar. 1999.]

또 데일리더(Celia R. Daileader)의 경우 이 영화가 페미니스트적인 관점에서 셰익스피어 텍스트를 다시 쓴 것인지, 아니면 단순히 마구 텍스트를 자르고 바꾼 것뿐인지 판단내리기 어렵다고 털어놓기도 한다. [각주 Celia R. Daileader, "Nude Shakespeare in Film and Nineties popular Feminism," Shakespeare and Sexuality. eds. Catherine M. S. Alexander and Stanley Wells (Cambridge: Cambridge UP 2001) 197면.]


물론 이 영화가 90년대 말 할리우드에서 유행하는 10대 로맨스 장르를 이용해 티격태격 다투던 두 남녀가 우여곡절 끝에 행복하게 맺어지는 이야기 틀로 셰익스피어 텍스트를 가져온 것이 사실이다. 90년대 말 셰익스피어가 현대 미국 10대들의 이야기가 되는 현상은 이 시기 10대 영화가 『엠마』와 『위험한 관계』를 각기 현대로 번안한 <클루리스>(Clueless), <사랑보다 아름다운 유혹>(Cruel Intention), <위대한 유산>(Great Expectations), 다시 쓰는 신데렐라 이야기 <에버 에프터>(Ever After) 등 고전문학을 적극적으로 번안하는 현상과 맞물려 있다. 이에 대해 에버트(Roger Ebert)는 고등학교를 배경으로 한 10대 로맨스가 전에 없이 인기를 얻으면서 새로운 소재를 찾기 어려워지자 고전문학을 재활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각주 Roger Ebert, "10 Things I Hate about You," Chicago Sun- Times 31 May 1999.]

또한 텍스트에서 캐서리나와 페트루키오가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고, 따라서 마지막에 남편에 대한 복종을 웅변하는 캐서리나의 대사는 사랑에서 우러난 것이라고 보는 해석이 하나의 전통처럼 지속되기도 했다. 셰익스피어 텍스트를 두 주인공의 로맨스로 해석하는 대표적인 예로는 Charles Brook, "Shakespeare's Romantic Shrews," SQ 11 (1960): 351-6면; 모리스(Brian Morris) 또한 5막 1장에서 키스해달라는 페트루키오의 요구에 응하는 캐서리나의 대사 “이제, 사랑하는 여보, 가지 마세요”에 주목하여 그 장면에서 두 사람이 진심으로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고 보고, 그러한 사랑에서 우러나 캐서리나가 남편에 대한 복종을 웅변하게 된다고 설명한다(286).

[각주 Brian Morris, ed., The Arden Shakespeare (London: Methuen 1981) 286면; 무대 공연에서는 생명력 넘치는 두 남녀가 만나 첫눈에 사랑에 빠지는 로맨스를 보여준 1960년 바튼(John Barton) 연출의 로열 셰익스피어 컴퍼니 공연이 그 대표적인 예이다. 오랜 공연 역사 속에서 두 주인공 손에 늘 들려있던 채찍이 사라진 것도 이 때문이다. 영화의 경우 제피렐리(Franco Zeffirelli)의 <말괄량이 길들이기>(1966)가 두 주인공이 티격태격 다투다 사랑에 빠지는 로맨틱 코미디로 텍스트를 해석한 대표적인 예이다.]

그러나 이 영화는 10대 관객을 대상으로 고등학교 로맨스 장르를 취하되 “로미오, 오 로미오, 내 눈 앞에서 꺼져주오”라는 포스터 문구에서 단적으로 드러나듯 당시 유행하던 낭만적인 사랑 이야기와의 차별성을 강조한다. 따라서 영화가 말괄량이 페미니스트 캣과 그녀를 마침내 졸업 무도회에 데려가려는 데 성공한 패트릭의 관계를 어떻게 형상화하는지, 그 과정에서 캣으로 하여금 어떤 목소리를 내도록 하는지 좀더 자세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우선 패트릭은 텍스트에서 페트루키오처럼 아무리 돈을 준대도 데이트 상대로 나서는 사람 없는 캣을 꼬시는 일에 머뭇거리지 않고 나선다. 그러나 영화에서 캣은 쉽게 그의 꼬임에 넘어가지 않는다. 때문에 패트릭은 그녀와 데이트를 하기 위해 그녀가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다니게 되고 그 과정에서 그녀를 점점 이해하게 된다. 셰익스피어 텍스트에서 잠을 재우지 않고 먹을 것을 주지 않고 얼토당토않은 요구를 해가며 말괄량이를 길들이는 페트루키오와 달리 영화에서 패트릭은 말괄량이를 이해하게 되면서 페미니스트 말괄량이의 모습 그대로를 받아들이고 존중하며 사랑하게 된다. 캣의 마음을 사기 위해 그녀가 좋아하는 인디 록 밴드 콘서트에 찾아가고, 서점에서 『여성성의 신비』를 찾아 읽으면서 캣이 말괄량이 노릇을 하는 이유에 공감하고 그녀 식의 삶을 인정하게 된다.

