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의 세미나들

 *영미연 안팎 소식

 *이달의 학술행사

 *문화 리뷰

 *다른 집 가기

 *책읽기,세상읽기

연구회소개 / 회원가입 / 분과연구실 / 도서실 / 회의실 / 사이트맵 / 자료회원연구실 / 자유게시판

                     

제   목

 스크린쿼터와 염치

작성자

Bloom

작성일자

2006-02-08

이메일

조회

3117


영화평이 아니라 영화판에 대한 단상이다.

다시 스크린쿼터 문제로 나라 안팎이 시끄럽다. 이 문제에 대한 내 생각을 잘 전해주는 김규항의 글을 퍼온다. 1999년, 한창 스크린쿼터로 시끄러운 때 썼던 글이라는데 꽤 시간이 흐른 지금 읽어도 여전히 문제의식은 유효하다.

과연 스크린쿼터는 한국-미국만의 문제인가. 그것이 단지 문화제국주의와 문화민족주의의 대립구도만으로 단순하고 선명하게 설명될 수 있는 문제인가. 작금의 상황을 지켜보며 드는 착잡한 생각들이다. 헐리웃 영화의 세계지배구도가 매우 못마땅하고, 각국의 문화적 다양성은 분명히 지켜져야 하고 그러기 위해 필요하다면 스크린쿼터같은 제도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나도 한편으로는 한다.

하지만 '영화인'이라는 이름, '국민'이라는 이름을 자기들 편할 때만 불러대는 작태, 같은 무역자유화때문에 고통받는 남들의 싸움, 예컨대 무역자유화 정책과 자유무역협정 체결 등에 따른 농업개방으로 고통받는 농민들의 싸움에는 애써 무관심했던, 지금 피켓팅을 하고 있다는 잘 나가는 '영화인들' 정확히 말해 영화배우들, 제작자들, 배급사들의 몰염치가 또한 나는 마땅치 않다.

염치는 단지 개인적 예의의 문제가 아니다. 남의 고통에 무관심하면 언젠가 내가 같은 이유로 고통당할 때가 온다. 그리고 그들이 고통당할 때 내가 무관심하면 남들도 내가 고통당할 때 내게 똑같이 무관심한 태도를 보이는 법이다. 그게 내가 이해하는 세상사의 이치이다. 한국 영화인들, 아니 더 정확히 말해 잘 나가는 영화배우들, 대자본 제작자들, 배급사들, 스크린쿼터 수호투쟁도 좋지만 이 기회에 염치라는 것에 대해 좀 성찰하시라. 명색이 영화 '예술'을 한다는 사람들이라면 말이다. 아래 글의 필자처럼, 한국영화에 나름의 애정을 갖고있는 사람으로서 주는 고언이다.

--------------
출처: gyuhang.net

염치

알고 보면 이번 스크린쿼터 파동이란 골 때리는 일이었다. 스크린쿼터는 GATT는 물론 그 후신인 WTO에서도 인정하고 있는 '문화적 예외 조항'으로 볼 때, 현재로선 어떤 '경제 논리'로도 축소나 폐지를 거론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문제가 안 되는 일이 문제가 된 셈이다. 내막은 문화 의식이 결여된 한국 공무원들이 '공정 무역'이라는 채찍과 '5억 달러 투자'(외자 유치!)라는 당근으로 꼬드기는 미국 공무원들에게 은근슬쩍 땅문서(스크린쿼터라는) 내주려다 소란이 난, '실화'보다는 '야담'에 가까운, 그런 일이었다.

영화인들은 전례 없이 단결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들이 얼마나 열정적으로 싸웠냐 하면 '자신들의 모습에 자신들이 놀랄 정도'라고 했다. 두 달이 넘게 계속된 영화인들의 싸움은 공무원들이 꼬리를 빼고 국회 결의안이 관철되고서야 일차 마무리되었다. 농성을 풀며 영화인들은 "국민의 지지를 얻는 성과를 거두"었다고 말했다. 맞는 말이다. 영화인들이 제아무리 열심히 싸웠던들 국민들이 외면했다면 결과는 전혀 달랐을 테니 말이다. 그러나 나는 그 말이 왜 이리도 민망한가.