그 뿐 아니라 둘이 화해하고 연인이 되는 마지막 순간까지 캣은 자기 목소리를 잃지 않는다. 패트릭이 돈 때문에 자신과 데이트를 했다는 사실을 안 캣은 창작 소네트 발표 시간에 자진해서 자신이 지은 소네트를 읽는다. “네가 내게 말하는 방법이 싫어 / . . . / 네가 거짓말하는 것도 싫어 / . . . / 하지만 내가 정말 싫은 건 그런 널 싫어하지 못하는 거야”라는 내용의 소네트는 물론 마지막에 패트릭에 대한 사랑을 표현하고 있다.

하지만 전형적인 페트라르칸 소네트란 것이 남성 시인이 사랑하는 연인을 찬미하는 과정에서 결국은 시인 자신을 노래하는 것으로 귀결된다는 점을 감안하면, 말괄량이 여성이 ‘시인’이 되어 자신의 생각을 노래하고 발표하는 것은 영화 마지막까지 그녀가 길들여지지 않고 자기 목소리를 내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뿐만 아니라 사랑하는 상대를 이상화하여 찬미하는 소네트의 특성을 뒤집어 오히려 사랑하는 상대의 단점을 하나하나 열거하고 그의 잘못을 일깨우고 있다.

더구나 서로 화해하는 마지막 장면에서도 키스하다말고 계속해서 패트릭의 잘못을 확인하며 따지는 캣의 모습은 그 상대가 누구든 자신의 의견을 직접적으로 개진하는 캣의 면모가 끝까지 유지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텍스트에서 캐서리나와 페트루키오의 관계에서 이야기하는 쪽은 페트루키오이고 캐서리나는 들어야만 했다면, 영화에서 이야기하는 쪽은 주로 캣이고 패트릭은 그녀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공감하고 이해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영화 속 캣은 호지던이 지적한 “행복한 겁탈”의 상태에서 벗어나 자기 목소리를 갖게 되었다 할 수 있다.

그리고 영화의 이러한 특징은 서로 다투기만 하던 캣과 비앙카가 화해하면서 여성간의 유대를 실현하고 두 여성이 서로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데서도 확인된다. 그 과정에서 남들 하는 대로 판에 박힌 듯 예쁘게 꾸미고 무도회에 갈 생각 밖에 없고 또래 친구들로부터 인정받고 관심을 끄는 데만 관심 있는 10대를 대변하는 비앙카와, 그러한 그녀의 순결을 두고 내기까지 거는 남성들로부터 동생을 보호해주고자 하는 캣이 서로를 이해하고 공감하게 된다. 외모에 전혀 신경 쓰지 않는 캣을 “멍청이”라고 부르며 제발 남들처럼 행동하라고 빈정거리던 비앙카가 졸업 무도회에서 언니 캣의 몫이라며 조이의 가랑이를 걷어차는 모습은 그녀가 캣을 이해하고 더불어 남자들의 실체를 알게 되면서 그녀와 한편이 되어 여성을 상품처럼 거래하는 남성의 욕구를 길들이는 데 성공했음을 보여준다.

영화는 이처럼 캣으로 하여금 자신의 목소리를 내도록 하면서 패트릭과 긍정적인 남녀 관계를 모색하고, 또 비앙카와 연대하여 여성의 욕망과 이야기를 들려준다. 페미니스트를 90년대 말괄량이로 설정한 이 영화를 페미니즘적인 입장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이유가 여기 있다. 그러나 이와 동시에 영화가 캣을 겉으로 드러나는 모습과 달리 그다지 위협적이지 않은 페미니스트로 만든다는 점을 분명히 할 필요가 있다.

영화에서 캣이 말괄량이처럼 말하고 행동하는 것은 다른 사람들 기대에 맞춰 살지 않기 위해, 그래서 아예 처음부터 다른 사람들의 기대를 저버림으로써 자신이 생각하고 원하는 대로 살아가기 위한 방편이다. 그리고 그녀의 이러한 결심은 남자와 사귀면서 자유롭게 잠자리를 같이 하는 다른 10대 아이들을 그대로 따라 했던 아픈 경험에서 비롯된 것이다. 따라서 다른 학생들과 구별되는 그녀의 행동, 그래서 페미니스트로 규정되는 행동은 결국 버트(Richard Burt)의 지적처럼 자유분방한 성생활에 반대하는 “착한 여자”이자 “보수적인 페미니스트”를 상징한다.

[각주 Richard Burt, "Te(e)n Things I Hate about Girlene Shakesploitation Flicks in the Late 1990s, or Not-So-Fast Times at Shakespeare High," Spectacular Shakespeare: Critical Theory and Popular Cinema, eds. Courtney Lehmann and Lisa S. Starks (London: AUP 2002) 212-17면.]


영화의 이러한 특징은 카메론이 패트릭과의 데이트를 성사시키기 위해 캣의 방을 뒤지며 그녀의 취향을 알아내는 장면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페미니스트라고 알려진 그녀는 예상과 달리 레즈비언도 아니고 담배도 피우지 않는다. 특별한 점이 있다면 인디 록밴드를 좋아하는 것뿐이다. 물론 페미니스트 캣의 이러한 모습이 프리드먼(Michael D. Freidman)이 지적하듯 90년대 제3기 페미니즘을 대표하는 ‘반란 소녀’(Riot Grrrl)의 특징과 일치하는 것이 사실이다.
[각주 Michael D. Freidman, "The Feminist as Shrew in 10 Things I Hate about You," Shakespeare Bulletin 22.2 (2004) 53-62면.]

그러나 그의 주장처럼 이성애 등 통상적인 사회 구조를 따르면서 가부장제에 저항하는 모순을 포용하는 제 3기 페미니즘을 주창하는 진보적인 영화라고 하기에는 영화가 보여주는 로맨스와 페미니즘의 화해가 너무 쉽고 근사하다.

셰익스피어 텍스트에서 페트루키오가 캐서리나를 길들이는 과정을 완전히 생략한 영화에서 패트릭은 전과자라거나 오리를 산 채 먹는다는 소문과 달리 실은 처음부터 탄탄한 근육질 몸매만큼이나 괜찮은 남자, 캣의 페미니즘까지 수용해줄 근사한 남자다. 10대 관객을 대상으로 한 다른 많은 영화와 마찬가지로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에서 또한 자식의 삶에 사사건건 간섭하는 부모와 젊은 주인공의 불화가 영화의 주된 갈등일 뿐 아니라, 그러한 아버지와의 갈등 때문에 캣은 말괄량이 노릇을 한다.

때문에 돈을 받고 시작한 일이지만 패트릭이 캣을 진심으로 사랑하게만 되면 둘 사이에는 커다란 갈등이 있을 이유가 없고, 따라서 캣의 페미니스트적인 고민이나 갈등 또한 패트릭과의 관계에서 별 문제될 것이 없다. 영화 마지막에 자신이 지은 소네트를 낭독하며 패트릭에 대한 사랑을 고백하는 장면에서 캣이 앞서 전투적인 페미나치 차림과 달리 머리를 예쁘게 땋고 꽃무늬 블라우스와 치마를 차려 입은 매우 여성스런 모습을 하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페미니스트와 그녀의 페미니즘마저 포용하는 근사한 남자의 이와 같은 사랑은 앞서 언급한 <내 남자 친구는 왕자님>에서 한층 극단적인 형태로 나타난다. 왕자님과 결혼하여 덴마크의 왕비가 되려했으나 의사가 되고 싶은 자신의 꿈을 이루기 위해 학교로 돌아온 여주인공 앞에 왕자가 다시 찾아온다. 그리고는 그녀가 공부를 마치고 의사가 될 때가지 자신은 물론이고 덴마크 국민 모두가 기다려주겠다고 선포한다. 페미니즘 관련 서적을 찾아 읽고, 인디 록 밴드가 되고 싶은 꿈을 이루도록 전자 기타를 선물하는 패트릭의 모습이 한층 왕자님다운 방식으로 표출된 경우라 할 수 있는데, 이와 같은 현대판 왕자님만 있으면 페미니스트 여주인공은 더는 반항할 필요도 현실적 어려움을 겪을 이유도 없다.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가 이처럼 페미니스트 여성을 내세우되 그런 그녀의 꿈과 욕망을 이해하고 실현시켜줄 이상적인 남자를 통해 페미니즘과 로맨스를 쉽게 화해시키는 것은 젊은 여성을 주요 관객으로 삼는 데서 비롯된 특징이기도 하다. 로즈(Jaimee Rose)는 포스트페미니즘 시대에도 여전히 멋진 남자와의 로맨스가 인기를 끄는 것은 많은 젊은 여성들이 대학에 진학하고, 자신들의 엄마처럼, 아니 그 이상 좋은 직업을 갖고 싶어 하는 동시에 그 모든 욕망을 이해하고 그 실현을 도와줄 이상적인 남자와의 로맨스를 꿈꾸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과거 여성에게 허락되지 않았던 영역에서 성공하였으나 결국 이혼하고 혼자 아이를 키우며 살아가는 많은 페미니스트 엄마의 불행한 사생활을 보며 자란 젊은 여성 관객은 자기 직업을 갖고 사회적으로 성공하는 동시에 그 모든 것을 이해하고 도와줄 이상적인 남자와의 로맨스를 기다린다는 것이다.
[각주 Jaimee Rose, "Feminism Hasn't Stopped Princess Complex" ]