과연 한국 영화인들은 '국민의 지지'를 받을 만한 사람들인가. 제 밥그릇이 걸린 일에는 '자신들이 놀랄 정도'로 열심인 영화인들은 남의 밥그릇에는 어떤 관심을 보였던가. 자신들의 불행을 언제나 민족이라는 이름에 호소하는 영화인들은 정작 민족이 불행할 때 어디에 있었던가. 이번 싸움에서 할리우드 영화를 '독점 자본'으로 해석하는 참신함을 보인 영화인들은 다른 업종의 노동자들이 진짜 독점자본과 싸울 때 무엇을 도왔던가. 이번 싸움에서 한국 영화를 '민족 고유의 것'으로 해석하던 영화인들은 농민들이 신토불이를 외치며 미국쌀과 싸울 때 어떤 지지를 보냈던가. 이 나라의 유한 계급을 뺀 모든 백성들이 불행해진 구제금융 시대가 일년을 넘기고 있지만 그 동안 영화인들은 그 잘난 영화 예술로 세상의 어떤 모습을 그려냈던가. '경쟁력'을 이유로 직장에서 쫓겨나고 가정이 풍비박산이 나고 길거리를 헤매는 이 나라의 백성들이 그런 염치없는 사람들에 대해서만 '경쟁력'을 유보하는 아량을 베풀 이유는 도대체 어디에 있는가. 한번도 사회적이지 않던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가장 큰 사회적 혜택은 과연 공정한가.

이번 싸움을 통해 개발된 영화인들의 자기 논리가 전례 없이 정교함에도, 이번 싸움의 열기가 밥그릇에서 비롯되었다는 것 또한 분명하다. 그렇지 않고서야 일체의 이데올로기에 대해 냉소하고 일상의 우연에 천착한다는 지성파 감독까지 연단에 오르는 이변이 생길 리 있었겠는가.('정치 의식'을 초월한 듯 행동하는 사람들은 언제나 '경제 의식' 아래에 머물 뿐이다.) 나는 영화인들의 '경제 투쟁'을 비난하고 싶지 않다. 다만 그 경제투쟁이 경제투쟁에 머물지 않기를, 제 밥그릇을 지키기 위한 그들의 열정이 남의 밥그릇도 함께 생각하는 사회적 지평으로 확대되기를 바란다. 영화인들은 자신들이 경험한 억울함과 고통을 이 나라의 백성들이 겪는 보편적인 억울함과 고통 속에서 재발견하여야 한다. 영화인들은 이번 싸움을 통해 지켜낸 스크린쿼터가 오로지 영화라는 업종에만 주어지는 소중한 혜택임을, 그들의 장사가 매우 특별한 장사임을 다시금 생각하여야 한다. 그것은 산업의 문제이자 예술의 문제지만, 오히려 '염치'의 문제이기도 하다.

사족 : 이 만큼 말하고도, 내 속은 여전히 찜찜하다. 한국 영화인들이 농성장에서 함께 흘린 눈물은 모두 같은가. 영화 자본가의 눈물과 영화 노동자의 눈물은 싸움이 끝난 다음에도 연대하는가. 싸움의 성과로 얻어지는 산업적 이익은 함께 흘린 눈물처럼 공정하게 분배되는가. 한국영화인들은 같은 민족인 동시에 같은 계급인가. 한국 영화인들에게는 '상식선'의 정치의식이 필요하다. | 씨네21 1999년_3월


 

   관련글 제목

작성자

작성일자

조회

스크린쿼터와 염치 <- 현재글

Bloom
2006-02-08
3117

 

 

 

연구회소개 | 회원 가입  |  분과 연구실  |  도서실  |  회의실  |  사이트맵  |  자료회원연구실 | 자유게시판

운영위  |  안과밖편집위  |  자료실편집위 |  영미문학연구 편집위 |  출판기획위번역평가위

Copyright 2001 All rights reserved SESK.net