셰익스피어 텍스트가 캐서리나를 “악마의 혀”라고 칭하며 과장되게 벌벌 떠는 남성들의 태도와 실제 그녀의 말괄량이적인 행동 간의 간극을 보여주어 남성 중심의 이분법적 시각에 내재한 모순을 드러냈다면,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는 진정 말이 많은 페미니스트 말괄량이를 등장시키되 그녀의 페미니스트적인 고민을 세대간의 갈등으로 대치하고 근사한 남자와의 로맨스를 통해 그러한 갈등마저 어렵지 않게 해결해준다. 영화가 캣을 통해 형상화하는 페미니즘이 반항적이기는 하되 위협적이거나 전복적이지 않은 이유가 여기 있다.

Ⅲ. 마이클 앨머레이더 감독의 <햄릿> Michael Almereyda, Hamlet. Perf. Ethan Hawke, Diane Verona, and Julia Stiles. Miramax Films. 2000.
― 포스트모던 패러디와 청년 영화의 만남

페미니스트 캐서리나를 보고 나니 햄릿이 현재에 산다면 과연 어떤 모습으로 무엇을 하고 있을지, 그가 보는 현재는 얼마나 어떻게 “어긋난” 모습일지 궁금해진다. 그리고 그에 답이라도 하듯 앨머레이더 감독은 뉴욕 맨해튼에 위치한 덴마크 기업의 후계자, 그러나 비디오 카메라를 들고 영화 찍기에 여념 없는 영화감독 햄릿을 선보인다. 그리고 영화 속에서 2000년 뉴욕은 우리에게 익숙한 기업이나 제품 광고에서부터 슈퍼마켓 유리창에 비친 세일 전단까지 온갖 광고와 이미지들이 홍수를 이루는가 하면, 어디에나 지켜보는 카메라가 있고, 선왕의 혼령마저 감시 카메라에 처음 그 모습을 드러냈다가 펩시콜라 자동판매기 속으로 사라지며, 하늘은커녕 나무 한 그루 보이지 않고 자연이라고는 오필리아의 장례식이 행해지는 공동묘지뿐인 세상이다.

‘덴마크는 감옥이다,’ 일찍이 햄릿이 선언했다. 그리고 그 말을 현대의 소비문화 속에서 생각해보면, 감옥의 창살은 곧 광고, 우리가 눈을 뜨는 순간부터 밀어닥치는 그 모든 브랜드 이름, 선전 문구로 정의된다. [. . .] 물질주의 세계에서 정신적 가치의 덧없음을 인식하는 것, 또 자축하는 새로운 세기의 문턱에서 덴마크에 무언가 썩어있는 기운을 느끼는 것은 햄릿의 고뇌, 그 핵심에 도달하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각주 Michael Almereyda, William Shakespeare's Hamlet (New York: Faber and Faber 2000) ⅺ면.]


위와 같은 감독의 설명에서 드러나듯 영화는 아침에 눈을 뜨는 순간부터 밀려드는 광고와 이미지들로 가득한 현대 소비 사회, 상품이 물신화되고 극도로 위협적인 피상성이 지배하는 후기 자본주의 사회에서 [각주 Fredric Jameson, Postmoderinism, or, The Cultural Logic of Late Capitalism (London: Verso 1991) 17면.] 햄릿이 감옥 같다고 느낀 덴마크의 모습을 읽어냈다.

앨머레이더 영화는 이처럼 어긋난 현대의 모습을 담아냄으로써, 과거 <햄릿> 영화에서 중요하게 부각되지 않거나 생략되었던 햄릿의 고뇌를 현대적인 문맥에서 읽어내고 강조한다. 텍스트 2막 2장에서 “인간이란 얼마나 멋진 걸작인가!”로 시작하는 햄릿의 대사(2.2.286-90)를 [각주 William Shakespeare, Hamlet: Prince of Denmark. ed. Philip Edwards (Cambridge: Cambridge UP, 1985). 이하 셰익스피어 텍스트의 인용은 막, 장, 행만 표기하기로 한다.] 영화 첫 장면 햄릿의 독백으로 사용하면서, “세상의 아름다움”을 말하는 순간 출격하는 제트 전투기와 핵폭탄 투하장면을 보여주고, 인간을 “만물의 귀감”이라고 하는 순간 괴물의 입을 클로즈업한다. 이와 같은 프롤로그에서 햄릿의 고민은 신과 같을 수도 있으나 한낱 먼지에 지나지 않게 되어버린 인간 존재에 대한 것이다.

또한 셰익스피어가 햄릿의 연극론을 통해 적절한 재현의 방법을 탐구한 것처럼 앨머레이더는 항상 비디오 카메라를 들고 다니는 영화 감독 햄릿을 통해 영화 카메라가 세상을 비추는('mirror up to nature') 방법을 고민한다. 그리고 앨머레이더 스스로 “스케치가 아니라 콜라주, 직감과 이미지, 아이디어의 모음”이라고 자신의 영화를 정의한 데서 드러나듯,(Almereyda, ⅷ면.) 루어만과 마찬가지로 콜라주와 몽타주를 그 방법으로 택했다.

실제로 앨머레이더 영화는 웅장한 배경 음악과 함께 검은 화면에 새겨지는 빨간 제목, 오필리아의 수영장 씬, 햄릿이 숨을 거두는 순간 이어지는 회상 몽타주, 마지막 앵커의 뉴스 멘트 등 영화 전반에 걸쳐 루어만 영화에 대한 오마주(hommage)로 가득하다. 뿐만 아니라 루어만 영화가 TV 드라마, 뉴스, 서부 영화, 갱 영화, 상업 광고 등 대중문화 양식을 들여오고 패러디한 것처럼 수많은 광고 화면과 로고들이 끊임없이 교차편집된다.


예를 들어 영화에서 “사느냐 죽느냐” 독백이 처음 시작되는 순간 햄릿은 머리에 총을 겨누고 독백하는 자신의 모습이 담긴 비디오 화면을 바라보고 있다. 그리고 몇 번에 걸쳐 끊겼다 다시 시작했다 반복되는 이 독백은 마침내 블록버스터 비디오 대여점의 액션 영화 진열대 사이에서 마무리된다. 그 순간 대여점 비디오 화면에는 대규모 폭발과 폭력적인 싸움이 계속되는 액션 영화가 상영되고, 마지막에는 액션 영웅이 불타는 화염을 뚫고 당당하게 걸어 나오는 장면이 보인다.

그리고 많은 비디오를 대여해서 돌아온 햄릿의 비디오 편집 화면에는 구세대에 반항하는 젊은 세대를 상징하는 제임스 딘(James Dean), “어울려 살 것”(to inter be)을 주장하는 틱 낫 한(Thich Nhat Hanh)의 모습이 교차한다. “사느냐 죽느냐”를 되뇌는 햄릿은 자신의 모습과 겹쳐지는 이와 같은 몽타주를 통해 화염을 뚫고 나오는 영웅, 젊은 반항아, 소외되고 고립된 세상에서 상호성 회복을 주창하는 영적 지도자, 그 어느 것도 되지 못하는 자신의 존재와 처지를 자의식적으로 드러낸다. 햄릿에게, 그리고 앨머레이더에게 카메라와 영상은 그들이 사는 세상과 그 속에서 자신을 표현하는 방법인 것이다.

앨머레이더는 또한 영화 내내 여러 다른 <햄릿>을 계속해서 보여준다. 길거드(Sir John Gielgud)의 햄릿 공연 장면을 삽입하고, 밀실을 추적하는 듯한 올리비에(Laurence Olivier) 영화의 카메라 움직임을 따르고, 오필리아가 꺼내놓는 목욕 오리나 덴마크 기업 사회의 모습을 통해 카우리스매키(Aki Kaurismäki) 감독의 <햄릿 비즈니스 세계에 가다>(Hamlet Goes Business>(1987)를 패러디하고, 햄릿이 헤매 다니는 밤거리에 테이머(Julie Taymor)의 <라이언 킹>(The Lion King) 공연 광고를 보여주는 등 과거 여러 <햄릿>을 의식적으로 부각시키면서 오랜 <햄릿> 영화 및 공연 전통 속에 자신의 영화를 위치시킨다.

이는 과거 재현물의 문맥을 무시하지 않되 역사로 인해 생겨난 아이러니컬한 차이의 존재를 드러내는 포스트모던 패러디 예술의 한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각주 Hutcheon, 94-95.] 따라서 관객은 워커(Elsie Walker)의 지적처럼 셰익스피어 텍스트 뿐 아니라 과거 햄릿 공연 및 영화 전통과의 관련 속에서 익숙한 몽타주로부터 의미를 읽어낼 것을 요구받는다.
[각주 Elsie Walker, "A 'Harsh World' of Soundbite Shakespeare: Machael Almereyda's Hamlet (2000),"http://www.brunel.ac.kr/faculty/arts/EnterText/hamlet/walker.pdf 325.]


그리고 이처럼 자신의 영화를 오랜 『햄릿』 전통 속에 위치시켜 현재의 시각에서 과거를 자의식적으로 재평가하고 대화하는 영화의 특징은 오필리아를 둘러싼 재현의 역사를 인식하되 그 역사를 거부하고 저항하며 오필리아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으로 계속된다. 햄릿과 오필리아가 오랜 연인임을 강조하고 햄릿에 대한 오필리아의 사랑을 적극적으로 드러낼 뿐 아니라 그 어떤 <햄릿> 영화에서보다 반항적인 모습으로 오필리아를 형상화한다. 그녀는 헐렁한 청바지와 몸에 꼭 달라붙는 티셔츠만큼이나 과거의 오필리아와 다르다.

레어티즈와 폴로니어스가 햄릿을 멀리하라고 당부하는 장면에서는 지루하고 듣기 싫다는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나 이리저리 방안을 옮겨 다니며 대화를 피한다. 레어티즈가 순결을 잃지 말라고 하자 몹시 못마땅한 표정으로 빈정거리고, 폴로니어스가 어린애 다루듯 신발 끈을 매주며 햄릿과 만나지 말라 할 때는, 노골적으로 거부감을 드러내면서 “말씀대로 따르지요”(1.3.136)라고 답하기는커녕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무시한다.

이렇게 자신의 사랑과 삶을 통제하려는 아버지와 오빠에 대해 노골적으로 불만을 드러내고 저항하는 오필리아의 모습은 셰익스피어 텍스트에서 그녀의 침묵에 주목하는 페미니즘 비평이 대두하기까지 오랜 비평과 재현의 역사 속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그녀의 감정을 적극적으로 표현한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닐리(Carol Thomas Neely)는 “페미니스트 비평가로서 오필리아의 이야기를 들려줘야 할 의무가 있다”고 했다.

[각주 Carol Thomas Neely, "Feminist Modes of Shakespearean Criticism," Woman's Studies 9 (1981): 11.; 쇼월터(Elaine Showalter)는 오랜 재현의 역사 속에서 오필리아가 “남성 경험의 은유”가 되었다고 지적했다. Elaine Showalter, "Representing Ophelia: Women, Madness, and the Responsibilities of Feminist Criticism," Shakespearean Tragedy, ed. John Drakakis (London: Routledge 1992) 283.]

특히 클로디어스와 거트루드가 지켜보는 앞에서 폴로니어스가 오필리아의 몸 위로 도청장치를 감아주는 장면에서는 눈물 흘리는 오필리아의 얼굴을 오랫동안 클로즈업함으로써 아버지에 의해 스파이가 될 수밖에 없었던 오필리아의 처지와 그녀가 느꼈을 감정에 관객의 공감을 유도한다.

영화는 또 폴로니어스가 햄릿이 미친 원인이 오필리아에게 있다고 거트루드와 클로디어스에게 알리는 2막 2장에 오필리아를 함께 등장시켜, 대화 내내 못마땅하고 불만스런 그녀의 얼굴을 클로즈업한다. 그리고 마침내 참다못해 수영장 물에 뛰어들어 얼굴을 가리는 그녀의 상상 샷을 통해 억압적인 현실에 대한 불만과 혐오, 또 그로부터 탈출하고 싶은 욕구를 강하게 부각시킨다. 이때 오필리아가 수영장 물에 뛰어들어 얼굴을 가리는 모습은 물에 빠진 그녀의 얼굴을 오래 클로즈업함으로써 주검조차 아름다운 욕망의 대상으로 만든 브래너 영화의 장면을 패러디 하는 동시에, 그녀의 자살을 예견하게 함으로써 그녀에게 해방된 안전한 공간이란 죽음뿐임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이처럼 오필리아를 둘러싼 오랜 재현의 역사를 의식하며 그를 거부하고 패러디하는 영화의 특징은 특히 햄릿에게 먼저 만날 약속을 하고 기다리던 바로 그 분수대에서 죽어있는 그녀를 경관이 걸어 들어가 끌어내오는 장면에서 더욱 분명해진다. 아름답고 자연스럽게, 그리고 에로틱한 모습으로 죽어가는 모습을 시각적 이미지로 재현하면서 그녀의 성에 대한 불안을 완전히 씻어버리고 안전한 욕망의 대상으로 만들었던 올리비에 영화 이후 많은 햄릿 영화들과 달리 이 영화에서 오필리아의 죽음은 지극히 사실적이다.

발목 깊이도 되지 않는 얕은 물에 빠져 죽은 그녀의 모습은 자신을 둘러싼 억압적인 세상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했던 그녀의 바람을 실현한 것이며, 동시에 그녀의 죽음을 자연과 하나 되는 아름다운 정화 과정으로 재현하는 오랜 역사를 거부하는 것이다. 미쳐서도 전통적인 미친 여자의 의상이나 헤어스타일을 따르는 대신 공공장소에 나타나 고함치고 따져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만들며 그녀의 광기가 가진 공격성을 강조하는 것도 이와 같은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인간 존재에 대한 고뇌도, 세상을 비추는 방법에 대한 탐색도, 오필리아의 이야기를 들려주기 시작한 페미니즘적인 시도도 영화 후반으로 갈수록 점차 퇴색하고, 어느새 영화는 청년 영화의 전통을 따라 타락한 구세대로 인한 젊은 주인공의 안타까운 희생을 강조하는데 주력한다. 어긋난 세상을 만든 인간에 대한 햄릿의 번민은 타락한 구세대를 향한 젊은이의 환멸과 반감으로 대치되고, 햄릿과 오필리아는 클로디어스를 연기하는 맥라클런(Kyle MacLachlan)의 인간미 없는 마네킹 같은 얼굴로 상징되는 비즈니스 세계에서 이루지 못할 사랑을 하는 “한 쌍의 불운한 연인”이 된다.

햄릿이 마지막 숨을 거두며 호레이쇼에게 뒷이야기를 당부한 뒤 펼쳐지는 플래쉬백 영상이 클로즈업된 오필리아로 끝나는 것도 이 때문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몽타주와 콜라주, 패러디를 통해 재현의 역사를 문제 삼을 뿐 아니라 독립영화적인 기법을 고수했던 영화는 후반으로 갈수록 플롯 진행에 따라 질서정연하게 장면을 배열하는 연속 편집으로 회귀하면서 오히려 할리우드 주류 영화에 가까워진다.

뿐만 아니라 반항적이고 공격적인 오필리아를 통해 오랜 재현의 역사를 거부하면서도, 그러한 그녀를 여성으로서 자신에게 가해지는 억압을 인식하고 그에 저항하기보다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에서 캣이 그러했듯 과보호하는 아버지에 반항하는 젊은이로 형상화한다. 캣이 사사건건 자기주장을 내세우는 페미니스트가 된 것은 지나치게 딸의 삶에 간섭하는 아버지로부터 벗어나 자기 뜻대로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해서였다. 앨머레이더 영화에서도 폴로니어스는 다 큰 딸 생일에 풍선을 사들고 나타나는가 하면 풀어진 신발 끈을 직접 묶어줄 정도로 그녀를 어린애 취급하면서 딸의 감정이나 사생활까지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아버지이다. 햄릿을 멀리하라고 말하는 폴로니어스에게서 딸들이 임신이라도 할까봐 노심초사하고, 그래서 임신복까지 입혀가며 무절제한 성생활이 초래할 결과를 가상 체험하게 하는 캣의 아버지를 떠올리게 되는 이유가 여기 있다.

따라서 오필리아에게 가해지는 억압과 통제란 것이 여성의 성에 대한 남성의 욕망과 불안에서 비롯된 것임을 보여주지 못하는데, 이는 오필리아의 이야기를 들려주려 하면서도 공격적일 정도로 적극적으로 자신의 성적인 욕망을 표현하고 충족시키는 거트루드에게 어긋난 세상의 책임을 묻는 데서 확인된다. 햄릿이 편집한 영화 <쥐덫>에서 난삽하다 못해 흉측한 키스 장면에 이어 거트루드를 클로즈업함으로써 <쥐덫> 시작에서 피어난 순수한 생명이자 사랑을 상징하는 노란 장미, 그 “장미를 꺾어낸(3.4.42)” 책임을 그녀에게 묻는다. 영화의 페미니즘적인 시각이 오필리아의 반항적인 옷차림, 거트루드의 세련된 비즈니스 정장으로 상징되는 할리우드 영화의 적극적인 여성, 그 전형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다.


Ⅳ.
셰익스피어가 근사해졌다. <내가 널 사랑할 수 없는 10가지 이유>와 <햄릿>을 통해 살펴본 최근 할리우드 셰익스피어 영화의 특징을 한마디로 요약한다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전기 기타를 메고 록음악 연주에 심취하는 캐서리나, 세련된 캐주얼 정장에 털모자를 눌러쓰고 카메라를 손에서 놓지 않는 햄릿, 공공장소에서 보란 듯 고함을 지르는가 하면 꽃잎 대신 폴라로이드 사진을 흩뿌리는 오필리아, 그리고 이들을 담아내는 세련된 카메라 움직임과 편집, 재치 있는 대사와 음악, 이 모두가 한데 어우러져 젊은 관객의 관심을 끌고 있다. 소네트라면 고개를 저어도 그것을 랩으로 듣는다면 박수치며 환영하는 젊은이들의 구미에 맞게 근사해진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은 셰익스피어 작품이나 인물뿐 아니라 작가 셰익스피어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다.

99년 아카데미 7개 부분을 수상한 <셰익스피어 인 러브>는 근대 초기 여성에게 허락되지 않은 것을 욕망하며 사랑과 시와 모험을 꿈꾸는 바이올라라는 적극적인 여성을 전면에 내세운 영화다. 그러나 영화는 궁극적으로 시적인 재능을 잃은 윌이 그녀와 사랑을 하면서 위대한 작가 셰익스피어로 그 위상을 확고히 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영화 초반 어딘가 남자답지 못했던 윌은 점차 근사한 영웅이 된다. 바이올라와의 관계를 눈치 챈 웨섹스 백작 앞에서 자신을 말로라고 거짓말하는가 하면, 바이올라를 만나기 위해 발코니에 오르다 떨어져 허둥지둥 줄행랑치던 그가, 영화 후반에 가면 칼을 휘둘러 웨섹스를 항복시킬 뿐 아니라, 근육질 팔을 드러낸 채 막힘없이 작품을 써내려가고, 떠나는 바이올라를 향해서는 “그녀는 내 영원한 주인공”이라는 낭만적인 대사를 읊조린다.

그리고 이러한 최근 셰익스피어 영화에는 무엇보다 영화 번안을 둘러싼 논의의 변화가 영향을 미쳤다. 최근 영화 번안 논의는 영화가 텍스트에 얼마나 충실한가를 따지는 데서 벗어나 상호텍스트성의 담론으로 옮아가면서, 번안을 하나의 텍스트가 다른 텍스트를 낳는 끝없는 재생산과 변형 과정의 일부로 받아들이고 있다.
[각주 Robert Stam, Film Theory: An Introduction (Oxford: Blackwell 1992) 209면.]

셰익스피어 영화는 이러한 변화의 흐름에 동승하면서 동시에 페미니즘의 옷을 입고, 이른바 ‘할리우드 셰익스피어 영화’라는 하나의 장르를 형성하여 다른 영화에까지 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처럼 셰익스피어 열기가 워낙 뜨거워서 셰익스피어를 보지 않는 것이 불가능할 정도라면, [각주 Daivd Gates, "The Bard Is Hot - He's gone Hollywood. He's on the Web. He's got theme parks and teenage fans. How can we miss Shakespeare if he won't go away?" Newsweek Dec 23, 1996. 44-52면.]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셰익스피어가 영화로 만들어지면서 어떠한 현재적 의미를 생산하는지 적극적으로 꼼꼼히 살피는 일일 것이다. 셰익스피어 영화가 100년의 역사를 마감하고 새로운 세기를 맞은 지금 일찍이 “우리는 셰익스피어 속에서 현대적으로 아무 의의가 없는 과거의 갈등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현재 현실을 봐야한다”고 역설한 코진체프(Girgori Kozintsev)의 말을 [각주 Lorne M. Buchman, Still in Movement: Shakespeare on Screen (Oxford: Oxford UP 1991) 8면.]
떠올리게 되는 것도, 그러면서 동시에 현재의 현실에 대한 고민과 갈등을 지나치게 쉽게 해결해 버리는, 그래서 오히려 불편한 ‘너무 근사한 셰익스피어’를 즐겁게 감상하되 더더욱 비판적으로 읽어야 하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 <안과밖> 17호에 실린 영화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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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근사한 셰익스피어 <- 현재글

김희진(자료실)
2006-0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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